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연인들이 많이 싸웠으면 좋겠어요 (G. 미깡 만화가)
김하나의 측면돌파 (93회) 『하면 좋습니까?』
제대로 싸우지 않는 연인들이 많은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문제를 피해버리면 대화를 잘 이어갈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사람인지, 한 순간에 나한테 밑바닥을 보일 사람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많은 화제를 계속 던지면서 싸워도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9. 07. 25)
결혼을 하든 안 하든 했었든 제도 자체를 거부하든... 각자 자기 선택을 믿고, 자기 행복을 향해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결혼이라는 커다란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볼 순 있지만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어. 그러니 "넌 이상해, 넌 틀렸어"라는 말, 우리는 하지 말자. 그냥 서로에게 묵묵히 힘이 되어주자.
미깡 작가의 책 『하면 좋습니까?』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미깡 만화가 편>
드디어 이 분을 모셨습니다. 저희 <측면돌파> 식구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오래 기다린 분이에요. 사실 저희 모두가 ‘술꾼 도시 처녀들’이거든요. 이 도시의 수많은 술꾼 처녀들의 공감대를 자극하고, 연대감을 심어주신 그 분! 이번에는 ‘인생을 건 비혼 여성의 서스펜스 액션 활극’으로 돌아오신 그 분! 미깡 작가님 모셨습니다.
김하나 : 손목은 왜 그러셨어요? 파스 같은 걸 붙이고 계시네요.
미깡 : 네, 고질적으로 손목이 아파서요. 여기에는 세 가지 학설이 있는데(웃음)...
김하나 : 학설씩이나 있군요(웃음).
미깡 : 오늘의 원인은 뭔지 잘 몰라서요.
김하나 : 비가 와서 그런 거 아닐까요?
미깡 : 제가 그 정도까지는(웃음)...
김하나 : 아, 죄송합니다(웃음).
미깡 : 일단, 출산육아설이 있고요. 두 번째는 술을 하도 마셔서... 500잔이 좀 무겁습니까? 연신 들이켜고 내려놓고...
김하나 : 500잔 지탱설이군요(웃음).
미깡 : 그렇죠. 그리고 저는 또 건배를 수시로 해요. 병뚜껑도 따야 하고... 그래서 손목이 삭았다는 설이 있고요(웃음). 세 번째가 웹툰 작가설인데, 이건 별로 제가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웃음).
김하나 : 책이 나왔습니다. 『술꾼도시처녀들』 (이하 『술도녀』 )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웹툰으로 그리고 발표하신 작품이 물성을 가지고 나온 거잖아요. 한 인터뷰에서 “제게 단행본은 양장피 같아요. 왜냐하면 코가 찡하니까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두 번째 단행본인 『하면 좋습니까?』 를 처음 손에 쥐셨을 때도 양장피 필이 왔는지 궁금한데요. 어떤가요?
미깡 : 일단 양장피 이야기는, 그때 한참 먹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어서 그런 비유를 썼던 것 같고요. 이번의 느낌은 조금 달랐어요. 웹에 연재를 할 때는 혹시 실수가 있더라도 고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인쇄돼서 나와 버리면 정말 낙장불입이기 때문에, 마음이 엄청 무겁고 책임감 같은 게 있죠. 분서갱유 같은 게 일어나지 않는 한(웃음), 지구 멸망할 때까지 어딘가에 한 권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밤에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는 쓸 때 더욱 신중하게 임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하나 : 미깡 작가님을 『술도녀』 로 알고 계신 분들이 아주 많으실 테고, SNS에서도 『술도녀』 프로필을 사용하고 계시잖아요. 저는 『술도녀』 가 처음 나왔을 때 ‘이건 우리 이야기다, 문제적인 웹툰이 드디어 나왔구나’ 하면서 친구들과 같이 봤거든요. 나중에 단행본 3권이 나오고 나서 ‘알고 보니까 미깡 작가님이 결혼하시고 연재 중에 임신 중이셔서 ‘술꾼’도 아니었고 ‘처녀’도 아니었대, 남는 건 ‘도시’밖에 없었대’라는 말을 들었어요(웃음). 실제로 그러셨나요?
미깡 : 그랬죠. 임신, 수유 기간 동안에는 ‘술꾼’이 아니었죠. 처음에는 아마추어 게시판에 올리면서 시작했는데, 그때는 술을 엄청 마시면서 작업했고요(웃음). ‘다음 웹툰’에 정식 연재가 결정되고 조금 있다가 임신을 했어요.
김하나 : ‘술꾼’도 ‘처녀’도 아닌 채로 연재를...
미깡 : 약간 기만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웃음)...
김하나 : 아니에요(웃음).
미깡 : ‘도시’는 맞아요(웃음).
김하나 : 『술도녀』 의 경우에는, 술에 무게가 더 실리기는 했지만, 30대 여성이 직장과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그린 거잖아요. 『하면 좋습니까?』 도 30대 여성의 이야기이고, 제목에 나와 있듯이 ‘결혼을 할까, 말까? 하면 좋을까?’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작품에서 30대 여성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었나요?
