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김진애,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김진애 & 조국 저자 합동강연회
물었다. 왜 공부하는가? 지난 7월 29일,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는 이에 대한 답변이 흘러나왔다. 방송인 김미화 씨의 사회로 『왜 공부하는가』의 김진애 저자와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의 조국 저자의 합동강연회 ‘대한민국 대표 실천지성의 공부 이야기’가 열렸다.
김진애 “왜 공부하는가”
김진애 박사는 지난해 『왜 공부하는가』를 펴냈다. 쓰기 전, 편히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힘들었다고 실토했다. 다양한 반응이 온 와중에 그는 우리나라의 공부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것을 절감했다. 모든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코드가 ‘공부’였다.
그렇다면 공부(工夫), 넌 누구냐? 김 박사는 하나씩 풀었다. 만들 공(工)과 남자 부(夫). 뭔가를 만들어내는 남자. 그는 어원을 찾아봤다. ‘功扶’였단다. ‘성취하다(세우다)’와 ‘돕다’라는 뜻이었다. 즉, 공부해서 남 주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공부는 나를 위해 한다지만 결과적으로 남과의 관계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생각하는 만드는 것이 공부의 어원이다. 책의 부제가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그런데 부제는 약간 거짓말이다(웃음). 가장 뜨겁게 물어야 할 것은 사랑, 인간 같은 게 아닐까. 이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제목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왜’라고 물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문제다. 세월호 참사도 그 때문에 그랬다. 왜에 대해 밝혀진 것이 없다. 공부에 대해서도 왜 하는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게 있어야 한다.”
그는 성적과 공부는 같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리고선 자신의 학창시절을 꺼냈다. 그는 공부로 학교에서 날려본 적이 없다. 그저 잘하는 척을 했다며 웃었다. 그런 가운데 어릴 때부터 의문이 있었다. 공부를 왜 잘해야 하지? 자신이 잘하고 싶은 것은 학교 성적과 무관했다. 지식인들도 보아하니, 학교 공부와는 무관한 사람이 많았다. 세상에 뭔가를 성취한 사람도 공부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할까. 그는 이것을 문제제기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놀이가 공부가 된다. 공부도 가지고 놀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우리는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공부는 연애(사랑)와 같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번 빠지면 그것밖에 안 보이고 그것밖에 생각 안 나는. 그래서 공부는 평생 가져야 할 연애의 감정과 같다. 일생을 통해서 연애하고 공부하자는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공부는 진화한다. ‘왜’에 대한 생각이 진화하는 것이 인생이다. 공부에 대한 것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공부를 안 하면 못 먹고 살 것 같아서 유학(공부비상구론)을 갔는데, 공부생태계론으로 진화하고, 내가 배운 공부를 어떻게 실천(공부실천론)하고 아이를 놀게끔 공부(놀이공부론)시키고, 훈련공부론, 공부진화론 등으로 나아갔다. 상황에 따라 자기 자신의 공부론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김진애 박사는 ‘공부생태계’를 강조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무한경쟁 사회는 공부를 수단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틀렸다’는 것. 그에 의하면 공부는 근사한 것이다. 그리고 공부가 근사한 것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공부생태계가 돼야 한다. 그러면 모두가 독수리나 사자가 되기 위해 피터지게 공부할 필요가 없다. 토끼여도 되고, 들풀이어도 된다.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각자의 역할과 존재감이 있다. 그것이 공존할 때 시너지가 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주문한다.
“왜에 대한 질문을 많이 가져라. 각자 다른 역할을 하되 팀으로 일하면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메시지는, 착하고 유능하게! 우리는 착하고 유능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자. 공부를 하는 목적은 착하고 유능하기 위함이다. 나뿐 아니라 남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착한 목적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원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공부를 통해서 가능하다. 인생에서 한 번은 그래서 뜨겁게 물어야 하지 않겠나.”
조국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이어 조국 교수가 ‘나를 밝혀 세상을 밝게 하는 공부’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공부’라고 하면 지긋지긋하지. 입시, 성적, 대학, 우리 사회는 이런 것들이 공부라고 정식화 돼 있다. 부모도, 자식도 모두 싫어한다. 우리 사회에선 성적을 받고 대학도 들어가야 하니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내 경우, 대학 친구와 고등학교 친구들 중 어느 쪽이 행복했는가 보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더라. 가르치는 학생들을 봐도 그렇고.”
