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라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방법에 대해 배운 적이 있기는 할까. 김민웅 교수의 새 책 『동화독법』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동화라고 별다른 게 있나, 어떤 이야기책이든 글만 알면 다 읽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다. 동화라고 해서 다른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는 얘기는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글을 안다고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읽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김민웅의 『동화독법』은 동화를 읽는 새로운 방법과 시각을 제시한다.
‘네 생각이 정말 네 생각이니?’ 『생각의 좌표』 속 홍세화의 한 마디는 저자가 동화를 읽어내는 실마리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그 실마리는 『동화독법』을 읽는 독자에게로 옮아온다. 내 생각이 정말 내 생각일까. 어째서 같은 동화를 읽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동일한 교훈을 얻는 것일까. 아이들은, 그리고 우리는 학습되어진 것이 아닐까.
이 근본적인 의구심을 품고 동화를 다시 읽어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견고한 상식의 틀을 깨기란 늘 어려운 일인 까닭이다. 김민웅의 『동화독법』이 그 출발을 함께하는 길동무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시각에 뜻을 같이 하기도 하고 반론을 제기해 보기도 하면서, 우리의 새로운 동화읽기는 시작된다.
“『동화독법』에 대해 동화의 재해석이라고 생각하시는 경우도 있는데 재해석은 아니고요. 사실은 이야기 안에 있는 것들을 발견하는 겁니다. 꼼꼼히 읽어보면 이미 그 안에 있는데 놓치는 거죠. 이미 이야기 안에 있는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어서에요.”
자신이 동화 속에서 찾아낸 진실들을 들려주기 위해 저자는 특별한 손님들을 강연회에 초대했다. 그와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함께 나누는 소중한 인연들, 개그우먼 김미화와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시인 이수호와 영화감독 정지영이다. 소극장에서 열린 강연회인 만큼, 김민웅은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음악으로 초대 손님에 대한 소개를 대신했다. 그들이 ‘다시 읽은’ 동화는 <신데렐라> 와 <미운오리새끼>, <바보이반>, <토끼전>이었다.
신데렐라의 구두는 유리가 아닌 나무로 만들어졌다.
무도회에서 만난 신데렐라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왕자님. 그는 왜 신데렐라를 찾기 위해 유리구두를 들고 헤맸던 것일까? 그녀의 얼굴을 그린 방을 붙이면 될 것을.
저자가 이상의 의문을 제기했을 때 ‘바보같이 왜 저 생각을 못했을까.’ 왕자가 아닌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인데 또 너무나 당연히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알고’ 넘겼을 것이다. 저자와 똑같은 의문을 품어 본 독자들도 물론 있겠지만 찾아낸 해답은 각자 다를 것이다. 왕자는 왜 유리구두를 이용해 신데렐라를 찾으려 한 것일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유리구두의 주인, 아내로 맞을 사람을 찾기 위해 미모나 학벌, 출신을 따지지 않죠. 누구에게나 신어보게 하는 거에요. 그리고 신데렐라의 발은 나막신을 신은 발이잖아요. 만약 나막신을 신고 나무를 하고 장작을 패고, 물을 긷고 허드렛일을 했다면 여름에는 진물이 나고 겨울에는 동상이 걸렸겠죠. 이런 세월을 보낸다면 얼굴은 예쁘지만 발은 상처투성이에다가 아프고 힘들었을 거에요. 나막신을 신고서 상처 받고 아파하고, 모든 고통을 지니고 있는 그런 사람에게 신겨주는 신발이 바로 유리구두인 거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왕자비를 간택하는 무도회에 갈 수 있고, 누구나 유리구두를 신어볼 수 있으며, 아름다운 용모가 아닌 상처투성이 발의 주인공을 찾는 왕자의 이야기.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생 역전에 성공한’ 아리따운 아가씨의 이야기는 저자의 시각을 통해 새롭게 발견되었다.
김미화 : 그러면 신데렐라 이야기가 이 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은 걸까요.
김민웅 : <신데렐라>에서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이런 거에요. 사람들은 유리구두에 주목하죠. 그리고 그것을 신분상승의 상징처럼 생각해요. 왕자비가 돼서 특권을 누리는 세상으로 갔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 왕자는 고통 받고 힘들어 하고 눈물에 젖었던 그런 사람들을 끝까지 찾아내잖아요. 저는 그게 참 멋있다고 생각해요, 끝까지 찾아내는 것. 우리 사회가 정말 그렇게 끝까지 찾아내고 있을까. 그런 사람들을 위한 무도회를 펼치고 있을까. 우리는 어떤 유리구두를 만들어 내고 있을까. 혹시 특수한 사람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특권과 같은 유리구두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우리가 이런 발을 찾아낸다면 그 유리구두는 우리 사회의 따뜻한 마음이 실려 있는, 체온이 있는 구두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아름다운’ 오리들을 위하여
<미운오리새끼>를 통해 저자와 홍세화가 나눈 이야기는 ‘다름’에 대한 것이었다. ‘미운’ 오리새끼라니. 오리는 밉고 백조만 아름답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리는 이러한 차별 혹은 폭력에 저항했던가. 의문을 제시해 보기는 했었나. 미운오리새끼의 ‘자의식의 성장’을 볼 수 없다는 점, 오리들이 그냥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남겨진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데 두 사람은 생각을 같이했다.
