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 가사를 전하는 뮤지션
라이브 앨범 『7102』 발매
제 세대에는 붙박이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경쟁을 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발을 딛고 서있어야 하나. 그런 불안이 담겨있어요. (2018. 02. 21)
'황막하다.' <7102>를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감상이었다. 공연장의 소리를 그대로 담은 이 앨범엔 마른 나무 같은 기타와 나른한 보컬, 그리고 깊고 짙은 결핍이 느껴졌다. 김사월X김해원의 작품이나 솔로앨범 <수잔>과는 어딘가 달랐다. 더 깊어진 우울에는 사막의 황량함과 설원의 막막함이 공존했다. 바로 그 감수성이야말로 요즘 가장 주목받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이 사람들을 끌어당긴 지점이었다.
궁금한 것들이 산더미였다. 왜 '라이브'인가부터 왜 '지금'이어야만 했는지. 이런 가사는 도대체 어떤 마음과 생각에서 나온 건지. 어떤 사람이고 싶기에 이런 음악을 만들었는지. 김사월에게 음악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수잔'을 넘어 인간 '김사월'은 어떤 사람일지 알고 싶었다. 강추위가 유달리 매서웠던 어느 겨울날 김사월을 만났다. 그는 <7102>처럼 마냥 우울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따뜻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가득했던 인터뷰는 계절을 잠시 잊을 만큼 포근한 자리였다.
<수잔> 이후 다음 앨범이 나오게 되면 정규 단위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미니멀한 라이브 앨범으로 돌아왔습니다. 분명한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 곡들을 가지고 라이브를 냈다면 모르겠는데, 새로운 곡이 10곡이나 담긴 <7102>는 사실상 신보죠. 왜 라이브로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 정규 2집에 대한 열망이 있고요. 준비도 조금씩 하고 있어요. 다만 작년에 <7102>를 발매한 이유는 '지금'에 대한 감각이 달라졌기 때문이었어요. 신곡들을 정제하고 편곡하고 가다듬으면 들어가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내가 지금 느끼는 걸 가장 빠르게 표현할 수 있는 게 라이브인 거죠. 그리고 제가 라이브에 겁이 많았어요. 예전처럼 미친 듯이 떨지 않게 된 게 작년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음악을 하고 싶어 하던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김사월X김해원을 하게 됐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혼자서 조용히 살던 사람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니 약간 제 자신도 모르는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 거죠.
뭔가 큰 세계로 노출된 느낌이었나요?
네. 부담이 돼서 떨렸어요. 라이브를 할 때마다요. 그걸 극복하려 했던 때가 작년이었어요. 극복하면서 라이브를 4-5번 했어요. 언제 잘할지 모르니까(웃음). 제가 좋아하는 시공간을 담고 싶었고, 그중에서 앨범에 들어갈 곡을 고른 셈이죠.
통기타랑 키보드만 놓고 하더라도 녹음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 공연장과 사전에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 부분이었을 텐데요. 그러려면 관람객들의 협조도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관람객들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한 것인가요?
모르는 상태에서 한 거는 하나 정도이고요. 나머지 공연은 매니저와 함께 기획을 했고, 공연장 측에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공연 포스터에도 이 공연은 녹음을 하는 공연이라고 공지했죠.
그렇다면 하우스 엔지니어가 아니라 녹음 엔지니어와 별도로 계약을 한 건가요?
각 공연장의 하우스 엔지니어님들과 작업했습니다. 제가 하우스 엔지니어님께 아무리 어떻게 해달라고 해도 결과물은 결국 '그분이 만드신 저'일 테기 때문에 그 부분도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우스 엔지니어의 개성을 간직하려는 의도였겠죠?
네.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장소에서 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봤어요.
앨범이라면 일정한 퀄리티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작업은 조금 불안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공연 다 하기 전까지 앨범의 세트 리스트랑 콘셉트를 못 잡았어요. 이것저것 뒤집다가 다 하고 나서야 잡았죠.
그렇다면 이번 라이브 앨범의 미학이라 할까요. '김사월만의 개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요.
편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좋아했던 시간들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여름에 녹음을 하고 다녔는데요. 저는 그 때를 좋아해요. 앨범 커버도 그때 여름에 찍은 사진입니다.
제가 지금 지내는 시간과 공간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젠트리피케이션(도시가 상업적으로 발달하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현상) 투쟁이 있는 곳에서 공연을 하면 언제 이곳이 없어질지 몰라요. 그런 곳에서 공연을 하는 저 자신도 언제 음악을 그만둘지 모르니까, 그런 불확실한 시기를 보내면서 지금의 시공간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개인적으로 어떤 걸 보여주고 싶었냐는 측면에서는... 그저 '가사를 전하는 사람' 외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참 좋은데요. 어느 인터뷰에서 얘기한 것처럼 지금을 기록한다는 건 아티스트의 특권이죠.
