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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을 맛있게 즐기려면 면에 가위질하지 말 것

『음식강산』 박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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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음식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 역사와 삶을 돌아보는 일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전 국토에 걸쳐 산과 강이 발달한 한반도는 절기마다, 지역마다 온갖 음식이 풍성했다. 『음식강산』은 이런 풍요하고 다양한 음식 가운데서도 우리 민족이 즐겨왔던 대표적인 음식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요리와 맛으로, 어떤 문화로 삶 속에 면면히 존재해왔는지를 담아내고 있다.



웹과 모바일에 음식 사진이 차고 넘친다. 맛집 블로거는 전성시대를 맞았으며, 음식을 먹기 전 사진을 찍는 일이 일상이 됐다. 바야흐로 ‘음식 포르노’의 시대. 음식은 고객의 입맛과 위보다 눈을 만족시켜야 한다. 먹는 즐거움보다 시각적 향락이 더욱 중요해졌다. 먹는 사람도 포르노를 소비할 때처럼 대상과 거리를 둔다. 음식 자체에 담긴 세계보다 음식의 이미지를 즐긴다. 소외다. 웹에 오른 음식 사진은 거기서 거기다. 누가 쓴 것이든 비슷해졌다. 음식에 대한 사유는 극히 소수의 것이 돼버렸다. 진짜의 것을 향한 향락이 아닌 시뮬레이션 향락에 빠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진 속 음식은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고, 따라서 죄책감도 없다.

그런 시대, 음식의 역사와 유래, 이야기를 찾는 일은 진짜 맛을 향한 갈망이다.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정한 ‘숟가락젓가락데이’인 9월 11일에 그런 이야깃거리를 만났다. 서울 홍대 가톨릭회관, 『음식강산』 의 박정배 저자를 초청해 ‘내 생애 최고의 음식-음식강산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열렸다. 냉면, 문어, 순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음식 포르노가 아닌 진짜 맛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


냉면의 계보학

박정배 저자, 음식의 세계로 자신을 이끈 것이 냉면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냉면은 그래서 각별하다. 냉면만 알아도 한국 면 역사의 반을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음은 그가 내세운 한국 냉면의 계보학으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평양냉면을 먼저 꺼내들었다.
 


을지면옥 평양면옥 계통 (양지국수)

“지금 서울의 냉면 가문을 형성하고 있는 대표 냉면이다. 평양에는 냉면 종류가 많았다. 닭, 꿩 등의 육수도 있었지만 평양냉면 대부분은 동치미를 썼다. 그러나 서울에 동치미가 없어서 국물을 어떻게 낼 것인가 고민한 끝에, 서울에 탕(설렁탕)문화가 있어서 양지를 이용한 육수를 냈다. 장점은 면이 깨끗하다는 것. 을지면옥의 특징은 고춧가루를 뿌린다. 부패방지를 위함이 가장 큰 이유이며, 메밀과 육수 모두 차가운 성질이라 열을 돋우기 위해서 고춧가루를 쓴다. 평양면옥, 을지면옥이 평양냉면의 적자는 아니나 서울에서 가장 번성하고 있는 냉면점이다.”

우래옥 봉피양 계통 (엉덩이 다리살)

“엉덩이 다리살은 질긴 부위다. 우래옥과 봉피양이 이 부위를 통해 냉면을 만든다. 내가 아는 한, 냉면을 가장 고급스럽게, 비싸게 만드는 집이다. 우래옥이 먼저였는데, 우래옥 주방장이 봉피양으로 옮겼다. 이 주방장은 1950년대부터 있던 분이다. 전 세계에서 차갑게 국물을 만들어서 먹는 면은 없다. 그만큼 정말 만들기 힘들다. 그래서 이 집이 비싸다. 고기만으로 육수를 내는 일은 엄청 힘들다. 그래서 대체재로 쓰는 것이 MSG다.”

