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초침이 다섯 걸음을 내딛는 시간, 5초. 또 하나의 어린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렇게 하루 1만 8천 명의 아이들이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기아대책 본부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외의 아이들에게 식량과 사랑을 전하고 있다. ‘꿈을 이루는 사람’ 북 콘서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되었다.
나눔의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뜨거운 가슴을 가진 많은 이들이 흔쾌히 동행의 뜻을 밝혀왔다.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을 출간하고 인세 수익 전액을 빈곤지역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병원의 설립 기금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이지성 작가와 김종원 작가,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통해 꿈과 열정을 이야기한 발레리나 강수진이 참여해 큰 힘을 실어주었다. 이밖에도 10년 가까이 기아대책 본부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연기자 김혜은, 부활의 ‘사랑할수록’을 부른 가수 김재희, 시각 장애를 딛고 재즈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정명수도 함께했다.
톤도에는 있고 우리에게는 없는 것
북 콘서트의 사회를 맡은 김혜은의 소개로 가수 김재희의 첫 번째 무대가 시작되었다. 그는 이지성 작가와의 인연으로 이번 행사에 대해 알게 된 후 나눔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으로 함께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사랑할수록’ 과 ‘나는 행복한 사람’을 열창한 그의 무대가 끝난 뒤 작가 이지성과 김종원의 강연이 이어졌다. 두 작가는 세계 3대 빈민 도시로 꼽히는 필리핀 톤도를 함께 찾아가 그곳의 아이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나눔의 꽃을 목격하고 돌아와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을 공동 집필했다.
이지성 :
톤도에서 자란 아이들 중에 필리핀의 일류 대학이나 세계 명문 대학에 장학생으로 다니는 경우도 있어요. 그 아이들이 졸업할 때 국내 대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고는 하죠. 그런데 그것들을 모두 거절하고 다시 톤도로 돌아와요. 여전히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톤도의 아이들을 섬기고 낮은 데 내려가서 꽃으로 피어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고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으로 쓰게 된 거죠.
이지성 작가는 톤도에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인문학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다. 그것은 철학이나 미학, 역사와 같은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 된 관심, 그것으로부터 피어나는 고민과 실천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가는 이를 두고 ‘일상의 인문학’이라 말했다.
이지성 :
내가 환경미화원이 아니더라도 길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고, 나와 친하지 않은 친구라도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저는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멋진 인문학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인문학 책들이 있지만 ‘결국 우리가 이런 책들을 읽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아름다운 가치들을 실천해 나가는 것, 저는 그게 바로 인문학의 목표지점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종원 작가는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 안에 담긴 톤도의 모습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고백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최연소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억대 연봉을 받았던 그가 돈을 ‘버는 즐거움’이 아닌 가치 있게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몸속에 피가 아닌 돈이 흐르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는 작가는, 톤도의 아이들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사랑이 흐르는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했다. 톤도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가치관 교육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과 톤도 아이들의 가치관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김종원 :
한국의 아이들이 많은 교육을 받고 있지만 정작 ‘내가 왜 살아야 하고 왜 배워야 하는지’ 가치관이 서 있지 않다는 거예요. 당연히 ‘내가 그 동안 왜 살았는지’ 알지 못하고 꿈도 없는 거죠. 톤도의 가치관 교육은 이런 거예요. 땅 바닥에 쓰레기와 돈이 떨어져있다면 쓰레기를 먼저 주워요. 지금 우리는 다 돈만 줍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돈 줍느라 너무 힘들어요’하고 힐링이 필요한 거예요. 필리핀 톤도는 다 쓰레기를 줍고 있으니까 바닥에 남은 돈을 함께 나눠 쓰면 돼요. 진정한 경쟁이란 남과 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하는 거잖아요. 톤도의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은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사회에서 ‘꿈’이라는 단어는 ‘직업’의 다른 이름이 되어버렸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닮은 듯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우리의 아이들처럼 톤도의 아이들도 의사가 되기를, 선생님이 되기를, 요리사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톤도 아이들의 꿈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의사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요리사가 되어 ‘톤도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바람까지가 그들의 꿈이다. 물론 한국의 아이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한 맹세대로 기꺼이 낮은 곳으로 찾아와 베푸는 삶을 사는 이는 많지 않다. 그것이 바로 김종원 작가가 이야기하는 톤도와 우리의 가치관 교육의 차이다.
