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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옥에 살았어도 자살했을까 - 한옥 연구가 이상현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저자 열린 마음으로 한옥을 보자, 미적 체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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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이유를 주거 공간의 변화로만 볼 수는 없다. 경제 구조와 공동체 형태가 변하면서 자살이 늘었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이 자연과 동떨어지고 획일화된 건축 형태가 아닌, 다른 형태의 주거 공간이라면 자살률을 떨어뜨릴 수 있지 않을까? 옛날 사람은 목숨을 끊으려면, 뒷산에 갔다. 뒷산에 가는 도중에 자연을 만나며 생각을 바꾼다.

한옥 연구가 이상현 씨가 진행한 한옥 강의가 아트앤스터디 인문 숲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출간 기념으로 개최한 행사로, 시공아트가 주최하고 예스24가 후원했다. 책의 저자인 이상현 씨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들어갔다.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회사를 나왔지만, 지금은 한옥을 연구하는 한옥 연구가로 활동 중이다. 한옥 개론서인 『즐거운 한옥 읽기 즐거운 한옥 짓기』를 2007년에 출간했고, 어린이를 위한 한옥 책 『우리 한옥 고고씽』을 쓰기도 했다.

 

 

전작이 개론서 성격이었다면, 2012년에 낸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은 실전 편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전국 각지의 한옥을 돌아보고 각 건축의 구조와 역사 등을 개인의 감상과 함께 책에 기록했다.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는 병산서원, 제주 지방색이 잘 드러난 성읍민속마을, 근대와 전통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성공회강화성당 등 총 25곳을 다루었다.

 

왜 인문학이 유행인가?

 

이날 강연의 제목은 ‘한옥으로 인문학 읽기’였다. 이상현 씨는 인문학을 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요즘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왜 그럴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본의 위기, 다른 하나는 학문의 위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인문학을 찾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는 두 가지 상반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소비에트를 비롯한 동유럽의 몰락은 자본주의의 승리를 보여줬다. 그렇지만 일부 나라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가 경제침체에 허덕인다. 유럽은 만성적인 저성장과 고실업 문제에 시달린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다. 미국은 고질적인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며 급기야 2011년 신용평가 기관인 S&P로부터 신용 강등이라는 수모를 받았다.

 

자본이 어려운 시기, 현대 학문에는 답이 없다. 비록 예전보다 세밀화되고 전문화된 분과 학문 체계가 많은 지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사람들에게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빈부 양극화는 심해지고, 세계 곳곳에 발생한 내란과 민족 갈등, 종교 갈등도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이러한 문제에 현대 학문이 무능하기 때문에 인문학을 향한 관심이 높아진다. 현대 학문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을 관찰한다면, 인문학은 숲을 보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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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집

 

인문학을 향한 관심이 서서히 생겨나는 와중에 한옥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현대 학문이 알려주지 않는 지혜를 인문학에서 구하려는 것처럼, 현대 주거 형태로 잃어버린 가치를 한옥에서 찾는 것이다. 이상현 씨는 현대 주거 공간도 자본이나 학문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우리가 사는 집이 기능화되고 있다. 집이 편해야 하는데, 집에서 오히려 우리는 불편하다. 요즘 부는 힐링 열풍도 따지고 보면, 집의 위기와 관련 있다고 봐야 한다.

 

사회에 따라 주거 문화가 다르겠지만, 한국의 그것은 독특하다. 주거 형태 중 가장 높은 비율이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도시 빈민을 위한 공공 주택의 성격으로 도입한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다른 주거 형태보다 가격도 비싸다. 아파트를 향한 한국 사회의 사랑이 신기해 프랑스의 한 인류학자는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국가, 건설기업, 중산층이 뜻을 모았기에 아파트 공화국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정부는 단기간에 도시의 주거난을 해결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건설기업은 돈을 벌려고 했으며, 한국의 중산층은 아파트로 자신의 부를 키우려 했다. 이들이 모두 만족하기 위해서는 아파트가 고급 주택이어야 했다. 아파트는 다른 주거 형태를 압도했다. 아파트 거래로 돈을 번 사람이 늘어났다. 부동산 시장이 성장하던 시기, 아파트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이 저성장 사회로 진입하고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길어지고 있는 지금, 아파트를 향한 한국사회의 애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묻기 시작한 사람이 늘어난다. 집의 본질은 사는 공간이지 사고파는 재화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생겼다. 장점이 많지만, 아파트는 개성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자연과 단절되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다. 이 두 가지 점만 본다면, 아파트는 살기 좋은 공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옥은 어떨까.

 

한옥,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답다

 

한옥은 개성이 넘치는 주거 형태다. 이는 한옥 만드는 과정을 알면 이해가 간다. 한옥을 직접 짓기도 하는 이상현 씨는 한옥 건축법을 ‘대충’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현대 건축은 세밀하게 만들어진 건축 도면을 따라 이에 맞게 만들어진다. 한옥은 그렇지 않다. 한옥을 만드는 작업 대부분이 목수의 체험에 의존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론이 없는 주먹구구식 건축법이지만, 덕분에 목수의 개성이 들어갈 여지가 생긴다. 게다가 목수의 경험에 의지하는 한옥 건축 방식에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 대학에서 이론만 공부하고 현장에 투입된 사람보다는 수십 년 동안 실제로 집을 만든 목수가 더 좋은 집을 만들 확률이 높다.

