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국정화 교과서, 수치스러운 이야기"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펴내 현대사를 알아야 지금의 우리를 이해할 수 있다
약간 고통스러울지라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대사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들을 한 두 권이라고 읽으면서, ‘우리나라에 이런 문제가 있구나’를 파악했으면 합니다. 유권자로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할 때도 현대사를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죠.
"한국 현대사가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가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를 펴내며 가장 강조한 말이다. 제국주의, 분단, 독재로 이어진 한국 현대사는 암흑기의 연속이었지만, 반면 자유를 얻은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나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 교육은 후퇴하고 있다. 독재 시대에나 가능했을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문제가 여전히 뜨겁다. 반평생을 현대사 연구에 몰두한 서중석 교수는 "항일 독립 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줄기차게 계속된 것도, 우리 제헌 헌법에 자유 평등의 독립운동 정신이 담겨 있는 것도 역사의 힘인데, 아직도 수구 언론은 '이승만 위인 만들기'에 노력하고, 국정화 교과서 문제가 나오니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현대사 1호 박사'로 그간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 『한국현대사 60년』 등을 집필한 서중석 교수는 현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여전히 현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오래 전부터 박정희의 저작, 연설문집 등을 살펴보며, 박정희 집권 18년의 전체 상을 담을 통사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던 중 대학 제자였던 김덕련 기자로부터 현대사에 관한 연속 인터뷰를 제안 받았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는 지난 2013년 8월부터 <프레시안>에 연재하고 있는 서중석 교수와 김덕련 기자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지난해 3월 1권 '해방과 분단, 친일파 편'을 시작으로 올해 5월, 6권 '박정희와 배신의 정치, 거꾸로 된 '혁명'과 제3공화국’까지 출간됐다. 신문 연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사를 알아야 지금 대한민국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술술 읽히는 현대사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그런가요? (웃음) 우리나라 현대사를 어렵고 어둡게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흥미를 가질 부분이 상당히 많지요.
아무래도 대담을 엮은 책이라 더 쉽게 느껴졌습니다. '이야기 마당'이라는 형식으로 책이 이어집니다.
글로 쓰면 아무리 쉽게 쓴다고 해도 딱딱한 느낌을 벗을 수 없지요. 희한하게 우리 독자들이 대한민국 현대사를 잘 알지 못해요. 연구된 것도 없고 교육도 못 받았기 때문이겠죠. 2013년에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을 때였어요. 김덕련 기자가 현대사에 관한 연속 인터뷰를 요청했죠. 우리는 현대사를 너무 모르기도 하고 잘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아 수락했어요. 이 책은 김 기자가 물어보는 것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현대사를 구체적으로 다뤘어요. 1권부터 4권까지는 4월혁명을 중심으로 했고, 5권은 제2공화국과 5.16쿠데타, 6권부터는 박정희 정권을 담았어요. 지금까지 박정희 정권을 이렇게 자세히 다룬 책은 드물지 않았나 싶어요.
최근에 나온 6권의 주제가 ‘박정희와 배신의 정치, 거꾸로 된 ‘혁명’과 제3공화국’입니다.
중앙정보부의 탄생부터 사상 논쟁이 불붙은 1963년 대선, 왜 박정희는 서울에서 완패했는지를 짚어봤어요. 우리나라의 해방 직후 역사는 1980년대에 와서야 연구됐는데 박정희 시기도 마찬가지였어요. 당시 한국인의 대다수가 박정희의 창씨 명을 알지 못했고 심지어 그가 남로당의 프락치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TV 화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박정희 모습을 그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1990년대 중반 IMF 사태 이후, 박정희 신드롬이 일어나면서 그가 대단한 능력자로 신비화가 됐죠. 한국이 1970, 80년대에 고도 성장을 했는데 그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었어요. 내적 요인뿐만 아니라 외적 요인도 짚고 넘어가는 게 맞지요. 6권에서는 1961년 5ㆍ16쿠데타에서 1963년 12월 제3공화국의 출범에 이르기까지, 박정희가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를 살펴봤어요. 박정희는 역대 대선에서 가장 근소한 차이인, 15만 표 차이로 승리했어요. 군복을 벗고 대통령이 됐지만 여전히 군인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이었죠.
