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로봇이 주인공이지만 인간에 관한 이야기”
『한 스푼의 시간』 저자 구병모 작가와의 만남
제 한 스푼의 시간은 굳이 말하자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찾지도 않을 거고. 근데 지나가고 나면은 어느 순간에 돌아봤을 때, 그게 그런 때였구나 생각할 날은 올 것 같아요.
지난 9월 28일 이대 앞 카페파스텔에서 『한 스푼의 시간』의 저자인 구병모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구병모 작가는 2008년 장편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로 창비청소년문학상, 2015년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민음사 오늘의작가상과 황순원신진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아가미』, 『파과』 등을 펴냈다.
행사는 사회자를 맡은 서평가 금정연이 『한 스푼의 시간』을 읽고 인상 깊었던 장면을 낭독하면서 시작됐다.
깨다.
깨다.
꿈에서 깨다. 꿈을 깨다.
꿈의 깸. 꿈의 깨어짐.
깨어나거나 깨어질 것을 전제로 하는 인간의 꿈은 어느 쪽 의미여도 그녀에게 무관한 것이다.
시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문을 나서기 전, 은결 앞으로 두어 걸음 다가와 선다. 침입자라도 들이닥친 듯 낯선 감각에 은결의 회로가 진동을 일으키는데 그건 실로 오랜만에 이렇게, 시선을 피하느라 고개 돌리지 않고 허리를 곧게 편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다고 지각해서일 터다. 처음 대상의 원리나 속성에 구애받지 않고 해맑게 오빠 오빠 부르면서 올려다보던 빛나는 눈빛은 이제 조금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눈높이로 파악하자면 그녀의 신장은 백육십......팔......점.......(『한 스푼의 시간』 174쪽)
구병모 작가의 근황
금정연 - 장편소설은 『파과』 이후로 3년 만인데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구병모 - 매번 ‘이번만 하고 내려놓자’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소설의 마침표를 무사히 찍기 전에 이미 다음번 목표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어서 그중에 뭐가 제일 마음에 꽂히는지, 신호등 켜지는 대로 조율하고, 늘 비슷하게 지내는 것 같습니다.
구병모 작가는 8년 동안 9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평균 1년에 한 권 이상씩 출간한 셈이다. 그동안 쉬지 않고 책을 쓸 수 있는 비결에 관해 물었다.
구병모 - 제가 특별히 많이 썼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원고지 매수, 숫자로만 환산하자면 1년에 쓰는 원고가 일천 매가 채 안 됩니다. 그러면 많아야 하루에 두 장 내지 세 장 쓴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니까,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겠다’라는 절박함이 있거든요. 근데 그것도 뜻대로 안 돼요(웃음). 사람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면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요. 몸이 조금이라도 받쳐줄 때 움직여야겠더라고요. 십 년 뒤에도 똑같은 얘기를 하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지금 제가 한 템포 쉬어가야 하거든요. 그런 역설에 계속 빠지고 있습니다.
금정연 - 구병모 작가님의 작품은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적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데요. 다양성의 비결이 뭔지 여쭙고 싶습니다.
구병모 - 전략이나 비결은 딱히 없어요. 그냥 제 안에서 모든 게 하나로 통해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동안은 “왜 어떻게 하다가 환상적인 얘기를 쓰시냐. 비현실적인 소재는 어디서 구하시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 저는 “저한테 있어서 현실과 비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도 비현실이고, 비현실도 또한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에 환상이고 아니고 그런 거 별로 안 중요하고 구별을 안 한다”고 해요. 그래서 소설에서도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요.
관심사가 잡다하게 많아요. 좋아하는 것도 많고. ‘안드로이드와 사이보그의 차이점이 뭘까.’ 이런 거 다들 일상적으로 관심을 가지시나요? 저는 관심을 가지거든요. 안드로이드는 완전 인간형 로봇이고, 사이보그는 신체 일부만 로봇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관심이 있다, 없다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중요한 건 관심이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니까. 제가 몸이 하나라서 깊게까지는 관심을 가지진 못해요. 그러다 보니까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발이 턱턱 걸려요. 얕다는 거죠.
작년에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을 출간했을 때 ‘나의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이 자신에 대한 적, 침입자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사람이 외부 세계에 대해서 두려움과 동시에 매혹을 느끼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니까 결론은, 제가 알지 못하는 게 많다 보니까 다양하게 써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로봇의 감정 발생 서사
사회자 금정연은 책을 읽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로봇이 배달되는 이야기이지만, 한 스푼이라는 제목과 책 뒤의 추천사에는 로봇이 나온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고 표현하며, 로봇이 등장하는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와 작품에 대한 소개에 대해 부탁했다.
