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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박, 이름 없는 여성들을 부르는 시인

『이해할 차례이다』 권박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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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이기 때문에 이름을 없애야 했거나 남자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여성 작가들에 주목했어요. 그렇게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같이 써서 이름 “권박”이 탄생했습니다.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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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이해할 차례이다』 가 ‘민음의 시’ 266번으로 출간되었다. (심사위원 김나영, 김행숙, 하재연) “메리 셸리와 이상이 시의 몸으로 만났다”는 평을 받은 시인 권박은 현실에 발 딛고 서서 시적 상상력으로 현실의 구멍들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시인이 사는 세상은 여전히 여성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사회이고, 여성에게 제한된 역할만을 부여하는 공동체다. 시인은 이 공동체에 속하기를 거부하며 기꺼이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괴물이 된다. 시인은 각주를 통해 현실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세상과 불화했던 여성 시인의 계보를 잇는다. 뒤틀린 얼굴을 한 채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대화를 제안한다. 이제 대화를 시작해야 할 우리가 받아든 것은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짜깁기된 피의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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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김수영 문학상 수상 축하드려요. 투고부터 당선, 시집 출간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신이 2개의 엿을 주었어요. 하나는 합격 기원 사막 엿이고 또 하나는 합격 축하 북극 엿인데요. 투고 전에 준 합격 기원 사막 엿은 질척질척 흘러내리기만 하여 쭈-우-우-욱- 늘어지기만 했는데, 당선되었을 때 준 합격 축하 북극 엿은 얼어서 딱딱해 딱! 후다닥! 딱!

 

수상 소감을 보면, 시집을 출간하면서 ‘권민자’에서 ‘권박’으로 개명을 하셨어요. 개명하게 된 계기와 새로운 이름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여성/여성 작가 역사를 연구하며, 여자이기 때문에 이름을 없애야 했거나 남자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여성/여성 작가들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고, 이름이 여성/여성 작가 역사의 키워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성을 넘어 작가로서, 쓰고 싶은 것에 대해 숙고해야겠다고,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없애고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같이 쓰자, 결정했습니다. 이름 없는 이름, “권박”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시집에 눈에 띄는 특성 중 하나가 각주입니다. 특히 「마구마구 피뢰침」에는 문학 작품, 논문, 신문 기사를 인용한 21개의 각주가 달려 있는데요. 시에 각주를 기입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습니다. 또 각주를 시의 요소 중 하나로 사용하시면서 염두에 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마구마구 피뢰침」은 3여 년에 걸쳐 쓴 작품인데요. 이미 많은 여성 작가들이 폭발적이면서도 정교하게 여성의 피해를 고발하는 시를 썼고, 그렇기에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시를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만의 방식으로 시를 쓸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일단 여성/여성 작가에 대해 공부하자 다짐했죠. 그래서인지 여성/여성 작가의 이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공부한 것을 정리하며 어떻게 시로 잘 쓸 수 있을까 모색하다 보니, 시도 소설도 논문도 신문 기사도 아닌 ‘괴물’ 취급을 받을 만한 글을 쓸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드는 거예요. 그럼에도 ‘괴물’ 취급을 받을 만한 글을 쓸 수밖에 없겠다,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음을 시로써 이해시키자 생각했죠.

 

그러는 과정에서 2017년 현대시학 9/10월호에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 「트집의 트로 끝나는 사전」을 발표했는데, 발표하고 나서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는 설명이 좀 더 필요하고, 「트집의 트로 끝나는 사전」은 감정을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를 퇴고하면서 각주에 대해 고민하고, 「트집의 트로 끝나는 사전」을 퇴고하면서 감정 조절에 대해 고민한 것이 「마구마구 피뢰침」을 쓰는 바탕이 되었어요.

