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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ㆍ우를 넘어서 국민을 위한 진보를 꿈꾸다 - 『조봉암평전』 이원규

“나는 공산당도 아니고 간첩도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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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남짓 동안 안타깝게 스러져간 조봉암,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하는 수많은 조봉암에 대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지난 역사를 통해 인간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율한다. ‘잃어버린 진보의 꿈’이라는 이 책의 부제가 쉬이 지나쳐지지 않는 까닭이다.

2011년 초, 대법원의 재심으로 한 사람의 무죄가 선고되었다. 죽산 조봉암. 그는 독립운동가였고 공산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자로의 전향하였으며,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서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토지 균등성을 이룩할 수 있도록 소작제를 폐지하고 농지개혁법을 밀어붙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매카시즘의 광풍과 반공사상을 외치던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을 주장하던 그는 마녀사냥의 재물이 되어 간첩죄라는 이름으로 사형을 당했다. 그리고 52년 만에 그의 죽음이 국가에 의한 사법살인임이 다음과 같이 드러났다.

“조봉암 선생은 독립운동가로서 건국에 참여했고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농림부장관으로 재직하며 우리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임에도 잘못된 판결로 사형이 집행됐다. 재심판결로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 피고인 조봉암. 원심판결과 제1심 판결 중 유죄부분을 각 파기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양이섭 관련 간첩의 죄는 무죄, 제1심 판결 중 진보당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검사의 항소는 기각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읽어내려간 판결문 중에서)


한국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죽산의 생애를 담은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죽산에게 남다른 관심과 위로를 보낸다는 이원규 소설가가 3년간 땀과 눈물로 집필한 결과물이다. 공산주의에 빠져 조선공산당을 창당한 청년의 때부터 모스크바, 상하이를 거치며 고문과 폐결핵의 수난을 당한 독립운동 시절, 해방 이후 공산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전향한 뒤, 국회에 진출, 농림부 장관으로 개혁을 일으켜 농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이승만의 독재를 위협하던 때까지.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팩트와 재미의 요소를 모두 담으려했던 저자의 노력이 읽혀진다.

카톨릭 청년회관에서 열린 ‘조봉암 평전’의 기념회는 낭독회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김석환, 안경진 두 명의 베테랑 성우들이 읽어 내려가는 조봉암의 생애는 짧게 요약되었지만 힘이 있고 단단했다.

이원규(이후 이) : 작가는 글로 말하는 게 아닌데 이 자리에 섰다. 평전을 쓴 계기가 조봉암 선생에 대한 개인적인 연민과 위무(慰撫)에서 비롯되었다. 강화도 출신인데 삼일운동 때 육천 명이나 모인 곳이다. 평생 소설을 30권을 썼지만 이 책을 쓰는 동안 참 넌더리가 나고 지긋지긋했다. 장편을 쓰다보면 한계나 임계점 도달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다 썼다. 심지어 선생의 여자관계까지도. 처음에 김이옥 이라는 죽산의 첫 번째 여인이 등장한다. 장녀인 조호정 여사와도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김이옥 이란 여인은 강화 출신 최초로 이화학당 두 번째 입학생이다. 죽산이 여자를 꼬시는 솜씨가 좋아서 그런지. 잘생긴 얼굴도 아닌데 여자들마다 그에게 빨려들어간다. 김이옥도 오빠의 반대에도 목숨 걸고 사랑해서 결국에는 비참하게 죽지 않나? 혹자는 소설이 슬프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기저가 깔려있다. 죽산을 사랑하는 데 생애를 바친 김이옥 여사 때문에 죽산의 노선이 바뀐 것 같다. 이옥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나 자신도 이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작가가 주인공과 동일시하면 책이 성공한다고 하는데 나도 그랬다. 집필 중에 소파에 앉아서 쉴 때 그녀가 고문당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의 정치적 이상은 책임정치, 수탈 없는 경제 민주화, 그리고 평화통일이었지. 우리는 벽에 막혀 하지 못했지만 먼 훗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해나갈 것이네. 그러면 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국민이 고루 잘 사는 날이 올 것이네. 씨를 뿌린 자가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씨만 뿌리고 가네.”
이것이 그가 세상에 남긴 유언이 되고 말았다. 대법원이 재심신청을 기각했고 바로 다음 날인 1959년 7월 31일 서둘러 사형을 집행했던 것이다. (조봉암 평전 중에서)



