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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내내 피는 한국의 장미를 아시나요?

『꽃, 마주치다』 기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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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책 『꽃, 들여다보다』가 동백꽃ㆍ수선화ㆍ난ㆍ배꽃ㆍ벽오동 등 매혹적이고 고상한 꽃과 나무를 옛 한시(漢詩) 속에서 찾아냈다면, 이번 책은 장미, 철쭉, 나팔꽃 등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꽃과 나무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들여다보기보다는 마주치는 꽃들의 이야기.



계절이 흔들리면 낙엽도 함께 떨어진다. 꽃도 지고 만다. 앙상한 모습의 겨울이 온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화가 나서 겨울이 온다고 여겼다. 데메테르가 곡식과 가축을 낳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화가 났을까? 페르세포네. 데메테르의 딸로서 천하일색이었다. 지옥의 신 하데스까지 반할 정도였단다. 그런 금지옥엽을 하데스가 납치한다. 딸을 잃은 데메테르, 어떤 곡식도 꽃도 자라지 못했다. 가축도 새끼를 배지 못했다. 위기가 왔고, 데메테르는 제우스에게 딸을 구해달라고 간청했다. 하데스의 결혼을 위해 모른 체 하고 있던 제우스는 결국 중재에 나서야했다. 그 결과, 페르세포네는 1년 중 4개월(3분의 1)은 하데스와 보내고, 나머지 기간은 데메테르와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와 있는 동안에는 곡식이 자라지 않고 땅의 생기가 사라졌다. 그녀가 땅위로 올라오면 땅도 생기를 되찾아 초목이 되살아나고 꽃이 피었으며 곡식이 열매를 맺었다. 그리스인들에게 겨울은 데메테르가 페르세포네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바로 그 기간이었다.

곧 데메테르가 페르세포네를 하데스에게 보내야 할 즈음인 지난 11월 15일, 올해 얼마 남지 않은 꽃을 만났다. 꽃도 사라지는 계절을 목전에 두고 꽃 때문에 만났다. 옛 시, 옛 그림, 그리고 꽃에 대한 책 『꽃, 마주치다』 로 저자와 독자가 마주쳤다. 앞선 책 『꽃, 들여다보다』 가 동백꽃ㆍ수선화ㆍ난ㆍ배꽃ㆍ벽오동 등 매혹적이고 고상한 꽃과 나무를 옛 한시(漢詩) 속에서 찾아냈다면, 이번 책은 장미, 철쭉, 나팔꽃 등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꽃과 나무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들여다보기보다는 마주치는 꽃들의 이야기.


마주치는 꽃들에게 인사를

기태완 교수가 골목에 핀 꽃을 한 가득 품고 나타났다. 아직도 피려는 장미도 있다. 그것이 장미의 속성이라고 설명한다. 드물게 겨울에도 피는 것이 장미란다. 조선시대에도 그래서 ‘사계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사계절 내내 피는 꽃, 장미는 추위에 강한 성질을 가졌다. 다만 사계화라는 용어는 한반도에서만 썼다. 중국 문헌에는 월계화를 조선 사람들이 사계화라고 불렀다고 돼 있다. 채 피지 않은 장미가 나름의 상상을 하게 만든다며, 기 교수는 독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피어날까’ 상상해 볼 것을 권한다.

“장미를 꽃의 여왕이라고 하는 것은 서양 문화의 영향 때문일 것입니다.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의 화왕은 모란이었으니까요. 근대 이후 서구적 취향의 꽃 문화가 유행하면서 모란은 본의 아니게 장미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 하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장미를 근대 이후에 서양에서 처음 건너온 외래종으로 여기기까지 합니다.”(p.55)

