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리뷰 대전] 끝내 인도에 가지 못할 당신께 추천
이 계절의 여행(책)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 좋다고? 5월의 프라하는 12월의 프라하와 전혀 다른 도시. 수많은 나라와 도시 중에서도 다음 달에 들러야 딱 좋은 곳을 소개한다. 들고 떠나야 쓸모가 있는 여행책들, 하지만 계절의 풍경이 그려진다면 읽기만 해도 오케이. 마음대로 날아가지 못하는 모두의 마음을 담아 그냥 수다 한 판!
인도에 가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우물 안에서 동그란 하늘만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분명 이곳이 아닌 어떤 곳에서 꽤나 근사한 깨달음을 얻게 될 거라 믿었고, 그러기에 인도만한 곳은 없어 보였다. 한없이 비범해 보이는 평범한 수도자들 틈에서 지내다 보면 새로 태어나는 기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얼추 비슷한 느낌을 받겠지 싶었다. 간단하게 말해, 그곳에 다녀오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나도 나를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인도에 대한 환상은 그저 낭만에 취한 꼬마 하나가 어설프게 써 내려간 꿈 노트 같은 거였다. 어설프든 아니든 우리 모두의 ‘꿈 노트’는 존중 받아 마땅하지만, 다만 인도는 쉽지 않다.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어렵다. 그때의 나에게는 더했을 곳이다. 견딜 수 없었을 곳이다. 이런 잡생각들이 9월의 인도를 추천하는 수많은 글들을 보면서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1만 시간 동안의 남미』의 작가 박민우가 130일 간의 인도와 파키스탄 여행을 책으로 엮어냈다. 파키스탄 훈자를 포기할 수 없어 <3천 시간 동안의 인도>가 되지 못한 이 책은 어떤 의도된 과장이나 포장 없이 살아있는 그곳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준다. 안타깝게도 제목으로 과거의 영광을 등에 업지는 못했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인도에서는 바가지, 사기꾼과 맞서 싸우고, 분해하고, 탯줄도 못 끊은 강아지처럼 아팠습니다. 파키스탄에서는 벌벌 떨고, 놀라고, 상처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신병자처럼 뒤돌아서면 씨익 웃었죠. 알거든요. 열심히 놀고 있구나. 내가 택한 놀이터에서 방방 뛰고 있구나. 땀 흠뻑 흘리며 진하게 노는구나.'(p.10) 본격적인 여행기에 앞서 밝힌 작가의 말처럼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로 주먹을 쥐고 발을 동동 구르게 하는가 하면 또 그만큼이나 납득할 수 없는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속은 내가 바보인가' 싶을 만큼 놀랍게 뻔뻔한 현지인과의 만남, 각양각색 여행자들과의 에피소드 등 녹록하지 않은 상황을 그리는 솔직하고 생생한 묘사에 입 밖으로 헉 소리를 내거나 깔깔거리기도 했다가 순간 명치 언저리를 훅 치고 올라오는 울컥함을 경험하게 된다. 쌓여있던 감정을 뱉어낼 수 있게 만드니, 맞다. 힐링 여행 에세이.
그렇게 그를 따라 이 이상한 나라를 누비다 보면 어느 순간 의도치 않게 여행자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 가난하고, 보잘것없을 때, 좋은 여행자가 된다. 가난한 마음엔 넣을 게 많아진다. 벌레를 생명체로 존중하고, 멀쩡한 사람한테까지 아프냐고 묻는다. …… 줄 게 없나 주머니를 뒤적일 것이다. 안 주겠지만, 주겠다는 마음은 빈 주머니에 담고 다닐 것이다.'(p.239) 좋은 여행자가 되는 순간, 누군가의 좋은 사람이 되는 순간. 길 위에 서면 한 걸음 더 빨리 마주하게 될 것 같은 그 순간들을 인도에서라면, 훈자에서라면 조금은 더 일찍 맞게 되지 않을까? 당연히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네 세상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때 말이다. 그 ‘때’도 사백 몇 페이지 쯤에서 봤던 것 같다. 아마도.
인도에 가고 싶지 않다. 가고 싶은데 가고 싶지 않다.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적어도 내가 지금의 나인 동안은 그럴 것이다. 성질을 꾹꾹 누르다 소리 한 번 버럭 지르거나 분에 못 이겨 눈물이 뚝 떨어지고야 말겠지. 그러다 문득 '그래, 내가 나를 참 몰랐지.' 싶어지는 날이 오면 다시 인도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도 쉽게 인도로 떠나지는 못할 테니 그럴 때 이 책을 펴 들겠다. 과거에 그렸던 꿈같은 인도는 아니더라도 어쩌면 진짜 나에게 필요한 인도가 여기에 있다. 특별할 것 없이 많이 웃고 울고, 뜨끈하게 위로 받으면 그걸로 족하겠다.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박민우 저 | 플럼북스
이 책은 생명력으로 들끓고 있는 인도와 쓸쓸한 상처로 멍들어가는 지상 낙원, 훈자로 독자를 초대하고 있다. 보고, 느낀 모든 것을 날 것 그대로 토해내는 박민우 작가의 고집은 독자들에게 빤하지 않은 위로를 선물할 것이다.
관련태그: 인도, 파키스탄, 여행,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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