"경제 발전은 결코 대통령 한 사람 덕분이 아니다"라고 지적하셨어요. 아직도 극우 반공 세력은 박정희를 절대시하면서 박정희 때문에 한국 경제가 발전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열한 역사 인식입니다. 한 사람 때문에 경제가 발전하고 잘됐다는 논리가 어떻게 횡행할 수 있나 싶어요. 경제 성장 문제는 그 당시 국내외적인 여건, 경제적인 여러 조건과 함께 정치 담당자, 기술관료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맞지요. 재밌는 것은 1986~1988년 경제 호황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요인을 두루 이야기하지, 전두환 한 사람의 공이라고 안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1952년 이후 계속 플러스 성장을 했는데, 1980년에 급전직하 했어요. 유신 정권 말기에 경제 상황이 무척 안 좋았는데, 박정희의 업적을 강조하는 이들은 이런 이야기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요.
대만 같은 경우, 1961년부터 1983년 사이 연평균 9.3% 경제 성장했지만, "총통 장개석이나 그의 후계자 장경국 때문에 경제가 발전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장개석은 대만 총통 시기에 윤리적이었고 부정부패도 척결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대만 사람들은 '독재는 잘못'이라는 인식이 폭넓게 깔려 있기 때문에 고도성장을 독재자 공로라고 말하지 않아요. 일본도 1970년대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지 않았습니까.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이 디딤돌이 됐고 베트남전쟁 기간 동안 '월남 특수'가 있었고, 여러 국내 요인이 작용인 것으로 생각하지 어느 한 정권의 공으로 경제가 발전했다고 말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지금도 <프레시안>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가 연재 중인데요.
얼마 전에는 1979년 10.26사태를 다뤘어요.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왜 살해했는지, 그 과정을 촘촘히 들여다봤어요. 이제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했는가, 6월 항쟁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 단계로 넘어가는 7,8년을 다루려고 해요. 당분간은 광주 6월 항쟁이 중심이 될 것 같아요.
대담을 진행한 김덕련 기자는 “한국 학자들이 사실 관계 규명에 주력하고 평가 부분에서는 말을 많이 아끼는 경우가 적잖다”고 했습니다. 반면 교수님께서는 서슴없이 현대사를 평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구체적인 역사 사실을 다루기보다는 방법론 중심의 현대사를 많이 언급했죠. 왜 이런 역사가 일어났는지에 관한 역사적 평가가 없었어요. 사실만 제시하고 알아서 평가하라는 글이 많았죠. 저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사항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원인부터 따져보려고 했어요. 내가 현대사에 관심을 가진 것이 1960년대 중반입니다. 반세기 동안 극우 세력의 억지 주장이나 견강부회와 맞닥뜨리며 살아온 거죠. 역사 전쟁이 끝났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합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역사와 직면할 필요가 있어요.
젊은 학생들에게 “왜 현대사에 관심이 없냐?”고 물었더니, “부정적인 게 많다. 재미없다. 좋은 것 활기찬 게 없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으셨다고요.
우울한 이야기, 어두운 이야기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승만 독재 12년, 박정희 독재 18년, 전두환 신군부 독재 8년이 대한민국 현대사 아니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현대사를 몰라서 두려운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현대사를 모르니까 내가 창피 당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있어 아예 언급조차 꺼리는 경우가 있어요. 사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20세기 후반에 엄청난 변화를 이뤘어요. 생활양식만 봐도 그래요. 우리는 5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속이 잔뜩 들어 있는 김치를 먹지 않았어요. 독재 정치는 물론 잘못된 역사지만, 독재에 맞서서 용감하게 싸운 자랑스러운 민주화운동 역사도 있어요. 한국처럼 민주화운동이 활발했던 나라도 없죠. 또 지금 대한민국을 이해하려면 현대사를 알아야 해요. 박근혜 대통령을 알려면 유신시대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요. 대통령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 이해 안 될 때가 많잖아요. 과거를 알면,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구나. 이 정도의 생각은 해볼 수 있어요.
초판 표지 디자인을 바꾼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인가요?
맞아요. 우리나라 1950년대부터 70,80년대가 엄숙한 시대였잖아요. 그래서 책도 엄숙하게 흑백으로 나오는 게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현대사도 재밌고 흥미진진한 내용이 없지 않잖아요.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려면 밝은 색깔이 좋지요. 그래서 3권부터 표지가 바뀌었는데, 1권도 다시 디자인을 바꿀 거예요. 아마 새로 찍었을 텐데, 그래야 맞다고 생각해요.
