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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는 진짜와 가짜 꿈을 구분하는 이야기

『파랑새 놓아주기』 저자 김지완 고전에서 발견하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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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놓아주기』는 인기 동화 『파랑새』를 다시 읽으려는 시도다. 완전히 다시 읽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꼼꼼하게 읽겠다는 뜻이다. 그간 『파랑새』 이야기는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교훈을 품은 동화라 알려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른 결론을 내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읽은 기억으로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는 동화가 있다. 그런데 막상 그 동화가 어떤 이야기였는지를 떠올리면 막연해진다. 『파랑새』 역시 마찬가지다. 남매가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는 이야기라는 건 기억이 나지만, 파랑새를 찾았는지 안 찾았는지는 확신이 안 선다. 중간 과정에 관한 이야기도 모르겠다. 그런 독자를 위해 『파랑새 놓아주기』는 원전과 함께 해석을 제시한다. 문학소녀이며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인 김지완 저자가 글을 썼다. 김지완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김지완 1.JPG

 

 ‘이야기의 원형 시리즈’ 2번째 권으로 『파랑새 놓아주기』가 나왔는데요. 많은 동화 중에서 『파랑새』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파랑새는 다른 동화들과는 좀 달랐어요. 아직도 어릴 때 파랑새 이야기를 듣고 나서 느꼈던 야릇하고 찜찜한 느낌을 잊을 수 없어요. 다른 동화들은 주인공들이 역경을 겪고 비참한 일을 당해도 결국엔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면서 아이들을 안심시켜주잖아요. 그래서 듣고 나면 개운하고 잠도 잘 오는데, 파랑새는 결국 파랑새를 찾았는데도 뭔가 허무하고 개운치 않은 것이 어린 나이에도 이상한 동화를 다 썼네, 라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그런데 그게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생각났어요. ‘참 이상한 동화였어, 어린이용은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사람들이 완전히 밝혀내지 못한 뭔가가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수업을 하면서(대안학교라서 다양한 수업을 시도해요) 동화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하는데 그럴 때도 파랑새는 전형적인 동화로 분류해서 다룰 수 없었어요. 알고 보니 원작은 희곡이었고 아동 연극을 위해 쓰여진 꽤 긴 작품이었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파랑새 이야기는 그걸 간추려 요약한 아주 짧은 이야기인데, 결말도 원작과는 다르더라고요. 분명히 뭔가 더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작을 꼼꼼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파랑새』 이야기는 꿈과 그 꿈을 찾는 과정에 관한 동화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파랑새는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것이죠. 꿈과 이상도 파랑새의 하나로 등장합니다. 결국 파랑새 이야기는 진짜 꿈과 가짜 꿈의 차이를 알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요. 맨 마지막 장에 이르면 진짜 꿈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알 수 있어요. 파랑새 이야기는 꿈을 찾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지만 꿈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행복, 사랑, 꿈과 이상, 그리고 죽음에 관한 것까지 삶의 의미를 큰 그림을 그려 보여주고 있어요.


이 책에서는 『파랑새』 이야기와 함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병렬적으로 이야기되는데요. 두 이야기는 어떤 점에서 함께 엮어질 수 있을까요?
 

틸틸과 미틸, 제제 모두 어린아이예요. 그리고 이 아이들은 모두 결핍을 느끼고 있어요. 제제는 이야기의 끝까지 그 불행 속에 남겨져 있어요. 틸틸과 미틸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모험을 떠났고 행복의 중요한 비밀을 발견하게 돼요.


저는 제제에게 이 비밀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제제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상처를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어린아이예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슬프고 아픈 어린아이로 남아있었던 그 아이가 늘 마음에 걸렸어요. 아마 제 마음속에도 꼭 그런 아이가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사람들은 마음속에 일생 제제 같은 어린아이를 품고 살아요. 어른이라서 어른답게 보이려고 노력 중일 뿐 누구나 마음속에는 여전히 연약하고 세상을 겁내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며 구원자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있어요.


고전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게 현대적인 의미일 텐데요.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에서 『파랑새』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해서 인간이 제일 큰 자원이 되어야 하죠. 인간 자체가 가장 큰 생존의 수단이에요.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 자신의 이용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을 늘 받고 있어요.

 

보다 이용가치가 높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보다 지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현재의 욕구를 억누르고 미래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방식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경향과는 전혀 다른 생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일을 통해 성공하라는 메시지들이에요. 현실이 어떻든 상관하지 말고 큰 꿈을 꾸라는 메시지와 성공사례들이 쏟아져 나오며 새로운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죠.
 
