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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을 좋아하던 22년차 ‘라디오 작가’ 전희주의 첫 책

『오늘도 일용할 고단함』의 작가 전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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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함을 꿀꺽 삼켜, 사는 재미로 향긋하게 트림하고 싶다. (2019.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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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용할 고단함』  의 이야기들은 그림에서 시작된다. 전희주 작가가 그림과 노는 방법이 그림 속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찬찬히 그림과 놀면서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로댕의 <꽃 장식 모자를 쓴 소녀>에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시골 학교로 전학 온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었고, 밀레의 <마거리트 화병>을 보고 오랜만에 꽃을 샀지만 꽃병을 못 찾아 난감해 하는 워킹맘의 이야기를 들었고, 빌헤름 라이블의 <시골 처녀의 머리>를 보고 엄마에게도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17편의 그림과 소설이 만나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전해준다. 정재승은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더니 뒤통수를 치는 통찰까지 던져준다’고 표현한다.

 

전희주 작가는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황정민의 FM대행진> <박명수의 두시의 데이트> <전현무의 가요광장> <윤도현의 두시의 데이트>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의 작가로 활동했다. 딴짓하는 걸 좋아해서, 딴짓의 일환으로 그림을 보러 다니다가 그림과 소설을 씨줄 날줄로 엮어 냈다.

 

첫 책이시죠. 어떻게 책을 내게 되셨나요?

 

별로 어렵지 않은 덧셈/곱셈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한 게, 중간에 쉰 기간을 빼면 22년 정도 됩니다. 그 22년동안 매일 쓴 원고가 하루에 대략 A4용지 10장 정도라고 치면 한달에 300장. 일년이면 3,600장. 그걸 22년간 했으니 79,200장. (중간에 특집 등등도 했으니 실제론 더 많겠죠?) A4용지 8만장에 육박하는 글을 쓰는 동안, 저는 제가 아니었습니다. 때론 박명수였고, 어떨 땐 전현무였다가, 한때는 윤도현이었고, 김구라 혹은 김범수로 살기도 했습니다. 그때그때 일하는 DJ에게 빙의 된 글을 쓰다 보니 그런 거죠. 이것만 얘기해도 제가 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짐작하실 겁니다. 저에겐 온전히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글이 아주 절실했던 거죠.

 

책 만듦새는 만족하시는지요? 저자로서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밤잠을 설치는 법이 거의 없던 제가 몇 시간씩 어둠속에서 뒤척이는 일이 생긴 건, 책의 디자인이 나오기 직전이었습니다. 쓰긴 썼는데 사람들은 날 모르는데 어떡하지? 누가 날 안다고 이 책을 골라잡을까? 결국 사람들은 만듦새나 표지 등등을 보고 고를 텐데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데 어쩌나? 등등.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잠을 설치고 푸석한 아침을 맺곤 했죠. 그렇게 마음을 졸이다가 책을 받아보고는 마음이 스르르 풀렸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다시 불안 초조의 개미지옥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책이 잘 만들어졌으니 이젠 정말 핑계거리가 없구나. 내 글만 좋으면 되는구나. 덕분에 저는 또다른 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추천사를 쓴 정재승 박사님과 강세형 작가님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나요?


짐작하시겠지만 두 분과 인연 역시 방송입니다. 정재승 박사와는 <황정민의 FM대행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굿모닝 아인슈타인>이라는 코너로 만났습니다. 고백하건 데 <과학콘서트>를 읽고 일찌감치 정재승 박사의 팬이 되었던 터라, 그가 고정출연자로 섭외 됐을 때 정말 기뻐했죠. 그러다<정재승의 도전무한지식>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와 작가로 인연이 이어졌고, 그 후로는 재미있는 영화나 책 혹은 흥미로운 얘기거리를 나누는 수다친구가 되었습니다. 강세형 작가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선후배 작가로 만났죠. 일을 하다 보면 많은 후배들을 만나지만, 강세형 작가와 각별해진 건 그녀의 어른스러움 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하다니...전 어떡합니까!) 고민을 의논하는 게 가능한 후배를 만난다는 건, 의논 가능한 선배를 만나는 것과는 다른 묘한 감동과 반성을 안겨줍니다. 두 분의 따뜻하고 정성스런 추천사 덕에 큰 힘을 얻었다는 거, 다시 한번 배꼽인사를 건네고 싶네요.