그가 다음으로 꺼내든 것은 아파트 화단에 가면 울타리 목으로 많이 볼 수 있는 도장나무다. 이름처럼 목질이 강해서 도장을 많이 만드는데 쓰인단다. 누에들이 먹고 비단을 뽑는 뽕나무가 다음 차례다. 뽕나무 가지를 들고 기 교수가 한 마디 던진다. “지금 우리가 키우는 누에는 사람이 먹기 위해서 가꾼다. 동충하초나 뽕의 열매인 오디처럼. 그런 것을 하다보면 누에가 필요 없어지고 우리 입에서 비단실이 나오지 않을까(웃음).” 가죽나무가 등장한다. 도종환 시인의 詩 가운데 「가죽나무」가 있었다. 詩의 일부는 이렇다.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것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도종환, 「가죽나무」 중에서
기 교수는 비슷한 것으로 ‘참죽나무’도 있음을 설명한다. 가죽나무는 ‘가짜 중 나무’, 참죽나무는 ‘진짜 중 나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가죽나무는 냄새가 고약하다. 『장려』라는 책에는 ‘저력’이라고 돼 있단다. ‘쓸모없는 나무’라는 뜻으로 저(樗)를 쓴다고도 한다. 옛 선비들이 ‘저력지제’라 하여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나무로 삼은 탓이다. 저력은 목수가 먹줄을 대지 못한다. 나무 특성상 옹이가 많고 비뚤하게 자라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장수를 누리는 것이 저력이다. 2500년 전 장자가 가죽나무와 상수리나무를 보고 저력이라고도 말했다고 기 교수는 전했다.

“잡초의 대명사인데, 춘궁기에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켜준 것이 명아주다. 옛 문헌에 “명아주꽃 끓여먹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풀인데, 그냥 놔두면 사람 키보다 훨씬 커진다. 지팡이를 만들 수도 있다. 그 지팡이를 ‘청려장’이라고 부른다. 잡풀이지만 인간 생명을 오랫동안 구제해줬다. 깃털처럼 가볍지만 단단하다.”

사철나무도 든다. 동청수(겨울에도 파란 나무)라고 불리는데, 지조나 충절을 상징하는 나무다. 묘하게 생긴 이파리를 가진 닥나무는 섬유질이 질기고 거칠다. 대신 변질이 안 된다. 덕분에 닥종이로 많이 쓰인다. 기 교수는 백숙 끓일 때 넣는 것으로 음(읍)나무의 이파리를 보여준다. 싹은 두릅과 같다. 가시가 많다. 싹 날 때는 두릅과 같은데, 이파리가 피면 두 개는 다르다고 한다.




꽃처럼 나무처럼 평생 아름답기를

장미는 외국에서 들어온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보존을 못해서 서양 장미를 특허권 주면서 쓰고 있을 뿐이지, 전통 장미가 많다. 다만 그 모습은 알 수가 없다. 그림만 있어서 상상은 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백합은 우리나라의 재래종일까, 서양에서 왔을까? 백합은 흰색인데, 빨간 백합이 있을까? 없다. 백합에서 백은 ‘흰 백(白)’이 아닌 ‘일백 백(百)’이다. 왜 일까? 뿌리가 양파처럼 백 겹으로 돼 있다는 뜻이다. 서울에는 없는 이파리가 있는데, 책에 나온다. 비파나무다. 이파리로 차를 끓이는데 사용하며 남해안 일대에서 주로 자란다. 정몽주가 남경에서 그걸 먹고 집에서 키우겠다고 씨앗을 가져왔는데, 북방이라 키우질 못했다. 나도 20년째 키우고 있는데 크게 키울 수가 없다. 이파리가 봄에 돋아나는데 감명을 받는다. 겨울에는 안으로 들여놓고.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다(웃음).
“비파는 장미과의 상록 작은 교목으로 중국과 일본의 남방이 원산지입니다. 그 잎이 서역의 악기 비파와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일설에는 그 열매가 비파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비파나무는 높이가 5미터 정도로 살구나무 크기이며, 가지는 굵고 긴 잎 뒷면에는 연한 노란빛을 띤 갈색 털이 빽빽이 납니다.”(p.278)
요즘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은행이다. 은빛 은(銀), 살구 행(杏). 성균관에 은행이 심어진 것에는 에피소드가 있다. 성균관은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행은 강단이라는 뜻도 있다. 조선조 선비들이 은행나무라고 생각해서 심었는데, 그 행이 알고 보니 살구나무였던 거지. 글자가 같아서 착각했다는 얘기도 있다. 은행잎은 오리발처럼 생겼는데, 한자로 ‘압족수(오리발나무)’ 혹은 별칭으로 ‘공손수’라고도 한다. 화석식물이기도 하다. 가장 원시의 식물이라는 거지. 식물의 가장 발달된 상태가 꽃가루다. 그런데 은행나무는 발전을 하지 못했다. 정자와 난자가 합쳐지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를 갖고 있다. 숫나무, 암나무, 그렇게 원시적으로 번식하는 나무다. 소나무 이파리는 몇 개일까? 2개 혹은 3개다. 어떤 것은 5개짜리가 있다. 그것을 오엽송이라 부르는데, 바로 잣나무다. 이파리가 2개냐 5개냐에 따라 소나무와 잣나무로 나뉜다. 은행나무를 단순히 아는 것보다 관련된 것을 알아놓으면,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벚꽃은 우리나라 것이 아니냐?

