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의 조화, 아포가토
<월간 채널예스> 8월호 낮책 밤책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책과 커피, 그리고 하루키와 음악을 좋아해 홍대와 신촌 사이 기찻길 땡땡거리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와 커피 한 잔을 마주하고 정겨운 시간을 보내듯 책과 커피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합니다.
문학은 낭만적이어야 한다고 믿던 시기가 있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달래주어야 했다. 목동들은 모닥불가에 앉아 밤하늘 별자리에 얽힌 전설을 노래하며 긴 밤을 지새웠고, 모험에서 돌아온 기사는 사랑하는 공주의 품에서 눈 감았다. 사람들은 공주의 품에서 죽어가는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감동에 젖어 눈물짓다가 잠들곤 했다. 그 시기의 문학은 죽음마저도 아름답고 낭만적이어야 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몇몇 작가들이 이러한 전통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발자크와 플로베르 등은 젊고 아름다운 백작 부인을 애인으로 두는 것이, 또는 쫓기는 왕자와의 극적인 하룻밤이 과연 짜릿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문학은 왜 생각보다 보잘것없을 수도 있는 그 과정과, 욕망이 채워지는 짧은 순간 이후 찾아오게 마련인 후회와 권태는 다루지 않는 것일까? 사실주의 문학의 경전이라 불리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이렇게 탄생했다. ‘백마 탄 기사와의 하룻밤은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그리 부유하지 않은 농가에서 태어난 엠마는 수녀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낭만적 기질이 강했던 그녀는 수녀원에서 몰래 읽은 여러 문학 작품을 통해 소설 속 인물이 되고 싶은 꿈을 키워간다. 언젠가 천둥번개처럼 급작스럽게 찾아올 결정적인 순간을 늘 기다리지만, 수녀원에서 돌아온 그녀에게 주어진 현실은 평온하면서도 단조로운 시골 생활뿐이었다. 하지만 다리가 부러진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방문한 샤를 보바리와의 만남은 그녀가 그토록 기다려온 완벽한 순간이었다. 드디어 운명처럼 사랑이 찾아왔고, 그 사랑이 그녀에게 넘치는 행복을 선물할 것이라고 믿었다.
엠마의 소망과 달리 샤를 보바리는 성실하지만, 재능도 매력도 없는 평범한 시골 의사에 불과했다. 그녀가 사치는 바랄 수도 없는 보잘것없는 수입과 시골뜨기 같은 외모, 투박한 취향에 지쳐갈 무렵 로돌프라는 이름의 부유할 뿐 아니라 멋진 의상과 몸가짐, 훌륭한 매너를 겸비한 남자가 나타난다. 바람둥이 로돌프가 뱉어내는 뻔한 유혹의 말은 엠마의 귀에 마치 백마 탄 왕자의 달콤한 속삭임 같았다. 혼란스럽지만 짜릿한 기쁨이 찾아왔다. 드디어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녀는 나지막이 되풀이했다. “내게 애인이 생겼어! 애인이!” 이렇게 생각하자 마치 제2의 사춘기를 맞은 것처럼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제 드디어 사랑의 기쁨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체념했던 뜨거운 행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황홀한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은 정열, 도취, 열광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다. 푸른빛을 띤 광대한 세계가 그녀를 둘러쌌다. 그녀의 상념 속에는 최고조의 감정들만이 솟아 빛나고 있었다.
보바리즘의 모델이 된 엠마가 겪는 끝없는 고통을 통해 낭만주의를 가차 없이 비판한 플로베르지만, 소설 속에는 그녀와 대비되는 인물도 등장한다. 엠마가 낭만주의를 상징한다면 약제사 오메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의사 몰래 진료하는 정도 외에는 특별히 못된 짓을 하지 않음에도 철저하게 자기만 챙기는 모습이 꽤 얄밉다. 소설 속 인물과 현실의 자기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엠마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오메의 대비를 통해 플로베르는 낭만주의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편에 서지도 않는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건 결국 이상적인 삶이란 달콤한 꿈과 비정한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끝없이 애쓰는 모습이 아닐까.
에스프레소는 백여 년 전 성질 급한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탄생했다.커피 추출에 걸리는 시간을 지루해하던 그들은 높은 기압을 이용하면 빠른 시간에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쓰고 강렬한 커피가 얻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로 에스프레소를 응용한 여러 메뉴가 개발되었는데 그중 아포가토는 지금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저트로 자리잡고 있다.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 넣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레시피라 집에서도 인스턴트커피 등을 이용해 간단하게 만들어볼 수 있다.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쓰디쓴 에스프레소의 조합은 얼핏 이상할 것 같지만 달고 쓴 맛이 서로 어울려 기대 이상의 조화를 이룬다. 스푼에 함께 담긴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맛보면서 내게 맞는 적절한 배합은 어떤 것인지, 엠마와 오메 사이, 꿈과 현실 사이 내 위치는 어디쯤이 좋을지 잠깐 생각해보는 것도 아포가토를 즐기는 또 한 가지 방법인 것 같다.
아포가토 만들기
재료
바닐라 아이스크림 3스쿱
에스프레소 60ml
아몬드 슬라이스 약간
만들기
1 아포가토 용기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3스쿱을 넣는다.
2 에스프레소 60ml를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도록 용기 벽을 따라 조심스럽게 따른 후 마지막 1/3은 아이스크림 위에보기 좋게 뿌려준다.
3 마지막으로 기호에 따라 아몬드 슬라이스를 약간 올려준다.
책과 커피, 그리고 하루키와 음악을 좋아해 홍대와 신촌 사이 기찻길 땡땡거리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와 커피 한잔을 마주하고 정겨운 시간을 보내듯 책과 커피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합니다. 인스타그램@petercat1212
<귀스타브 플로베르> 저/<이봉지> 역11,7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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