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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국가에 의해 살해된 여성을 써보려고 했어요”

『채홍』 김별아 “아모르파티, 운명을 안고 끝까지 간 사람들 이야기를 계속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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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때 눈이 흩날리던 지난 12일의 겨울밤, 서울 서교동의 자작나무 기둥이 있는 한 카페. 열 번째 장편소설이자, 일곱 번째로 역사를 다룬 소설 『채홍』을 쓴 김별아 작가와 독자들이 만났다.

(여성을 배제했다는 점에서 불완전했으나) ‘만민이 평등하다’는 개념과 ‘인권’이 부각된 프랑스혁명(1789). 혁명을 추동한 다양한 동력이 있었다. 물론, 된장녀처럼 인식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는 바로 잡아야 하겠고. 가령, 혁명의 정신적 윤활유라고나 할까. 커피 혹은 커피하우스(살롱)는 혁명에 검은 혈액을 투여했다. 커피를 만드는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렇다면 지성적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여기 그 단초를 좇아간 책들이 있다. 우선 『책과 혁명』(로버트 단턴 지음/주명철 옮김|길 펴냄). 단턴은 18세기에 금지된 베스트셀러를 추적했고, 당시 인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권을 소개했다. 이 가운데 한 권이 이른바 ‘포르노 소설’이었단다. ‘음란함’이 혁명을 부추겼다?

『인권의 발명』(린 헌트 지음/전진성 옮김|돌베게 펴냄)도 비슷한 이야길 펼친다. 인권의 발명 배경에 ‘음란한 연애소설’ 세 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리처드슨의 『파멜라』(1740)와 『클라리사』(1748), 장 자크 루소의 『신엘로이즈』(1761). 제목부터 끈적끈적함이 묻어나오는 이 책들이 인권과 무슨 상관인가, 의아하겠다. 헌트는 ‘공감’으로 이것을 설명한다.

“전통적인 사회적 경계, 즉 귀족과 평민, 주인과 하인, 남성과 여성, 아마도 성인과 아동 간의 경계마저 넘어 공감했다. 그 결과 타인들-그들이 개인적으로 모르던 사람들-을 자신처럼, 마치 동일한 내면적 감성을 지닌 존재로 보게 되었다. 이러한 배움의 과정이 없었다면 ‘평등’은 깊은 의미를, 특히 정치적 성과를 전혀 얻지 못했을 것이다.”(『인권의 발명』)



그럴듯하지 않은가? 무조건,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음란함은 나쁜 것’이라는 신앙(?)을 갖고 있다면, ‘에이, 무엄한 놈’이라 내뱉고 더 이상 읽지 말 것! 그렇지 않다면 이야길 더 풀어보자. 음란한 연애소설, 익숙한 이름도 있다. 루소. 맞다. 『사회계약론』. 그도 썼다. 하악하악. (몽테스키외, 볼테르도 연애소설을 썼다!) 루소는 당대, 『신엘로이즈』라는 비극적 연애소설 작가로 인민들에게 더 널리 알려졌다.

각각 몇 쇄를 찍었는지 봐도 알 수 있다. 『사회계약론』은 1762년과 1791년, 두 번. 『신엘로이즈』는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였다. 1761년부터 40년 동안 115쇄를 찍었다. 해적판이 난무할 때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탐독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곧, 끈적끈적한 음란함을 통해 주인공의 비극적인 상황에 ‘공감’했던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사람들을 곧추 서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갈급함과 공감. 『여자의 남자』 김한길 작가가 우리나라엔 정말 찐한 연애소설이 없다며,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 것, 이해가 간다. 김별아 작가에게도 사랑이 가장 큰 주제다. 물론 그것은 단순한 연애감정의 이상의 것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


『채홍』의 봉빈은 작가에 의하면, 이런 여성이다. “순종적인 현모양처로 상징되는 천편일률적인 조선 여성상을 뒤집는 파격적인 인물이자 자신의 사랑과 욕망에 솔직했던 여성.” 그리고 봉빈은, 사랑을 한다. 허나 당대의 사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랑을 금지한다. 사랑이 아프다. 그 아픔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채홍』이 더 음란(?)하고 말초신경을 더 자극했어야 하지 않나 생각도 한다.