나는 미운오리새끼가 아니야, 내 안의 백조가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야, 언젠가 나도 백조가 될 거야, 라는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미운오리새끼>를 통해 희망을 얻는다. ‘그렇지만 이야기 속 오리가 백조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단 말이야?’ 저자는 함정을 지적했다. <미운오리새끼>는 백조를 향한 날갯짓을 멈추지 않은, 오리의 부단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리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내가 백조였어!’ 알게 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야기 속에서 오리와 백조는 처음부터 차별적인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차별받는 계층에서 벗어나게 된 주인공과 달리, 백조가 될 수 없는 다른 오리들은 차별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김민웅 :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운오리새끼를 손가락질 하고 밟잖아요. 그런데 자신감 있게 새로움의 영역을 넓히고 바람을 내세울 수 있는, 다른 것이 갖고 있는 힘을 가진 미운오리는 더 많아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게 돼요.
홍세화 : 그렇죠. 결국은 다름의 문제잖아요, 차이의 문제. 이 ‘차이’를 차별하거나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근거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이는 다양성의 토대니까 서로 존중하고, 차별 억압 배제를 하지 말라는 거죠. 자기 성숙의 모색을 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자기가 속한 집단의 우위를 통하여 만족하려는 경향이 전제되어 있잖아요. 오리하고 백조 사이에서 ‘난 백조야’ 이렇게 자기의 만족을 꾀하려는 속성이 있는 거죠. 자기 성숙의 모색을 하는 사람은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것이 멈추어 버린 사람의 경우에는 그 속성을 버리지 못해요. 그런 것이 이 사회를 형성하고 은연중에 자리 잡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그리하여 저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를 그려본다. 백조가 된 오리가 자신이 핍박받고 왕따 당했던 농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했을까, 써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당했던 고통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백조였다면 얼마나 멋있었을까, 그는 꿈꾸고 있었다.
톨스토이의 ‘바보를 기르는 교육’
시인 이수호와 함께한 자리에서 저자는 그를 ‘바보 선생님 가운데 한 분’이라 소개했다. 모두가 이쪽으로 가자고 했을 때 ‘아니야, 저쪽으로 가는 게 옳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열심히 걸어갔을 뿐인데 혼자 남겨졌다는 것이다. 전교조 결성을 주도하다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었던 ‘교육자 이수호’의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저자는 ‘바보 선생님’ 이수호와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로 <바보 이반>을 선택했다.
김민웅 : 교육 운동을 오래 해 오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의 교육은 받을수록 똑똑한 것 같지만 점점 이기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정말로 멍청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도 느낍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점점 부족해지고 세상에 대한 통찰력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요. 그래서 톨스토이가 얘기하는 ‘바보를 기르는 교육’이 정말 필요한 거 아닐까 생각될 때가 굉장히 많아요.
이수호 : 아시다시피 톨스토이가 러시아 민중 교육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죠. 그래서 학교도 만들고 교과서도 썼어요. 그러면서 민중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서 <바보 이반>을 쓰기도 한 거죠. 정말 민중의 삶, 백기완 선생님의 표현대로 하면 무지랭이들의 역사가 진짜 제대로 된 우리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바보이반> 얘기를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이수호는 <바보 이반> 안에서 민중들의 삶을 보았다고 했다. 이반은 억눌리고 고통 받는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장님이면서 여성인 이반의 동생 역시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는 처지에 놓여있다. 이러한 민중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것이 <바보 이반>을 읽는 이수호의 시각이었다. ‘이렇게 바보스러울 수가 있는가’ 싶지만 생각해보면 이반이 옳았다. 예외 없이 누구나 일해야 하고 손에 물집이 잡힌 ‘일하는 자’만이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이반이 옳았다.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고 노동자를 홀대하는 자들의 나라는 망해도 이반의 나라는 흔들림 없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바보 이반을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렇기에 바보를 응원하는 두 사람은 동화가 주는 치유를 이야기했다.
김민웅 : 동화를 읽으면 바보들에게 주는 격려라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아요.
