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무단 경작을 권하는 이유
『텃밭의 기적』 텃밭보급소 이복자 소장
지난 4월 24일, 서울 장충동 디자인하우스에서는 텃밭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왔다. 『텃밭의 기적』 출간 기념 강연 덕분이었다.
『텃밭의 기적』의 저자 데이비드 뷰캐넌은 흥미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도시 남자인 그는 자연이 좋아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어느 헛간 집으로 이사를 간다. 어느 날 ‘씨앗을 받는 사람들(Seed Savers Exchange)’이라는 단체를 접하고 인생행로가 바뀐다. 토종 종자를 보존하고 전파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는 희귀 종자를 찾아 전국을 누비는 식물 탐정이자, 그것으로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농사꾼으로, 선조가 즐겼던 다양한 맛의 풍성한 음식들을 되살려내기 위한 식문화 지킴이로 변신한다.
그런 그가 작은 농장들과 텃밭들이 이루어낼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일들, 그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해 나간 여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 『텃밭의 기적』이다.
“『텃밭의 기적』은 음식 다양성에 대해, 어떤 음식이 지구와 우리의 입과 마음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다룬, 지금까지 나온 가장 아름다운 책일 것이다. 데이비드 뷰캐넌의 책을 읽고 소화시키고 나면, 제목이 담고 있는 두 단어 ‘맛taste’과 ‘기억memory’이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 삶에 양분을 주고 풍요롭게 하는 공통의 음식 유산에 필수 요소로 다가올 것이다.”(『텃밭의 기적』9쪽 서문)
도시에서 텃밭농사를 한다는 것
이 자리에는 텃밭보급소 이복자 소장이 ‘도시농사 도시공동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텃밭보급소는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출발한 단체다. 귀농하지 않아도 도시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보자고 차원에서 도시농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도시농부학교를 시작했다. 이에 텃밭보급소는 2012년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 현재 제16기 도시농부학교를 진행했다.
“도시에서 농사를 접하면서 수입을 적게 하고 삶의 행복을 농사를 통해서 이뤄보자는 취지였다. 텃밭보급소는 도시농업과 관련한 연구, 실태조사, 집필 등을 하고 있다. 텃밭보급소의 농사원칙이 있다. 석유에 의존하지 않고 돈을 덜 들이는 농사를 짓자고 해서, ‘4대 원칙’을 정했다. 합성제초제와 농약, 화학비료, 멀칭비닐을 쓰지 않는다.”
텃밭보급소는 더불어 ‘3대 지향’도 있다고 한다. 우선, 자가 거름 만들기를 한다. 작물은 질소질을 가장 좋아하나 토양은 그 때문에 유기물이 적어진다. 따라서 사람의 몸이나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직접 거름을 만든다. 또 우리 종자로 만든 씨앗으로 농사를 짓는다. 종자 수집을 위해 전국을 다니다보면 우리 농부들도 우리 종자로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이유를 물으면 수확량이 적고, 수확이 고르지 않다 등의 답변을 들었다. 종자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텃밭보급소는 우리 종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토종과 전통농업의 실천이다. 나머지 지향성 하나는 도시공동체의 회복이다.
“산업화와 함께 도시는 이웃을 모르고 산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다보면 농사짓는 것을 매개로 다양한 활동이 이뤄진다. 도시공동체가 회복된다. 그래서 농사를 매개로 도시공동체를 만들자는 취지로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농사를 실천한다.”
경기도 도시농업활성화 지원 조례에 의하면, 도시농업은 도시의 다양한 공간과 토지를 활용하여 친환경적으로 농작물을 생산하는 주민의 각종 경작행위와 여가활동을 말한다. 이 소장은 도시농부 11년 차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애초 귀농을 하고자 했으나 남편의 반대로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다양한 도시농업 활동을 하면서 후세에게 덜 미안한 일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는 도시 텃밭농사를 지으면서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도시에서 지을 수 있는 텃밭 농사
이 소장은 텃밭보급소에서 하고 있는 텃밭농사의 예를 보여줬다. 토종배추를 먼저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다국적기업에서 만든 모종(불임 종자)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종자법에 의하면 우리 씨는 팔지 못하게 돼 있다. 대신 나눌 수는 있다. 다국적기업인 몬산토가 씨앗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업성은 씨앗의 보존기한을 2년으로 둔다. 그러나 봄에 사서 가을에 심으면 발아율이 떨어진다. 이들 씨앗을 보면 분홍색, 파란색 등 색깔이 선명한 경우가 많은데, 어떤 씨앗은 장갑을 끼고 만지라고 한다. 그러나 토종씨앗은 장갑을 끼지 않고 만진다. 씨앗도 생명이기 때문이다. 텃밭보급소의 토종배추는 따라서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번듯한 채소가 아니다. 모양새만 놓고 보면 볼품이 없다.
“4대 원칙을 지키면서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고 불안해하는 분도 있다. 지금은 오줌을 받아다가 비료로 쓰고 있는데 아주 잘 자란다. 시중의 것은 질소질을 과잉으로 먹은 비만 채소다. 우리가 키운 배추는 섬유질이 많아서 질기나, 고소하다. 시중의 배추는 부드럽고 달긴 하나 고소한 맛을 느껴보기 어렵다. 우리는 질소질보다 탄소질 거름을 넣는다. 탄소질은 토양에 유기물을 공급한다. 내 손으로 키운 작물이 가장 안전하다. 벌레가 먹은 작물도 안전하다. 벌레가 안 먹은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독성이 있는 농약 등 때문에 벌레도 안 먹는다.”
