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 “언제나 대중적인 창작자가 되고 싶다”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펴내
저는 문학이 뭔지도 모르고 제가 어떤 대단한 문학적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소설을 쓴 후로 내가 추구하는 것은 대단한 문학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건 제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저는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고, 쓰고 싶은 대로 써야 해요.
이석원 작가는 인터뷰 전날, 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제목은 ‘양해의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세 번째 책이자 두 번째 산문집인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펴내고, “무수한 질문 공세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책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냐? 책에 등장하는 그 작가는 아무개가 아니냐?” 등의 질문을 들으며 그는 생각했다. “책은 책에서 머물러야 하고 이야기는 그 안에서 끝나야 하는 게 아닐까?” 하여, 책 내용에 대한 답변은 제한적일 수 있음을 양해해달라고 부탁했다.
“책을 덮은 이후에 그들의 감상에 방해가 될 어떤 이야기도, 혹 그들이 아무리 궁금해한다고 하더라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책을 쓰는 동안의 제 결심이었습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마흔을 훌쩍 넘긴 한 남자가 한 여자와 소개팅을 하고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다. 마치 100분짜리 짧은 단편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다. ‘이게 다 작가의 이야기라고? 모두 사실이야?’ 이런 건 어쩌면 독자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저자가 그랬듯, 독자들에게도 중요한 건 자신만의 감상이었을 테니까.
좋아해. 다정하지 않을 뿐’
책이나 음악 작업이 끝나면 그간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신다고요. 요즘은 어떠신가요?
만나지 못해서 슬픈 상황이에요. 이상하게 나이가 먹을수록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들어져요.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도, 기존에 관계가 있던 사람인데도 새롭게 힘들고 불편한 상황이 생길 때가 왕왕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독자와의 만남도 하셨잖아요. 독자 분들과 만나는 자리는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작가와 독자 사이는 서로 예의를 갖추고 배려하잖아요. 그래서 특별히 힘든 부분이 없는데요. 다른 어떤 인연, 인간관계에서는 되게 사소한 말들이나 상황들이 신경 쓰일 때가 있어요.
작가님이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를 오랜만에 방문했더니, 셀카 사진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놀랐습니다. 평소 사진 찍는 걸 안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서요.
가끔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이 이석원이라는 사람이 사적으로 어떻게 지내는지를 궁금해 하세요. 그런데 제 모습은 일절 없고, 항상 짧은 글이나 질문을 써놓으니까 좀 죄송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나의 사적인 모습을 다 보여줘야 하는 필요나 의무가 있나? 그런 걸 생각하다가, 문득 사진이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30대 때 찍은 사진을 아직도 프로필로 사용하고 있으니, 이건 반 사기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겸사겸사 프로필 사진을 스튜디오에서 찍었어요. 사진이랑 좀 친해져 볼까 해서요.
2013년에 첫 소설 『실내인간』을 내고 딱 2년 만에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펴내셨어요. 소설을 내고 뵈었을 때는 뭔가 초조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표정이 밝아 보입니다.
일단 쓰는 과정이 달랐어요. 이번 책은 전작에 비해 훨씬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간도 짧았고, 덜 힘들었어요. 하지만 결과에 대한 부담감은 소설을 냈을 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제 소설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고 판단했거든요. 이번 산문집이 또 그렇다면 제가 글을 쓰는 동력이나 상황 같은 게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기질상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글을 쓰는 일을 너무 하고 싶으니까요.
소설이 3만여 권 팔렸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출판계 상황으로는 꽤 많은 부수인데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권수는 제게 큰 의미가 없어요. 제가 바라는 건, 꾸준히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하는 거예요. 『보통의 존재』가 2009년에 나온 책인데, 이 책은 지금도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바로 제 입장에서는 '받아들여진' 것이죠.
산문집에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친구 분이 작가님께 “야, 이런 말도 안 되는 거 말구 『보통의 존재』 같은 걸 쓰라니까. 넌 그래야 팔려”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든 저자로서, 작가로서 자기만족감이 큰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나요? 그게 소설이었을지도 모르는데요.
