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맛집보다는 술 한 잔이 생각나는 그곳
『망원동 브라더스』는 결말보다는 분위기가 좋은 작품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망원동 옥탑방에 4명이 모여 산다는 설정 자체가 현실적이다. 좁은 공간에 1,000만이 넘는 사람이 사는 서울에 관한 유비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인물은 싸우기도 하고, 보듬기도 하며 세상과 살아간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필자를 포함한 사람들 대부분도 화려하기보다는 다소 궁색한 삶을 꾸려나간다.
집에 와 보니 또 술판이다. 싸부와 김 부장이 옥탑 마당에 평상을 놓고 그 위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있다. (251쪽)
집에 와 보니 술판이다가 아니라 집에 와 보니 ‘또’ 술판이란다. 소설을 쓴 작가도 독자의 마음을 헤아렸나 보다. 필자도 이 대목을 읽을 때, ‘아니, 얘네들 또 술 마셔’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렇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술에 관한 이야기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망원동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술자리에 관한 이야기. 소설 속 인물에게 어떤 사연이 있기에 그렇게 술을 자주 마셔댈까.
둘이 살기에도 버거운 망원동 옥탑방에 4명이 모이다
주인공인 ‘나’는 만화가이나 사실상 30대 백수다. 20대에 데뷔했지만 이후 별다른 작품을 내지 못했다. 만화시장이 잡지와 대여점 위주에서 웹툰과 포털로 바뀌는 시대적 조류에도 적응하지 않고 웹툰에 막연한 거부감만 갖고 있다. 일감이 있을 리가. 그럼에도 ‘나’에게는 만화를 향한 열정은 남아 있다. 현재 거주지는 망원동 옥탑방. 혼자 살기에는 쾌적하나 둘 이상이 지내기에는 버거운 장소. 이곳으로 똥파리가 꼬이기 시작한다.
첫 번째 똥파리는 김 부장. 부장이라는 직함에서 보듯, 과거 주인공이 데뷔한 만화잡지의 영업부장이었다. 불운한 교통사고로 직장을 잃고 현재는 재기를 노리는 가장이다. 마음만은 뜨겁게 타오르나 형색은 초라한데, 김 부장은 자식과 아내를 캐나다에 두고 온 40대 기러기 아빠다. 캐나다로 보낼 돈을 벌기 위해 그는 가족을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망원동 옥탑방으로.
두 번째 똥파리는 싸부. 한때 잘나갔던 50대 만화 스토리 작가. 주인공은 싸부에게 만화를 배웠다. 한국만화가 일본 작가에게, 웹툰에 밀리면서 그의 일도 자연스레 줄어갔다. 현재는 잘나가는 후배 웹툰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다 못해 폭력으로 협박까지 일삼는 신세. 돈을 못 버는 싸부 대신 아내가 미장원을 차려 근근이 삶을 이어간다. 참다못한 아내는 싸부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이에 격분한 싸부는 가출을 감행하는데, 딱히 갈 곳이 없던 그도 망원동 옥탑방으로.
세 번째 똥파리는 삼척동자. 주인공의 동아리 후배였던 그는 20대 고시생. 얕고 넓게 아는 지식이 많지만 써먹을 데가 없다. 그저 고시원에 살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뿐. 삼척동자는 망원동 대형 마트가 주최한 빠르고 많이 먹기 대회에서 주인공과 김 부장 그리고 싸부와 만난다. 삼척동자가 1등, 김 부장이 2등. 이 사건을 인연으로 삼척동자도 망원동 옥탑방으로…….