 

책을 쓰는 동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과연 이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제대로 포착한 걸까?” 책을 쓰는 동안 내내 저를 괴롭혔던 건 바로 이 생각입니다. 제 책은, 그림을 보고 거기서 연상되는 이야기를 담은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야기는 모두 에세이로 읽혀도 무방할 만큼 자잘한 일상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감정을 부풀리거나 폼을 잡거나 대충 미루어 짐작한 걸 쓰지 않는 거였죠. 읽는 이보다 쓰는 이가 먼저 감동하거나 앞질러 감탄하는 글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책이 주는 감동은, ‘이제부터 감동 시-작!’이 아니라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어떻지?’ 와 같은 질문으로 남는 것 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지금 눈앞이 캄캄합니다. 사람들이 내 책을 읽으면 질문하게 될까? 돌아보게 될까? 곱씹게 될까?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지는 말아야할 텐데 말이죠.

 

책을 쓰는 데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이는 누구인가요?


이거야 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팩트입니다. 바로 남편이죠. 불안할 때는 격려를, 나 자신을 의심할 때는 믿음을, 원고를 건네면 박수를, 그리고 방송 일과 책에 치여 늘어진 저를 위해서 거침없이 외식을 선택해준 남편. 고맙다는 말은 너무 모자라네요.

 

그림을 글감으로 삼았는데요. 저자님께 ‘그림’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제 아버지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신 분입니다. 언니는 서양화를 공부했고, 남동생은 어려서 부터 뛰어난 그림 솜씨로 칭찬을 많이 받는 아이였죠. 부계 혈통의 진한 ‘미술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집안에서 저는 그저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림을 못 그리진 않았지만, 교실 뒤 벽에 붙여질 정도였을 뿐 교내 미술대회조차 이름을 올리진 못했죠. 주변은 화려한데, 가진 건 초라한 아이에겐 무엇이 남을까요? ‘나도 뭔가 있긴 있는데’라는 억울한 심정과 부러움 입니다. 그래서 ‘그림’은 닿을 수 없는 로망이자 남모르는 숭배의 영역이었죠. 로망과 숭배의 오랜 세월 끝에 결국 그림을 질료로 삼는 글을 쓰게 된 겁니다.

 

라디오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를 해주신다면요.


가령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는 ‘나는 수채화만 그릴 거야’ 아니면 ‘나는 유화만 그리겠어’ 라는 결심으로 그림을 시작할까요? 아닙니다. 그림을 시작하려면 제일 먼저 염두에 둬야 하는 건 관찰입니다. 형태와 색상 움직임 등등을 집요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화가의 눈을 갖는 게 시작이죠. 글을 쓰는 작가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나는 라디오 작가가 될 거야 혹은 TV작가가 될 거야 라는 꿈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고 봅니다. 가장 먼저 사람과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그걸 자신만의 언어로 옮기고, 그걸 대중의 생각과 견주어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방송작가는 듣고 보는 사람을 염두에 둬야 하니까요.

 

공채가 없는 라디오는 빈 자리 나는 게 너무 어렵다고요? 하지만 방송국에 있는 동안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고 도전하는 작가 지망생은 거의 못 봤는 걸요. 스스로 문을 두드리는 이는 없다는 겁니다. 두드리지 않는데 누가 문을 열까요? 인연이나 행운을 기대하지 말고,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홈페이지에 가서 담당 피디의 이름부터 확인해보세요. 그 혹은 그녀에게 자신의 원고를 보내는 일이, 예기치 않게 문이 벌컥 열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다양한 곳에서 운영하는 방송아카데미를 통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뻔해서 제가 굳이 알려드릴 필요가…?)



 

 

오늘도 일용할 고단함전희주 저 | 혜화동
성대한 위로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에게 누군가는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담담한 위로를 전하며,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일상의 자잘한 생채기에 연고와 반창고를 붙여 주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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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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