1집, 2집 사이에 있는 조각들로 새 앨범을 만든 거죠. 그래서 오히려 <7102>에서 엄청나게 우울한 얘기를 하고, 2집은 “산뜻하게 가자!” 이럴 수도 있어요.
사실 음반을 내는 건 타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인정욕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현재로 봤을 때는 정말 자기애가 강한 음악인데,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바라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좀 서투르게 음악을 시작했어요.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도 김사월x김해원으로 주목을 받았잖아요. 그때는 좋고 달콤한 것도 있고, 너무 무서운 것도 있었어요. (인정을) 많이 받고 싶은 동시에 우울했던 것 같아요.
의외의 답변이네요.
저는 인정 욕구가 많은 사람이에요. 제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 편입니다. 인정 욕구가 많고 행복을 원한다면 뭔가 만족할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그 만족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인정을 받기에는 스스로가 갖고 있는 게 부족하다는 이야기인가요.
지금까지는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인정받는 일 자체가 좋았던 거 같아요.
그럼 지금부터는요?
지금은요. 불완전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게 목표거든요. 근데 거기에 인정욕구도 분명 있어요. 제가 어느 정도를 원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예전처럼 뭘 바라는지도 모르고 많이 원하기보다는 '내가 했던 만큼의 인정이 온다면 받을 준비는 되어 있다!' 이런 뜻이죠.
'그녀의 품'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경솔했던 나의 삶에 꾸준했던 것이 오직 고통 하나뿐이었다면...', '전화'에서는 '즐거운 일은 내게 없어', '8월 밤의 고백'에서는 '저는 그날 다 헤어졌기에 더 슬프진 않았어요' 등에서도 고독에 대한 처절한 응시가 나타납니다. 어떤 성장 배경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표현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삶 자체를 외로움, 고통, 상처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음... 우선 이 노래들은 저를 비추는 거울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 노래들이 '저'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곡에서 아무리 행복하게 써도 제가 처절할 수 있고, 처절하게 곡을 써도 제가 행복할 수 있는 거고요.
성장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집이 굉장히 가부장적이었어요. 그래서 제 의견을 표현할 수 없었고, 제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틀 안에 있어서 자유를 느낄 수 없었어요. 그런 점에 있어서 스스로 덜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어른이 되니까 모든 것이 결핍이고 부끄러운 거예요.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란 자신, 부끄러운 자신을 표현하는 게 '악취'에서 표현됐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악취'에서 '그대를 더럽힌 나를 잘라내고 싶다' 이런 말들도 자기 안으로 향하게 되는 거죠.
그런 캐릭터(페르소나)와 실제 김사월을 일치시키려 하는 작업들에 대해 창작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수잔'이 '김사월'인가에 대해서... 저는 그게 관심이라 생각해서 좋았어요. 제가 <7102>에서 우울한 노래를 불렀지만, 사실 저는 매일 우울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건 감정의 모음집이죠. 그런데 그 캐릭터와 저를 같이 보고 계시다는 건 그 캐릭터를 제가 잘 연기했다는 의미 아닐까요(웃음).
결말에서 우울하면서도 인상적인 표현이 있어요. '사랑하는 미움을 멈추고 싶어/스스로를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달아' 이 부분은 어떤 심적 배경을 갖고 쓰게 됐는지요.
생각보다 저의 깊숙한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웃음) 그렇지만 얘기가 너무 즐겁습니다. 고독하고 우울한 건 어디로 가는 게 아니라 쭉 이어져 오는 것인데, 그 사이클을 끊어버리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다음 앨범은 밝을 수 있잖아요(웃음).
미움과 사랑이라는 개념은 혼재되어있고 동의어일수도 있죠.
'향기'에서 얘기한 것처럼 저는 세상을 사랑하고 제 미움도 사랑해요.
'젊은 여자' 가사를 보면 '춤추는 여자 아이돌을 봐/젊은 여자의 시절이 지나면/두렵지 않겠지'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아이돌을 기계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같은 여자로서 느끼는 마음을 담은 거예요. “젊은 시절이 지나면 슬프지 않을까? 이 시절만 지나면 안 슬픈 걸까?” 오히려 이런 물음인 거죠.
'젊은 여자'를 들으면서 명백한 의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무언가를 발산하면서 불렀다면, 지금은 그 노래를 부르면서 강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왜 이런 질문을 드리냐면, 우리가 살면서 페미니즘이든 전쟁과 핵에 대한 반대든 여기에 첫 번째로 들어야 하는 정서는 분노라고 생각해요. 자아 성찰의 첫 단계가 자기 학대이듯이, 세상을 보는 첫 번째 시선이 분노거든요.
