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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말이 마음에 드시나요?

[decca의 미스터리 탐구 19] 『프리즘』과 퀴즈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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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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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하는 미스터리 모임에서 오래 전 단편소설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을 선정하고 결말을 삭제한 후에 나름의 결말을 제안하게 하는 형식이었는데, 작가가 의도한 결말을 그대로 끄집어내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전혀 뜻밖의 결말이 툭 튀어나오는 일도 있었다. 적당한 단편을 찾기 어렵고, 회원 간 독서량이 일정하지 않아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동일한 텍스트에서 전혀 다른 답들이 도출되는 과정을 보는 건 무척이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단 하나의 정답이란 가능한가? 작품 속 탐정의 추리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일까? 물론, 독자에게 공정한 단서가 제공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질문들이다. 미스터리 소설을 작가와 독자의 게임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이 문제를 제법 엄숙하게 받아들인다. 정신분석학자 피에르 바야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로저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속 활자를 샅샅이 헤집으며 또 다른 범인을 기어코 찾아낸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라고 이름 붙인 그 저서에서 피에르 바야르는 독자를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제2의 창작자로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

 

‘미스터리 소설 속 절대 정답’에 관한 문제를 말할 때 언제나 먼저 언급되는 작품은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독 초콜릿 사건』(1929)이다. 개성 넘치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던 앤서니 버클리 콕스는 ‘프랜시스 아일즈’라는 필명으로도 활동했는데, 경직된 고전 미스터리 형식에 그 동안 간과됐던 ‘심리적 요소’를 부각시켰고, ‘도서 추리소설’의 걸작을 탄생시키는 등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작가였다.

 

『독 초콜릿 사건』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상류층 전용 클럽에서 난봉꾼으로 소문난 유스티스 경이 뜻밖의 소포를 받는다. 상품화하기 전 미식가들에게 품평을 받기 위한 초콜릿인 듯한데, 유스티스 경은 마침 지나가던 벤딕스에게 그걸 건넨다. 벤딕스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초콜릿을 먹는데, 혀가 타는 듯한 강한 맛에 깜짝 놀란다. 다시 클럽으로 돌아간 벤딕스는 어지러움에 혼절하고 그보다 초콜릿을 더 많이 먹은 부인은 결국 집에서 사망하고 만다.

 

확실한 증거도 없고 동기나 범인도 모호한 사건. 사건을 담당한 모리스비 경감은 '범죄 연구회' 회장인 로저 셰링엄에게 비공식적으로 사건을 의뢰한다. 회원 모두의 동의를 얻은 셰링엄은 사건 분석을 선언하고, 여섯 명의 회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범죄를 조사한다. 변호사, 극작가, 미스터리 작가, 여류 소설가, 아마추어 애호가, 그리고 회장. 여섯 명의 범죄 애호가들은 순서를 정하고 각자 추리를 시작한다. 여섯 개의 추론과 여섯 명의 범인. 작가 앤서니 버클리 콕스는 그 모두를 아우른 하나의 정답을 준비하고 독자에게 묻는다. “어떤 정답이 마음에 드시는지?”


『프리즘』은 나오키상 후보에 네 번이나 이름을 올린(다섯 번의 도전 끝에 수상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뒤를 밟고 있는 듯하다)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으로 국내에는 3년 만에 선보이는 신간이다. 누쿠이 도쿠로 하면 강렬한 갈등 구조와 묵직한 주제 의식을 지닌 어두운 작풍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프리즘』은 가뿐한 분량에 수수께끼에 집중하는 경쾌한 본격 미스터리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프리즘』은 1999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완성되기 전 실험 단계에 위치한 초기작이다.

 

한 줄기의 빛을 다채로운 색으로 분산하는 ‘프리즘’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은 『독 초콜릿 사건』에 대한 오마주이다. 초등학교 여교사가 자택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고 네 명의 화자는 각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이야기한다. 피해자 미쓰코는 아이들에게 쉽게 공감하는 상냥한 선생님이지만, 여러 남자와 천진하게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준 여성이기도 하다. 초등학생 제자, 동료, 전 남자친구, 불륜 상대. 피해자와 각각 다른 관계를 맺고 있는 화자들은 미쓰코의 죽음을 분석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범인을 찾는다.


흥미로운 건, 한 이야기의 화자는 그 직전 이야기에서 범인으로 의심받는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추리가 차례로 무너지는 독특한 구조 속에 누쿠이 도쿠로는 부지런히 단서를 배치하고, 사건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음을 감질나게 내비친다. 하지만 마지막 이야기에 이르면 독자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의아함에 대한 답변인 듯 작가는 후기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열 가지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가설을 더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시도는 미스터리 소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이 소설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그러한 즐거움을 맛보셨으면 하는 게 저의 희망입니다.”


독자층이 얇은 국내 시장에서 누쿠이 도쿠로가 기대한 만큼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지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덕분에 오래 전 모임의 즐거움을 아련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요즘 시장에서 독자에게 정답을 묻는 작품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몇 편을 뽑아본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저 ㅣ 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 세 번째 작품. 한 여성의 죽음. 경찰은 자살로 단정하지만, 현장에 먼저 도착했던 오빠는 동생이 살해당했음을 직감한다. 경찰인 그는 증거를 은폐하면서까지 복수를 다짐하고, 유력한 용의자는 둘로 좁혀진다. 끝까지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초판 출간 직후 편집부에 범인에 대한 문의가 폭주했다고 한다.

 

 

 

탐정영화
아비코 다케마루 저 ㅣ 포레

밀실 살인을 다룬 '탐정영화'를 촬영하던 천재 감독이 마지막 부분 촬영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다. 개봉일까지 확정됐지만, 결말을 알고 있는 건 오직 감독뿐이다.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면 영화사는 파산을 맞는 상황, 다급해진 배우와 스태프들은 각자 시나리오를 준비한다. 누가 범인이어야 가장 그럴 듯할까? 감독이 생각한 진짜 범인은? 그리고 감독이 사라진 이유는?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요네자와 호노부 저 ㅣ 엘릭시르

요네자와 호노부의 학원 미스터리 '고전부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축제에 상영될 미스터리 비디오 영화를 제작하던 2학년 F반은 작가의 건강 악화로 인해 영화 제작을 중단한다. 고전부원들은 미완성 상태인 영상을 보고, 스태프들이 제시한 결말을 평가해달라는 부탁을 받아들인다. <독 초콜릿 사건>과 <탐정영화>에 대한 오마주이며 또 새로운 해석을 덧붙인 청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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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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