하지만 제 주위를 살펴보면 정작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들, 그저 쉬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큰 꿈을 향해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직장을 잃고 생존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도 있죠. 그래서 요새는 꿈은 소박하게 갖고 현실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들이 다시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파랑새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도, 현재의 욕망에 충실해서 미래의 꿈을 이루는 것도, 꿈의 크기를 소박하게 줄여서 현재에 만족하라는 것도 아니에요. 파랑새는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고 가짜 행복을 놓아주고 진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저는 우리나라가 놓여있는 척박한 현실이 진짜 행복을 발견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황이 좋고 환경이 좋아서 행복한 것은 상황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 사라지는 가짜 행복일 수 있어요. 상황과 환경이 모두 좋지 않을 때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진짜 행복이겠죠. 우리는 척박한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가짜 행복으로는 그것을 덮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짜를 찾으려고 하는 결심을 빨리 할 수 있어요. 『파랑새』는 진짜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거예요.


『파랑새』 이야기도 그렇고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도 결국 성장소설, 성장동화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요. ‘성장’이란 무엇일까요?


성장이란 좀더 부드러워지는 것, 내가 나라고 오해하고 있던 것을 놓아버리는 것, 세상에 대한 나의 오해를 푸는 것, 단단한 생각과 묵은 감정으로부터 놓여나 점차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하려는 노력을 놓으라고 하셨는데요. 경험담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추구했던 파랑새, 행복이라는 게 있었을까요?


잔인하게 들리지만 이미 행복한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이 세상의 원칙이에요. 행복하려고 노력한다는 건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경험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지금을 살아가게 되는 거죠. 행복해지려는 노력이 지금 이 순간 도착해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장애물입니다. 이 비밀을 발견하기까지 많은 실패의 경험이 필요했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살면서 늘 행복을 찾아왔어요. 돈, 사랑, 명예, 건강 등등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엇비슷하죠. 전 그중에서도 사랑을 제일 열심히 찾았던 것 같아요. 보통의 연애감정도 아니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요. 종교에서 찾고 이야기 속에서 문학 속에서 세상에서 사랑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했죠. 한때 그걸 찾은 것 같았어요. 삶이 잠깐 천국이 되었어요. 하지만 곧 잃어버렸죠. 삶이 나에게 줬다 뺏은 것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되찾을 방법이 없었어요. 이런 실패의 경험이 파랑새 이야기를 새롭게 읽어낼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주었어요.


저자 소개에 ‘자신을 놀라게 할 만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글일까요?

 

실은 ‘한 번 울고 영원히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제 꿈이었어요. 세상을 감동시키는 글을 쓰고 싶었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한 글자도 쓸 수 없었어요. 세상이 감동할지 안 할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고 세상이란 건 또 너무 크니까요. 그래서 저를 위한 글을 쓰기로 했어요. 나에게 들려줄 글, 내가 읽고 또 읽어도 좋아할 수 있을만한 글을 쓰기로요. 그렇게 하면 나와 비슷한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감동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죠. 그렇게 생각하니 글을 쓰는 일이 조금은 가벼워졌어요.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누군가의 머리맡에 놓이는 책을 쓰고 싶어요. 전 잠들기 전에 제일 좋아하는 글을 읽는데, 제가 쓴 책이 누군가에게 그런 책이 된다면 좋겠어요. 


구체적으로 쓰고 싶은 내용은, 살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글로 쓰고 싶어요. 어떤 날 생각하면 삶이라는 게 썩은 사과보다 맛없고 빈속에 들이붓는 소주보다 지독한 것이지만 그런 날이 지나가면 삶이라는 신비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진실들이 있어요. 그런 것을 글로 쓰는 것이 좋아요.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종이와 펜을 들고 앉아 폭풍 속에서 본 것을 쓰는 것. 삶이 내게 보여준 속살을 글로 적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글을 쓰는 제 마음이에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문학 수업할 때가 가장 생기 넘친다고 하셨습니다. 고등학교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항상 딴생각을 했고요, 거의 늘 딴생각을 했어요. 좀 공부를 많이 안 하는 학교여서, 애들이 약간 수학여행 온 느낌으로 학교에 드나들었어요. 노래를 못하는데 중창단에 잘못 들어갔어요. 선배들이 무서워서 탈퇴를 못 하고 아침저녁으로 모여서 울면서 노래 연습을 했어요. 내가 학생인지 가수인지 모를 판으로 노래 부르러 다니는 일에 매진했어요. 방학 때도 매일 모였으니까요.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매일 편지 주고받는 게 하루에 제일 중요한 일이었고, 틈만 나면 마주 앉아서 나중에 우린 어떻게 될까 그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죠. 늘 미래의 남편에 대해 생각했어요. 고3 때는 열심히 공부했어요.