“가장 좋은 먹을거리는 언제나 개인이 직접 생산한 것이며 가장 좋은 품질과 맛을 내기 위해 그 품종을 보존하느라 들인 수고에 보상을 해 준다는 점이다.”(『텃밭의 기적』30쪽)
텃밭보급소는 토종고추도 키운다. 다년생인 고추는 나무처럼 크나, 우리나라는 사계절 때문에 여름에만 주로 자란다. 고추 지지대를 흔히 볼 수 있으나 이 소장에 의하면, 토종고추는 지지대를 세우지 않아도 잘 자란단다. 달큼하고 매운 맛이 토종고추의 특징이라는 것.
“마늘은 겨울농사다. 겨울농사를 하면 작물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토양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0월에 마늘을 심으면, 봄에 난다. 손이 덜 가긴 하나, 어렵긴 하다. 겨울농사를 해야만 토양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 4대 원칙으로 농사를 지으면, 풀도 많이 나고 지렁이가 많이 생긴다. 관행농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는데, 거기서 나는 풀은 먹을 수가 없다. 3년 만 4대 원칙으로 농사를 지으면 밭에 나는 지천의 풀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풀은 텁텁하나 쌉쌀하고 쓴 맛도 있다. 부드럽진 않다. 농사를 지으면서 먹거리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 그래서 전통 발효장을 쓴다. 기본 장을 쓰면 본래의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이 소장은 텃밭에서 채소 농사만 하지 말라고 언급했다. 단작을 지으면 온갖 병해충이 생긴다는 것. 텃밭에서도 다양한 작물 재배가 가능하단다. 작물을 다양하게 심으면 벌레도 적게 오고, 곡식은 갈무리(채증해서 두었다 먹는 것)도 할 수 있다. 특히 채소는 1년 만 생명을 가진 종자가 있으나 곡식은 수십~수백 년도 가능하다.
“우리는 곡식문화다. 가능하면 곡식을 먹어야 한다. 씨앗을 땅에 뿌리면 수분, 햇빛, 토양 등을 받아 싹이 튼다. 이걸 보면 굉장히 큰 감동이 온다. 그래서 농사를 매년 하게 된다. 농사를 할 때마다 또 다시 시작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씨앗의 발아를 보면서 생명의 신비를 느낀다. 이걸 본 사람만이 계속 농사를 짓는다. 곡식 농사도 도시에서 가능하다. 곡식농사를 하면 생명이 강하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
텃밭에서 배우는 삶의 가르침
이 소장은 도시농사로 경작한 작물을 보면서 삶을 배웠다. 도시농업을 배우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는데, 그는 도시농사는 밥벌이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농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도시농업은 단순 취미활동이 아니고 삶과 직결되는 일이다. 작지만 내가 자급하고, 농사를 지어서 먹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작물은 심어두면 수확할 때까지는 다른 사람이 건드릴 수 없다는 점도 이점이다(웃음).”
그는 음식물찌꺼기로 퇴비 만드는 법에 대해서도 전달했다. 거름을 만들 때는 탄소질 재료와 질소질 재료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음식물찌꺼기, 똥 등이 질소질 재료이고, 마른 풀, 낙엽, 왕겨, 톱밥 등이 탄소질 재료. 비율은 ‘1(질소질)대 25(탄소질)’. 이를 섞어서 수분, 열 등을 공급해서 발효를 시키면 된다. 더울수록, 특히 한여름에 양질의 퇴비를 쉽게 만들 수 있다.
“인분을 퇴비로 만든다는 것은 바로 겸손의 실천이고, 겸손은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만든다. 대학생들의 도시농업 모임도 있다. 동아리도 만들고, 씨앗들협동조합도 만들었다. 우리가 가꾸는 농장에는 생태화장실을 만들어서 똥과 오줌을 따로 받는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토양이다. 특히 도시농사일수록 더욱 중요하단다. 흙 알갱이 하나하나에 고상(고체), 액상(액체), 기상(기체)이 있다. 유기물이 많은 토양은 부슬부슬하고 거무스름하고 흙냄새가 많이 난다. 유기물이 적은 흙은 딱딱하다. 처음 농사를 지을 때 토양이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겠다면, 각 지역 농업기술센터를 찾아보란다. 무료로 토양 검사를 해준다. 작물은 대부분 산성토양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고, 중성토양에서 잘 자라는데, 시금치로 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시금치가 제대로 안 났다면 산성 토양이고, 개선이 필요하다. 조개껍질이나 귤껍질을 갈아서 넣거나 석회를 넣어주면 토양이 중성화된다.
이 소장은 도시농사를 통해 도시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시에서 텃밭농사는 마음만 먹는다면 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다는 것. 이에 도시텃밭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만들어보자고 권했다. 그래서 그는 도시에서 농사 강연을 하러 가는 곳마다 무단경작을 하라고 권유한다. 토지주인에게는 난해한 일일 수 있으나, 유휴지 등을 활용해 도시민들이 농사를 짓는다면 땅의 효율성도 높이고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진다는 것.
“우리는 현재 농업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경작에 참여할 수 있다. 관상용과 체험용 등 다양하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농장지기도 할 수 있고, 서로가 좀 더 풍요롭고 넉넉한 일을 농사를 통해 할 수 있다. 전업하라고 하진 않는다(웃음). 농사엔 실패도, 성공도 없다. 건강은 음식보다 살아 있는 흙에서 일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볼 때 내 새로운 사업은 정식 농장이라기보다 지역사회 프로젝트라고 해야 더 맞다.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땅을 이용하고 상호 협의를 거쳐 운영하는 폭넓은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비공식적인 협력 관계는 시작하기도 어렵고 깨지기도 쉬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렇게 해서 지역사회의 먹을거리 생산을 엮어 나가는 방식에는 꽤 근사한 일면도 있다.”(『텃밭의 기적』2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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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뷰캐넌> 저/<류한원> 역14,2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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