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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간송미술 36 - 회화』 백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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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 그림 안에 얼마나 많은 우리의 이야기와 문화, 역사가 담겨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서양 그림이 환영 받고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하면 우리 미술에 대한 세상의 저조한 관심은 안타깝기만 하다.

김홍도씨름.JPG

 

간송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작년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장기 전시를 하고 있는 간송 미술관의 작품들. 그동안 간송미술관이 1년에 딱 두 번 전시회를 열었던 것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더불어 간송미술관의 연구실장 백인산 선생은 간송을 가장 잘 알려줄 만한 그림을 소개하는 책 『간송미술 36 - 회화』를 펴냈다. 백인산 연구실장은 이런 행보에 대해 낯설고 어색하다고 하면서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간송의 정신을 알리고 간송 미술관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미술품은 거짓이 없는 역사의 기록입니다. 쉽게 말하면 좋은 시대에는 좋은 미술품이 나오고 나쁜 시대에는 나쁜 미술품이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중략)그러니까 문화재의 아름다움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 속에 옛 선조들의 삶과 정신이 담겨 있다는 것, 나아가서 이것이 진실 된 역사로 우리를 인도하는 다리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봤으면 좋겠습니다." (12~13쪽)

 

2월 3일, 을지로 페럼홀에는 간송을 이야기하고, '간송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간송이 수집한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살펴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간송미술관의 백인산 연구실장의 흥미로운 강연으로 간송이 수집한 우리 옛 그림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간송이 사랑한 조선 서화


백인산 연구실장은 먼저 우리가 옛 그림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입을 뗐다. 우리 옛 그림보다 훨씬 오래된 서양의 그림을 더 가깝게 느낀다는 이야기였다. 문화적으로 우리가 우리 옛 것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문화를 식물에 비유한다면 이념이 뿌리, 정치경제가 줄기, 문화가 꽃이라고 합니다. 결코 뿌리와 꽃이 따로 놀 수 없듯이 이념과 문화가 따로 놀 수 없다는 것이죠. 사실 우리가 입는 옷과 머리 모양 등은 모두 우리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된 것이 그렇게 오래 지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역사와 문화전통의 단절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말이죠."


역사적 경험에서 볼 때 일제시대는 우리 문화전통의 단절이 가장 극심한 때였다. 1906년 우리나라에서 손꼽을 만한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간송 전형필은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우리 예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간송은 특별히 조선시대 서화 수집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일제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엄청나게 왜곡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특별히 이 시기 작품 수집에 공들였던 간송의 탁월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간송은 그 중에서도 진경시대의 서화를 중심으로 많은 작품을 수집했고, 때문에 간송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간송다움'을 드러내는 작품들은 역시 '그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무대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은 오만 원 권 지폐에 실려 우리에게 익숙한 신사임당의 '포도'였다. 흥미로운 것은 사임당이 그림에 뛰어났다는 말은 전해지나 '포도' 그림 어디에도 낙관이나 관지가 없다는 점이다. 다만 전해지는 말로 사임당의 그림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사임당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류 화가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사임당의 그림 대부분이 그의 작품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백인산 연구실장은 "옛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고, 기억하고 싶어 했던 사임당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그림의 가치는 충분하다."(책, 32쪽)고 생각하고 '포도'를 가장 먼저 소개했다.

 

이어 등장한 이정의 '풍죽'에 대해 백인산 연구실장은 흥미로운 논평을 했다. "만약 우리나라의 사군자 그림 중에서 단 한 작품만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이 작품을 꼽습니다."라고 극찬한 것이다. 탄은 이정이 그린 바람을 맞는 대나무, 풍죽은 시련을 견뎌내는 선비의 절개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과연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이 '풍죽' 또한 어몽룡의 '월매도'와 함께 오만 원 권의 뒷면에 겹쳐 인쇄되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데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러분, 오만 원 권 디자인이 좋던가요? 사실 저건 만행에 가까워요. 생각해 보세요. 점 하나 더하고 빼기 어려울 만큼 조형적으로도 완벽하다는 두 그림을 저렇게 겹쳐 놓으면 두 배로 완벽해지나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죠. 안타깝지만 저것이 이 시대의 미적 수준이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미술문화의 다양한 이슈에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 터. 백인산 연구실장의 안타까움이 강연장에 그대로 전해졌다.

