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눈으로 본 서양 중세학의 결정판
『중세 컬렉션』 차용구 감수자 인터뷰
어느 시기와 지역에도 빛과 어둠은 공존합니다. 암흑의 세기로 불리는 중세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잊힌 인간 본연의 참모습을 중세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18. 07. 06)
중세는 단지 ‘어둠의 시대’만이 아니었다. 476년은 서로마 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해다. 이후 11세기까지의 중세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게르만족을 중심으로 여러 야만족들이 대이동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로써 오늘날 우리가 ‘유럽’이라고 부르는 것이 시작되었다. 로마 제국을 침입했던 이민족들의 문화와, 그 문화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던 그리스도교와 라틴 문화가 결합하면서 모든 유럽 국가가 시작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까지 쓰이는 유럽의 여러 언어, 제도, 법률 등이 형성되었다. 수백 년에 걸친 아랍-이슬람 문화와의 다양한 접촉은(또한 분쟁 역시) 유럽인들에게 고대 지식과 배움을 전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유럽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을 감수한 차용구 교수는 독일 파사우 대학교에서 서양 중세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세유럽 여성의 발견』 , 『로마 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를 비롯하여 『가해와 피해의 구분을 넘어-독일 폴란드 역사 화해의 길』 ,『서양 중세사 강의』 등에 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중세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2016년 2월에 이탈리아에 체류 중이었는데, 아침부터 TV 뉴스에 에코와 관련된 내용이 매 시간 톱뉴스로 보도되었어요. 에코의 사망 소식이었지요(에코는 2016년 2월 19일 사망했습니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에코의 중세 컬렉션이 출간되던 때였고, 이미 그 이전에도 소설과 평론으로 세계적으로 잘 알려졌던 학자였지만 그의 죽음을 비중 있게 다루는 이탈리아의 대중매체를 통해서 움베르토 에코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지요. 신문 지상에서도 1면 톱기사는 에코의 사망 소식이었습니다.
에코는 20세기 후반의 유럽 지성계를 대표하는 학자였고, 특히 현실에 대한 비판적 발언으로 한국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의 한명으로 그가 기획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에코의 중세 컬렉션’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와 철학에서 과학과 기술, 문학과 연극, 시각예술, 음악 분야의 수백 명의 전문가들이 영역 별로 글을 집필했다는 사실은 컬렉션의 묵직한 중량감을 더하지요.
서양 중세의 다양한 사건, 사상, 제도, 문화, 철학, 예술을 촘촘하게 소개한 이 책은 기획자와 집필자의 구성, 방대하고도 세밀한 자료 구성 등을 놓고 볼 때 한마디로 서양 중세학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코는 서두에 강력하게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요. 반면에 우리들은 학교에서 ‘중세=암흑기’를 공식처럼 배웁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전기가 없어서? 혹은 과학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으면 암흑인가요? 이러한 판단 기준은 너무 유물론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중세에는 대신에 인간미가 느껴지는 따뜻한 공동체 정신이 있었습니다. 시장의 정의와 도덕 문제를 같이 고민했던 중세인들은 ‘공정가격(just price)'의 원칙을 준수하였고, 돈벌이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면서 분배의 정의가 발휘되도록 하였습니다.
어느 시기와 지역에도 빛과 어둠은 공존합니다. 암흑의 세기로 불리는 중세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잊힌 인간 본연의 참모습을 중세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중세 컬렉션을 추천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중세는 거의 1천 년에 달하는 긴 시기입니다. 시작은 고대와 닮았고 끝은 르네상스 혹은 근대와도 맞물립니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특별한 현상이 있을까요?
우리는 서양 중세 문명의 다양성과 혼종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서기 3세기 이후 고대 로마인들은 게르만 부족들로 대표되는 이민족들과 본격적으로 조우하게 됩니다. 7세기 중반 이후에는 아랍-이슬람 문화와 조우하게 되면서 이질적인 문명 간의 접촉은 대규모 인구이동, 갈등과 충돌, 낯선 것에 대한 소원함 뿐 아니라 동화와 융합, 새로운 종족의 탄생 등 다양한 모습을 빚어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문명이 조우하는 단층선(fault line)은 충돌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창조적 장소에 가까웠다는 사실입니다.
