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는 숨쉬기 같은 것”
경의선 책거리 문학특강 첫 번째 이야기 우리는 왜 시를 읽어야 하는가
시는 딱 굳어져 있는 것이 아니에요. 고무찰흙처럼 갖고 노세요. 예쁘게 빚어야지 생각하면 놀이가 힘들어집니다. 오려도 보고, 짓눌러 보기도 하세요. 그러면서 생각지 못한 기쁨을 느낀다면 저는 그게 시라고 생각해요.
지난 10월 29일, 경의선 책거리 공간산책에서 ‘우리는 왜 시를 읽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김민정 시인의 문학 특강이 열렸다. 강연에 앞서 청중의 질문을 받았고 대담자로 나선 오은 시인이 진행을 도왔다. 이날 강연의 순서는 시 읽기와 쓰기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및 김민정 시인의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과 삶에 대한 이야기 순으로 이어졌다. 김민정 시인의 답변을 통해 시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시간이었다. 시로써 소통하길 원하는 70여 명의 독자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시, 어떻게 읽어야 할까
오은: 첫 번째 질문이네요. 초보자들은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단순히 좋다고 느끼는 것에서 나아가 좀 더 풍부하게 시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김민정: 사실 질문을 받고 쭉 읽어봤는데 감동을 받았어요. 질문 하나하나가 저한테 와 닿는 이야기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노하우를 말씀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왔어요. 제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인천 사람이에요. 그래서 인천 출신 시인들의 시를 많이 봤어요. 애향심 같은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 출신 시인의 시가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죠. 우연히 장석남 시인의 첫 시집에서 송월동을 배경으로 한 연작 시를 만났어요. 송월동의 전파사, 레코드 가게 이야기가 시에 나오죠. 이렇게 좀 더 친숙한 시를 찾아서 읽다 보니 시가 뭔지 조금 알게 됐어요. 그저 널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배치와 생략이 들어가고 때론 없는 얘기도 조금씩 갖다 쓰기도 하는 게 시였죠.
또 말하고 싶은 것은 보통 서점에 가면 시집을 찾아달라고 하잖아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집 서가에 자신을 내던져야 해요. 원래 사려고 했던 시집은 A인데 B와 C, D도 접하면서 일종의 혼란스러운 ‘길 잃기’가 필요해요. 고민하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사려고 했던 것만 사고 나가기 급급해요. 빠른 선택보다는 찬찬히 살필 줄 알아야 해요.
오은: 쉽게 말하자면 가까운 곳에 직접 가서 시를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김민정: 네, 서점에 가서 많이 놀아야죠. 시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제목을 많이 봐주셨으면 해요. 시인들이 작품을 낼 때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 표현이나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목을 보면서 시집을 고르다 보면 내가 지금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드러나요.
오은: 다음 질문이에요. 김민정 시인님에게 연애 시란 무엇인가요?
김민정: 저는 이번 시집 전체가 저 자신한테는 연애 시였어요. 연애 시라는 게 남자와 여자의 연애도 있겠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연애의 수작을 걸고 시집을 냈기 때문에 연애를 배경에 깔았다고 할 수 있어요.
오은: 그럼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에서 대표적인 연애시를 읽어 주실 수 있나요?
김민정: 『이별 장면』을 읽을게요. 현실적인 시죠. 숙박하고 방값은 누가 낼지, 이런 일상적인 고민으로부터 나왔어요.
우리는 남자와 여자여서 함께 잠을 잤다.
방은 하나
침대는 둘
양말은 셋
(여자는 손수건 대신 양말 한 짝으로 코를 풀었다지 아마)
잠은 홀수여서 한갓졌다
발이 시리니 잠이 안 왔다
깨어 있으려니 더 추웠다
호텔 체크아웃을 누가 할 것인가
숙박 요금 3일 치나 쌓였으니
이쯤 되면 폭발적인 곁눈질이다
오은: 시나 소설을 읽고 어떤 감정을 느낄 때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어요. 그럴 필요가 있나 생각하다가도 인풋만 있고 아웃풋은 없으니 고민이네요. 쓸모없는 고민인가요?
김민정: 시는 딱 굳어져 있는 것이 아니에요. 고무찰흙처럼 갖고 노세요. 예쁘게 빚어야지 생각하면 놀이가 힘들어집니다. 오려도 보고, 짓눌러 보기도 하세요. 그러면서 생각지 못한 기쁨을 느낀다면 저는 그게 시라고 생각해요.
느낀 점을 적어 리포트를 내는 것은 정말 스트레스죠. 그런 감정표현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요. 예컨대, 소설에 멍게가 나온 것을 보고 문득 멍게가 먹고 싶다고 느끼면 그게 큰 감동이라고 생각해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나한테 멍게라는 음식이 있었지’ 하고 깨닫는 거잖아요. 멍게를 먹을 때마다 그 소설이 생각나지 않을까요.
마찬가지예요. 한 사람이 쓰는 어휘는 정해져 있어요. 시를 보다 보면 생소한 단어들이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 ‘아, 이 단어 좋아했는데’ 혹은 ‘마음에 드는데’라고 느끼면서 그 감정을 환기하는 것, 거기에 바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 쓰는 것에 대하여
오은: 이제는 ‘시 쓰기’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가 볼게요. 첫 질문이네요.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시를 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김민정: 쭉 말해볼게요. 저는 일단 춥지도 덥지도 않고, 배가 고프지도 부르지도 않고, 생리는 안 하는 게 편하고, 가슴둘레가 한 치수 크거나 작은 브래지어를 차지 않아야 하고, 카드빚에 시달리지 않고, 집이 깨끗해야 하고, 바람 부는 창가에 앉았을 때 발이 시리지 않은 환경. 이럴 때 저는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가 나오던데요(웃음).
