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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서 나온 산신령, 플래시는 왜 터졌을까?” – 박형서 『핸드메이드 픽션』

“꿈도 문학이다” 자면서 소설 쓰는 작가 ‘기막힌 소설’을 써내는 비결 포털 설문조사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 1위로 뽑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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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대량생산을 거부하고, 재능과 땀으로 빚어낸 수제품. 그렇게 만들어진 수제품에는 작가의 개성과 상상력이 그대로 녹아있다. 멸치가 변기를 통해 탈출을 감행하고, 인간행세를 하는 고양이가 주인이 흠모하는 여자를 차지하는가 하면, 산의 정령과 강의 정령이 혈투를 벌인다.

공장의 대량생산을 거부하고, 재능과 땀으로 빚어낸 수제품. 그렇게 만들어진 수제품에는 작가의 개성과 상상력이 그대로 녹아있다. 멸치가 변기를 통해 탈출을 감행하고, 인간행세를 하는 고양이가 주인이 흠모하는 여자를 차지하는가 하면, 산의 정령과 강의 정령이 혈투를 벌인다. 참으로 ‘기가 막힌’ 소설이다. ‘기가 막히다’는 것에는 두 가지 뜻이 모두 담겨있다. ‘어이가 없다’ 하지만 ‘기똥차다!’


소설은 삶의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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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 작가는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서 쉬지 않고 꾸준한 창작활동을 해왔다. 단편으로 고유한 창작 세계를 인정받았고, 2010년에는 장편소설 『새벽의 나나』로 문학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 이후 펴낸 단편집 『핸드메이드 픽션』은 그의 문학적 역량이 얼마나 성숙해졌는가를 방증한다.

“소설을 쓰시고자 하는 분들께 조언을 드리자면, 소설을 어학처럼 계속 곁에 두셔야 한다는 겁니다. 너무 멀리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습작을 했으니 잠시 휴식 기간을 가졌다가 돌아와야지’ 했다가는 못 돌아올 확률이 높습니다.”

박형서 작가는 ‘소설가’라는 명칭이 자신을 대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를 이해하려면 그가 쓴 소설을 봐야 한다. 그래야 그가 어떤 소설가인지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삶은 정의나 명제의 문제가 아니다. 명제를 풀어낸 예시가 삶이다. 그 수많은 예시 중의 하나를 옮긴 것이 소설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소설을 통해 삶을 본다.

“소설가라는 명칭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 소설가가 써낸 작품이 가장 중요한 정보지요. 약력이 아닌 제가 쓴 소설로 독자분들과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핸드메이드 픽션』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꿈꾸며 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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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박 작가의 상상력은 비범하다 못해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박 작가가 소설적인 소재를 얻기 위해 기행을 일삼는 것도 아니다. 박 작가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소재를 얻는다고 한다. 친구들과의 대화나 독서, 그리고 혼자 떠나는 여행이 그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지만 저한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비몽사몽이에요. 바로 자는 거죠. 자기 전에 술을 마시면 12시간을 넘게 자기도 하고, 평소에도 10시간은 잡니다. 실제로 자는 거는 7시간 정도고 나머지 3시간은 작업을 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3시간 동안 침대에서 몽롱한 상태로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려요.”

꿈이나 가수면 상태가 위대한 예술작품을 탄생시킨 일화는 역사적으로도 많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는 꿈속에서 들은 리듬을 악보에 옮겨 ‘예스터데이’라는 명곡을 탄생시켰고, 우리가 잘 아는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도 작가가 꿈에서 본 괴물을 소설로 옮긴 것이다. 그리고 일본감독 구로자와 아키라는 자신의 꿈을 영화로 옮겨 ‘꿈’이라는 옴니버스 영화를 완성했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는 “가장 위대한 잠재적 영감은 꿈에 있다”고 말했다.