미깡 : 일단 제가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언제나 여성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거고요. 연령에 대한 건, 제가 30대를 지나오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가장 편안하게 접근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아직 경험하지 않은 장년ㆍ노년층 이야기는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할 것이고, 지나온 시기는 제가 다시 돌아보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냥 현재 가장 편안한 30대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중에는 다양한 연령대를 두루 다루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김하나 : 에필로그에 보면 『하면 좋습니까?』 가 ‘고슴도치의 딜레마’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나오는데요. 설명을 조금 해주시겠어요?
미깡 : ‘염세맨’ 쇼펜하우어가 쓴 우화인데요(웃음). 동물들이 추우면 서로 모이잖아요. 고슴도치들도 추우니까 모이는데 가시가 있으니까 서로 찌르잖아요. 그러면 아프니까 멀리 떨어지고, 그러면 춥고 외롭고, 그러면 다시 모이고, 이게 계속 반복된다는 거죠. 이게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거고요. 중요한 건 적정 거리를 잘 지키면 된다는 거예요. 고슴도치들끼리 가시가 닿지 않을 정도로만 자리를 잡으면 되잖아요. ‘고슴도치의 딜레마’가 거리감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고 생각했고, 인간관계에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김하나 : 너무 가까워지면 찌르고, 멀어지면 외롭고요.
미깡 : 그렇죠. 그게 가장 잘 드러나는 게 가족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가족은 거리감을 별로 인정해주지 않잖아요. 침범하기도 하고, 거리감 있으면 서운해 하기도 하고. 그래서 최초의 가족을 이루는 결혼이라는 문제에 ‘고슴도치의 딜레마’를 적용해서 착안을 해보게 됐습니다.
김하나 : ‘심연’과 ‘성재’는 3년 동안 동거를 했고, 결혼을 앞두고 ‘이미 여러 가지를 누리고 있는데, 왜 굳이 결혼을?’이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 마음이 묘사가 되게 잘 되어있어요. 『하면 좋습니까?』 는 ‘연’과 ‘성재’가 자신들한테 적정한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한데요. 제일 중요한 건, 역시나 대화를 많이 나누는 일일까요?
미깡 : 그렇죠. 대화를 할 때 태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김하나 : 아, 말의 내용보다도 오히려 태도가 중요하다.
미깡 : 생각은 다를 수가 있죠.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한 사람은 오랫동안 고민해 왔는데, 상대는 금시초문인 이야기일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결이 다를 수도 있고. 문제는,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걸 발견했을 때 차근차근 대화로 맞춰보자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한 쪽이 역정을 낸다든지...
김하나 : 그 부분이 있었죠. 친구들이 ‘결혼하기 전에 양해각서를 써 봐라, 시뮬레이션을 해 봐라’라고 해서 ‘연’이 ‘성재’에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화를 내죠. 그 심리는 어떤 걸까요?
미깡 : 각서라고 하는 단어 자체가 주는 딱딱하고 형식적인 느낌이 있죠. 그 당시에 ‘성재’는 사랑이 모든 걸 이길 거라는 로맨틱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각서를 쓰자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니까 ‘연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는 불안감 같은 것들이 폭발했던 것 같고요. 그렇게 화를 내거나, 또는 어떤 화제에 대해서 ‘너는 이것도 모르냐’고 무시를 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해당 대화가 깊이 진전되기도 전에 입구에서부터 막히면 파트너로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하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결국 ‘성재’가 화를 내는 장면에서부터 ‘연’이도 생각이 복잡해지는 거거든요. ‘얘가 왜 이런 걸로 화를 내지? 너는 나만큼 걱정해?’ 이렇게 되잖아요. 저는 연인들이 많이 싸웠으면 좋겠어요. 제대로 싸우지 않는 연인들이 많은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문제를 피해버리면 대화를 잘 이어갈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사람인지, 한 순간에 나한테 밑바닥을 보일 사람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많은 화제를 계속 던지면서 싸워도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하나 :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연애의 결과가 아니잖아요.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일대일로 법적으로 단단하게 결속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순간 양쪽 집안이 갑자기 연결이 되어버리는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고민을 해야 되죠. 그런데 마치 ‘성재’의 경우처럼 ‘너는 나를 그 만큼 사랑하지 않는구나’ 같은 말 때문에 떠밀리거나 압박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이 미혼 여성, 남성에게 정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표지에 “오늘도 고민하는 당신을 위한 현실 검증 솔루션”이라고 적혀 있는데, 정말 검증을 위해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면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깡 : 네.
김하나 : ‘성재’가 화를 내고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아?’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연’이가 누워 있다가 ‘성재’를 깨우잖아요. “너 말야…. 결혼하면 우리 엄마 아빠랑 잘 지낼 수 있을지, 결혼 때문에 너 자신을 잃어버리진 않을지, 커리어가 망가지진 않을지, 그런 걱정 심각하게 해? 난 이런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밤에 잠도 안 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결혼에 있어서 남녀의 시각 차가 정말 꽤 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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