남포면옥 계통 (동치미 육수)

“서울시청 뒤에 있는 집이다. 한국은 동치미를 만들기 힘든 기후다. 평양에선 동치미가 잘 됐는데, 서울은 안 됐다. 그런데 이 집은 하고 있다. 당시 평양에서 70~80%가 냉면은 동치미로 했다. 평양은 소, 메밀, 동치미가 유명했다. 공통점이 가을에 나오는 것이다. 왜 겨울에 냉면을 먹었을까. 너무 추워서 방에 불을 많이 땠다. 땀나고 더워서 장독대에서 국물을 떠오고 면을 가져와서 먹었다. 이게 냉면이었다. 동치미 담그는 장독대에 고기도 넣어놨다고 하더라.”

대구냉면 대전냉면 (양지국수+식초+간장)

“기록에 의하면, 부산안면옥이라는 집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냉면집이다. 1907~1908년에 만들어졌다더라. 이때 평양냉면집들은 주인 성(姓)을 따서 가게 이름(김면옥, 박면옥 등)을 붙였다. 평양에서 안면옥 모르면 간첩이었는데, 부산안면옥에 많은 평양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부산에서 시작해서 부산안면옥이었다. 형제가 했는데, 형은 돈 많이 벌었다며 식당을 접었다. 대신 동생이 대구로 가서 이름을 그대로 쓰면서 대구의 부산안면옥이 됐다. 특징은 면 색깔이 갈색이다. 국물은 양지를 썼는데, 동치미 국물은 시큼한 맛이 나니까 식초와 간장을 약간씩 넣었다. 한약재도 약간 넣고. 시큼하다. 평양과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지.”

이어서 함흥냉면 계통도가 언급됐다. 함흥에 가면 유명한 냉면집으로 1960~1970년대에 세워진 ‘신흥관’이 있었다. 함흥냉면하면 지금 비빔냉면을 떠올리지만, 북한의 함흥냉면은 감자전분으로 만들었다. 한반도에 감자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 함흥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함흥냉면은 북한의 함흥에는 정작 없다. 함경도(함흥)에서는 감자전분으로 만들면 녹마국수, 건더기가 없는 것은 회국수라고 불렸다. 함흥냉면이라는 이름 역시 없었다.

“지금 한국 함흥냉면의 원조 격인 오장동 함흥냉면은 1953~1954년에 열었는데, 속초 함흥면옥이 실은 먼저였다. 당시 속초엔 함경도에서 온 분들이 꽤 많았다. 그러면 오장동에 왜 함흥냉면이 생겼을까. 오장동이 건어물의 중심지였다. 속초에 계신 분들은 또 함흥에서 속초로 넘어온 부자들이었다. 그들이 건어물을 오장동 중부시장에 팔았다. 중부시장은 평양 사람들의 본산지였고. 중부시장에 최근 음식 붐이 불면서 미어터지고 있다. 냉면을 먹을 때 중요한 것은 가위질하면 안 된다. 냉면은 원래 장수의 상징이고, 함흥에서는 연인들이 함께 먹었는데 쉽게 끊어지지 않으니 면을 먹으면서 키스도 했다(웃음). 지금은 냉면을 내놓으면서 자르고 주니까, 문제다. 메밀로 만든 것은 비벼 먹으면 안 되는데, 함흥냉면은 점성이 강해서 괜찮다.”

황해도 냉면(해주 사리원)과 백령 인천냉면

“황해도 냉면은 해주 사리원 쪽인데, 평양과 약간 다르다. 국물은 기본적으로 돼지 육수로 만든다. 면발도 두껍고 매끄럽다. 돼지 육수에 단맛이 나는 까나리 액젓을 넣는다.”

진주냉면

“문제적 냉면이다. 50~70년 됐다고 하는데, 진주냉면은 역사를 믿기 어렵다. 즉, 역사를 다시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진주냉면은 2000년대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음식사업자들이 진주시와 함께 만들었다. 육수가 해산물 육수고, 육전을 올린다. 면발은 좋지 않다.”

