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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인터뷰어는 시시포스가 아닐까 (G. 지승호 인터뷰어)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11회) 『타인은 놀이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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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돌을 굴리고 올라가야 하는데 결국은 다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거고요. 역설적으로 그것 자체가 재밌었기 때문에 해왔지 않나 싶어요. (2019.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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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해보니 타인은 제게 놀이공원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은 마치 놀이공원에 가기 전 그곳에서 친구와 재미있게 놀고 있는 저 자신을 상상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과정은 놀이공원에서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한 특별한 경험이었고요. 인터뷰 녹취를 풀고 교정하는 과정은 추억의 장면들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은 제가 SNS에 올린 것을 보면서 미처 놀이공원에 같이 오지 못한 친구들의 공감 같은 것이겠지요.

 

인터뷰어 지승호의 책 『타인은 놀이공원이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지승호 인터뷰어 편>


오늘 모신 분은 한국에서 인터뷰를 가장 많이 한 저널리스트 중 한 분이에요. 사람들은 이 분을 일컬어
‘대한민국의 유일한 전문 인터뷰어’라고 말합니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정체성은 ‘단행본 인터뷰집의 저자’라고 하는데요. 그 바람대로 인터뷰집  『타인은 놀이공원이다』  와 함께 <책읽아웃>을 찾아와 주셨습니다. 지승호 저자님입니다.

 

김하나 : 『타인은 놀이공원이다』 서문의 제일 첫 부분을 청취자님들께 읽어드릴게요. “2.2.2.2.2.3.6.2.4.4.4.5.4.3.4.1.2.0”입니다. 이게 뭐죠, 작가님?


지승호 : 네, 2002년부터 제가 펴낸 단행본 숫자인데요.

 

김하나 : 제가 더해봤습니다. 52권 맞나요?


지승 : 그게... 53권이어야 하는데(웃음).


김하나 : 제가 숫자가 조금 약해서, 계산기를 두드려봤는데...(웃음)


지승호 : 제가 잘못 쓴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김하나 : 어쨌든 50권이 넘는 거잖아요. 50권이 넘는 인터뷰 단행본을 펴낸 분이신데, 서문을 읽어봤더니 정말 의외였어요. 저는 막연히 지승호 작가님을 뵈면 본인의 이름 석 자가 브랜드가 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단단함, 내면으로부터 오는 그런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느꼈는데요. 서문이... 약간 슬프게 쓰셨나요?


지승호 : 그래서 책이 안 팔리는 것 같기도 한데요(웃음). 조금 밝게, 희망적이게 글을 써야 하는데 서문 쓸 때 그간의 슬펐던 일들이 생각나서 약간 신파조로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하나 : 슬펐던 일을 잠깐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 저는 이 부분이 놀라웠거든요. “일이 자꾸 안 풀리다 보니 부끄럽게도 삶보다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 생각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생생해져갔습니다.” 이런 부분도 있었어요. ‘지승호’라고 하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과 이 서문 사이의 간극이 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졌거든요.


지승호 : 보통 사람들이 어떤 사람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 사람이) 조금 알려지고 신문에라도 한 번 나오면 되게 잘사는 줄 알거든요(웃음).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20년 동안 계속 해왔기 때문에 이게 쌓여서 어떻게 보면 착시현상처럼 대단하게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저는 20년 동안 계속 그걸 반복해서 해왔던 거거든요. 어떨 때는 ‘인터뷰어라는 건 시시포스 같은 게 아닌가’ 싶어요. 매번 돌을 굴리고 올라가야 하는데 결국은 다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거고요. 역설적으로 그것 자체가 재밌었기 때문에 해왔지 않나 싶어요. 철이 없는 거죠. 계속 경제적으로 힘들고, 카드 결제일이 되면 우울증이 3배 정도 깊어지다가도(웃음), 또 단행본 기획을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즐거웠으니까 해온 것 같습니다.


김하나 : 앞서 읽어드린 “2.2.2.2.2.3.6.2.4.4.4.5.4.3.4.1.2.0”의 맨 마지막이 ‘0’으로 끝나는데요. “2019년 올해는 인터뷰 관련 책을 아직 한 권도 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이 나오면 첫 번째 책이면서 어쩌면 유일한 책이 되겠지요”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바로 연이어 신해철 씨의 앤솔로지  『아! 신해철』  이 나오면서, 올해도 2권을 내시게 된 거잖아요.


지승호 : 네. 『아! 신해철』  은 원래 기획했던 출판사에서 원고가 많이 부족하다고 거절을 당한 상황이라 낼 수 있을지 사실 몰랐거든요. 그런데 (신해철 사망) 5주기를 맞아서, 텍스트 자체는 조금 부족할 수 있지만, 추모를 하는 데에는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다른 출판사에 한 번 읽어봐 주십사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내주셔서 나오게 됐습니다.

