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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상 한국인에게 더 중요한 인물은 유득공

2015 문학동네 봄방학 특강 1강 『서재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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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상 선생님의 서재 이름은 수경실(修綆室)이라 했다. 보통 잘 쓰지 않는 한자인 경(綆)은 ‘두레박줄’이란 뜻이라고 한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려면 두레박줄이 길어야 한다”는 구절을 따라,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깊게 파고들고 또 풍부한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살린 것이다.

지난 2월 6일 금요일 저녁, 마포구립 서강도서관에서는 2015 문학동네 봄방학 특강이 진행되었다. 전체 4강으로 꾸려진 봄방학 특강의 첫번째 시간은 『서재에 살다』의 박철상 저자의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다. 박철상은 은행업에 종사하는 현업 직장인이면서 「조선시대 금석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꾸준히 고문헌을 연구하는 등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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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서재 이름을 수경실이라 했다. 보통 잘 쓰지 않는 한자인 경은 ‘두레박줄’이란 뜻이라고 한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려면 두레박줄이 길어야 한다”는 구절을 따라,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깊게 파고들고 또 풍부한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살렸다. 


저자는 특히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서재에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왜 19세기일까? 19세기는 정조가 청나라의 문물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조선의 문화가 풍부해진 시기이다. 정조 역시 ‘신하들의 스승’을 자임하면서 ‘홍재(弘齋)’를 자신의 서재 이름이자 호로 삼아 도장을 여러 개 파, 책에 일일이 찍기까지 했다. 스스로 배움을 그치지 않는 지식인으로 살았던 것이다. 박철상 선생님에 따르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의 활자인쇄 수준이 급격하게 떨어졌지만, 정조가 서울과 각급 고을에 책을 만들어낼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책의 양이 당시 수준에서 급격하게 늘었다고 한다. 덕분에 선비들은 몹시 애를 먹었을 것이라고.

  

강의에서 소개된 조선 지식인들은 상당수가 정조의 영향권 안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약용, 유득공, 홍대용, 유금, 김정희, 장혼과 같은 사람들은 정조에게 발탁되었거나 정조 시대에 걸쳐 살면서 청나라를 오가며 중국 지식인과 교유하던 이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른바 ‘북학파’ 혹은 우리에게 더 잘 익숙한 ‘실학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저자는 정약용도 훌륭하지만, 한국인에게 더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유득공이라고 지적했다. 유득공이 『발해고』를 쓰지 않았다면 발해를 한국사에 편입해야 할 근거를 찾기 어려워,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당대인들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발해를 역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유득공의 안목이 돋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홍대용이나 김정희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 자신의 능력에 비해 당대에 과소평가를 받았다. 수학과 기하학에 능했던 유금처럼 당대인이 무시하던 분야를 파고든 것도 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이들 대부분이 서얼 출신이었다는 데 그 원인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오늘날의 말로 바꾸자면 ‘도서관 사서’라 할 만한 규장각 검서관으로 정조가 발탁한 인물이 많았다. 다시 말해 정조 사후 이들은 일자리를 잃고 여생을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들 ‘여항인’에게서 당대의 울분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의 서재는 ‘루저’의 도피처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홍대용은 북경 유리창 골목에서 평생의 친구를 만나 오래도록 글로써 교류했다. 박제가는 『북학의』를 지어 당대 문화교류의 선봉에 섰다. 김정희와 신위 역시 청나라 지식인 옹방강을 스승으로 삼고 평생의 교유를 지속했다. 조선 지식인과 청나라 지식인, 그리고 당대의 조선 지식인 간에는 글과 그림, 서예를 통한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책 몇 권 놓을 공간도 마련하지 못한 채 살아간 장혼도, 승려라는 신분의 제약에도 김정희와 깊은 지적 교류를 했던 초의선사도, 김정희를 온몸과 마음으로 좇았던 조희룡도, 약초를 파는 생활인으로 살면서 친구와 평생의 공부를 놓지 않았던 전기도 모두 당대의 숨은 고수이자 서재를 무대로 문화를 꽃피운 주인공이었다.

  

이번 강의에서 조선 지식인들이 서재를 통해 문화를 꽃피우고 국경을 넘어 교류했다는 점에서 국가적 사업을 넘어선 문화융성의 시기가 바로 19세기였음을 배우게 되었다. 작년 정민 교수가 쓴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에서 이야기했던 ‘문예공화국(republic of letters)’도 『서재에 살다』와 함께 읽어나가면 좋을 책이다. 서재가 단지 개인의 공간에 그치지 않고 당대 문화교류의 최전선에 선 문화적 영토였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 이번 강연에서 얻은 수확이다. 오늘날 우리의 서재는, 또한 ‘나의’ 서재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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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살다박철상 저 | 문학동네
지식인의 모든 것은 서재에서 시작되었다. 서재에 담긴 이야기를 중심으로 북학과 개혁의 시대였던 19세기 지식인의 면모를 생동감 넘치게 그린 책이 나왔다. 『서재에 살다』는 추사 연구로 학계마저 놀라게 했던 『세한도』의 저자, 박철상이 약 5년에 걸쳐 고문을 읽고 자료를 조사해 심혈을 기울인 끝에 펴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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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문학동네

서재에 살다

<박철상> 저16,150원(5% + 2%)

지식인의 모든 것은 서재에서 시작되었다. 서재에 담긴 이야기를 중심으로 북학과 개혁의 시대였던 19세기 지식인의 면모를 생동감 넘치게 그린 책이 나왔다. 『서재에 살다』는 추사 연구로 학계마저 놀라게 했던 『세한도』의 저자, 박철상이 약 5년에 걸쳐 고문을 읽고 자료를 조사해 심혈을 기울인 끝에 펴낸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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