구병모 - 이 소설은 로봇이 주인공인데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 주변에 계속 존재하고 또 어떻게 보면 평범하다 할 수 있는 인간사가 로봇의 눈에 비춰지는 모습을 건조하고 조용하게 담아낸 소설입니다. 지금까지 쓴 소설 중에 제일 조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자는 『한 스푼의 시간』을 쓰게 된 발화점으로 『급진적 진화』의 한 대목을 꼽았다.
래니어(내런 래니어, 가상현실 용어 고안자)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트랜지스터가 인간 존재 간의 연결성에 있다. 언젠가 이민자들이 도맡아온 편의점이나 드라이클리닝 세탁소의 운영을 로봇들이 떠맡게 된다고 하자. 과연 로봇이 당신이 맡긴 셔츠를 돌려주면서 태국산 가지와 멜론의 씨앗을 끼워 넣어줄 만큼 당신에 대해 잘 알 수 있을까?(『급진적 진화』 366쪽)
구병모 - 지금도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인공지능이 인간이 하는 모든 걸 다 도맡아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은 이제 어느 정도 고객의 취향 파악은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정서적인 자문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에서 소설을 시작해 보았습니다.
금정연 - 작가의 말에 로봇의 감정 발생 서사라고 써주셨는데, 그런 게 많이 있잖아요. 그런데 보통 그런 서사가 로봇인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는 반해, 『한 스푼의 시간』은 은결이라는 로봇에 집중하기 보다는 주변의 다양한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재밌었어요. 로봇이 관찰자가 되어서 이야기를 하잖아요.
구병모 - 로봇의 감정 발생 서사라고 직관적으로 쓰긴 했는데요. 인간의 감정이란 걸 아주 서서히 뭔지를 알게는 되지만, 끝까지 그 감정을 분명하게 획득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호한 상태로 남겨두었어요. 로봇이 급격한 감정의 주인이 되는 순간 관찰자가 아니라 소설의 전면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면, 이 소설은 더는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게 될 것 같아서 그런 방식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금정연 - 이 소설을 읽으면서 로봇이 초점 화자, 관찰자로 등장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타의 감정 발생 서사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욕망을 갖게 되고 인간처럼 따라 하는 그런 드라마가 발생하니까요. 그래서 사실은 인간이 화자로 등장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요. 은결이라는 인물은 지적인 능력, 계산능력 이런 게 굉장히 뛰어나지만 소위 인간관계, 자연스럽게 하는 인간의 행동은 이해하지 못하는 거잖아요. 작가님이 쓰실 때 아무래도 그런 은결의 입장이 되어서 썼어야 할 테니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로봇인 화자가 된 경험이 어땠는지 궁금하거든요.
구병모 - 로봇이 화자라고 해서, 굉장히 모든 것을 추리, 논리적인 연상에 관해서 쓴다는 강박관념은 일단 갖지 않았고요. 처음 원고를 쓸 때는 인간과 로봇이 섞였다고 생각했어요. 완전히 로봇의 시점 객관화로 써갈 거였으면 바싹 마른 건조체로 눈에 보이는 것만 써나가야죠. 평범한 인간들도 구사하기 약간 어려운 문학적인 묘사 같은 것도 들어가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세상에서 인공지능이 작곡, 글쓰기 이런 걸 하는 걸 보면,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소설 중간부터 꾸준히 주인공 로봇이 겪게 되는 연상 작용의 장면에는 ‘~할 것만 같다’라는 진술이 나오는데요. 이게 이미 로봇의 말이라고 보기엔 조금 어렵거든요. 지금도 로봇이 많이 발전하고 있고, 꾸준히 인간의 언어 학습을 하고, 그 언어를 실제로 내뱉으면서 인간의 감정을 알아가기도 하는 그런 상황이에요.
우리가 자세히 보면 하나의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전혀 다른 거일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동음이의어 같은 거요. 이 소설에서만 봐도 하나만 예를 들어도. 우리 인간이 하는 ‘꿈 깨라’라는 말이 ‘야, 꿈 깨라’하는 핀잔 같은 것도 되고, ‘내 꿈이 깨졌어’라는 실망의 뜻도 되고, 물리적으로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평범한 뜻도 되는데요. 이런 차이를 지금의 로봇이 하나하나 알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어떤 언어를 배우느냐에 따라 변수는 있을 테지만요.