그는 궁금했다. 공부를 누군가는 길게 하는데, 과연 공부를 하면 행복한지 들여다봤다. 그가 내린 결론은 ‘공부란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모두는 별이다. 각자 마음에 별이 있다. 크기와 밝기가 다 다르다. 자기의 별이 무엇인지 모르면 남의별만 보인다. 자기 마음의 별을 저 별에 맞추려고 하면 불행해진다. 1차적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지, 무엇에 설레지, 무엇에 끌리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작동되면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한다.”
그가 지적하는 우리 사회의 공부와 관련된 문제는 부모와 제도와 학교가 압도적 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단 몇 %를 위해. 그는 법대 신입생들의 첫 시간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전교 1등을 안 해본 사람? 없단다. 그리고 던지는 중요한 다음 질문. 여러분과 법조인, 그리고 조용필 등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 중에 누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줬을까? 그는 어떤 법조문보다 조용필의 노래가 훨씬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0.1%가 되라고 밀어붙인다.
이어 조 교수는 율곡 이이와 이순신의 예를 든다. 이이는 13세에 첫 장원급제를 했고 이후 9번의 과거에서 전부 장원급제를 했을 정도로 역사를 통틀어 유래가 없었다. 반면 이순신 장군은 무과에 계속 떨어지다가 32살에 무과에 합격했다. 그것도 12등. 그랬던 이순신이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했다.
“이이의 역할이 있고, 이순신의 역할이 있음에도 우리 모두는 이이처럼 되라고 한다. 그 아이 마음에 어떤 별이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이 없다. 우리는 왜 특정 대학에 가라고 할까. 안정지향성 때문이다. 모든 학생을 거기에 맞추려고 한다. 로스쿨을 기준으로 했을 때도 서울대를 졸업해도 취업이 힘든 학생들이 많다. 반면 랭킹이 낮은 로스쿨 출신이 잘되는 경우도 많다. 왜일까. 서울대 아닌 로스쿨 학생은 자기 마음의 별을 아는 알고 꾸준히 가니 서울대 출신보다 잘된 거지.”
그가 지적하는 공부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문제는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것. 특히 대학 입학 성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자 하는 것은 큰 문제다. 제도가 그렇다 보니 특정 무렵에만 죽어라 공부를 하고 이후론 책을 놓는다. 그는 지금 한국 사회, 특히 남자들은 1년에 책 몇 권도 읽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나는 공부를 하다가 법을 택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미국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봤다. 저런 공부를 하고 싶어서 법을 선택했다. 법은 세상의 규칙이다. 분쟁 해결 방법이다. 법은 다양한 꿈과 욕망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 등을 지내며 우리는 붕어빵 찍어내듯 사람을 찍어내 왔다. 바뀌어야 한다.”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의 핵심에는 공부가 있다.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를 이룬 많은 나라들이 그렇게 된 요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택해서 공부하고 노력했던 데 있다. 먹고사는데 지장 없고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었다. 복지국가의 요체가 그것이라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법학은 이런 것을 위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를 떠나 우리 후대가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와 같은 사회제도, 법 아래에서는 자신의 성공이 자식에게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아이를 쥐어짠다. 그러나 다른 제도로 바뀌면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박수치고 격려해줄 수 있다. 그런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것을 위해 나는 정치참여를 한다.”
두 분 모두 다 성취한 분이다. 근데 왜 아직도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라고 말씀하고 있나?
김진애 : 『 한 번은 독해져라』는 책이 새로 나왔다(웃음). 자신을 위해 독해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새벽 4~5시에 일어나 7시까지 혼자 뭔가를 한다. 이 습관은 둘째 아이를 낳고 어떻게 하면 내 시간을 가질까를 고민하면서 나왔다. 아이와 같이 자고 일어났다. 새벽에 일어나 혼자 공부한다. 30대에 만들어진 습관인데, 이 2~3시간이 없었으면 그 이후의 공부도 없었을 것이다. 그게 없었으면 정서도 없었을 테고. 자기 자신에게 온전하게 다가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을 유혹하고 설득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말과 글이 사람을 유혹하고 설득하는데 좋다. 그것을 익히기 위해 자기 훈련을 많이 했다. 살아남기 위함이었다(웃음).
조국 : 친구들이나 제자들을 보면, 회사에 들어가면 공부할 틈이 없다. 그래도 공부하라고 권하는데, 나중에는 그렇게 권한 것이 참 좋았다고 하더라.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가 행복추구권이다. 보통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경우, 자기가 없어진다. 어느 순간 자기가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게 없어지는데, 행복해지는 길이 공부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만큼은 자기의 공간이 마련된다. 행복해지고 이 상태를 어떻게 바꿀까 더 좋은 길이 무엇일지를 생각하게 된다.
