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전 대법관이 지하철에서 즐기는 취미는?
김영란 작가와 함께하는 지하철 플래시몹 및 북토크 현장
지하철을 좋아해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마다 미리 챙겨둔 책을 꺼내서 읽죠. 보통은 스마트폰들을 많이 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다가 책 읽고 계신 분들을 보면 괜히 반가워요. 뭘 읽고 있나 유심히 보기도 하고, 아무래도 관심을 가지게 돼요. 지하철에서 책 읽는 것 자체가 하나의 좋은 문화거든요.
지난 7월 14일 서초역 2호선에는 단체로 흰색 티를 맞춰 입은 한 무리가 나타났다. 티셔츠에는 ‘#제헌절’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고, 손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무리의 중심에는 대한민국 최초 여성대법관이자 ‘김영란법’의 제안자인 김영란 작가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어떤 연유로 지하철에 나타났을까.
지하철에 등장한 의문의 독서 유랑단
올바른 독서 문화를 지향하는 단체 <책읽는 지하철>과 출판사 <풀빛>에서는 제헌절을 기념하고, 독서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김영란 전 대법관과 함께 하는 책 읽는 지하철 플래시몹’ 행사를 마련했다. 오후 2시, 참가자들은 서초동 대법관 앞에 모여 김 작가의 도서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법치주의와 정의를 돌아보다』와 기념 티셔츠 및 음료를 받고 서초역 2호선으로 집결했다. 그녀와의 뜻깊은 만남을 위해 30여 명의 인원이 몰리며 지하철 첫 칸은 때아닌 북새통을 이뤘다.
김영란 작가와 함께하는 독서 여정은 합정역에 도착하기까지 약 40분 동안 이어졌다. 오가는 승객들 사이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질 법도 했지만 이날 지하철 플래시몹에 참여한 인원들은 자못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독서에 임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지하철 안은 자연스럽게 책 읽기 좋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책과 동행하는 40분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김영란 작가와 참가자들은 합정역에서 하차한 후 5분 거리에 있는 북카페 ‘빨간책방’으로 향했다. 이날 행사의 종착지인 이곳에서는 김 작가와의 북토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영란 작가와 함께하는 열린 북토크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등의 저자 김영란 작가는 우리나라 사법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유명하다. 2004년부터 6년간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여 ‘소수자의 대법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는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학생들과 법에 대한 소통을 나누고, 꾸준히 집필 활동을 이어나가며 그녀만의 ‘법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지난 2월 김 작가는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법 교양서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를 출간했다. 청소년들에게 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길에는 2년의 노력이 뒤따랐다. 그로부터 4개월 후 그녀는 성인들도 어우를 수 있는 확장판 격인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법치주의와 정의를 돌아보다』를 기존 도서의 보급판으로 내놓았다. 이날 빨간책방 3층에서 열린 북토크는 김 작가와 참가자들 간에 질의응답을 위주로 진행됐다. 도서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법치주의와 정의를 돌아보다』를 중심으로 한 활발한 질문이 있었다. 참가자들의 궁금증은 김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부터 사회 정의에 관한 질문까지 다양했다. 책의 편집자인 김재실 씨가 원활한 진행을 위해 옆에서 도왔다.
김영란 작가에게 묻다
책 읽는 지하철 플래시몹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하철을 좋아해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마다 미리 챙겨둔 책을 꺼내서 읽죠. 보통은 스마트폰들을 많이 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다가 책 읽고 계신 분들을 보면 괜히 반가워요. 뭘 읽고 있나 유심히 보기도 하고, 아무래도 관심을 가지게 돼요. 지하철에서 책 읽는 것 자체가 하나의 좋은 문화거든요. 이번 기회에 이런 문화들을 알리고 싶었어요.
요즘 지하철에서 읽고 계신 책은 뭔가요?
정지돈 작가의 『내가 싸우듯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아직 조금밖에 못 읽었지만 취향에 맞아요. 읽으면서 글에서 풍기는 느낌이 독일 출신의 제발트 작가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는데 책 말미에 그의 책을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어요. 글 자체가 재미있고 아주 풍부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에요.
