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내내 스크류바 생각뿐이었다
『스크류바』 박사랑 작가 인터뷰
소설을 쓰면서 알았어요. 저에게 쓰는 것은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소설가의 역할은 아마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외면하지 않고 이야기 속으로 끌어오는 것이겠지요. (2017. 12. 08.)
ⓒ김은
2012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뒤, 날카로운 시선으로 개성 넘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젊은 작가 박사랑의 첫번째 소설집 『스크류바』가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에는 등단작 두편 『이야기 속으로』『어제의 콘스탄체』부터 2016년 여름까지 발표된 작품이 묶였다. 특히 『이야기 속으로』는 김승옥의 명단편 『서울, 1964 겨울』을 모티브로 서사를 전개하는 작품으로, ‘누구나 알 만한 우리 시대의 고전을 차용하면서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스크류바』에 수록된 각 작품에서 박사랑은 틀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방식과 주제를 통해 우리 시대의 현실과 문학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들은 박사랑의 소설에서 특히 “스크류바처럼 선명”한 감각으로 묘파되며 특유의 “문학적 신선함”을 자아낸다.
'작가의 말'에 아홉 살 때부터 글을 썼다고 밝혀주셨습니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일찍 진로를 소설가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아홉 살 때 우연히 글짓기 학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독서감상문이나 동시, 논설문 등등 여러 글쓰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새로운 경험을 했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잘한다는 몇 마디 칭찬에 이게 내 길이군, 하고 생각했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웃음이 나지만요.
물론 칭찬 받았던 건 아주 잠깐이었고 그 뒤에는 힘든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깨닫고 난 뒤에는 이미 글쓰는 게 너무 좋아져서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아무래도 첫 책 출간의 느낌은 특별할 것 같습니다. 첫 소설집 출간의 소감은 어떠신가요? 간단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신다면요?
아주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 눈앞에 벌어지면 처음에는 그냥 멍해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고. 차차 정신이 들면서 느낀 감정은 기쁨보다는 슬픔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원래 매우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매우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환희, 흥분들을 지나 슬픔에 닿는 편이에요. 그래서 조금 벅차고 슬프고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며칠 전 있었던 일인데요. 연락이 끊어졌던 중학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네 책 잘 읽고 있다고, 재미있다고. 그 친구는 제가 공책에 연필로 소설 쓸 때부터, 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낼 때부터 읽어주던 친구였거든요. 이십 년이 지나 제 책을 친구가 읽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울렁거렸어요.
'작가의 말'에서 해시태그에 갇힌 매앵이나 마놀로 블라닉을 신은 고고를 사랑했다는 말을 남기셨어요. 물정 없는 매앵이나 허영심이 가득한 고고는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일 것 같지 않아서 '사랑'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 창작자로서 소설의 인물에 애정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새삼 궁금해졌습니다. 또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도 소개해주세요.
좋은 사람만을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 사람이 나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빠지게 되는 경우도 많고. 소설을 쓸 때는 제 자신보다 인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면 이해 못할 사람이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매앵이나 고고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금 측은해요. 측은해서 더 눈길이 가고, 강한 척하는 그들의 진심이 보여서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울음터』에 나오는 열세 번째 지수입니다. 제가 그 아이에게 목소리를 주지 못했어요. 말도 못하고, 심지어 울지도 못하고 그렇게 보낸 게 무척 마음에 걸립니다. 언젠가 제가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게 되면 지수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어요. 지수가 어떻게 자라 어떤 말을 들려줄지 무척 궁금합니다.
수록작을 보면 이상의 『권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높이에의 강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 김승옥의『서울, 1964 겨울』등 다른 작품을 직접적으로 소설에 자주 끌어오시는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으시는 편인지, 소설에 끌어올 작품을 선택하는 데 특별한 기준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직업 상 책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지요. 작가치고 많이 읽는 편은 아니라서 부끄럽습니다. 소설에 끌어올 작품은 제가 정한다기보다는 정해지는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을 읽다가 상상력이 촉발될 때가 있는데 그 지점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문단 내외로 페미니즘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와중에 표제작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에서 모성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양한 페미니즘 이슈 중에서 특별히 모성에 대한 작품을 많이 쓰게 된 까닭이 있으신가요?
모성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저는 막연히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커갈수록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고정된 이미지로 등장하는 엄마가 다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고정된 이미지의 엄마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엄마도 많잖아요. 그들이 나쁜 것도 아니고. 다양한 엄마의 모습이 여러 작품에서 등장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김은
『이야기 속으로』에서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다루는『사자의 침대』도 그렇고 글쓰기 자체에 대한 쓸모에 대해 많이 고민하신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소설가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야기 속으로』는 제가 왜 작가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을 쓴 소설입니다. 그때 저는 오랫동안 등단에만 매달려 있었는데 주변에서는 문학이 죽었다고, 그건 아무 소용도 없다고 말했어요. 그러면 나는 대체 왜 글을 쓰지, 하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알았어요. 저에게 쓰는 것은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소설가의 역할은 아마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외면하지 않고 이야기 속으로 끌어오는 것이겠지요.
『스크류바』는 다양한 주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어 선명하면서도 다채롭게 빛나고 있는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데요, 현재 쓰고 계신 소설에 대해 살짝 들려주신다면? 또 장편소설 계획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현재는 내년 상반기에 앤솔러지로 묶일 소설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여름, 해수욕장, 방갈로가 어우러진 소설입니다. 조금 모자라 보이는 가족들이 해수욕장에서 저마다의 그늘을 짊어지고도 별일 없이 시간만 보내는 내용입니다.
장편은 쓰고 있는 것도 있고 이미 쓴 것도 있습니다. 작년 겨울에 연습 삼아 한 편 써봤는데 무척 재밌었어요. 내년에는 괜찮은 장편 소설을 하나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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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류바박사랑 저 | 창비
박사랑은 틀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방식과 주제를 통해 우리 시대의 현실과 문학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들은 박사랑의 소설에서 특히 “스크류바처럼 선명”한 감각으로 묘파되며 특유의 “문학적 신선함”(해설, 황정아)을 자아낸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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