이수호 : 그렇죠. 저는 동화나 민담이 가장 낮고 가장 순진하고 순박한, 그 고운 마음에서 길어 올리는 깨끗한 물처럼 생각이 되거든요. 동화가 갖는 힘이라든지 치유의 효과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혜, 그 다음에 있어야 할 것은…
영화 <부러진 화살>은 무서웠다. 영화를 보며 분노하게 했던 사법 권력의 횡포, 그것 때문에 무서웠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는 법인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작정하고 달려들어 죄를 만들고자 하면 무사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무서워졌다. 아무튼 그 쪽(?)은 근처도 얼씬거리지 않는 게 최선이지, 잠정적 결론을 내리면서 두려움을 잠재웠던 것도 같다. 그런데 영화감독 정지영에게 허를 찔렸다.
정지영 : 저는 <토끼전>을 읽으면서 꼭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실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토끼가 용궁으로 벼슬하러 가는 행위하며, 죽는다는 확신이 드니까 도망치는 행위하며. 사람들이 잘못을 피하려고 하지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지 않나요. 피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걸 해결할 생각은 않고 ‘나는 거기에 안 끼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뜨끔하다. 그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나도 예외일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나는 거기에 끼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문제를 덮어두고 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선택한 아이러니한 그 처세술은 ‘각자의 예방’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비겁일지도 모르겠다.
<토끼전>에서 지혜로움이라는 주제를 전달하는 주인공 토끼도 정지영 감독의 날카로운 지적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토끼의 지혜가 결국은 강자로부터 도망치고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는 데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왜 민초들의 지혜란 결국 강자로부터 피하는 수동적인 것일 수밖에 없느냐.’는 이야기다.
정지영 : 지혜를 탓하는 게 아니고 훌륭한 지혜고 기발한 발상인데, 그 다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용왕으로부터 탈출해서 떨어져 나온 거잖아요. 용왕을 바꾸는 (다른 사람을 용왕으로 세우는) 적극성도 없이 도망 나왔고, 그들의 세계를 바꾸려는 생각은 하지 않잖아요.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독수리가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할 때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뭉쳐서 독수리를 퇴치할 수는 없는가 하는 거죠. 그런 것들이 안타깝다는 거에요.
저자 역시 동의했다. <해와 달> 이야기나 <홍길동>을 보더라도 우리의 고전 속에서는 ‘일단 살고 보는’ 선택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들이 더러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살아남는 자체가 너무나 절박했기 때문에, 그 고비를 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서 일단은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계산이 깔린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질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아울러 저자는 용왕과 독수리로부터 도망친 토끼의 처지에 대해 대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민웅 : 그런데 사실은 토끼들이 힘을 합해서 늑대를 물리칠 수 있을까요, 호랑이를 물리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많은 토끼가 있어도 쉽지 않잖아요. 살면서 간 빼고 쓸개 빼고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부터가 출발점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될까’에 대한 후속편을 썼으면 좋겠어요.
이야기와 노래가 함께한 이날의 강연회는 그야말로 잔치였다.
『동화독법』을 출간하며 김민웅이 바랬을 반응 역시 ‘잔치’같은 것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서로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소외되거나 억압받는 이웃들을 둘러보고, 함께 한 데 어우러지는 잔치 한 판이 벌어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동화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어요. 그 동화에 대한 발언권을 누구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각자의 얘기와 생각을 펼쳐낼 수 있는 굉장히 소중한 장이라고 여겨져요. 그래서 동화가 우리에게 주는 민주주의의 힘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판이 벌어집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눈길을 주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혹시 없을까, 눈길을 주고 함께 소통을 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한테 새로운 힘이 솟아오를 수는 없을까, 이런 게 동화독법에 담겨진 이야기입니다.”
『동화독법』이 어린 아이에게 권하기에는 활자도 작고 두꺼운 책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먼저 손을 내밀고, 그렇게 잔치를 함께할 수 있는 아이로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야 모든 부모가 같지 않을까. 다른 동화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의미에서 『동화독법』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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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 독법 김민웅 저 | 이봄
이 책에서는 목회자 활동을 해온 저자 김민웅이, 동화 속에서 보통 사람들의 치열하고 고단한 삶을 발견하며 위로한다. 저자는 책에서 서양 전래동화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동화 그리고 성서 이야기까지 넘나들며 새로이 해석해 담았다. 특히 ‘미운 오리 새끼’, ‘심청이’, ‘신데렐라’와 같은 반전의 주인공들을 다룬 동화를 통해, 동화와 같은 반전의 기회를 갖지 못한 우리에게 ‘반전의 핵심’이 어디 있는지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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