소설을 쓰고 나서 내가 얼마나 소설에 관심이 없고, 애정이 없는지를 절실히 깨달았어요. 내가 왜 소설을 썼지? 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사람들은 제가 책을 많이 읽을 거라고 생각을 하시지만, 완독한 책이 정말 몇 권이 없어요. 소설은 더욱 없고요. 소설을 쓰고 나서, 반성과 회의감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어떤 시간을 가진 상태에서 또 소설을 쓴다는 게 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앞으로 소설은 절대 안 쓰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산문보다 형식적으로 엄격한 장르의 글을 쓰게 되진 않을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음악을 하든, 장사를 하든, 하고 싶은 대로 제 방식대로 했거든요. 소설을 쓸 때는 그렇게 못했던 것 같아요. 제 자신도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진 않을 것 같아요.
산문집 이야기를 좀 물어볼게요. 처음 가제는 ‘수연산방’이었다고요. 성북동의 유명한 찻집이지요?
주인공과 처음 만난 장소라서 그렇게 가제를 정했는데, 두 번째로 생각한 제목은 ‘좋아해. 다정하지 않을 뿐’이었어요. 『보통의 존재』에 나오는 글귀인데, 주위에서는 다 좋다고 했지만 출판사에서 반대했어요. 출판사를 엄청 원망했죠. 저는 제목을 지을 때, 철칙이 모든 사람이 좋아해야 한다는 만장일치 조건이 있거든요. 출판사 분들이 반대를 하니까 버렸죠. 그 다음에 지은 제목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에요. 거의 만장일치였어요. 저는 이래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결정할 수가 있어요.
“나를 좋아할만한 사람만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방어적인 느낌인데요?
그런가요? 제목은 좀 예외적인 것 같아요. 글은 당연히 만장일치가 있을 수 없는데, 제목만은 그렇게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언제나 대중적인 창작자가 되고 싶다
2부에 짧은 소설이 들어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철수인데, ‘불운 올림픽’에 도전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을 뽑아 1백 억 원을 주는 요상한 대회인데요. 사람이 아무리 운이 없어도, 행운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경우는 어떤가요? 내 생애 가장 큰 운이 있다면요?
책을 내게 된 일 자체가 저에겐 큰 운이죠. 안 믿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책을 정말 못 읽어요. 그런 사람이 책을 썼으니까, 누가 장난을 친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책은 못 읽지만, 서점은 너무 좋아해요. 서점에 있을 때 굉장히 큰 행복감을 느끼니까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오글거리지만 제게는 너무너무 기적처럼 느껴져요.
4부에서는 첫 책 『보통의 존재』를 내게 된 계기를 상세히 소개하셨어요. 잡지 <페이퍼>의 황경신 편집장을 만나 거의 강요에 가까운 출간 권유를 받게 됐고, 발행인 김원 이사의 “아, 글을 쓰세요. 노후 준비를 해야죠”라는 한 마디에 충격을 받으셨다고요.
마흔이 넘으면 더 이상 곡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늘 두려워했거든요. 책에도 썼지만 이 말은 마치 새로운 출구를 알려주는 다급한 안내방송처럼 들렸어요. 막연하게 그럼 마흔이 넘으면 뭘 하지? 하고 있다가 노후 대비란 말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더라고요.
최상의 미적 가치로 ‘담백함’을 꼽으셨어요. 글도 마찬가지인가요?
담백한 글을 써야겠다고 설계를 하고, 방향을 정해서 쓴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마음이 가는 대로 쓰는데, 계속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계속 고치는 편이에요.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원하는 쓰는 게, 저한테는 맞는 것 같아요.
문예지에 기고한 글의 토씨가 수정되지 않아, 화가 났던 에피소드를 밝히기도 하셨는데요. 이번 책을 보면 ‘저자 고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표기와 맞춤법은 저자 고유의 스타일을 따릅니다’라고 써있어요.
맞춤법이 잘못 되어 있으면 제가 아니라 편집자가 욕을 먹게 되니까요. 내가 뒤집어쓰겠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달라, 이런 소통의 과정이 있었어요. 저는 말하듯이 글을 쓰는 편인데,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는 우리나라의 맞춤법과 표기법에 많은 의아함을 갖고 있어요.
이번 책은 어땠나요?
일단 초고는 빨리 썼고, 수정 과정은 조금 길었지만 원 없이 만족스럽게 작업을 했어요. 실물을 받아 보고는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고요.
책에 등장하는 친구 ‘나리’ 씨는 작가님을 두고 “일생 아이 같은 놈”이라고 표현했어요.
‘순수’가 아니라, ‘미성숙’의 뜻이에요. 정신적인 성장이 아이 때로 멈춘 것 같다고요. 제가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걸 물어본대요.