이번에 기존의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의 보급판인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법치주의와 정의를 돌아보다』가 나왔는데요. 그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 이 책은 성인들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읽기 좋다는 의미에서 기존의 타이틀(청소년을 위한 법 교양서)을 달았어요. 물론 어른들도 많이 보시긴 했지만, 책을 읽으신 어느 분이 더 많은 어른에게 읽히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죠. 게다가 처음부터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라고 정해두니까 어린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한 책으로 인식하고 안 읽으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기회가 생겨, 법에 대한 총론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보급판을 써냈습니다.
책에서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이나 강조하실 포인트가 있나요?
법 이야기와 소설, 영화를 접목했어요. 『돈키호테』나 <아바타> 이야기도 나옵니다. 어느 부분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재미있게 읽는 게 중요해요. 이 이야기가 책에 왜 들어갔는지 의문을 가지면 된다고 생각해요.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강조하고 싶은 점으론 법에 대한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말하고 싶네요. 책을 읽고 법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단순히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가 법을 만드는 주체고, 변화시키는 존재라고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올바른 자세는 무엇인가요?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비록 여성이나 노예가 참여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지만 그리스 시민들에게 의견을 내는 것은 공적인 의무였어요. 공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고, 공적인 것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죠. 하지만 요즘은 개인적인 측면이 더욱 중요해진 사회예요. 근대 산업혁명 이후에 나타난 변화죠. 민주주의 사회라 하면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고 치자와 피치자가 동일해야 해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더라도 기본적인 방향성은 그래야 하죠. 공공적인 것의 의미가 살아야 개인도 산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적 이익을 위해서는 공공적인 것에 대해 사고하고, 함께 참여하는 것이 중요해요. 책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하고 있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정의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 책에선 ‘하늘에서 떨어진 정의는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플라톤은 플라톤만의 정의를 내렸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만의 정의를 내렸죠. 로크, 몽테스키외도 마찬가지예요. 절대적인 정의는 없어요. 따라서 정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사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꼭 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 절대적으로 지켜왔던 법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법적인 안정성을 내세워 반대하는 주장도 존재하겠죠. 하지만 생각해봅시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미국 사회가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지키지 않는 사회였을까요? 아니에요. 단지 노예는 헌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을 뿐이에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었던 거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반드시 변화시켜야 할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의견을 대변하실 때 마주했던 한계점들은 없으셨나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한계점은 많았죠. 소수자들을 위한 의견이란 것은 주류의 의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단숨에 주류에 있는 사람(다수자)들을 설득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늘 한계에 부딪혔죠. 하지만 그 한계를 설득해나가고, 바꿔나가는 것 자체가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소수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하죠. 한계를 받아들이고 조금씩 그 의견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했듯이 단번에 소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워요. 그런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담론들을 형성해내고, 그러한 법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중요해요. 대법원에서 소수에 대한 의견을 내는 취지도 같은 맥락인 셈이죠.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무엇을 하시나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남편이 바쁜 사람이 TV를 그렇게 보냐고 그래요. 다방면의 드라마를 보고 책도 읽고, 거창한 건 없어요. 그저 사람들의 관심사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는지 원초적인 질문을 해보기도 하죠. 최근엔 『또 오해영』을 재미있게 봤어요. 적극적인 여성상을 볼 수 있었죠. 나는 저렇게 적극적이었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어요. 솔직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주인공을 보면서 부러움도 느꼈어요. 드라마나 책을 보면서 자기감정을 확실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죠.
앞으로의 집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앞으로도 법치주의와 정의에 관해 더 넓고, 깊은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책을 쓸 생각이에요. 다만 이제는 제가 경험한 법 이야기보단 좀 더 확장된 주제인 법의 미래라든지, 법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더 넓게 보는 시각에서 이야기를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를 들어, 현재의 21세기까지 오면서 지식인들이나 정치학자들이 설계했던 근대사회가 많이 바뀌고 있죠. 새로운 세계에 있어 헌법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어요.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 법치주의와 정의를 돌아보다김영란 저 | 풀빛
<비행청소년> 시리즈의 10번으로 출간된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보급판이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은 청소년들도 읽어야 하겠지만 법에 관한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은 다양한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어서, 일반인들을 위한 보급판으로 재탄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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