『핸드메이드 픽션』 나오는 산신령이야기도 꿈에서 본 것을 옮겼어요. 꿈을 꾸는데 연못이 있고 거기서 도끼를 든 산신령이 떠오르더군요. 그런데 그 순간 연못 주위에 있던 숲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거예요. 잠을 깨서 그 장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죠. ‘산신령이 왜 연못에서 나왔으며, 플래시는 왜 터졌을까?’하고요. 그렇게 쓴 단편이 「열한시 방향으로 곧게 뻗은 구 미터가량의 파란 점선」입니다.”

박 작가의 소설이 문단의 인정을 받는 것은 단순히 꿈을 옮겨서가 아니다. 그가 꾼 꿈은 하나의 소재에 불과하다. 그 이후에 그가 던지는 ‘왜?’라는 물음이 소설이 된다. 그만의 논리와 인문학적 통찰이 붙으면 비몽사몽이 기막힌 소설로 둔갑한다.


(이기호) 박형서의 작품을 심사해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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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박 작가의 창작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이가 있다. 일종의 평행이론처럼 동갑의 나이에, 같은 문예지를 통해 등단해서 비슷한 시기마다 소설을 발표해왔다. 그리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문학연구와 창작을 함께 하고 있는 상황도 유사하다. 게다가 이 둘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안녕하세요. 이기호입니다. 많은 분이 저하고 박형서 작가를 비교하시는데요. 그리 유쾌하지는 않습니다(웃음). 처음에는 박 작가하고 동창인지 몰랐어요. 문단에 나와서 족보를 따지다 보니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더군요. 그리고 같이 등단한 줄 아시는 분이 많은데, 저는 20세기인 1999년에 등단했고, 박 작가는 21세기인 2000년에 등단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훨씬 선배고요. 결정적으로 저는 결혼을 해서 애가 셋이나 있고, 박형서는 총각입니다. 그러니 상당히 다르죠. 그리고 무엇보다 박 작가랑은 전혀 친하지 않아요.”

이기호 작가와 박형서 작가는 스스럼없이 친하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이 작가는 몸살감기가 심하게 걸렸음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박 작가의 강연회를 돕기 위해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이 작가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부인까지도 박 작가의 작품을 꼼꼼히 읽는 애독자다.

“언젠가 아내가 제게 묻더군요. ‘오빠, 죽방멸치가 변기를 탈출하는 이야기가 신춘문예에 나오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요. 그래서 한참 고심하다 ‘뽑겠다’라고 대답했어요. 새롭기 때문이죠. 자기 색깔이 확실하고 한국문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죽방멸치에 관한 상상력이 경이롭잖아요. 그러면서도 친근하고 공감이 가요. 박형서의 소설에는 그런 힘이 있어요.”

이 작가는 한국문학의 전통과는 다른 길을 가는 박 작가를 보면서 외로운 문학적 여정이 될까 염려스럽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가는 박 작가가 가진 문학적인 힘을 믿었다고 한다. 박 작가의 상상력은 허공의 구름처럼 흘러가고 마는 상상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안에는 치열한 삶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담겨있다.

“제가 자정의 픽션이라는 단편을 좋아하는 이유는 죽방멸치 때문이 아닙니다. 핵심은 늦은 밤에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마트 여직원에 있어요. 멸치가 없어서 수제비를 끓여 먹지 못하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을 청해야 하는 그 현실에 핵심이 있습니다. 처절한 현실을 인내해내는 그 유쾌한 상상력에 매료되는 것입니다. 박형서는 애써 서정성을 좇지 않으면서도 소설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소설가입니다.”


(박형서/이기호) 익숙한 것으로부터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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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 작가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 최근 한 포털사이트의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에 대한 설문에서 박형서 작가가 박민규 작가를 누르고 1위에 올랐다. 박형서 작가는 상상력에 있어서만큼은 단연 최고라 일컬어진다.