부산밀면

“부산이 언덕의 도시다. 언덕 밑에는 토박이가 살고 갈 데가 없던 피난민들이 위로 올라갔다. 내게 사진도 있는데, 1951년 부산엔 평양면옥이 있었고, 1954년 국제시장에 함흥냉면집이 있었다. 간판에 보면 회국수라고 쓰여 있다. 실향민이 부산에 왔는데, 재료가 없어서 밀가루를 사용했다. 그나마 있던 고구마전분을 섞어서 1958년에 밀가루 70, 고구마전분 30을 섞어 부산냉면, 즉 밀냉면으로 불리는 냉면을 만들어냈다. 함흥식과 평양식이 섞였다. 그리고 가야동에 있는 문제적 가야밀면이 탄생했다. 1960년대 100% 밀가루로 만든 냉면을 만들고 이때부터 밀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개금밀면

“부산 개금동에 있는 건데, 한약재 육수를 개발했다. 취생몽사라는 파워블로그이자 작가가 시민들과 함께 만든 부산 밀면 랭킹에 의하면 1위가 개금밀면이다. 다음과 같은 순위다.

1위 개금밀면
2위 춘하추동
3위 국제밀면
4위 시민냉면
5위 수영원조소문난밀면

또 냉면과 막국수는 기본적으로 같은 음식이다. 국물이 같고 면발이 같다. 1930년대 평양에서 검은색 흑면을 막국수라고 부른 <매일신보>기사가 있다. 메밀은 검은색이라 흑면인데, 왜 굳이 막국수라고 했을까. 추론컨대, 그동안 막국수는 막, 방금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마구 만든’이라는 의미 두 가지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싶다.”



맛있는 문어를 먹기 위해서는

박정배 저자는 냉면에 이어 문어를 화두로 꺼냈다. 문어가 동해안이 중심이 된 이유에 대해, 문어의 성질과 바다의 특징을 들었다. 즉, 문어는 돌 틈을 좋아하는데, 동해안은 돌이 많은 해안가다. 서해와 남해는 그렇지 않다. 어부들에 의하면 10m 전후에서 잡힌 문어가 맛있는데, 모든 문어의 주산지가 동해안에 몰려 있다는 것.

“안동과 영주 등 경북은 문어문화권이다. 전라도에 홍어와 꼬막이 있다면 경상도에는 문어가 있다. 특히 내륙의 양반문화가 성행한 곳이 숙성 문어 문화권이다. 해변은 오히려 문화가 없고 전부 내륙에서 소비됐다. 해변은 즉석에서 삶아서 숙성문어가 없었다. 문어는 삶은 뒤 하루 놔두고 물기를 뺀 것이 가장 맛있다. 이게 숙성이다. 아시아에선 한국과 일본만 문어를 먹는다. 문어의 뜻은 ‘민어’다. 민머리, 민둥산에서의 ‘민’이다.”

저자는 맛있는 문어를 먹는 팁을 건넸다.
-문어는 집에서 삶으면 맛이 없다 : 문어 잘하는 집에 가면 어마어마하게 불이 세다. 불의 문제가 가장 크다.
-문어는 여자가 남자보다 맛있다 : 훨씬 부드럽다. 남녀 구분을 하려면 남자 문어는 두 번째 다리 끝에 보면 삐죽하게 뭔가 나와 있다.
-문어의 몸무게가 5~10kg일 때 가장 맛있다
-가장 맛있는 부위는 다른 끝 부위다

지역마다 다른 순대

저자는 지역마다 다른 재료로 만든 순대 이야기를 꺼냈다. 함경도는 대창으로 만드나, 평양도는 소창으로 만든다. 충청과 경기도는 곡물순대, 서울은 당면순대, 전라도는 피순대다. 그는 순대는 우리말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아울러 순대는 유목민의 고기문화였다고 언급했다. 과거 유목민은 땅에 짐승의 피를 흘려선 안 됐다. 땅은 신성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짐승에게서 피가 나오면 창자로 받아 맨 것이 순대의 시작일 거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로, 문헌상으의 ‘갹’이라는 것을 순대의 기원으로 봤다. 갹은 돼지창자에 고기를 넣고 구운 것이라고 한다.