1958년 진보당 사건 재판 당시 조봉암. [출처: 위키피디아]

“나는 공산당도 아니고 간첩도 아니오. 책임정치! 수탈 없는 경제! 평화통일! 이 세 가지를 주장한 죄 밖에 없소. 그저 이승만과의 선거에서 져서 정치적 이유로 죽는 것이오. 나는 이렇게 사라지지만 앞으로 이런 비극은 없어야 할 것이오. 이 세상에서 골고루 잘 살려고 한 일인데 결과적으로 죄를 짓고 가니 미안할 뿐이오. 가족들은 알아서 잘 살기를 바랍니다.” (조봉암의 최후진술)

이 나라 헌정사상 첫 사법살인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저자는 죽산을 타협을 하지 않았던 인물로 소개했다. 우파의 지도자들이 농지 개혁을 앞장 섰다면 괜찮았을 텐데 공산당에서 전향한 사람이었기에 미움을 받은 것이라고. 그리고 죽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마치 50여 년 전 역사의 그 인물들이 이야기를 하는 듯했던 모든 낭독이 끝나고 장내에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안경진, 김석환 성우 그리고 이원규 작가도 서로의 노고에 감사를 전했다.

안경진 성우(이후 안) : 이 책의 저자이신 이원규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겠다. 읽으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이 글은 소설 같기도 하고 논픽션 같기도 하다.

: 논픽션 쓰는 사람은 학자나 연구자, 기자 그리고 나 같은 소설쟁이. 세 가지 부류다.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럴듯하게 꾸미려는 것에 방점을 뒀다. 나는 내가 못가 진 측면, 학문적 진실 등은 연구자보다 자료조사를 더 많이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충당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책이든 재미있지 않으면 아무도 안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독자들이 이 책을 사실로 안 믿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각주를 약 350개 정도 달았다.

김석환 성우(이후 김) : 개인적으로 사진 찍기가 취미다. 인물사진을 잘 찍는 비결은 인물이 좋아야한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성우라는 직업상 항상 글을 읽는다. 빠져들게 하는 글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가 있는데, 오늘의 경우 읽다가 중간 중간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힘들었다. 오늘 낭독을 해보니까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조봉암선생의 삶이 워낙 영화 같기도 하고. 혹시 집필하면서 그런 부분을 염두에 뒀나.

: 경황 없었다. 어느 여류작가가 말하기를 여자문제 나오는 대목만 재밌다고 해서 걱정이다. 강연할 때도 톤에 높낮이를 주는 등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역사얘기만 하면 재미없다. 조봉암 선생의 4번의 연애 이야기도 지어낸 것이 아니다. 줄인다고 한 게 그거다. 2차 저작권은 한길사에 있다. 운영팀이 하면 더 잘할 것같다. 관계자가 있으면 출판사에 연락주길 바란다. 사진전, 오페라, 뮤지컬 등에도 도움 드리고 싶다.

: 오늘 낭독과 강연을 하면서도 사진이 계속 나왔지만, 책 속에 있는 사진자료가 정말 많았다. 무슨 호적 등본 같은 것도 실려 있고 책 뒤쪽에도 참고자료가 엄청 났다. 그걸 모으는 데 얼마나 걸렸나?

: 이미 평전을 여러 편 썼다. 죽산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을 때 이미 절반의 자료는 가지고 있었다. 새로 시작하는 것에 비해선 반 이상 해놓은 셈이다. 다른 연구자들이 해놓은걸 넘어가야 했기에 어려웠다. 유족을 설득하는 경우가 힘들다. 선친의 흠결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진실로 하는 책이 한 권은 있어야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사진자료는 한국일보와 개인 소장자료를 이용했고 사진작가를 하고 있는 친구의 작품 중 인천의 해방 전후 풍경 중 40컷 정도를 고르는 등, 비교적 풍성하게 넣을 수 있었다.

: 『조봉암평전』을 보니 조봉암 선생의 삶의 무대가 엄청 넓다. 책속에 등장하는 장소가 강화, 인천, 경성, 일본, 모스크바, 상하이, 대구, 부산까지. 조봉암 선생의 삶이 워낙 파란만장했던 만큼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상하이와 만주 일본도 직접 다녀왔나.