 

2013년에 썼지만 발표 지면을 얻지 못해 묵혀 두었던 「자정은 죽음의 잉여이고」를 자주 꺼내 보았던 것은 제가 처음으로 시에 각주를 썼던 작품이기 때문이었는데, 저는 제 작품 중에 「자정은 죽음의 잉여이고」를 제일 좋아해요. 각주를 쓰는 것 자체에 고민이 깊었지만 시로 잘 쓸 수 있다고 믿어 보자고 다짐하며 「마구마구 피뢰침」을 썼어요. 제 시에 나오는 각주는 문학 작품, 논문, 신문 기사를 인용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시로 재탄생시켰기에 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각주를 보면 많은 여성 작가들의 시와 소설이 언급되는데요. 시를 쓰실 때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작가나 작품을 꼽아 주신다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을 읽고 중학교에 다니는 내내 도스토옙스키를 끼고 살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도스토옙스키 작품 전반에 걸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특히 『죄와 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지하로부터의 수기』 (!) 그리고 많은 여성 작가들이 떠오르는데,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작가는 최승자이고,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작품은 실비아 플라스의 「아빠」와 그의 일기예요.

 

김수영 문학상 심사를 맡아 주신 김행숙 시인의 심사평 중 “초현실주의와 페미니즘의 만남”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 말대로, 시집에서 여성이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와 삶과 죽음을 사유하는 초현실적인 상상력이 느껴졌어요. 젠더 문제, 삶과 죽음. 시인께서 평소 고민하는 부분일까요?

 

집에서 이불 하이킥을 매일매일 해요. 관계가 어려워서요. 가족도 어렵고, 친구도 어렵고, 남자도 어렵고, 여자도 어렵고…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말을 잘 못해서예요. 말을 잘 못한다고 말하면 “네가?” 반문하는 사람이 많은데… “말이야 잘하죠.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하지? 라는 생각을 말하는 저도 하고 말을 듣는 사람도 할 정도로 말을 이상하게 하잖아요.” 말하면, “아…” 수긍하죠. 저의 글을 먼저 본 사람은 저의 말을 신기하게 보고 저의 말을 먼저 들은 사람은 저의 글을 신기하게 봐요. 말과 글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요.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글을 쓸까, 그런 글 쓰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말할까. 사석에서는 그나마 나은데 공석에서는 진짜 심각해요. 말할 때 머리 속이 새하얗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아요.

 

어쨌든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집에서 이불 하이킥을 매일매일 하면서 제가 했던 말을 복기해요. 복기하면서 상상해요. 그렇게 말하지 말고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이렇게 말했으면 어떻게 달라졌을 거다. 여전히 말은 잘 못하지만 어느 순간 복기하고 상상하는 과정이 글 쓰는 것과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제가 젠더 문제, 삶과 죽음을 주요하게 쓰는 이유는 그러한 관계의 어려움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요.


시집에 실린 60편의 시 중 가장 아끼는 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가장 아끼는 구절도 함께 소개해 주세요.


가장 아끼는 시는 「자정은 죽음의 잉여이고」이고, 가장 아끼는 구절은 「방」의 “금지(禁止)에서 금지(金地)가 되어 가는 사람에게서 나는 종교 없는 믿음을 발견한다. 늘 난항인 발견에 예를 갖추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 유독(幽獨)하다.”예요.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이자 권박 시인의 첫 시집입니다. 첫 시집 출간 이후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앞으로의 계획도 함께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등단할 때는 다행이다! 좋아했는데 등단 이후 등단 이전보다 더 힘들어서 그런지 김수영 문학상 수상하고 나서 첫 시집을 출간하기까지 큰일이다! 걱정만 했어요. 앞으로 한동안 큰일이다! 걱정만 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쓰고 싶은 글을 썼고 힘들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앞으로도 쓰고 싶은 글을 쓸 거예요. 첫 시집에 싣고 싶었지만 퇴고가 덜 되어서 싣지 못했던 발표작들을 퇴고하는 한편 구상해 놓기만 했던 몇 편의 작품을 자신감을 가지고 쓰고 있는 중이에요.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하고 싶고, 그보다 앞서 박사 논문을 마무리 짓고 싶어요.     

 

 

 

 

 

* 권박


1983년 포항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이해할 차례이다』로 제38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해할 차례이다권박 저 | 민음사
시인은 각주를 통해 현실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세상과 불화했던 여성 시인의 계보를 잇는다. 뒤틀린 얼굴을 한 채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대화를 제안한다. 이제 대화를 시작해야 할 우리가 받아든 것은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짜깁기된 피의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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