순대의 어원 : 셍지(피, 선지) 두하(창자), 순타이(피를 담는 창자)

“평안도 순대(평양순대)는 멥쌀을 넣었고, 함경도 순대는 대창을 사용해서 크다. 전라도 순대는 똥순대(돝순대)라고 불렸는데, 소창에 선지만 넣는다. 임실에는 ‘암뽕순대’가 있는데, 아주 고소하고 식감이 좋다. 충청도는 병천순대가 중요한데, 60~70년대 도축장이 생기면서 남는 부산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었다. 야채, 선지가 많이 들어가고, 촉촉하고 맛있다. 제주도 순대는 ‘수애’라고 말하는데, 메밀에 마늘, 파를 넣어서 만든다. 제주에선 잔칫날 무조건 돼지고기를 먹어서 뻑뻑한 순대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파는 데가 없다. 이게 가장 오래된 순대일 가능성이 있다. 당면순대(백순대)는 산업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70년대 수출할 수 없는 돼지 부산물에 당면을 넣어서 만들었다. 가리봉동에서 유행했다. 찹쌀순대하면 신의주순대가 떠오르는데, 11년 전에 만들어진 브랜드일 뿐이다. 신의주와는 상관없다. 경상도에도 순대 문화가 있는데, 중요한 지점이 돼지국밥이다.”




Q&A

하루에 6군데 취재한다는데, 비결이 뭔가?

물론 음식을 다 먹진 않는다. 음식을 한 점 먹고 모든 것을 꿰뚫진 못한다. 나는 스스로를 ‘음식평론가’가 아닌 ‘음식감별사’라고 부른다. 되도록 탄수화물은 적게 먹으면서 6끼를 먹고 버틴다. 요령은 없다. 직업상 몸이 적응된 것 같다. 지난 5개월 사이엔 10kg을 뺐다.

진주가 냉면에 해산물 육수를 쓴 이유가 있나?

진주는 사천과 가까운데, 옛날엔 해산물을 쓰지 않았다. 만들어진 역사다. 사천에는 해산물 육수에 육전이 없는 냉면이 있다. 진주냉면이 거기서 영감을 얻은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다.

음식의 역사에 대해 취재를 어떻게 하고, 취재원 발굴은 또 어떻게 하나?

현장과 문헌을 크로스 체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귀한 사료를 발견했는데, 거기 안면옥이 있었다. 지인을 통해 안면옥이 대구에 있다고 들어서 확인하러 갔다. 역시, 맞더라. 교차 취재를 한 거지. 취재는 즐겁고 재밌는데, 힘든 건 자료다. 서울에 있으면 나는 국회도서관에 주로 있다. 문헌을 찾는 게 일이다. 70%는 문헌을 찾고 30%는 글을 쓴다. 책, 옛날 신문잡지 등을 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집들이 있다. 맛집이라기보다 문화적으로 중요한 집이고, 지역별 전문기자가 있어서 깊이 알고 있다. 이것을 종합하면 큰 틀이 나오더라.

원조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음식을 먹으면서 제대로 된 음식을 어떻게 구별하나?

원조집은 어렵다. 역사왜곡도 심하고, 구별하기도 힘든데, 공부를 하다보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게가 간간히 있다. 진짜 원조집은 음식도 잘하고 맛있다. 어렸을 때 좋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커서도 못 먹는다. 좋은 음식은 정직한 주인이 하는 집이고, 자기 철학이 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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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강산 박정배 저 | 한길사
오늘 우리의 음식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 역사와 삶을 돌아보는 일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전 국토에 걸쳐 산과 강이 발달한 한반도는 절기마다, 지역마다 온갖 음식이 풍성했다. 『음식강산』 은 이런 풍요하고 다양한 음식 가운데서도 우리 민족이 즐겨왔던 대표적인 음식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요리와 맛으로, 어떤 문화로 삶 속에 면면히 존재해왔는지를 담아내고 있다. 음식칼럼니스트인 저자는 두 발로 국토 현장을 누비며 직접 맛을 보고, 두 눈으로 실체를 확인하며, 옛 자료를 섭렵해가며 우리 음식의 기원과 뿌리를 촘촘히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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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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