광범위한 조우와 공존이 점차 일상이 되자 안달루시아, 시칠리아, 독일 동부 지역 등의 접경공간(Contact Zones)은 종교와 이념적 증오가 판을 치는 공간인 동시에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실험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배재와 관용, 전쟁과 상호의존, 편견과 실용주의가 혼재한 장소이자, 양자택일의 논리 대신 양자병합의 논리가 제시되는 뒤엉킨 역사(entangled history)의 공간이기도 했지요. 여기서는 문화수용이 이뤄졌고 자연히 일정정도의 문화적 동질화나 수렴 현상이 뒤따랐습니다. 이러한 아슬아슬하면서도 기묘한 중세적 공존은 단종론, 균질론과 통합론 등으로 규정되는 근대 민족국가(nation-state)가 대두될 때까지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중세의 삶이 어떨지 쉽사리 상상하기란 어려운데요. 우리보다 한참이나 앞선 중세인의 삶이 오늘날의 우리의 삶과도 맞닿아 있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중세 컬렉션의 다음과 같은 대목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암흑기라는 표현에서 끝없는 공포, 광신주의와 이교에 대한 편협성, 역병, 빈곤과 대량 학살로 인한 문화적이고 물질적인 쇠퇴기를 떠올린다면…… 이는 부분적으로만 적용할 수 있다. 그 시대가 남긴 유산 대부분을 우리는 아직도 사용한다……. 우리가 우리 시대의 것인 것처럼 아직도 사용하는 중세의 발명품은 끝이 없다.”
- 움베르토 에코, 전체 서문에서
중세 컬렉션은 유럽뿐 아니라 이슬람, 중앙아시아, 몽골 등과 같은 지역의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종적으로 또 횡적으로 그 규모가 너무 막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중세 컬렉션을 감수하시면서 이러한 부분을 발견하실 수 있었나요?
중세는 여러 면에서 창조적인 시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다음의 사례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지요. 중세의 서막을 알리는 게르만 민족 이동 시기에 게르만-로마의 접경공간 역시 새로운 유럽문명이 탄생하는 창조적 장소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다. 예컨대, 스스로를 프랑크인이자 로마의 군인(Francus ego cives, romanus miles in armis)으로 여겼던 한 게르만인의 이중적 정체성이나 프랑크인들의 왕(rex Francorum)이기에 앞서 로마의 고위관료(comes)로 불리기 원한 말로바우데스의 사례는 두 문명의 조우로 새로이 통합된 종족이 탄생했음을 시사합니다.
시칠리아와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십자군 원정대가 건립한 근동의 십자군 국가의 구성원들은 상호이해와 공존(convivencia)을 모색하면서 이슬람-기독교의 접경공간을 차츰 치유의 역사적 공간으로 바꿔갔습니다. 한편 서양 중세의 또 다른 접경공간인 독일 동부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지요. 본래 다양한 슬라브 종족들이 거주하던 땅으로 이주한 독일 출신의 ‘손님들’은 현지인들과 협력해 도시를 건설하고, 점차 雜居와 혼종의 독일-슬라브 접경(deutsch-slawische Kontaktzone)을 형성했고, 이러한 독일인과 슬라브인의 결합은 메클렌부르크, 포메른, 브란덴부르크, 오버작센, 슐레지엔 등에서 ‘새로운 종족(Neust?mme)’을 등장시켰습니다. 슬라브화된 게르만 지역(Germania Slavica)으로 불리는 이들 독일 동부 지역은 19세기 독일 통일을 주도한 프로이센이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하는 발판을 마련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게르만 순혈주의가 주장되었던 비스마르크에서 제3제국으로 이어지는 독일 근현대사의 중심이 ‘슬라브-게르만 혼혈성’(Blutmischung)이 뿌리내린 접경공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습니다.
중세에 대해 알고 싶고 중세 컬렉션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분량이나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독자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중세 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이니 만큼 분량이 많습니다. 유럽 중세를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촘촘하게 다룬 책을 국내에서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수많은 철학가와 문학가, 예술가들의 활동과 업적이 서구 근대를 형성하는데 어떻게 기여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안경, 단추, 아라비아 숫자 등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와 관습이 유럽 중세에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에코와 함께 중세 여행을 떠나기를 권합니다. 중세인들의 삶에 대한 열정과 지혜를 담은 중세 컬렉션은 분량에 비례한 방대한 양의 지혜를 다룬 책임을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이 책에 대한 간단한 감상과 또 특히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중세 컬렉션의 특징은 서양 중세 문명의 기원을 비유럽적 뿌리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럽과 아랍 문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몽골, 중앙아시아, 슬라브와 같은 세력들, 이들이 중세 유럽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조우하고 공존했으며, 화해하는 방향을 모색했는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21세기 문명의 충돌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중세 컬렉션을 추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21세기에 적합한 역사서입니다.
중세 컬렉션움베르토 에코 편/박승찬, 차용구 감수/최병진, 김효정 역 외 2명 | 시공사
그 시대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우리 시대와는 무엇이 다른지를 역사, 철학, 과학과 기술, 문학과 연극, 시각예술, 음악 분야로 나누어 증명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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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움베르토 에코> 기획 /<차용구>,<박승찬> 감수288,0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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