오은: 시랑 친해지는 방법이 있을까요?
김민정: 시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모르겠다’는 자세로 살면 돼요. 그 말만 입에 붙으면 다 되더라고요. 시의 세계는 모른다는 것이 통용될 수 있는 세계예요. 모르겠단 말이 자연스러우면 되고, 그 말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면 시로부터 뭐든 느낄 수 있어요.
오은: 시적인 것, 혹은 시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김민정: 예전에는 시적인 것을 사냥하러 나간다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시련이 오면 저를 더 세게 바닥으로 내려 버리기도 했죠. 그러다가 세 번째 시집에서 비로소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 사이에 시가 있다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라웠어요. 이렇게나 많은데 왜 미처 몰랐을까요. 알고 나니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오은: 시를 쓸 때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은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요?
김민정: 저는 많은 관찰을 해요. 한때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말하는 시절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전 사람을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너는 너, 나는 나, 우리는 우리. 사람들에게 내제된 리듬이 있어요. 그것들이 좋으면 표현하는 거죠.
일주일에 한 번씩 대구에 있는 학교에 수업을 나가요. 한번은 대학원 건물을 못 찾아서 헤매다가 경비아저씨께서 오토바이를 태워주셨어요. 경비아저씨와 제 사이에는 묘한 틈이 있었죠. 저는 이 건물은 뭔지 물어보고 싶은데 아저씨는 본인 말만 하시는 거예요. 아들이 의사란 것부터 마지막에 며느리는 부산대에 있다는 것까지. 좁은 오토바이에서 있는데도 요만큼의 틈을 두고 우리는 뭘 했던 걸까요. 아저씨는 저를 내려주고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계약직에 있어요”라고 말씀하시곤 가버렸어요. 아빠 같기도 하고,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이렇게 일화를 가지고도 시를 써요.
오은: 시 읽기와 쓰기에 대한 마지막 질문이네요. 시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김민정: 시는 많이 읽을수록 빨리 알아챌 수 있어요. ‘이 시인이 이 말을 하려는 거구나’ 알 수 있죠. 시에 비밀코드가 있다면 빨리 풀어볼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할 수 있죠. 또, ‘동료나 시인들이 이런 방식으로도 시를 쓰는구나’ 느끼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도 있어요. 편집자로서 시를 만드는 매력을 말하자면 만들 때마다 다르지만, 도전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삶의 의지를 실어주는 매력이 있죠.
김민정 시인과 삶에 대한 이야기
오은: 신간 『아름답고 쓸모없기를』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정말 추하지만 쓸모 있는 것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김민정: 어렵네요. 시늉을 말하고 싶어요. 어떤 시늉이나 어떤 척. 내 앞에서 두 사람이 귓속말 하는 거는 진짜 추한데 쓸모 있어요. 왜냐면 인간관계를 확실히 끝맺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까지 해야 제가 체념하는 순간이 와요. 정말 추한데 쓸모는 있다고 생각해요.
오은: 쓸모없는 방식으로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시가 더 필요할까요?
김민정: 시 한 편으로 대신 답을 드리고 싶어요. 윤희상 시인의 『단추』라는 시예요.
옷을 샀더니,
단춧구멍은 없고
단추만 달려 있다
아무 쓸모가 없는 단추를
누가 달아 놓았을까
그러나 아름다운 단추
오은: 사는 게 버거울 땐 어떻게 이겨내시나요.
김민정: 조갑경의 ‘바보 같은 미소’를 불러요. 대게는 침대에서 뒹굴면서 와인도 먹고, 닭도 시켜먹고 TV를 보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려올 때가 있어요. 어느 정도 정리했거나 아니면 더 안 좋은 상황이 왔을 때죠. 한번은 즉흥적으로 경주행 버스를 탔어요. 그 이후로 힘들 때마다 경주를 가서 진평왕릉 일대를 걸어요. 제가 왜 경주를 가는지 생각해보니 그 큰 무덤들의 ‘덧없음’ 때문인 것 같아요. 어쨌든 다 죽고 저렇게 사라질 거라면 화가 났더라도 화를 죽이고, 용서 못 할 일이라도 용서하는 편이 낫겠죠. 무덤을 가면 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오은: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우리가 시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김민정: 시는 숨쉬기 같은 거예요. 물 흐르는 것처럼 저한테 시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시는 읽든, 쓰든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죽을 때까지 물음표에 대한 답은 찾기 힘드니까요. 보통의 언어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진실을 가려내는 거라면 시는 그 언어를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어서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가 중요하죠. 무한한 측면에서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게 바로 시예요.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쓰며 살듯이 저마다의 시도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시를 생활화하는 습관을 기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김민정 저 | 문학동네
이번 시집에는 “거침없는 시어와 톡톡 튀는 상상력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펼쳐오며, 많은 후배 시인들에게 강한 영감과,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2016년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한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산(産)」 외 8편의 시가 함께 실려 있어 7년 만에 출간되는 시집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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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성의껏 보고, 듣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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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함에 더해진 깊이, 삶의 굽이굽이를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활력 문학동네 시인선 84권, 김민정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솔직한 발성과 역동적인 감각으로 ‘시(詩)’라는 것의 남근주의와 허세를 짜릿하고 통쾌하게 발라버린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2005), 더럽고 치사한 세상을 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