두 분의 책을 보면 한 번 미쳐보라고 한다. 어떻게 해야 미칠 수 있나?
조국 : 미칠 만한 소재를 발견해야 한다. 하나를 잡고 적어도 1년은 그것을 계속 하면 누구나 달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책도 누구나 쓸 수 있다. A라는 주제를 잡고 1년 동안 꾸준히 해보라. 하다가 그만두니 문제다. 내가 무엇을 하면 행복할지를 찾다 보면 발동이 걸린다.
김진애 : 내 책에 고3 한 해 동안 공부만 했다고 한 대목을 부모님들이 무척 좋아하더라(웃음). 어렸을 때 여자들이 공부를 잘하잖나. 성적도 상대적으로 더 좋고. 공부밖에 할 게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내가 1남6녀 중 셋째 딸인데, 어렸을 때 이런 고민을 했다. 여성이 존재감이 없구나, 내 존재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그때 내가 벌어서 내가 먹고살면 되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랬더니 문제가 풀렸다. 고3때 공부만 했었다. 독해져야 할 때 독해지니 인생에 큰 자신감이 생겼다. 1년이 길면 100일 정도 먼저 해봐라. 그런 시간이 이어지면, 그렇게 미쳐보고 독해져 보면, 남들은 이해 못해도 나만 그것에 빠지는 경험이 정말 짜릿하다.
열여섯에 서울대에 입학해서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보고 측은지심을 느낀 것 같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서 지냈는데, 어떻게 교수가 됐나? 빨갱이, 종북인데...(웃음)
조국 : 국가보안법 전과자가 어떻게 법대 교수가 됐는지 질문을 많이 받는다. 형식적으론 사면복권이 됐다. 당시 국보법 7조 위반이었는데, 지금도 7조는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조문(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이다. 당시 채용과정에서 그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시 좋은 논문을 쓰고자 했고, 국제단체인 엠네스티에서 양심수 지정을 해줘서 반대한 분도 있었겠지만 채용됐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러다 보니 미칠만한 소재를 찾는데도 두려움이 있지 않나 싶고. 미칠 만한 소재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김진애 : 그때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겠나. 적성이니 뭐니 그 무렵엔 무의미하다. 그때는 큰 적성, 즉 사람을 좋아하는지 사물을 좋아하는지, 그런 것에 대한 것만 알아도 충분하다. 어렸을 때 이끌리는 것도 가짜일 수 있다. 그렇게 일찍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건 10~20%밖에 안 될 것이다. 나는 건축과를 열다섯에 택했지만, 그림도 좋아하고 수학도 잘해서(웃음) 이과에 갔다가 건축과가 나아보여서 간 거지. 일생을 걸겠다, 이런 게 어디 있나. 일생 동안 직업이 많이 바뀔 수 있다. 15~18세 무렵은 큰 적성에 맞는 어떤 직업군이 있는지 알아보고, 커리어를 알 수 있게끔 해도 충분하다. 이 길이 아니면 딴 길로도 가보고. 애들이 뭔가를 원하는 게 없는 것이 당연하다.
너무 구체적인 걸 원하는 건 커리어 강박증이 아닌가 싶다. 좀 더 여유롭게, 삶의 큰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생에는 여러 번의 기회가 있다. 지금 우리에겐 두 가지 강박이 있다. 실패할지 모른다는 실패 콤플렉스, 또 하나는 행복 콤플렉스다. 미쳐야 진짜 삶이 아니다. 지루할 때도 많고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할 때도 많다. 나는 지금 미치도록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10% 정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 그것만 해도 많은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국 : 어린 시절에 뭘 하겠다는 건 구체적이지 않다. 내 아이를 봐도, 한 아이는 뉴스를 좋아하나, 한 아이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좋다 싫다가 대략적으로 드러난다. 과목 선호도를 봐도, 특정 과목을 싫어하고 좋아하는 게 갈리는 정도만 구획을 지어줘도 좋겠다. 아이는 수십 번이 바뀐다. 그때마다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자존감이다. 나는 소중하다. 성적이 떨어져도 나는 소중해. 자기 자신이 소중하다고 깨닫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가 하는 것도 사랑하게 된다. 지금 너무 세밀하게 확정짓는 것은 어렵다. 나는 대학갈 때 과는 대충 가라고 한다. 복수전공을 하든지, 전과를 하든지 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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