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의사, 당신을 위한 눈물을 남겨 놓으세요
모모 의사 김준형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펴내
‘모모 의사’ 김준형은 마음을 치유하는 내과 전문의다. 환자들이 몸의 통증을 호소할 때 그는 마음의 통증까지도 진찰한다. 마음과 몸의 상처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모』의 주인공처럼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치료는 시작된다.
가장 큰 문제는 삶을 저평가하는 것
고마운 바보들과 만날 때가 있다. 셈을 할 줄 모르고, 더 나누어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받은 이의 미소를 보며 행복해하는, 그런 바보들과 만나는 순간이야말로 더없이 감사하다.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작은 불빛을 밝히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게, 적잖은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의 저자인 ‘모모 의사’ 김준형도 그런 바보들 중 한 명이었다.
전국 의사들의 평균 진료 시간이 4.2분밖에 되지 않는 사회에서(서울 대형 종합병원의 진료 시간은 20초 남짓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야만 의사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목소리가 익숙한 현실에서, 그는 ‘아주 긴 진료’를 고집하는 바보 의사다. 불필요한 검사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불필요한 약을 처방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는 그저 환자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모모』의 주인공처럼 사람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상한 점은 그가 신경정신과 전문의나 심리 상담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내과 전문의다. 고민을 들어주는 게 의무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귀한 진료 시간을 할애해가며 환자들의 걱정을 들어주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란 사람들을 향해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라고 묻는 사람이니까. 때때로, 아니 생각보다 자주, 몸의 통증은 마음의 통증에서 비롯되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신과와 내과를 구분하는 건 공급자(의료인) 중심의 판단인 것 같아요. 소비자(환자) 중심의 구분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과에 오는 사람이라고 해서 정신을 놔두고 오는 것도 아니고, 정신과에 가는 사람도 몸은 놔둔 채 영혼만 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과든 정신과든 환자 분을 볼 때는 몸과 마음을 같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환자 분들과 같이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웃는 것이 의사의 일인 것 같고요.”
‘몸과 마음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저자의 믿음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었다. 긴 시간 환자들과 만나며 깨달은 사실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픈 마음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의학과 의료를 구분해서 생각해 주셔야 합니다. 의학이 자연과학이라면 의료는 사회과학입니다. 의학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지만 의료는 정신과 마음이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겁니다. 기계를 상대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의료가 인문학과 굉장히 가까운 학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모모 의사의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털어놓은 고민들은 무척 다양했다. 외모콤플렉스로 인해 폭식과 거식을 반복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마음의 병을 얻은 이도 있었다. 누군가는 가족과의 갈등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는 꿈꿔왔던 삶과 너무나 다른 현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일들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그로 인해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마음의 병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서 정답을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하나씩은 마음의 짐을 지게 되잖아요. 그 짐들은 언제든지 마음과 몸의 병으로 나타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저평가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어요. 그게 더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무리 초라한 사람이라도 나는 누군가의 이상이고 희망일 수 있습니다. 우리 사는 모습은 그렇게 흉하지도,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그냥 고만고만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을 저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우리 삶을 꿈꿀 수도 있으니까요.”
신경성 질환.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질병을 이르는 말이다. 소화불량, 두통, 불면증 등이 대표적이다.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을 때, 크고 작은 문제들이 동시에 생길 때,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증상들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소화제도 진통제도 수면제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모모 의사가 그러했듯 아픈 마음에게 시간을 내어주어야 한다.
“신경성 질환과 꾀병은 다른 겁니다. 꾀병은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는 거지만, 신경성 질환은 과도한 스트레스나 아픈 마음 때문에 몸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 거거든요. 두 가지는 분명히 구분돼야 됩니다. 신경성 질환들은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낫는 경우가 많아요.”
바보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우리는 바보가 된다. ‘겨우 그 정도 일로 아파하다니 바보 같다’는 말이 호흡처럼 새어 나오는 것. 때로 그 말은 타인을 향하지만 자기 안에서 맴도는 순간도 많다.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해서 바보 같고, 그래서 상처받는 모습은 더 바보 같고,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떨쳐내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할 지경이다. 결국 다짐하는 건 ‘더 강해져야겠다’는 거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패배감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남몰래 아파하지 않으려고, 더 강해지자고 마음먹는다. 그런 우리를 향해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는 ‘바보의 마음’을 말한다. “세상은 이른바 ‘바보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둔하고 미련한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고담의 바보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영국 존 왕 시절에 실제로 존재했던 마을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왕이 사냥터로 가는 길에 고담 마을을 지나가게 되자, 수탈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회의를 했어요. 그때 한 현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똑똑해서 죽은 사람은 많아도 바보라서 죽은 사람은 없다고요. 바보처럼 행동하자는 거였죠. 그때부터 사람들은 호수에 뜬 달을 건지겠다고 물속에 그물을 던지고, 새들을 가두겠다면서 숲에 벽돌을 쌓았어요. 그 소식을 들은 왕은 마을을 피해 사냥 길을 우회해서 만들었고요. 저는 그게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끊임없이 똑똑해지고 예민해지고 빨라지기를 바라잖아요. 그건 고담의 사람들처럼 현명한 바보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바보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저자는 그 중 한 명일 게 분명했다. 의료계의 현실을 아는 이라면 누구든 그를 향해 ‘더 똑똑하게 굴어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환자의 걱정을 들어주는 일 같은 건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 상담가에게 맡겨두고, 그 시간에 한 사람이라도 더 진찰하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일 테니까. 저자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다. 자신을 두고 바보 같다고 말하는 목소리도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의사의 책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4분 혹은 2분 안에 진료를 마쳐야 한다는 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주는 압박이 아닌가 생각해요. 짧은 시간 내에 돈을 많이 벌고 자원을 창출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 세상이 되어 가죠. 더 안타까운 건 모든 것이 거기에 맞춰진다는 겁니다. 내과 의사는 항상 죽음을 앞두고 있어요. 많은 환자 분들이 내과에서 돌아가시고 그만큼 저희는 사망 진단서를 작성해야 할 때가 많아요. 죽음이라는 걸 앞에 두고 있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삶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다시 평가해야 돼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2분이나 3분, 4분 안에 환자를 진료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한 고뇌를 하게 되죠.”