강수진, 오늘을 살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이지성 작가와 김종원 작가의 강연이 끝난 후 기아대책 본부의 박재범 본부장의 강의가 이어졌다. 그는 기아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직접 만나 촬영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현장의 경험들을 들려주었다. 신발이 없어 맨발로 걸어 다니다 질병에 걸리는 아이들, 모유 수유를 통해 에이즈에 감염되는 아이, 모유 수유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빈 젖을 물리는 에이즈에 감염된 엄마,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가족을 목격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아이들, 죽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배부르게 먹고 싶다는 아이까지... 그들을 모두 안지 못하는 우리 가슴의 미적지근한 온도가 부끄러워지는 시간 속에서 박재범 본부장이 물었다. 과연 꿈이란 누구나 꿀 수 있는 것인가. 꿈조차 꾸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기를,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희망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박재범 본부장은 강의를 마쳤다.
‘꿈을 이루는 사람’ 북 콘서트의 2부는 정정섭 기아대책 본부 회장의 인사로 시작되었다. 함께 나누는 삶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기꺼이 재능을 기부해 준 이들과, 주말 오후에도 불구하고 콘서트장을 찾아와 뜻을 같이해준 많은 시민들에게 전하는 마음이었다. 이어 재즈피아니스트 정명수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시각장애로 인해 꿈꾸는 것조차 쉬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장애를 뛰어넘는 열정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준 그는, 쇼팽의 ‘즉흥환상곡’ 연주와 함께 가수 김범수의 ‘끝 사랑’을 직접 열창하며 다시 한 번 ‘꿈꾸는 이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마침내 발레리나 강수진이 무대에 올랐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출간을 맞아 바쁜 일정 속에서 한국을 찾았다. 짧은 체류기간 중에도 ‘꿈을 이루는 사람’ 북 콘서트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달려온 그녀였다.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무대도 아닌 세계 5대 발레단인 슈투트가르트에서 수석 발레리나로 활동하는 그녀에게 많은 이들은 성공의 비결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피나는 노력,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흘린 땀과 눈물. 하지만 발레리나 강수진에게도 시련과 유혹이 없었을 리 없다.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뛰어넘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지, 우리는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통해 그 비법을 들려준다.
강수진 :
저는 하루 24시간이 언제나 부족했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부터 발레 연습을 하는 거죠. 매일 발전하는 저의 모습에 재미를 느꼈어요. 그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사랑받는 발레리나 강수진이 되어 있었어요. 저도 사람이다 보니 지칠 때가 있죠. 연습을 하지 못할 때도 있고 하기 싫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몸이 아프거나 연습을 하기 싫을 때도, 나 자신에게 예의를 지키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단 10분이라도 연습을 했어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에요. 저에게는 ‘오늘 하루를 내가 열심히 살아 나가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서 산다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 같으면서도 가장 힘들다는 것을, 저도 해봤기 때문에 알아요. 하지만 큰 꿈을 꾸고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서 오늘을 살지 않으면 내일이 없어요.
발레리나 강수진은 욕심이 없었다. 프리마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욕심도, 오늘 하루 동안 많은 동작을 완성시키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하루에 한 동작씩,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만이 있었을 뿐이다. 토끼처럼 살지 않고 거북이처럼 살아서 결승점에 먼저 도착한다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매일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그녀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마음을 주고받는 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
‘꿈을 이루는 사람’ 북 콘서트의 마지막 순서로 세 작가가 함께 나누는 대담이 시작되었다.
김혜은 :
많은 분들이 현실의 경제적인 이유로 선뜻 나눔에 동참하지 못하고 계세요. 그런데 나눔에는 돈보다 마음이 먼저인 것 같아요.