저는 분노를 빼앗긴 것 같습니다. 누구한테 빼앗긴 건지는 모르지만, 저희 세대들은 분노를 빼앗겨서 분노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허용되지 않았으니까 속에서 참고, 결국 곪아버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사에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위한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앨범에서 시간과 공간을 담았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떤 호텔'은 내가 진짜 머무는 곳보다 임시 거처하는 곳이 내게 더 나은 공간일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담겼어요. 집에 대한 불안함이나, 편의점 이야기라거나. 제 세대에는 붙박이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경쟁을 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발을 딛고 서있어야 하나. 그런 불안이 담겨있어요.
노래가 나른하고, 사색적이고, 처절하고, 또 무미건조한 느낌도 드는데 멜로디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그런 지점에서 김사월만의 스타일이 있는데, 멜로디와 가사와의 조화가 만족스러운지요.
지금까지는 만족스러워요. 특히 받침을 잘 넣지 않고 툭툭 던지듯 말하는 걸 좋아해요. '아니 그냥' 이런 것처럼 멜로디랑 가사랑 어울리는 부분들을 계속 맞춰보기도 하고요.
김사월 음악에는 김사월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표현이 많아요. 김사월 씨에게 좋은 글, 가사란 어떤 걸까요.
좋은 글에 대해서 제가 말할 자격은 없는 것 같아요. 가사를 열심히 전달할 수 있는 정도라고는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글을 쓰는 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는 언어들을 좋아합니다.
김사월 음악의 핵심은 가사라고 봅니다. 언어의 배열, 발굴, 배치도 너무 좋습니다. 시적이고 감성적인 내용들이 아주 훌륭하게 배치돼있어요. 그런 언어는 어디서 비롯된 건가요. 책을 많이 읽은 건가요.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저는 책을 많이 읽고 싶어도 못 읽고 영화도 잘 잊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다독을 하지는 못했어요. 오히려 저는 노래 가사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 누구를 예로 들 수 있을까요.
저는 한글 가사를 되게 많이 보는 편입니다. 저는 2000년대 인디 음악을 좋아해서 홍대로 오게 된 사람이라, 그때 재밌는 가사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가사 내용도 영향을 받았지만 멜로디가 진행될 때 '어떤 음과 발음으로 이어갈 수 있는지'에서 예쁨을 많이 느꼈어요. 저는 어릴 때 (웃음) 언니네 이발관이랑 스웨터를 좋아했어요. 가사도 좋고, 한국어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발음이 참 좋았어요.
한글 가사가 아닌 노래 중에서는요?
저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요. 정말 좋아합니다. 자신을 드러냄에 있어서 너무 솔직하고 처절하게 표현했죠.
가사를 떠나서 가장 좋아하고 또 영향 받은 작품을 세 장만 꼽자면?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의 'Ballade De Melody Nelson', 프랑스와즈 아르디(Francoise Hardy)의 <La Question>도 좋고,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Back To Black>도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어렸을 때 김사월 씨를 음악으로 직접적으로 이끈 뮤지션은 누군가요.
언니네 이발관이요(웃음). 앞서 말씀 드린 것과 더불어서 이석원 님이 자연스러운 흡인력이 있으시잖아요. 그런 것마저도 기획으로 다가올 정도로 매혹적이었어요.
다시 앨범 이야기로 돌아가서, 1집과 2집 사이 가장 진실한 연결 다리인 <7102>를 발매했는데요. 2집은 긍정적 정서를 품은 앨범이 될 거라 하셨죠. 어떤 느낌으로 만들 예정인가요.
2집의 이야기에 지금의 제 모습도 넣고 싶은데요. 그것을 편곡으로 어떻게 배치할지도 고민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스토리텔링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도 생각중이에요. 인물로 전개되는 것도 해봤고, <7102>에서는 시간을 역순으로도 해봤고... 2집은 어떤 서사로 해볼까 고민 중입니다.
'좋은 음악은, 좋은 예술은 언제나 용감하게 결핍을 마주한다'는 IZM의 <7102> 리뷰 끝말처럼, '완성'보다는 '결핍'이 김사월 음악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한편으로는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음악을 만들다 보면 날것을 그대로 드러낼 것인가 혹은 날것을 세련되게 만드느냐의 고민에 직면할 것 같습니다.
제가 고민하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주셨어요. 2집을 세련되고 멋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고요. “내가 다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도 데모를 만들거든요. 세상에 내놓은 적도 몇 번 있고. 결핍은 음악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고, 제가 쓰는 글에도 배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사월의 음악을 아주 짧게 정의한다면요?
어떤 비유를 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가사를 전하는... 음... 표현이 생각 안 나네요. 모르겠네요(웃음).
인터뷰 : 임진모, 박수진, 정효범, 조해람
정리 : 조해람
사진 : 박수진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