 

그림을 둘러싼 이야기들


겸재 정선의 작품은 간송이 가장 많이 모은 그림으로 양과 질적인 면에서 간송 미술관을 따라올 곳이 없다. 오는 5월까지 DDP에서는 간송의 진경산수화 전을 하는데 이 역시 전시를 기획하면서 간송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했다고 백인산 연구실장은 전했다. 겸재 정선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한양의 모습을 많이 그렸을 것이다. 정선의 '광진', '압구정'과 같은 작품을 보면 당시 세도가들이 풍류를 즐기던 아름다운 한양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나름의 독특한 즐거움이 있다. "누가 그런 이야기 하더라고요. 역사 공부 제대로 하면 부동산 투기 제대로 할 수 있다.(웃음)"


정선이 한양과 함께 더불어 즐겨 그렸던 금강산 그림은 압도적인 장엄함을 간직한 작품이다. 정선이 금강산에 다녀온 것이 두어 번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그가 금강산에 얼마나 매료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정선은 36세부터 시작해 만년까지도 금강산을 꾸준히 그려 21점의 작품을 남긴다. 그는 '단발령망금강(단발령에서 금강을 바라보다)'으로 36세에 세상에 알려지며 명성을 얻었지만 그림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환갑이 넘어서도 초심자들이 하는 작업을 할 정도로 노력을 아끼지 않아 정선의 금강산 작품 중 그의 만년작이 가장 좋을 정도라니 혀를 내두를 만하다. 덕분에 우리는 정선의 금강산 그림을 통해 정선 그림의 완성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백인산 연구실장은 "늙어갈수록 빛나는 인생"으로 그를 표현했다. 정선은 그림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으로도 모범이 될 만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겸재가 72세에 금강산을 찾아 금강산을 다시 그리고 그 작품들을 실어 <해악전신첩>이라는 화첩에 담는데, 놀랍게도 <해악전신첩>이 소멸될 위기가 있었다.


"1933년 장형수라는 골동거간이 친일인사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런데 측간에 가려다 군불을 때고 있던 머슴이 아궁이 속에 이 <해악전신첩>을 넣으려는 장면을 목격하고, 빼앗아 송재구에게 들고 가 헐값에 산 뒤 간송 전형필에게 넘겼다는 것이다."(책, 115쪽)


아마 상상할 수도 없이 수많은 작품이 그렇게 없어졌을 터다. 아름다운 작품 앞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서글픈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이유다.

 

미술작품에 대한 왜곡된 관심 또한 안타까운 부분이다. 김홍도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국민그림', '씨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씨름'은 과연 김홍도의 대표작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마상청앵(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은 어떤가? 백인산 연구실장은 많은 학자들이 '마산청앵'을 김홍도의 대표작으로 꼽는다고 전했다.


"단원이라고 하면 풍속화를 떠올리지만 그를 풍속화가로만 규정짓기에는 단원의 재주가 너무나 뛰어납니다. 산수화, 화조화, 사군자까지 어느 하나 못하는 것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마상청앵' 이 작품이야말로 가장 단원다운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원은 누구보다 사대부, 문인을 지향하고 바랐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상청앵'에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단원 본인 그대로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호로 읽는 옛 그림


김홍도의 '황묘농접(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을 통해 그림의 기호를 읽는 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이어졌다. 노란 고양이가 머리 위에 날아드는 나비를 바라보고 있다. 곁에는 붉은 패랭이꽃이 멋있게 피어있고 따사로운 풀밭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단순한 동물과 식물에 관한 그림이 아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유를 들어보자.


"동음이의로 코드로 그림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고양이는 한자로 묘(猫), 나비는 접(蝶)이라고 해서 '묘접도'인데, 이를 사람들은 '모질도(??圖)'라고 합니다. 늙은이 모, 늙은이 질을 씁니다. 모는 칠십 먹는 노인을, 질은 팔십 먹은 노인을 뜻해요. 예전에는 환갑을 넘기기가 힘들었잖아요. 고양이와 나비가 장수를 의미한다는 거죠. 패랭이꽃의 꽃말은 청춘이고요. 바위는 변치 않음을 뜻하겠죠. 앞의 제비꽃은 한자어로 '여의화(如意花)'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효자손을 '여의'라고 했는데요, 고개 숙인 모양이 효자손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그 의미는 뜻대로 된다는 이야기예요. 연결해봅시다. '칠십, 팔십이 되도록 청춘을 변치 말고 뜻대로 살아라.' 이렇게 그림을 코드로 풀어볼 수 있어요."