 

김하나 : 인터뷰어가 시시포스 같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타인은 놀이공원이다』  에 여덟 분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그 중에 강원국 작가님의 인터뷰가 있잖아요. 강원국 작가님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분이었고 그 분이 글을 쓸 때 느꼈던-본인은 없고 상대의 생각을 읽어내서 그것을 써야 되는 고스트 라이터로서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거기 “공감과 마감의 인생”이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지승호 작가님도 이 말에 공감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승호 : 아무래도 연설 비서관이 하는 일과 인터뷰가 조금 비슷한 맥락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눈치를 많이 봐야 되고, 아무래도 인터뷰 텍스트의 주인공은 인터뷰이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됐든 인터뷰이가 기분이 상하시면 기분을 맞춰드려야 되고... 그 인터뷰에서 강원국 선생님이 본인이 어릴 때부터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기 때문에 연설 비서관을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것하고 같은 맥락인 것 같은데요. 저도 아버님이 조금 엄하셔서 방에 혼자 집어넣고 이런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다 보면 눈치를 많이 보고 ‘내가 여기 왜 갇혀 있지?’ 이렇게 고민을 하고,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주인공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큰 거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다 보니까.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는 조명을 비춰주는 사람이 편한 거지 조명을 받는 위치에 있는 건 굉장히 불편한 거예요. 그런 성격이 어릴 때부터 형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강원국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하고 비슷한 성격이구나, 어쩌면 내가 인터뷰어를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김하나 : 일단  『타인은 놀이공원이다』  의 제목을 이야기하자면,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는 말은 오히려 ‘타인은 지옥이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타인은 놀이공원이다』라고 하셨고, 지금까지 20년 동안 이 일이 재밌어서 해왔다고 하셨는데, 여전히 타인에 대해서 흥미롭고 인터뷰가 나를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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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 : 글을 통해서 발언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뭔가 답답하고 ‘왜 이러지? 뭔가 잘못돼 있는데?’라는 생각을 자기만족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고 싶어서든 그런 마음 때문에 하는 걸 텐데요. 저는 이런 분들이 굉장히 든든한 동료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제가 할 일을 대신 해주고 제가 답답해하는 부분들을 먼저 훨씬 더 영향력 있게 발언을 해주시고,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를 하고 계신 분들이라, 저는 매니저 같은 마음으로 인터뷰하는 거죠. 사실 배우가 마음에 안 들면 조명 비춰주고 싶겠습니까? 그냥 ‘오늘 보고 말아야지’ 하고 짐 싸서 갈 텐데, 배우가 자신한테도 잘하고 대중들한테 굉장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그 사람한테 밥 한 끼를 사주고 운전을 해주면서도 굉장히 보람이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김하나 : 책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인독(人毒)’이라는 말이었어요.


지승호 : 정신과 의사들은 웬만하면 점심은 혼자 먹는다고 하잖아요. 안 아픈 사람들을 상담해도 힘든데, 정말 아파서 병원을 찾아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진이 빠진다는 거예요. 그 사람한테 몰입이 되기도 하고, 기가 빨린다는 느낌도 있고, 그러니까 ‘인독’이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내가 하는 일도 잘못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이겠구나, 사람이 정말 싫어질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제가 그렇게 깊이 있는 상담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렇게까지는...(웃음)


김하나 : 책을 한 권씩 낼 정도로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녹취를 풀고, 책으로 엮고... 이것은 엄청나게 깊은 상담이기도 하죠.


지승호 : 그렇기는 한데, 인터뷰라는 일 자체가 여러 가지로 나눠지지 않습니까. 섭외하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빨리 결정되는 부분이고,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서 자료를 읽고, 만나고, 녹취를 풀고, 교정을 보는 그런 과정들이 다 조금씩 성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어떤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영화 만들 때도 한 가지 일만 4년을 하면 힘들 텐데 시나리오를 힘들게 쓰다가 조금 성취도를 느끼고 나면 그 다음에 현장 가서 또 부대껴야 하고, 후반 작업을 하고, 또 관객을 만나고, 이런 과정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요. 저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그때 일하는 패턴이 바뀌니까요.  

 

김하나 : ‘인터뷰어’라고 하면 사람들이 아주 전문적인 스페셜리스트라고 생각하고, 그건 맞는 말이지만, 1인 기업이기도 하니까 다양한 일들을 혼자 다 하시는 부분이 있겠네요.


지승호 : 사실 책 하나를 내는 과정은 굉장히 어렵거든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요즘 같은 불황에 책을 내겠다고 선택하는 게 쉽지 않은 과정인데, 사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인터뷰라는 장르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제가 상처 받는 댓글 중에 하나는 그런 거예요. ‘남의 이야기 받아 적으면서 뻔뻔하게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고 있네’라고 댓글을 달거든요.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요. 녹취라는 건 굉장히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 과정 중에 제일 힘든 일이거든요. 제가 자조적으로 농담을 할 때 ‘나는 녹취 아르바이트를 했으면 지금보다 돈을 많이 벌었을 것 같아’라고 하거든요(웃음). 실제로 그렇고요. 그러다 보니까 ‘녹취 아르바이트만 했어도 지금보다 수입이 더 많을 텐데, 내가 이런 조롱을 당하면서 이걸 왜 해야 되지?’, 김하나 작가님이 쓰신 글처럼 ‘만다꼬 내가 이걸 하고 있나’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웃음). 그런데 보면 또 이걸 하고 있고(웃음).

 

김하나 : 만약에 전문 인터뷰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걸 찾아봐야 될까요?


지승호 :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나 사회에 대한 호기심인 것 같거든요. 영화 만드시는 분들을 보면 영화 기법 같은 것에 대해서 공부를 조금 덜 했더라고 자신이 할 이야기가 있거나 사회에 대한 애정과 공부가 되어 있는 분들의 경우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고요. 아직 제가 좋은 인터뷰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나마 꾸준히 해왔다면, 인터뷰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잘 할 수 있게끔 공부를 많이 해서 갔던 편인 것 같아요.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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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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