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신춘문예 당선, 여린 마음이 뭉쳐 이야기하는 삶
『집 떠나 집』 하유지 저자 인터뷰
생각지도 못한 곳이 길이 되기도 한다는 메시지가 여러분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어요. 꼭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있어야만 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덤불로 덮여 있고 잡초가 무성해도, 걷다가 다리가 긁히고 모기에 물려도, 이곳을 지나 저곳으로 가게 해준다면 거기 역시 길이죠.
2016년 한국경제신문사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작 하유지의 『집 떠나 집』이 책으로 나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안일만 하던 스물아홉의 여자주인공 ‘동미’가 삶의 변화를 찾기 위해 집을 나간 뒤 겪는 여러 가지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사랑스럽게 또는 잔잔하게 수채화를 그리듯 써낸 작품이다. 동미의 가출로 시작된 소설은 낯선 동네의 카페 ‘모퉁이’에 취직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젊은 네 남녀의 삶과 사랑을 들춰내 지금 한국사회의 젊은 청년 세대의 인생과 모습을 포착해낸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기분은 어땠나. 소설가 지망생에서 소설가가 된 지금 어떤 변화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더불어 수상금은 어떻게 쓰고 있는지도 여쭙고 싶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브, 낮잠을 자다가 전화를 받았어요. 잠결에다가 모르는 휴대폰 번호라,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택배 기사님인 줄 알았어요. 이런 상황이라 얼떨떨한 나머지 마음껏 기뻐할 순간을 놓치고 너무 침착하게 굴었습니다.
책이 나왔는데도 아직 ‘내가 소설가가 되었구나.’라는 실감이 확실히 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어떤 작품을 써야 할까 고민할 때, 예전보다 마음이 무겁기는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가 쓴 글의 독자는 저 자신과 남편뿐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 글을 읽는 사람이 그보다는 많아지게 되었으니까, 독자를 의식하게 되고 긴장하게 됩니다.
상금의 일부는 예금해두었어요. 나머지는 생활비와 잡비 등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중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르륵 사라지고 있을 겁니다.
소설을 쓸 때 제일 많이 하는 습관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하다. 일종의 루틴이랄까. 소설작업 일과표를 좀 알고 싶다.
저는 항상 짧게나마 기도한 다음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진심을 다해 진실을 쓰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글을 쓸 때 꼭 뭔가를 마십니다. 예전에는 커피였는데 부정맥 증상이 생기는 바람에 카페인이 없는 차로 바꿨어요. 초고를 쓸 때는 되도록 매일, 20~30매 정도씩 쓰려고 노력합니다. 초고를 마친 다음에는 몇 주 정도 공백을 두고요. 글이 잘 써지지 않거나 제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작가들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봅니다. 글쓰기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요. 그러다 보면 또 희망과 용기가 생기고, ‘나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취업 준비생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구절들이 많았다. 주인공 '동미'의 자존감이 한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나의 취준생 생활을 돌이켜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아직 구직중인 (게다가 그 친구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한다)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주었으면 좋겠는가.
생각지도 못한 곳이 길이 되기도 한다는 메시지가 여러분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어요. 꼭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있어야만 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덤불로 덮여 있고 잡초가 무성해도, 걷다가 다리가 긁히고 모기에 물려도, 이곳을 지나 저곳으로 가게 해준다면 거기 역시 길이죠. 저도 20대 끝자락에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재취업이 되지 않아 무척 힘들었고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리랜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길이었어요. 글을 쓸 시간을 좀 더 얻게 되었으니까요.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 취업하지 못했다고 해서, 원하는 연봉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나는 쓸모없다, 실패했다’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쭉 뻗은 고속도로나 국도만 길은 아니잖아요? 오솔길도, 골목길도 내 삶 속에 있는 소중한 길이죠. 이 책이 각자의 삶 속에 있는 골목길과 오솔길을 잠깐이라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설 속 배경은 여름이지만, 봄이 성큼 다가온 요즘에 『집 떠나 집』을 읽으니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계절을 타는 탓도 있겠지만, 인물 간의 '생계형 밀착 로맨스'가 드러나는 부분에서 특히 그랬다. 그중 썸을 타는 중인 동미와 선호의 떡볶이 데이트가 인상적이었다.
딱딱한 만두 때문에 난처해하는 여자의 얼굴을 보고, 슬그머니 뜨끈한 떡볶이 국물을 몇 숟가락 부어주는 남자라니. 역시 이런 사소한 배려에 여자들이 훅 넘어가는 것 같다. 이런 로맨틱한 에피소드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지 궁금하다.
연애 시절에,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가 알려준 방법입니다. 지금 제가 사는 인천에 만두와 쫄면으로 유명한 분식점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튀김만두를 먹는데 테두리가 너무 딱딱하다고 투덜거렸더니, 떡볶이 국물에 만두를 불려서 먹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때 일을 기억해두었다가 소설에 썼답니다.
『집 떠나 집』에서는 큰 사건도 갈등도 없다. 우리 모두가 충분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소재를 얻었을 것 같다. 어떤 방법으로 소재를 얻었는가.
예전에 커피숍이나 도서관에서 글을 쓰다 보니, 저와 같은 공간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관찰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한 토막이 들리면 그것을 토대로 저만의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려보기도 했죠. 또 그 시절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을 활용하기도 했고요. 자전거 타기를 배운 이야기나 토끼 파이 이야기는 저와 남편이 연애할 때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부분입니다.
다음 작품은 어떤 소설인지 궁금하다. 살짝 공개해주길 바란다.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어요. 30대 초반의 여자 주인공이 철없는 남편과 헤어진 뒤 다른 동네에 가서 여러 이웃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썼는데, 지금 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그다음에는 주변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열일곱 살 소녀와 소년이 우연히 만나 겪게 되는 일을 쓸 계획입니다.
지금-이곳을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 있을까.
읽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과 『재인, 재욱, 재훈』, 그리고 지금 내 앞의 세상을 찬찬히 둘러보며 가끔은 낄낄 웃고도 싶을 때, 황인숙 시인의 시집 『자명한 산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집 떠나 집하유지 저 | 은행나무
하유지의 《집 떠나 집》은 회사를 그만두고 집안일만 하던 스물아홉의 여자주인공 ‘동미’가 삶의 변화를 찾기 위해 집을 나간 뒤 겪는 여러 가지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사랑스럽게 또는 잔잔하게 수채화를 그리듯 써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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