지금 학생들은 저자님이 학생일 때 비해 어떤가요?


비슷해요. 거의 똑같다는 느낌이에요. 물론 다른 점을 찾으라면 서른 가지쯤 찾아서 이야기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아요. 별거 아닌 거에 자지러지게 웃고 별거 아닌 거에 토라지고 울고 미래를 걱정하고 꿈에 부풀고 이성에 미친 듯이 관심 많고 어른들을 욕하고 탈출을 꿈꾸고 세상을 뒤집고 싶어 하고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고민하고 부모님을 미워하고 태생을 의심하며 친구관계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등등. 진짜 재밌는 시절이에요. 이런 애들하고 장난하고 잡담하고 갑자기 심각하게 토론하고 그런 게 정말 즐거워요. 그리고 어떤 면에선 청소년시기가 일생을 통틀어 가장 어른스럽다고 해야 하나, 가장 순수하게 이상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시기잖아요. 현실을 잘 모르니까 한도 끝도 없이 훌륭해질 수도 있는 때예요. 같이 있으면 나보다도 얘들이 훌륭하다고 느낄 때가 많죠. 물론 사회 나가면 만신창이가 되어서 작은 어른이 되는 시절을 겪겠지만.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생존에 대한 압박 때문에 굉장히 현실적이고 걱정이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 좀 더 많아진 것 같네요. 닥치기도 전에 미리 작아져 있는 모습은 좀 안타까워요. 안 그래도 사회에 나가면 훌륭했던 이상과 꿈이 두들겨 맞아서 작아질 텐데, 나가기도 전에 작아져 있으면 몇 대 맞은 뒤에는 사라지고 없어질 테니까요. 물론 너무 작으면 맞을 일도 없겠지만.      

 

이 시기는 꿈과 이상을 맘껏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제가 쓴 책의 주제와는 많이 다르죠. 인간에게는 실패할 이상이 필요한 시기가 있어요. 실패를 통해 배우려면 실패할 큰 꿈도 필요해요. 꿈과 이상은 언젠가 반드시 실패하거나, 이뤄진다면 그 이뤄짐 후의 허무함이 따라올 운명에 놓여있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꿈과 이상이 이뤄지는 경험이 아니라, 실패와 허무함이에요. 꿈이 커야 실망도 크고 실망이 커야 제대로 배울 수 있어요.  


문학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좋아하는 작가나 문학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합니다.
 

어려운 질문인데요, 뭔가를 고르면 다른 작품들한테 미안해져서요. 좋아하는 건 너무 많으니 많이 반복해서 읽은 단편 소설만 얘기할게요. 
 

가와바타 야쓰나리의 「서정시」, 레이몬드 카버의 「거리」,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 「서정시」는 야릇한 소설이에요. 처음 읽으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뒤돌아서면 생각이 나는 이상한 소설이라 여러 번 읽었어요. 사랑 이야기지만 삶에 대한 굉장히 큰 물음표를 품고 있는 이야기예요. 「거리」는 가슴의 바닥까지 쓸쓸한 이야기인데도 그 쓸쓸함이 아름다워서 20대 때 늘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시간이 나면 꺼내 읽었어요. 「독 짓는 늙은이」는 ‘봐라, 벌써 눈에서 썩은 물이 나온다’라는 대목을 읽으려고 계속 또 보게 되는 작품이에요. 그 대목에서 썩은 물은 아니지만 꼭 눈물이 나요. 살면서 겪는 모진 시련과 고통 속에서 어떻게 인간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대단한 이야기예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파랑새 놓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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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놓아주기 김지완 저/송민선 그림/박민지 캘리그래피 | 이야기나무
『파랑새』 이야기의 결말은 누구나 알고 있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파랑새를 찾아 떠난 주인공이 힘든 모험에도 불구하고 파랑새 찾기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토록 찾던 파랑새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결말을 말이다.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교훈을 『파랑새』 이야기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배웠고 또 읽었다. 하지만 『파랑새』 이야기의 원작은 동화가 아닌 희곡이고 모리스 마테를링크라는 원작자의 이름처럼 낯선 결말이 이어진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견한 파랑새는 잠시 손에 넣었지만 이내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파랑새를 잃어버린 주인공의 절규로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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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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