소설 속에서 은결이가 언어를 헷갈려 하잖아요. 언어라는 걸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근데 ‘언어라고 해서 인간의 감정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이해시키는 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일단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는 짜증 나면 자기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 정반대로 말하기도 하고, 그때그때 상황을 모면하려고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언어라는 게 과연 이해의 도구라고 할 수 있나. 오히려 오해의 도구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간의 감정을 철저하게 오해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역설적인 생각을 하면서 썼다고 생각합니다.
금정연 - 다른 작품들에도 말씀하신 역설적인 인간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소위 말하는 위악적인 화자가 무슨 말을 하는데, ‘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 독자로 하여금 헷갈리게 만드는 지점이 있어요. 그런 인간의 이해가 작가님에게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으신 건가요?
구병모 - 제가 과연 인간을 이해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오해하고 싶은 건지 때로는 헷갈리는데요.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믿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평소 사고가 반영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로봇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올 상반기 이슈였던 알파고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사회자는 ‘향후 직업의 대부분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라는 기사가 유행한 것에 관하여 작가로서의 심정을 물었다. 구병모 작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구병모 - AI가 썼다는 글 저도 읽어봤어요. 저는 일단 그것이 사람이든, 로봇, 무생물이든 간에 누군가가 소설을 쓰고 있다면 그냥 ‘동료 작가이겠거니’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 주변의 동료작가가 굉장히 멋진 작품을 발표했다고 해서 거기에 위협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동료작가에 대해서는 읽고, 존경하고, 따라가고 싶은 느낌이 들거든요. 만약 AI가 그것에 필적하는 수준을 썼다 해도, ‘동료작가 중의 하나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그럴수가...(웃음)
고정관념 타파
『한 스푼의 시간』은 원래 <문장 웹진>에서 연재했던 소설을 수정하여 출간한 작품이다. 사회자는 출간하면서 달라진 점을 꼽으며 질문했다.
금정연 - 연재 당시에는 세탁소 주인을 가리켜 탁 노인이라 했는데, 『한 스푼의 시간』에서는 명정이라고 이름을 바꾼 이유가 있나요?
구병모 - 원래는 딱히 이름을 안 넣고 불렀다가, 나중에 굉장히 고민하고 바꾼 이름이거든요. 은결이랑 처음 만날 때는 그렇게까지 노인은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곧 노인이 될 것 같은 장년층 끝 무렵이에요. ‘노인이란 걸 강조하지 말자.’ 싶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노인이라고 얘기했을 때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가치관, 행동, 일종의 현명함이나 세상을 살아온 지혜라는 게 있을 텐데 그것과는 거리감 있는 인물이니까. 그래서 여러 이름 후보 중에 밝을 명, 깨끗한 정의 ‘명정’을 썼습니다. 너무 튀지도 않으면서 그 사람이 살아온 일생과 분위기에 어울리게요.
금정연 - 또, <문장 웹진>에서는 세탁소 주인이 시호 더러 ‘시호 화장 안 하니까 훨씬 이쁘다’라고 했는데, 이 책에서는 ‘시호 오늘은 웬일로 화장을 다 했나. 이쁘네’라고 하거든요. 이렇게 바꾸신 이유가 있나요?
구병모 - 화자가 노인이잖아요. 연재 당시에는 일반 상식 틀에 갇혀서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 어르신들이 애들에게 하는 구닥다리 잔소리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근데 시대는 바뀌었잖아요. 이제 아이들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에 책임과 권리를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하는데. 저 학교 다닐 때 남학생은 무조건 스포츠 빡빡이, 여학생은 귀 및 3센치이고 학생 인권 같은 건 아예 떠올릴 수 없는 시대였어요. ‘지금 애들이 그때 애들이 아닌데, 내가 왜 그런 시선으로 쓰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전개상에 무리가 있더라도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치관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정연 - 작가님 소설에서는 공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이번 소설도 공간에 대한 묘사들이 나와요. 『한 스푼의 시간』 첫 문장에서 ‘평균 연령 20세가량의 빌라 골목이다.’라고 표현하잖아요. 저는 이 문장이 재밌더라고요. 보통 이렇게 표현을 안 하잖아요. 빌라라는 무생물에 ‘20세가량’ 이렇게 말을 안 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보면 로봇이라는 무생물이자 생물이 등장하는, 그런 정교한 계산을 하시고 쓰신 건지 궁금합니다.