사진도 상당히 많이 실렸습니다. 1권에는 1950년 북한의 토지 개혁 홍보 포스터도 실렸는데요. 뉴스에서도 쉽게 보지 못한 재밌는 사진들이 많습니다.
출판사에서 사진을 찾느라 고생을 많이 했을 겁니다. 아무래도 글만 읽으면 지루해질 수가 있어요. 사진으로 보면 한눈에 파악할 수 있으니까 되도록 많이 실으려고 했지요.
국정화 교과서,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
현대사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매우 반가워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반갑지요. 자주는 아니지만 교사나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때가 있어요.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는데, 강의를 듣고 나면 우리 현대사가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오히려 흥미를 가질 수 있어요. 예컨대 친일파가 일제 시대에서 끝나야 하는데, 왜 해방 이후에도 문제가 됐는지, 해방 후 친일파의 활동이 우리 현대사에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면 귀에 쏙 들어와요. 소위 뉴라이트들은 8ㆍ15를 ‘건국절’로, 이승만을 ‘국부’로, 박정희를 신성화하며 부각시키면서 ‘역사 전쟁’을 부추기는데, 이들은 역사의 진실을 밝혀지는 걸 두려워하고 오히려 친일파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어요. 한국의 뉴라이트나 수구 세력의 뿌리는 친일파, 그것도 매국 활동, 황국 신민화 운동, 군국주의 침략 전쟁 찬양 행위를 한 사람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극우 반공 세력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는 식의 주장을 들으면, 정말 소름이 끼칩니다. 극우 반공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고생했나요? 4월혁명,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항쟁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 아닌가요. 이 역사를 잊으면 안 됩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여전히 뜨겁습니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건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민주주의 성장을 그야말로 깔아뭉개는 조치 아닌가 싶어요. 내년이 박정희 탄생 100주년입니다. 100주년을 맞아 유신체제나 박정희 대통령을 좀 좋게 보이려고 하는 전략이 아니냐는 생각을 일부에서는 하는 것 같아요. 국정화는 정말 창피한 일이에요. 나온다고 해도 곧 없어질 것 아닙니까. 일시적으로 국정화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만 희생 당하게 되는 거죠. 국정화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날카롭게 지성의 눈을 갖고 지켜봐야 합니다.
국정화 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민토론회도 열리고 있는데요.
아주 고무적인 일입니다. 유신시대라면 꿈도 못 꾸는 이야기죠. 그만큼 시민의식이 좋아졌다는 이야기인데,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역사는 다원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교육을 받을 문제가 아니죠. 그건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시민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아직도 국정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게,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서문에 “역사 전쟁이 싫다. 특히 요즘은 이제 제발 그만두었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쓰셨어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왜 역사 전쟁을 일으키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정치인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고 연구자들에게 돌려야 하는 문제인데 말이죠. 정치인들은 역사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교사들이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면 되는 일이지, 역사에 대해 이래라 저래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특별한 이해관계를 갖고 역사를 바라 보는 시각이 하루 빨리 바뀌어야 합니다.
최근에 한 걸그룹 멤버가 방송에 출연해 ‘안중근 의사’를 잘 몰라서 역사의식 논란에 휩싸인 일이 있었는데요. 비단 한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지 않나요?
6월항쟁을 아예 모르는 젊은 사람들도 많다고 그래요. 현대사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중요하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현대사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젊은 사람들도 꽤 많아요. 과거에 국가가 일종의 정권 안보 차원으로 역사를 주입한 면이 없지 않은데. 우리가 현대사를 자유롭게 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면 훨씬 더 가깝게 현대사의 면모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교양으로서도 재미로서도 알아야 할 현대사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 기자셨습니다. 1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셨는데요. 지금의 언론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요즘은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이 극히 드문데요.