 

서양의 고전 건축이 자연과 단절된 공간이라 한다면, 한옥은 자연과 어울리는 건축이다. 터를 잡는 데에서부터 지붕선을 올릴 때에도 주변 경관을 고려했다. 집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재료도 가공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이용할 때가 많다. 대들보나, 기단을 쌓는 데 쓰는 돌이 그렇다. 마당이라는 존재는 자연과 조화를 고려한 상징이다. 우리 선조는 마당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원칙적으로 한옥은 공간마다 마당이 있어야 한다. 안채에는 안마당, 행랑채에는 행랑마당, 문간에는 문간마당,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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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선과 자연이 어울린 풍경을 설명하는 저자

 

한옥에서 마당은 건축물 밖에 위치한다. 이는 특이한 양식이다. 추운 지방인데 밖에 마당을 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건물 밖에 벽과 같은 구조물이 아니라 마당을 둔다는 의미는 외풍과 마주한다는 뜻이다. 난방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마당을 밖에 두기가 어렵다. 잘 알다시피, 한옥은 온돌로 난방 문제를 풀었다.

 

“근대 이전에 난방 문제를 푼 것은 세계 전체를 봐도, 한옥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서양은? 서양은 가축과 함께 잤다. 과거 프랑스 왕실의 기록을 보면, 날씨가 추워서 개를 여섯 마리 끌어안고 잤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다.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특이한 상황이 아니다. 추위를 피하고자 동물과 함께 사는 것은 서양에서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우리는 구들이라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추위를 이겨냈다.”

 

이러한 장점이 있지만, 한옥은 그동안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불편하다는 인식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아름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상현 씨는 고전 미학을 한옥에 부당하게 적용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고전 미학 이론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에서는 비례, 완결성, 밝음을 아름다움의 3요소로 규정했다. 이에 근거하여 혹자는 한옥에는 비례미도, 완결성도, 밝음도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렇게 한옥을 판단하면 생기는 문제가 두 가지라고 봤다. 첫째, 서구의 잣대로만 보지 말고 다르게 본다면 한옥에도 나름의 비례미와 완결성, 밝음이 존재한다. 둘째, 서양이 버린 고전 미학을 한옥에 적용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칸트 이후 미학에서는 아름다움이 대상 자체에 있다는 생각을 포기한다. 아름다움은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게 칸트 이후 미학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이라는 말 대신, '미적 체험'이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 이상현 씨는 “우리가 한옥에서 미적 체험을 느낄 수 있는지는, 우리가 한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렸다.”라며, 열린 마음으로 한옥을 대하도록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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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중심의 사회에서 살았다면 자살이 이렇게 많았을까

 

최근 전직 야구선수인 조성민 씨가 목숨을 끊으며 자살이 화두가 되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한국사회에는 너무 많다. 한 개인이 자살을 결심할 때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이상현 씨는 ‘집’, 즉 거주공간을 꼽았다. 현대인이 거주하는 공간에는 성스러움이 없다. 예전에는 집을 성스러운 공간으로 보았다. 가택 곳곳에는 성주신을 비롯하여 측신, 철융신 등이 존재했다.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집을 더는 경배하지 않다 보니, 집에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다.

 

물론 자살하는 이유를 주거 공간의 변화로만 볼 수는 없다. 경제 구조와 공동체 형태가 변하면서 자살이 늘었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이 자연과 동떨어지고 획일화된 건축 형태가 아닌, 다른 형태의 주거 공간이라면 자살률을 떨어뜨릴 수 있지 않을까? 옛날 사람은 목숨을 끊으려면, 뒷산에 갔다. 뒷산에 가는 도중에 자연을 만나며 생각을 바꾼다. 주변에 널린 생명력을 보면서 죽음이 아니라 삶을 택했다. 이런 과정이 아니라도, 한옥에는 앞서 다뤘듯 인간이 만든 건축물과 자연이 공존한다. 꽃 향기와 풀 내음이 사계절마다 바뀌는 한옥에서 자살을 생각하기란 아파트에서 자살을 결심하기보다 어렵다.

 

한국사회는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며 근대화 이전에 있었던 문화를 많이 잃어버렸다. 한옥도 그 중 하나이다. 한옥을 만드는 장인이 많이 사라지면서, 예전에 지어진 한옥을 복원하거나 보수하는 작업이 어렵다고 한다. 선조가 살았던 공간이라는 박물학적 호기심 외에도, 획일화되고 성스러움이 사라진 현대 거주 공간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한옥을 향한 관심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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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이상현 저 | 시공아트

한옥 연구가로 활동하고, 한옥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한옥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한옥 목수일까지 익혔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 민족문화나 동양철학을 이야기 하기 보다는 친근하고 아름다운 글이 되도록 노력했다. 책에는 저자가 2년간 소중한 인연을 맺은 24곳의 전통 건축이 모두 들어있다. 24곳 중 17곳은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살림집으로서의 한옥이다. 미처 깨닫지 못한 한옥의 색다른 디자인에 놀라고, 독특한 분위기에 어깨를 들썩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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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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