이런 상황의 자신이 싫거나 좋나요? 아니면 그냥 받아들였나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불편하죠. 성장을 하고 경험을 해야 더 나은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창작할 때는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제 또래 창작하는 사람들이 제게 “너는 아직도 그런 고민을 하냐”고 하는데, 의도한 게 아니라 저로서는 자연스러운 방향이에요. 이번 책의 경우도 그래요. 실상은 마흔다섯 먹은 이혼남의 이야기인데, 사람들은 “싱글로 보이는 어린 남자가 소개팅을 하고 좌충우돌하면서 바보 같은 고민을 하는” 이야기로 많이 보시더라고요.
아직도 하는 ‘그런 고민’은 뭔가요? 주변인에게 주로 하는 대표적인 질문이 있다면요?
이를 테면 누군가와 썸을 타기 시작하면, “이 사람이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거 맞냐?”는 질문을 많이 해요. 나이를 먹었으면 이 정도는 이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모르겠어요.
본인을 두고 ‘과정에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책이 나오는 과정도 특별하게 여길 것 같아요.
제가 즐겁게 썼기 때문에 책을 읽는 분들도 즐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망한 거잖아요. 이번 책은 『보통의 존재』와는 일부러 다른 느낌으로 썼는데, 독자 분들이 예전 느낌만 찾으면 어떡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보통의 존재』를 좋아해 주셨던 분들은 물론, 제 글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분들까지 이 책을 사주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니까요. 기적 같아요. 저는 항상 무엇을 만들든 대중적인 창작가가 되기를 소망했기 때문에 대중적인 반응이 좋다는 것, 이상의 기쁨이나 평가가 없어요.
내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요? 전문가의 평가와 대중의 반응을 놓고 본다면, 어떤가요?
비교할 수 없어요. 제가 존경하는 건 대중이에요. 대중의 안목과 평이 제겐 중요해요.
소설에 비해 힘을 많이 뺐고 솔직하게 썼기 때문에 대중과 통한 걸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그래요. 『보통의 존재』 이야기를 또 하게 되는데요. 그때는 정말 제 안에서 글이 쑥쑥 나왔거든요. 『언제 들어도 좋은 말』도 그냥 쑥 나왔어요. 억지로 쥐어 짠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보는구나 싶어요. 자연스러움의 위력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는데, 뭐랄까요? 행복한 일이 생기면 낯설어 한다고 할까요? 행복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 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되게 슬프잖아요. 행복을 익숙해 하지 않는다는 게.
갑자기 행복해지면 불안해하는 편이긴 한데, 행복감은 자주 느끼면서 살아요. 작은 것에 행복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보통의 존재』를 쓸 때, 궤양성대장염이라는 지병을 갖고 있었어요. 계속 출혈을 해서 거의 1년간 피를 흘리면서 살았어요. 병원에서는 평생 못 낫는다고 했고요. 지금도 몸이 안 좋으면 물 한 잔도 못 먹어요. 하지만 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을 때는 그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물 한 잔이 마약과도 같아요. 『실내인간』을 쓸 때는 시력이 너무 안 좋았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내 눈이 잘 보인다는 걸 느낄 때마다 행복해요.
눈은 어떻게 좋아졌나요?
제가 너무 진상인 게, 오른쪽 눈이 너무 안 좋아서 병원을 세 군데 다녔거든요. 막판에 간 안과에서는 망막 정밀검사까지 받았는데 멀쩡하다는 거예요. 그 때부터 눈이 너무 잘 보여요. (웃음)
이 책의 쓸모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바라는 게 명확히 있어요. 저는 문학이 뭔지도 모르고 제가 어떤 대단한 문학적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소설을 쓴 후로 내가 추구하는 것은 대단한 문학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건 제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저는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고, 쓰고 싶은 대로 써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독자 분들이 이 책을 붙들고 있는 순간에 그저 재밌게 읽으면 좋겠어요. 그게 이 책에서 제가 바라는 전부예요.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저 | 그책
『보통의 존재』로 큰 사랑을 받았던 작가 이석원이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현실적인 소재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그답게 이번 산문집 또한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싶은 이석원의 언어로 가득하다. 그의 대표작이자 첫 번째 산문집인 『보통의 존재』는 출간하자마자 연애와 결혼, 일과 미래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한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따뜻하게 보듬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보통의 존재』를 읽고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독자라면 그가 6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산문집이 더욱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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