루저로써 삶을 견뎌내기
동창들의 질문 공세와 꿈 타령도 없었다. 두툼해진 살집들처럼 삶의 무게를 출렁이던 그들은 더 이상 내게 새삼스런 질문과 타령을 할 겨를조차 없어 보였다. 다행이다. 새로울 것 없는 세상과 새로울 것 없는 삶을 사는 우리. 그걸 용인하며 늙어가는 거다. 당연한 듯 주어진 삶. 오히려 그게 다행인 날들이다. (207쪽)
20대 고시생, 30대 백수, 40대 기러기 아빠, 50대 황혼이혼남. 루저라 불릴 만한 이들에게 세상은 새로울 것 없이 주어진 삶이다. 그래도 먹고 살아가야 한다. 삼척동자는 고시공부를 하고 ‘나’는 학습만화를 그린다. 김 부장은 피라미드 사기에 당하기도 하지만, 해장국집을 차리고 인생역전을 준비한다. 쉽지는 않다. 해장국집 장사는 안되고, 공무원 시험 합격은 딴 동네 이야기. 가출이라는 싸부의 마지막 발악에도 사모님은 이혼할 태세.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이쯤 되면, 『망원동 브라더스』에서 왜 술자리가 많이 펼쳐지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안 그래도 러시아 다음으로 술 소비가 많은 한국이다. 한민족이 원래부터 음주가무를 좋아해서일 수도, 이런 민족 정서에 자본주의가 박차를 가하며 밤문화가 발달해서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예전보다 줄었다고는 하나 한국 사람은 술을 많이 마신다. 이런 나라인 데다 승자가 아니라 패자가 손 내미는 곳에는 어김없이 술병이 놓일 수밖에.
그렇다고 소설의 분위기가 시종일관 어둡지는 않다. 이들은 괴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술자리를 연다. 돈이 생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얻어 마실 때는 참치집에서, 돈이 없을 때는 없는 대로 집에서 술판을 만든다.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기도 하고, 고주망태가 된 동료를 버리고 의리 없이 먼저 집에 가기도 한다. 『망원동 브라더스』의 술자리가 특이한 점이라면 똑 같은 멤버로 지겨울 만도 한데 술자리를 계속 이어간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이어지듯 말이다.
이 작품에도 고비가 있다. 서로의 삶이 잘 안 풀리다 보니, 누군가가 누군가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상처가 생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똥파리를 내쫓을 만한데, 착한 주인공은 똥파리에 집을 양보하고 본인이 나가기 위해 방을 구하러 다닌다. 당연히, 돈 없는 30대 백수가 집을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사람보다 집값이 비싼 곳이 서울 아닌가.
결말보다는 분위기가 좋은 작품
주인공이 새로운 집을 찾았는지, 김 부장의 해장국 가게는 장사가 좀 되는지, 싸부는 사모님과 화해를 했는지, 삼척동자는 공무원이 됐는지…… 작가에게 다소 미안하긴 하나, 『망원동 브라더스』를 읽으며 결말을 궁금해한 적은 없다. 대신 이 소설이 주는 분위기가 좋았다. 이 작품은 너무나 현실적인, 지독히도 현실적이라 공감할 부분이 많았던 덕택이다.
망원동 옥탑방에 4명이 모여 산다는 설정 자체가 현실적이다. 좁은 공간에 1,000만이 넘는 사람이 사는 서울에 관한 유비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인물은 싸우기도 하고, 보듬기도 하며 세상과 살아간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필자를 포함한 사람들 대부분도 화려하기보다는 다소 궁색한 삶을 꾸려나간다. 그런 세상에서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주변 사람 덕분이 아닐까. 설사 그 사람이 기댈 구석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기대면 적어도 36.5도의 따스함은 느낄 수 있으니까.
소설에 등장하는 술자리 장면을 볼 때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술 생각. 누군가와 함께 마실 수 있는 술 말이다. 둘째, 소설도 술과 비슷하다는 깨달음. 술을 마시다 보면,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해 마지막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소설도 이와 같다. 이 소설의 결말을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작품을 다 읽었는데도 이상하게 결말이 기억나지 않아서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다른 소설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한다. 그래서일까. 한 번 재밌게 읽은 소설은 두 번 읽어도 재밌다. 결말이 기억나지 않아서. 어쩌면 이야기는 인간과 끝까지 가야 하는 동반자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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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망원동브라더스, 김호연, 세계문학상,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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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웃기고 슬픈데, 망원동 8평 옥탑방만이 처절하게 유쾌하다! 연체된 인생들, 찌질한 네 남자가 코딱지만 한 망원동 옥탑방에서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대책 없는 포 트러블 브라더스가 뒤죽박죽 뒤엉켜 펼치는 고군분투 인생 재기 프로젝트. 오갈 데 없는 루저들, 언제 파산할지도 모르지만 대책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