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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책방] 그 작가는 어떤 책을 선택했을까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여기에 없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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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죠. 삼천포 책방 시간입니다. (2018. 08. 09)

[채널예스] 삼천포책방.jpg

 

 

담담하고 고요한 매력의 에세이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 ‘그 작가는 어떤 책을 선택했을까’ 궁금해지는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누구나 ‘햄’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소설 『여기에 없도록 하자』 를 준비했습니다.

 


톨콩의 선택 -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안송이 저 | 문학테라피

 

안송이 저자는 스웨덴에서 22년째 살고 계시고요. 이민을 가셨고, 거기에서 결혼을 하신 것 같아요. 이혼도 하셨고요. 스톡홀름에서 조금 더 남쪽에 있는 린셰핑이라고 하는 곳의 대학에서 부교수 비슷한 자리를 맡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박사 학위를 받으셨고요. 그리고 아이가 있는데 자폐아 판정을 받았어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주 묘한, 정결한 느낌 같은 것이 들어요. 담담하고 고요해요. 그게 의도한 게 아니라 이 분의 성정이 여러 조그마한 것에서 반영이 돼서 이 책을 구성하는데요. 힘겨운 이야기인데도 이 덤덤함 때문에 그것이 견딜만한 것이 되고, 그것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드는 이 분에게 반하게 돼요.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라는 제목을 보면, 요즘 출판계의 트렌드 때문에 약간 선입견을 갖게 되잖아요. 너는 괜찮아, 나아질 거야, 잘 될 거야, 이런 식의 책일 것 같은 생각도 드는데요. 전혀 다른 책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어요. 이 분의 여러 상황들이 괜찮아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괜찮아지기가 참 힘들겠죠. 다만 괜찮아지기 위해서 한 가지 두 가지씩 일어나는 일들을 가만히 기술한 책입니다. 이 더운 여름에 스웨덴에서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조용히 읽는 게 저한테는 아주 멋진 피서가 됐어요.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매력이 배어나오는데, 이런 문장을 제가 최근에 잘 못 봤어요. 슴슴한 맛입니다. 맛이 없지 않고, 아주 건강하기도 하고, 매력적이에요. 그리고 이 책이 독특했던 것 중의 하나는, 순서가 완전히 중구난방이에요. 무슨 기준으로 순서를 이렇게 정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게 매력이 있어요.

 

 

단호박의 선택 -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프랑수아 아르마테 저/김희진 역 | 문학수첩

 

프랑스의 기자 분이 쓰신 책인데요. ‘무인도에 갇히게 된다면 가져갈 세 권의 책은?’이라는 질문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질문인가, 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예요. 찾아보니까 1913년에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가 ‘……한 프랑스 소설 열 권은?’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대요. 그러다가 나중에 질문에 무인도가 포함됐는데요. 보르헤스가 죽고 나서 2001년도에 마지막 친필 원고가 경매에 나왔는데, 자신이 무인도에 가지고 갈 세 권의 책에 대해서 쓴 원고였던 거예요. 이후로 유럽권에서 ‘무인도에 들고 갈 세 권의 책’ 붐이 일어난 거죠.


그런데 이걸 가지고 대규모 설문조사를 한 적은 없었고, 이 책의 저자는 ‘지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한테 다 물어보자’고 생각한 거예요. 프랑수아 아르마테 저자는 <리베라시옹(Liberation)>과 <르누벨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에서 일했었는데요. 자신의 친구와 함께 80인 이상의 작가들한테 편지를 보냈어요. 세 권을 꼽아달라고 이야기하면서 추신으로 ‘의례적으로 이 질문은 성경과 셰익스피어를 제외하고 선택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책들을 반드시 세 권에 포함시켜야 판단하신다면 모르지만’이라고 썼어요. 그런데 굳이 성경을 선택하신 분들이 있어요(웃음).


치마마다 응고지 아디치에,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폴 오스터, 아멜리 노통브 등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작가 분들이 다 나와요. 가장 많이 꼽힌 책을 봤더니 일단 성경이 있고요. 『돈키호테』 , 『일리아스』 , 『오디세이』 등 온갖 서양의 고전들이 다 나와요. 그리고 제일 많았던 책 중 하나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였습니다(웃음).


다른 책을 꼽아주신 분들도 있었는데요. 움베르토 에코는 전화번호부를 선택했어요. 그 안의 이름들을 보면서 계속 소설을 만들어나가겠다고요. 백과사전을 들고 가겠다고 말한 작가도 있었어요. 제일 두껍고, 제일 재밌고, 정보가 제일 많으니까. 그리고 『모비 딕』 과 『로빈슨 크루소』 를 꼽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진짜 감정을 느껴보겠다고 말한 작가도 있었습니다. 너무 공감이 될 테니까요(웃음). 이 책은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써 정말 훌륭한 책입니다.

 

 

그냥의 선택 - 『여기에 없도록 하자』
염승숙 저 | 문학동네

 

설정이 정말 독특한 소설이에요. 이 세계에서는 일하지 않는 성인은 ‘햄’이 되거든요.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 어떤 소설보다 현실적입니다. 우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 무언가가 되는 현실을 살고 있잖아요. ‘낙오자, 게으른 사람, 능력 없는 사람, 가치 없는 사람, 존재 자체가 피해가 되는 사람’ 같은 이름의 ‘무언가’가 되는 거죠. 그런 현실을 많은 은유와 상징 속에 담아낸 소설입니다. 햄이 된 사람들은 죽는 게 아니에요. 의식이 있고, 햄으로 살아갑니다. 일을 다시 시작하면 사람이 되고요. 채용증명서가 있어야 햄이 안 될 수 있고, 한 달 이상 일을 하지 않으면 햄이 돼요.


소설 속에 햄이 땅바닥에 널려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게 너무 섬뜩하고, 슬프고, 마음이 아팠어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가 햄처럼 대한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밟을 수 있고, 짓뭉갤 수도 있고, 그래도 되는 것으로.


소설을 읽고 나서 스스로에게 묻게 됐어요. ‘너는 햄이 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어?’, ‘너는 햄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라고 자문해 봤는데요. 저는 단언컨대 그렇지 않더라고요. 나는 얼마든지 햄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햄이 되는 것이 두렵고, 그래서 일을 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햄 같은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까지 하고 있는 걸까? 어떤 일까지 해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드는 거죠.


주인공인 ‘추’는 ‘약’이라는 선배의 제안으로 게임장에서 일을 하게 돼요. ‘홀맨’이라는 직책으로 홀을 관리하는데요. 실제로 하는 일은 하루 종일 서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게임장에서 화가 난 사람들이 자신을 때리면 그 사람의 화가 풀릴 때까지 맞아요. 그게 ‘추’의 일이에요. 게임장에서 ‘추’와 같은 사람을 두는 이유는, 그래야 게임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그걸 풀어야 또 오기 때문이죠. ‘추’는 ‘나는 햄이 되지 않을 거야’라고 저항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의 질서에 순응하고 있죠. 그럼으로써 이곳에 사람으로 ‘있는’ 건데요. 나중에 ‘추’는 여기에 ‘없도록’ 하자고 말합니다.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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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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