: 안 밟아본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고등학교 선생을 하고 있을 때 신구문화사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역사 관련 작품을 의뢰해서 독립운동 현장 이곳저곳을 누볐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탔다. 그 후에 신문사, 방송 PD들도 연락을 해서 도움을 요청하더라. 40-50대가 되니 제자들에게 밀려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평전을 쓰게 되었다. 10년 전까지 해도 좌,우익 합쳐서 독립운동 현장을 많이 누빈 것 같다. 그 덕분에 글 속에서 생동감과 현장감을 얻은 것 같다. 신구문화사 덕분이다.

: 유족이나 조봉암 선생의 주변 인물과도 많이 인터뷰를 했다. 사실 조봉암 선생의 진보당 사건 때문에 주변 사람이 고초를 많이 겪으셨다. 연좌제라는 것도 있었고. 쉽게 말 안 해줄 것 같다. 어떻게 했나?

: 조호정 여사가 인터뷰를 응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작가 양반들 논픽션 쓸 때 나처럼 해라. 조호정 여사를 만나기 전에 조봉암 선생 관련 기사를 다 찾아서 600여 개를 손으로 간추려 썼다. 300장이니까 앞뒤로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다. 이렇게 하면 마음을 안 열 수 없다. 그래서 그녀를 인터뷰하는 데 성공했다. 알고 물어보면 감추지 못한다. 언론권력에 있으면 인터뷰는 쉽게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인터뷰이가 경계하고 조심한다. 자료조사를 하는 데 2년 정도 걸렸는데 필요한 증언은 다 들었다고 생각한다.

: 『조봉암평전』의 부제가 ‘잃어버린 진보의 꿈’이다. 민주화 이후 도리어 진보의 몰락까지 이야기되는 시점에서 부제가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 죽산 조봉암의 생이 한국의 진보정치에 주는 의미가 있을까?

: 제일 까다로운 질문이다. 이 질문이 나오면 어떡하나 했는데. 한국은 맹목적인 분단문제로 진보와 보수가 와해되었다. 나는 진보를 따스하게 바라본다. 진보와 보수가 함께 잘 굴러가야 할 텐데. 지금 60년 전의 상황과 달라진 것이 뭐가 있나. 오히려 갈등은 더 첨예하다. 죽산은 공산주의에서 전향한 사람이었지만 친북, 종북으로 묶여서 처형당했다. 지금도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관용과 이해가 필요한데 그런 한계가 아쉽다.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서 내 책에 대한 기사를 냈다. 내 책이 아니라 나에 대한 서평을 썼더라. 조봉암 선생을 한국 진보정치의 ‘넘사벽’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이 맞다 싶었다. 적어도 진보라면 30%의 지지를 받은 죽산처럼은 해야 하지 않나.

“그분의 꿈은 책임정치, 수탈 없는 정의로운 경제, 평화통일, 세 가지였는데 그게 오늘 더 절실해졌으니까요.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 극심한 빈부 격차, 남북한의 첨예한 대립을 보면 그렇단 말입니다. 죽산 선생님은 그렇게 선견성을 가진 분이었네요. 그분이 뿌린 씨를 소중히 키우고 가꿔야 그분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겁니다.”
‘오늘 왜 다시 죽산인가’ 하는 주제가 노인과 청년의 대화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본문 중에서)


두 시간 남짓 동안 안타깝게 스러져간 조봉암,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하는 수많은 조봉암에 대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지난 역사를 통해 인간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율한다. ‘잃어버린 진보의 꿈’이라는 이 책의 부제가 쉬이 지나쳐지지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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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평전 이원규 저 | 한길사
죽산 조봉암은 한국 근현대사의 이단아다. 그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투쟁해 장기간 옥고를 치른 독립투사였다.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했으나 광복 후 전향해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서 농지개혁을 성공시켜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은 공로자였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에 맞선 일로 사형선고를 받고 법살당했다. 『조봉암평전』은 기자나 교수 출신이 아니라 평생 리얼리즘 소설을 써온 작가 이원규가 쓴 책이다. 딱딱하게 마련인 일반 평전형식과 달리, 소설과 르포가 섞여 있으면서도 철저한 고증과 주석을 뒷받침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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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엘프에디터

지금은 남의 목소리를 듣고 정리하는 일을 합니다. (트위터 @tappingsth)

조봉암평전

<이원규> 저25,200원(1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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