벚꽃은 동아시아에서 많이 나온다. 관상용으론 심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특산 왕벚나무는 지리산 등에 있다. 일본 사람들은 에도시대에 벚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국도에 5리마다 오리나무를 심어서 이정표로 삼았고, 이십리나무도 있다. 일본인들이 벚꽃을 가로수로 심고 축제를 한지 몇 백 년 되다보니 일본의 꽃처럼 상징화됐다. 한중일 3국과 베트남은 같은 문화권인데,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 호치민도 다산의 『목민심서』를 끼고 다녔다. 동아시아는 그렇게 문화를 공유했었다. 꽃은 하나의 문화다. 현대인만 꽃을 즐긴 것은 아니다. 연산군도 창덕궁에 연산홍 1만 그루를 심게 할 정도로 꽃 마니아였다.
“꽃과 나무는 잠시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절로 편안하고 맑아진다. 이는 자연이 인류에게 준 최고의 좋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p.5)
옛 문헌을 보면 남자들이 주로 꽃을 말했다. 여자보다 남자들이 꽃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했다는 건가?

여자도 꽃을 좋아했는데, 시문을 남기지 않았을 뿐이지. 기록으로 남은 것은 사대부 남자 문필의 것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이 꽃을 더 좋아하지, 남자들이 좋아할까(웃음).

옛날에는 꽃으로 향수를 만들었나?

향주머니, 액체로도 만들었다. 후궁들은 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별 향수를 다 썼다. 유럽 사람들만 향수를 쓴 것이 아니다. 명나라에 『향승』 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동아시아 모든 향의 제조법과 종류를 모아놓은 책이다.
“명나라 문인 주가주(1582~1658)가 쓴 『향승』 은 세상의 온갖 향에 대한 기록을 집대성한 책인데 그중에서 찔레의 향을 운향이라고 하고, 그 품격을 일사라고 했습니다. 운향은 운치 있는 향이고, 일사는 인품이 맑고 고상하며 세속의 명예와 이익을 탐하지 않는 은자를 말합니다.”(p.73)


[관련 기사]

-프로방스의 따스한 파란 차양의 꽃집 - 플레르 드 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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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고 지친 당신에게 ‘여우숲’을 권합니다 - 김용규
-“산에서 만난 신기한 나무들, 이름이 궁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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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마주치다 기태완 저 | 푸른지식
담장 밑 꽃들은 언제부터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일까? 놀랍게도 이들은 많게는 수천 년, 적어도 오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름을 가지고 사랑받아 왔다. 옛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꽃이라 하여 매난국죽만 떠올리는 것은 오산이다. 패랭이꽃, 봉숭아, 작약, 오얏(자두), 나팔꽃, 맨드라미, 앵두나무, 수국 등 친근한 꽃들에 대한 옛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은 대단하였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와 관련된 옛 시와 그림도 같이 살펴보는 매혹적인 꽃 탐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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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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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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