저는 TV 뉴스는 안 보고, 신문만 3개를 봐요. 지금 우리는 야당에 대한 신뢰뿐 아니라 언론에 관한 신뢰도 많이 낮아졌어요. 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신문이 지대한 역할을 했는데, 지금 신문을 보면 지면은 많아도 읽을 게 별로 없어요.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재밌는 내용만으로 전 지면을 채우는 게 아닌가 싶어요. 과거에는 숨겨진 왜곡된 사실을 새롭게 발굴하고, 정권의 잘잘못을 따지고,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정곡을 찔렀는데. 요즘 그런 기사는 찾기 어려워요. 책 소개만 해도 그렇습니다. 주말 섹션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상당히 부분적인 소개만으로 그쳐 있어요. 폭이 너무 좁아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신문다운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신문은 물론 종이책도 잘 보지 않는데요. 대부분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저는 연구실에 올 때 지하철을 탑니다. 옛날부터 지하철만 탔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책을 읽는 승객들이 꽤 있었어요. 가판대에 파는 신문을 읽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런데 요즘은 찾아 보기가 아주 어려워요. 스마트폰만 계속 보고 있다가 정거장을 놓치는 사람도 몇 봤어요. 물론 스마트폰에서도 좋은 뉴스를 많이 볼 수 있지만, 한계가 있어요. 객관적으로 창의적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사고 능력이 줄 수밖에 없어요. 프랑스 같은 경우는 인터넷 사용 시간을 상당히 제한한다고 들었어요. 그게 옳다고 생각해요.
독립군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을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극장은 자주 못 가지만 영화는 봅니다. <암살>도 보고 <베테랑>도 봤어요. 주제는 모두 좋지만,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인지라. 너무 환상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것 아닌가 싶더군요. 영화는 모든 걸 소재로 할 수 있지만 너무 특별한 주제, 역사와 연관이 있을 때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간혹 이런 영화를 보는 건 좋지만, 천 만 명 이상의 관객이 봤다는 소식을 들으면 꼭 반가운 일만은 아니에요.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더 조명해야 할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3권을 보면 독립운동가 조봉암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봉암이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 활약한 시기는 이승만 집권기였어요. 두 번이나 대선을 추마한 조봉암과 이승만은 당연히 자주 부딪칠 수밖에 없었는데, 진보 정치인 조봉암이 어떤 정치를 펼쳤고 진보당 사건은 왜 일어났는지? 왜 조봉암은 사형되어야 했는지?를 알 필요가 있어요. 3권은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고발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조봉암을 재조명하는 책이에요. 조봉암 같은 인물이 우리 현대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 사회에 대한 자신감도 가질 수 있어요. 현대사를 잘 살펴보면 조봉암 같은 인물이 많아요. 그것도 우리의 과제죠.
앞으로 나올 7권, 그 이후는 어떤 내용을 다룰 예정인가요?
쭉 박정희 정권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1964년 한일회담에 대한 반대운동이 왜 일어났는지, 이 회담이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자세히 다루려고 합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부분이 경제 발전 아닙니까? 실제로 경제가 발전한 게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 왜 특히 많이 발전했는가, 그 공을 박정희에게 돌릴 수 있는가, 박정희가 과연 경제 대통령이라고 할 만한 사람인가를 이야기할 생각이에요.
혹 현대사 외적으로 교수님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을 계획은 없으신가요?
그럴 생각이 별로 없어요. 신문에 투고하는 것도 기피하는데, 칼럼을 쓰려면 거기에 매달려 있어야 해요. 또 원하는 논조에 맞춰야 하니까 그리 편안한 문제가 아니에요. 시간도 많이 뺐기고요.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어요. 너무 크게 주장하다 보면 과장할 수도 있으니까요.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기를 쓰지 않는 이유도 같아요.
산보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산보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합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학교 뒷산을 자주 돌아다녔어요. 밥을 후딱 먹고 나서 산보를 했지요. 지금도 똑같아요. 성북동, 삼청동 뒷산이 참 좋아요. 나는 여행을 좋아해서 앞으로 얼마 안 남은 기간 동안 여행을 많이 할 생각이에요. 여러 사회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좋아해요. KBS 다큐멘터리를 녹화해서 많이 보는데, 찾아보면 좋은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수준이 참 높아졌구나, 실감하죠.
현대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약간 고통스러울지라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대사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들을 한 두 권이라고 읽으면서, ‘우리나라에 이런 문제가 있구나’를 파악했으면 해요. 유권자로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할 때도 현대사를 이해하는 일이 필요해요. 지금까지는 방임했더라도 이제라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나는 이 책을 10대, 20대가 특히 많이 봤으면 해요. 이상하게 젊은 사람들이 대학만 졸업하고 나면 공부를 하지 않아요. TV에서 하는 이야기만 들으니까 나이가 들면 너무 쉽게 보수화가 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지금 상당히 자유분방하고 다원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현대사를 깊이 있게 아는 게 필요합니다. 교양으로서도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로서도 현대사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서중석,김덕련 공저 | 오월의봄
해방 70주년, 왜 다시 현대사를 알아야 하는가?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의 역사 왜곡 바로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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