‘삶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사는 의사, 바보들의 편에 서서 세상을 살아내는 의사에게 어떤 환자가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있을까.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가 증언하듯, 저자와 만난 환자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아픔을 씻어내는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개운함이 담긴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순간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마음이 열리고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만큼이나 마주 앉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환자 분들이 실마리를 찾는 경우는, 저로서도 환자 분으로서도 행운인 거죠. 사실은 해결해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많아요. 안타깝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마디 말로 위로해 드리는 것밖에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분의 인생에 관여해서 해결해드리고 싶지만 그건 안 됩니다. 저는 관찰자일 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마음이라도 덜 다치게 해드리는 것뿐일 때가 더 많습니다.”
당신을 위한 눈물을 남겨 놓으세요
모모 의사의 처방전을 빼곡히 채우는 것은 알쏭달쏭한 이름의 약들이 아니다. 수많은 고전들 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철학자의 한 마디, 인디언의 격언과 곳곳의 속담들이다. 그 안에서 저자는 환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감춰져 있던 이치를 발견해주고,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기를 조언한다. 힘들고 괴로울 때는 그냥 울어버리자고, 독특한 처방을 내릴 때도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곡비’라는 노비가 있었습니다. 상가(喪家)에서 대신 울어주는 노비였어요. 지금 일본과 중국에도 그런 역할을 하는 직업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울면 너무 슬퍼서 다 같이 운다고 해요. 같이 울면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주는 거죠. 저는 ‘울지 않고 살아야지, 울면 지는 거야’라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곡비한테도 부모가 있고, 그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울잖아요. 곡비조차도 자기 자신을 위한 눈물 한 방울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삶은 눈물의 연속이기에 “우리는 눈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는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 안에서 읽히는 것은 긍정이었다. 바보 같이 사는 삶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쏟아내는 것도, 다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긍정. 어쩌면 그 특유의 태도 덕분에 저자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강연 봉사를 통해 전파하는 ‘좋은 생각 만들기 건강법’ 역시 삶에 대한 긍정에 기반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은 타조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 저자는 이집트 ‘사자의 서’에 기록된 신화 속에서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신화에 따르면 망자는 저승에서 심판을 받기 위해 자신의 심장이 저울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이때 반대편 저울에 얹어지는 것은 마아트 여신의 타조 깃털이다. 더럽혀진 심장이라면 저울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고 저울이 수평을 이룬다면 영혼은 신의 땅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저자는 ‘마음을 평가하는 저울 위에 왜 타조의 깃털을 놓았는지’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답을 얻었다.
“타조는 인간과 가장 닮은 새예요. 아무리 뛰어도 날지 못합니다. 하늘은 신의 세상이고요.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신처럼 살 수는 없어요. 깨끗하고 선하게 살다가 후회와 절망 없이 죽어가는 인생이라는 건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타조예요. 신적인 기준에서 우리 인생을 바라볼 수는 없다는 거죠. 그렇지만 우리는 깨끗하고 고귀하고 후회 없이 살아가는 인생을 꿈꾸기 때문에 마음을 다치게 돼요. 제가 ‘좋은 생각 만들기’ 강의에서 전하는 메시지도 그런 겁니다. 우리 삶을 바라볼 때 너무 완벽한 것을 찾지는 마시라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때문에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게 우리의 삶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 안에서 모모 의사는 고백하고 있었다. 치유를 받은 사람은 환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었다고. 삶의 고난에 맞서 당당하게 싸워온 그들과 만나면서 “인생의 의미와 삶의 기술”을 배워왔다는 것이다.
“제게는 그 분들이 스승이라고 생각해요. 의학적으로는 제가 조금 더 알 수 있겠죠. 하지만 삶의 기술이라는 건 살아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살아가는 데에는 매뉴얼이 없어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마주친 삶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저는 의사로서 그리고 관찰자로서 그 분들께 배우는 거죠.”
그는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을 통해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정답 없는 삶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아플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무의미하다면, 상처 받은 바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의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봐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찢기고 닳고 넝마가 된 인생이라 하더라도 그 인생을 다시 끌어안고 사랑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추하고 더럽고 슬프고 안타까운 모습을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인생이라도,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다시 끌어안고 사랑하고 해줄 수 있는 용기요.”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를 읽다 보면 모모 의사의 진료실을 떠올리게 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에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해하고 꿈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청춘이 있고, 직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가족의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중년의 가장이 있고, 떠나는 자신보다 남겨질 배우자를 애달파하는 노년의 부부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는다. 마음을 여는 열쇠는 마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모모’ 같은 이가 있다는 것이.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모모 의사 김준형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이 책은 모모 의사가 20년 넘게 환자들을 보며 진료했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삶에 치여 생긴 스트레스로 병을 얻은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는 과정을 그렸다. 저자가 내려준 처방 내용에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스트레스 해소법과 지혜로운 대처방법이 나온다.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는 마음주치의 모모 의사가 들려주는 ‘삶이 편안해지는 마음 건강법’으로 더 행복한 내일을 찾아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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