이지성 :
나누는 일은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철로 위에 아이가 떨어져 있고 3분 후에 열차가 들어온다면, 구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나눔도 똑같아요. 아프리카나 톤도에는 선로 위에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10억 명 가까이 돼요. 그 아이들 모두를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생애 한 명의 아이를 구하고 갈 수 있다면 참 아름다운 인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눔의 가치는 나누는 사람에게는 작은 것이지만 받는 누군가에게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일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혜은 :
가난을 이유로 발레를 할 수 없는 아이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그런 아이들을 위해 강수진 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강수진 :
가끔씩 ‘베네피트 갈라’ 공연을 해요. 공연 수익금을 모아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거예요.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공연을 해서 수익금을 보내주는 일들이 자주 있죠.
김혜은 :
사람을 사람답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은 무엇일까요?
김종원 :
봉사 같아요. 진정한 봉사는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값진 걸 내려놓는 것이라는 걸, 봉사를 하면서 느꼈어요. 저의 경우에는 돈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봉사를 하게 되었고, 값진 인생을 살게 되었죠. 또 저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그러면서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강수진 :
사람마다 다르고 분야마다 다른 것 같아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많은 관객 분들이 오셔서 짧은 공연 시간 동안 바깥세상에서 못 받는 행복을 한 번이라도 느끼고 가세요. 저희는 공연을 통해서 행복을 받고, 관객들은 저희들에게 행복을 받고 가시죠. 행복의 의미를 너무 크게 생각하면 부담돼서 행복해질 수 없는 것 같아요. 너무 크게 바라보고, 크게 목표를 세우고, 큰 도움을 줘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죠. 우리한테는 물이 작은 거지만, 그 물이 없어서 죽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아요. 작게 생각하고 적게 줘도 그것이 항상 도움이 돼요. 욕심 부리지 않고 정성을 다하면 서로 행복을 주고받는 거죠.
이지성 :
이 순간 여기 함께한 모두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나의 마음으로 모인 거잖아요. 이런 마음들이 더 퍼져나갈 때 멋진 세상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혜은 :
드림 프로젝트를 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드림 프로젝트가 무엇인가요?
이지성 :
세계 최빈국 마을에 우물도 파주고,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짓는 프로젝트에요. 현재 4개국에서 진행이 됐고 올해 2개국 정도에 진행이 될 것 같아요. 이지성 드림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의 이름이 학교 벽에 새겨져요.
김혜은 :
저는 기상캐스터를 그만둘 때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떠나자’고 생각했거든요. 프리마 발레리나로서 강수진 씨는 어떠신가요.
강수진 :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오늘 최선 다하고, 오늘 공연을 잘 끝내고, 하루를 잘 끝내는 거예요. 언젠가는 당연히 은퇴를 하죠. 다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은퇴를 하지 않는다는 게 제가 아는 한계에요. 최고에 있을 때 은퇴하고 싶은 마음은 있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대로 제 몸이 따라주는 한 계속 하고 싶어요. 늘 배운다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면 나이 드는 것이 진짜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그 만큼 경험이 쌓이게 되고 노련해지니까요. 하루하루 후회 없이 살면 후회 없이 나이가 들 수 있어요.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이 드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김혜은 :
요즘 자기계발 관련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지성 :
더 많이 나와야죠. 그런데 조금 안타까운 게 있다면 99%의 자기계발서는 ‘꿈을 이룬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그 이후의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요.
김종원 :
어떤 분야이든지 기본이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은 자기계발서를 읽기 전에 봐야 할 기본서인 것 같아요.
자신이 가진 부와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것들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일군 것이 아니라고. ‘꿈을 이루는 사람’ 북 콘서트를 통해 가난과 굶주림에 고통 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왜 고통의 땅에 태어났는가. 우리는 왜 그곳이 아닌 여기에 있는가. 모두가 알다시피 그것은 노력이나 선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누구라도 그곳에 혹은 이곳에 태어날 수 있고, 그들과 우리의 삶이 바뀌었을 수 있다. 그러니 고백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단지 그들보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그것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쥘 수 없었을 거라고. 그래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나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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