“저는 고착되는 게 굉장히 겁나요. 그래서인지 제 소설의 캐릭터들도 항상 탈출을 시도합니다. 익숙한 게 싫어서요. 왠지 방 안에 있으면 자아가 죽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저 역시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항상 변화하려고 노력합니다.”(박형서)

박 작가는 최근에도 라오스여행을 다녀왔고, 「정류장」이라는 단편은 박 작가가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며 구상한 작품이라 한다. 이처럼 박 작가가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산할 때, 통한의 시간을 보낸 작가도 있었다.

“둘 다 등단하고 꽤 오랫동안 무명작가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만 해도 오랫동안 원고청탁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일 년에 60만원 가지고 생활할 때였어요. 그런 어느 날 겨울, 형서가 전화를 해서는 대뜸 뭐하냐고 묻는 거예요. 저야 뭐 방바닥 긁는 신세였지요. 저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대충 둘러대려는데, 형서가 ‘나 인천공항이야. 유럽 가려고 하는데 그냥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 그러는 거예요. 얼마나 약이 올라요. 그런데 형서는 꼭 외국 갈 때마다 저한테 전화를 해요. 제가 자기 애인도 아닌데 말이죠. 그게 제 가슴에 어떤 원한으로 남아있습니다(웃음).”(이기호)

“그때는 겨울이 아니고 여름이었어요. 그리고 기호한테 전화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번호를 잘못 눌렀어요. 강의를 나가고 있어서 이런저런 관련 일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전화하다 보니 기호한테 전화가 잘 못 걸렸어요.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나한테 사랑받고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생각했죠. 기호의 말처럼 제가 그렇게 친구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점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박형서)

이 작가는 여전히 유럽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가는 박 작가의 여행에 대한 갈망을 두려움에 대한 일종의 도피라고 표현한다.

“형서의 소설에는 어떤 두려움과 도피하려는 욕망이 있어요. 그것은 아마도… 전세 보증금을 떼어먹힌 기억이 아닐까 합니다. 2천이었나?”(이기호)

“2천4백!”(박형서)

“네, 2천4백이요. 당시 형서에게는 전 재산과 같은 피 같은 돈이었지요. 계약의 소홀이었어요. 조금 더 치밀하게 따져봤다면 사기를 안 당했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인지 자기의 것을 뺏기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소설에 녹아있는 거 같아요.”(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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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를 유머로 승화시키는 박형서 작가와 이기호 작가. 그들의 소설은 작가의 삶을 닮았다. 박 작가가 ‘소설은 삶의 예시’라 한 것처럼, 두 명의 작가가 나눈 우정은 문학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박 작가의 낯선 상상력이 현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그를 아끼는 이들의 애정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박 작가는 자신이 받은 애정을 『핸드메이드 픽션』에 고스란히 담았다. 박 작가가 가진 문학적 상상력과 현실에 대한 애정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값진 보석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만약 집주인이 이글을 보게 된다면 2천4백만원은 꼭 돌려주기 바란다.


“죽어 신(神) 앞에 섰을 때, 작가는 그간 탈고한 모든 글을 소명해야 한다. 그 노역에 이 책이 더해졌다. … 돌아볼 마음 따위는 없다. 부끄럽지 않다. 여기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가 전부 나다. 내 손으로 썼다.” - 작가의 말 中





◈ 작가소개


박형서
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2008년 「정류장」으로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2010년 『새벽의 나나』로 제18회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으로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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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드 픽션 박형서 저 | 문학동네

『핸드메이드 픽션』은 그의 세번째 소설집이다. 제목 아래 2006년 겨울부터 2010년 겨울까지 그가 쓴 8편의 소설을 묶었다. 책에 실린 단편들은 하나같이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준다. 일단 재밌다. 다시 봐도 재밌다. 되새김질해도 재밌다. 그러나 묘하게 어려운 데가 있다. 내 앞에서 깔깔 수다를 떨며 제 속내를 다 까발려서 쉽게 알 것만 같았는데 돌아서면 알다가도 모를 사람처럼, 그렇게 찜찜하게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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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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