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사진을 보았다. 뼈 마디는 굵었고 굳은살은 크게 박혀있다. 겉으로만 보면 예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발을 보며 많은 이가 찬사를 보낸다. 한 발레리나의 땀과 노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열정을 다하는 강수진의 모습은 그녀가 멘토로 존경을 받는 이유이다. 그녀의 삶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사람들이 강연장을 찾았다. 강수진은 자신이 전하고 싶은 말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전달했다.
늦었다고 포기하지 마라
강수진은 발레를 늦게 시작했다. 또래 친구 중에서는 이미 8년에서 10년이나 발레를 배운 아이도 있었다. 걸음마 단계부터 시작한 발레는 잘하지도 못했고 흥미롭지도 않았다. 하지만 당시 발레 선생이었던 캐서린에게 좋게 보이려는 마음 하나로 연습을 거듭했고, 지금은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될 수 있었다. 걸음마 시절에 발레를 포기했다면 지금의 강수진은 없었다.
강수진은 할 수 있는 만큼만 목표를 설정하라고 충고한다. 늦게 시작한 사람은 조급해지고, 서두르다 보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목표를 세우곤 한다. 강수진은 거대한 꿈도 좋지만, 작은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 보라고 권한다. 오늘 할 일을 정하고, 그만큼만 달성한다. 만약에 시간이 남는다면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조금씩 당겨서 하면 된다. 이런 생활을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겨나고, 자신감이 생기면 열정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고 강수진은 말한다.
열심히 한 나를 인정해라
강수진은 동양인, 한국인이기 때문에 발레를 하면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질문을 받고 나서야 강수진은 인종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강수진은 발레를 하면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익을 본 적은 있어도 손해를 본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동양인이기 때문에 나는 안 되요”같은 말은 단순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실력만 있다면 어디서나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강수진은 우선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보라고 권한다. 일단 열심히 살면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 밖으로부터 행복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자기 내부에서 행복을 꺼내서 살면서 자기 자신을 인정한다. 처음 하루는 열심히 살기 힘들지만, 일단 하루를 살고 나면 그 다음 날은 조금 쉬워진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도 인정해주는 날이 온다.
시간을 지배하라
강수진의 일상은 단순하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발레 동작을 반복하는 삶이다. 강수진은 이런 습관을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길들였다. 혼자 독서실에 앉아 있는 느낌이 좋아서 누구보다 빠르게 등교했고, 그 때의 습관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구도자적인 삶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었을까?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른 사람만큼 연습하면 다른 사람과 같은 수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강수진도 연습을 하기 싫은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때에도 10분만 몸을 움직이면 가슴에서 열정이 생겨난다. 연습은 땀이 나기 전이 가장 힘들다. 땀이 나기 시작하면 재미가 생긴다. 강수진은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열심히 하다 보면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있고, 달라지는 모습을 포착하면서 재미가 생겨난다. 강수진은 새벽 시간에 무언가를 하는 걸 선호한다. 반대로 저녁 늦게 집중이 잘 되는 사람도 있다. 강수진은 사람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리듬에 맞춰서 습관을 만들어가면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미모 관리부터 포기할 수 없는 꿈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미모 관리 비결이 궁금합니다.
저의 아름다움은 열정적인 삶에서 나옵니다. 요새 보면 예쁜 사람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예뻐도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개성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누가 보느냐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독창적이고 개성이 있다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감성 표현을 위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자연스러운 감성 표현을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걱정이 되기 때문에 잘 안 됩니다. 다 갖춰 놓은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요새는 기술이나 감정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개성이 중요합니다. 똑같은 역을 맡아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만 하는 느낌이 들고, 어떤 사람은 역에 푹 빠져서 하는 느낌이 듭니다. 역에 푹 빠져서 하기 위해서는 결국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한계점에 부딪치곤 합니다. 이런 한계점을 어떤 마음으로 극복해야 하나요?
발레를 하면 자주 다칩니다. 매일 다치다 보면 습관이 됩니다. 부상이 반복되면 어느 정도 아픈지 감이 옵니다. 고통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악물면 발레를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발이 뭉개져서 토 슈즈를 신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그 때는 슈즈에 고기를 넣어서 무대에 올랐습니다. 척추가 부러지고 발이 부러진 적도 있었지만 공연을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아파서 다리가 올라가지 않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 만족합니다.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크게 보면 안 됩니다. 아픈 상황에서 연습을 한 시간 더 할 생각을 하면 못합니다. 하지만 한 동작만 더 해본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면 신기하게 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어떤 좌절과 실패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오로라 공주’ 때였습니다. 열이 40도가 넘어가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정신력만 믿고 공연을 했습니다. 공연을 어떻게 마쳤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합니다. 그래도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열이 나면 공연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시도 해봤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공연을 실패하면 그 때는 너무 싫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실패한 공연이 성공한 공연보다 더 감사합니다. 슬럼프에 빠지면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립니다. 주변에서 좋은 이야기를 해줘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그 때는 자기 만의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땀을 흘리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합니다. 고추 가루나 고추장을 듬뿍 넣은 매운 음식을 먹고 사우나를 합니다. 한차례 땀을 빼면 머리가 개운합니다.
언어 문제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서 유학할 때, 처음에는 귀머거리, 눈뜬 장님으로 살았습니다. 요새는 어학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외국에 나가는 편이지만, 저는 영어 수업 시간에 졸던 아이였습니다. “My name is Soojin” 정도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다 살게 마련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말도 배웠습니다. 겁내지 말고, 문법 따지지 말고, 눈을 마주치면서 소통하려고 하면 언어는 금방 배웁니다.
어릴 때는 발레리나가 꿈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서 지금은 발레와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레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발레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린 시절 그대로입니다.
무엇이든지 시작하려고 할 때 심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 취미로 하세요. 인생은 짧습니다. 발레를 하고 싶으면 취미로 하세요. 건강에 좋습니다. 저도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서 연습하기 싫은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음악을 들으면서 땀을 흘리면 몸에는 좋으니깐, 건강을 위해서 연습을 합니다. (질문자가 취미로는 발레를 하고 있지만, 취미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자) 욕심이 문제에요. 욕심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나는 발레를 직업으로 삼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해”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생각하면 불행해집니다. 취미로 발레를 하다가 실력이 되면 어딘가에서 뽑아가겠지요. 만약에 뽑히지 않는다면 그만큼 열심히 했으니까 자기 어깨를 두드려 주세요.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카리스마가 나오지 않습니다. 스트레스만 분출됩니다. 자기 성적이 85점 정도라면 86점, 87점 조금씩 성적을 올려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97점도 맞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98점을 맞으려고 달려들면 원하는 성적을 얻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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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강수진 저 | 인플루엔셜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수없이 많다. 언제나 최초 그리고 최고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녀. 존경하는 인물, 만나고 싶은 인물 순위에 언제나 상위에 오르는 그녀, 발레리나 강수진. 강수진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강수진은 수없이 많은 인터뷰에서 '내게는 꿈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하루를 발레로 시작하고, 모두가 발레를 그만두는 32살에 뼈에 금이 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재기에 성공하고, 47살이 된 지금까지 발레를 위해 모든 삶을 바치는 그녀, 과연 꿈이 없다면 그게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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