구병모 -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고요. 지금 말씀하셔서 알았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번 소설 같은 경우에는 반드시 그런 공간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익숙한 동네의 변두리 골목에서 갑자기 로봇이 튀어나온다고 한다면, 이건 낯설거든요. 왜냐하면 대체로 로봇은 미래사회 배경이라는 고정관념 그런 게 있으니까. 그런 걸 생각하고 쓰지는 않았고요. 지나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웃음).
로봇 은결과 사랑이라는 감정
다음은 로봇 은결이가 처음으로 시호, 준구와 시장에 가서 거울을 보게 되는 장면이다. 구병모 작가가 두 페이지 가량을 낭독한 뒤 은결이의 감정과 관련한 대화가 이어졌다.
거울 안에 누군가가 있다.
그 사람도 대파 끝이 솟아 나온 장바구니를 품에 안고 있다. 은결이 거울 앞에 한쪽 무릎을 접고 앉자 거울 안에 있던 사람도 그렇게 한다. 한 손을 뻗자 한 손을 엉거주춤 내민다. 두손은 서로 닿지 않는다. 그는 샘플이기에 분명 로봇의 거울 실험을 직접 통과했을 테고 실험 내역 또한 메모리 어딘가에 비활성 상태로 고이 잠들어 있으리라는 모습임을 인식한다. 그러나 전원이 들어오고 깨어난 뒤로 자기 자신의 모습임을 인식한다. 그러나 전원이 들어오고 깨어난 뒤로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기는 처음인 것이다. 집에 유일한 거울은 욕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는데, 주인은 정도 이상으로 물이 튈까 염려하여 욕실 청소만은 하지 말 것을 지시했었고 은결은 그 말을 충실히 따랐다. 욕실 문이 열려 있어도 그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메모리에서 불러낸 화상이 아닌, 태어나 처음 들여다보는 자신의 모습은......
신기하다
공포스럽다 ( 『한 스푼의 시간』79쪽)
금정연 - 방금 전에 읽어주신 부분이 은결에게 감정이라는 처음 생길락 말락 하는 그 지점이에요. 은결이 감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 중의 하나가 바로 시호에 대한 사랑이거든요. 이게 굉장히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물론 독자들이 느낄 수는 있지만 은결 자신조차 모르게 넘어가거든요. 그런데 이게 보통 다른 로봇의 감정 발생 서사를 가진 거라면 이 부분이 클라이맥스일 텐데요.
구병모 - 사랑이야말로 어떤 인간이 감정을 가졌다는 정확한 증거잖아요. 처음에는 끝까지 은결에게 감정이 안 생기고, 감정을 인간만의 것으로 할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너무 딱 잘라서 로봇에게 감정 하나도 내줄 수 없다고 하면, 너무 소설이 허무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 일단 감정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그것을 실제로 묘사하거나, 설명하거나, 격하게 표출하는 장면 없이 미묘하게 가야겠다 싶었어요. 격하게 표출되는 가장 결정적인 감정은 사랑이잖아요. 그래서 사랑을 일부러 보일락 말락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어서 행사장에 참여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시간이 있었다. 미리 작성해둔 메모지 질문을 토대로 질의ㆍ응답을 했다.
한 스푼의 시간에서 가장 마음이 갔던 등장인물은 누구인가요?
구병모 - 등장인물에게 마음을 주지 않아요. 언제나 다 깨끗하게 떠내 보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주면 다음에도 비슷한 인물이 나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적인 긴장을 하기 위해, 가능한 한 등장인물한테 감정이입 안 해요. 자전적인 요소도 거의 없습니다.
작가님만의 한 스푼의 시간이 궁금합니다.
구병모 - 제 한 스푼의 시간은 굳이 말하자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찾지도 않을 거고. 근데 지나가고 나면은 어느 순간에 돌아봤을 때, 그게 그런 때였구나 생각할 날은 올 것 같아요.
급진적 진화 조엘 가로 저/임지원 역 | 지식의숲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이라는 종(種)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책. 기자인 저자가 첨단 테크놀로지를 선도하는 각 분야의 저명한 과학자 및 전문가들을 취재하여, 생명공학, 로봇공학, 정보기술, 나노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 찾아올 미래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