우리 문화와 기호를 읽지 못하면 이 그림은 그저 고양이와 나비를 그린 그림으로만 이해하고 지나쳤을 노릇이다. 옛 그림에 등장하는 많은 동식물들이 이런 상징과 함의를 가지는데 그것을 알면 그림이 훨씬 재미있어질 것. 다만 백인산 연구실장은 경계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기호로만 그림을 읽으려다보면 정작 그림의 아름다움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부의 말을 했다.


"기호는 그림의 성분이죠. 그 작가의 의도, 그림에 담긴 시대의 향기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텐데 성분만 바라보면 감상이 차단될 수 있어요. 기호로만 그림을 바라보는 것은 머리로 읽느라고 가슴으로 보지 못하는 폐단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예술가의 특권


혜원 신윤복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혜원은 진경시대 막바지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꽃으로 본다면 완전히 만개한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찬란하게 핀 꽃 같은 혜원의 그림. 단원의 그림과 혜원의 그림을 비교해 보자. 단원과 혜원의 나이 차가 스무 살 남짓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느껴질 것이다.


"시대의 변곡점이라는 게 있어요. 이전의 오십 년과는 별 차이가 없는데 이후 십 년이 훨씬 크게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혜원 신윤복이 그렇습니다. 그는 조선 후기와 조선 말기를 거쳐 산 사람이거든요. 혜원의 그림에는 조선 말기의 분위기가 나타난다는 거죠."


흔히 혜원이 야한 그림을 좋아했다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그가 야한 그림을 좋아했다기보다 시대가 야한 그림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성리학적 틀이 서서히 무너지고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던 시기에 그를 가장 잘 표현한 혜원 신윤복의 그림이 널리 사랑 받았던 것이다.


언젠가 혜원의 '월화정인'이 뉴스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천문학적 관점에서 그림에 등장하는 달의 모양을 보고 개기월식이라고 해석해 그림에 해당하는 날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이른바 '과학과 예술의 만남'. 그러나 과학적 사실과 그림은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저것은 예술가의 특권이죠. 여인의 눈썹같이 생긴 저 달이 그림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거예요. 저기 초승달이나 하얀 달은 어울리지 않잖아요. 그림에 지나치게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물론 혜원의 그림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무척 암시적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미인도'가 대표적일 텐데, 이를 둘러싸고 정확하게 알려진 이야기도 없으니 수많은 추측이 난무한 형편이다. 심지어 혜원이 여자였다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백인산 연구실장은 그런 터무니없는 추측을 부정했다. 혜원은 남자였으나 다만 그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여자들에 대한 섬세한 표현으로 보아 혜원이 여자를 매우 잘 알았던 사람이었음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미인도'에 그려진 단아한 여인을 보자. 혜원은 여인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모두 표현해냈을 만큼 섬세하게 정성을 들였다. 혜원이 연모했던 여인일까?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이후 그려진 '미인도'들과 비교해도 단연 돋보이는 혜원의 '미인도'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움은 탁월함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혜원이야말로 진정 조선 최고의 꽃이었다.
 
간송이 없었다면 이런 작품들을 우리가 즐길 수 있었을지 미지수다. 이런 일화가 있다. 간송이 죽은 후 빚쟁이들이 찾아왔다. 청빈한 삶을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갑작스런 빚쟁이들의 등장이 참 의아했다. 사실인즉 간송이 후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빚까지 내서 도왔던 것이었다. 돈이 많았다고 해서 쉽게 작품을 수집하며 살았던 것이 아니다. 간송과 같이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백인산 연구실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강연을 끝마쳤다.


"우리가 간송 선생님처럼 살지는 못하겠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긍지를 지키고 살아가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주변에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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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 36 회화 백인산 저 | 컬처그라퍼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신념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이 수집한 유물들이 소장된 간송미술관은 국보급 문화재로 가득한 우리 미술의 보물창고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아름다운 소장품들을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는 없다. 문화재 보존과 연구를 위해 일년에 단 2회, 정해진 기간에만 전시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회가 열리는 시기에는 수천 수만의 관람객이 모여들어 수백 미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간송의 그림들이 미술관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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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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