봉빈을 만나고, 홀리 골라이틀리가 떠올랐다. 사람 없는 새벽의 맨해튼 5번가, 커피 한 잔과 데니쉬 페스트리를 먹으면서 창문을 통해 티파니 매장을 바라보는 골라이틀리. 지난 1월20일, 19주기를 맞았던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의 히로인이다.

그녀는 싱글여성에 대한 모든 것을 바꿨다. 50년대까지 천박한 속물이자 섹스나 즐기는 나쁜 여자로 인식됐던 싱글여성(에 대한 인식)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삶을 즐기는 여성으로 탈바꿈했다. 대개는 시대가 여성상을 만들지만, 골라이틀리는 등장과 함께 새 시대를 열었다. 빌리 와일더의 말이 뒷받침한다. “혼자 힘으로 풍만과 육감의 시대를 바꿨다.” 봉빈(의 사랑)도 시대를 흔들었으면 좋겠다. 엄숙하고 금지된 것이 많은 시대는 흥미가 떨어지거든. 봉빈의 사랑, 기억해야 할 이유다.

“마음의 거울을 아무리 톺아봐도 사랑하는 사람끼리 살을 섞고 정을 나누는 것이 왜 부끄러운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진실할수록 추하고 솔직할수록 퇴폐적이라 한다면, 설령 그것이 세상의 죄일지라도, 그 사람의 중죄는 쾌히 지어야 마땅하리라……!”(p.208)



『채홍』, 어떻게 나왔나

오후 한때 눈이 흩날리던 지난 12일의 겨울밤, 서울 서교동의 자작나무 기둥이 있는 한 카페. 열 번째 장편소설이자, 일곱 번째로 역사를 다룬 소설 『채홍』을 쓴 김별아 작가와 독자들이 만났다. 먼저 독자들에게 말을 건넨 별아 작가는, 곧 나올 무삭제 『미실』개정판 이야기부터 꺼냈다. 제1회 세계문학상 공모전 수상 당시, 1500매였으나 책으로 첫 출간하면서 150매를 덜었다. 개정판에는 미실의 남편이 죽는 과정 등을 복원하고 미실이 화랑도에 사상적으로 미친 영향을 보충했다. 『미실』은 그녀에게 역사를 소재로 한 첫 작품이었다. 『채홍』에 이르기까지, 『영영 이별 영이별』, 『논개』, 『백범』, 『열애』, 『가미가제 독고다이』 등의 역사소재 작품이 줄을 섰다.


그렇다면, 『채홍』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결과적으로 별아 작가의 촉수가 뻗은 결과다. 성리학을 이념으로, 도덕을 통해 배제되고 통제된 조선시대 여성의 삶. 특히 하지 말아야 하는 사랑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 주목했다. 아모르 파티.

“일부 학자는 (조선이) 근대화를 못하고 나라를 뺏긴 이유로 많은 사람을 소외시킨 걸 든다. 여성, 서얼 등이 있는데, 조선 초중기만 해도 성리학이 평민에게까지 닿진 않았다. 남존여비, 장자중심은 250~300년밖에 안 된다. 조선 초중기 왕실이나 귀족이 모범을 보여야 했고, 통제를 강화하는 입장에서 왕실이나 사대부에선 도덕을 강조했다. 그 와중에 여성에게 사랑은 큰 죄였다. 그때 대부분 견뎠던 다수도 답답했을 것이다.”

사학자들에 의하면, 양반의 조건에는 세 가지. 돈(재산), 학문(과거급제), 열녀 혹은 충신. 다 갖춰야 양반이었다. 특히 충신이나 열녀가 집안의 큰 자랑이어서 조선 후기엔 일부러 열녀를 만들려는 조작도 있었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의 글에도 나온다. 임진왜란 때 한 아내가 남편을 따라 죽었다. 알고 보니, 늙은 부모와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열녀라 할 수 있을까? 그걸 놓고 박지원이 논쟁을 벌인다. 대부분은 열녀로 못살았다. 봉빈은 명예살인을 당한 것으로 설정했지만, 국가에 의해 살해된 여성을 좀 더 써보고자 한다. 첫 이야기가 봉빈이다.”


그녀는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쓰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근 큰 인기를 얻었던, 『채홍』과 시대가 겹친 드라마 이야기도 나왔다. “세종대왕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역사소재 드라마나 영화가 좀 불편하다. 재미를 위해 역사가 소비되는 느낌이다. 모든 사대부의 이상은 군자가 되는 것이었다. 세종대왕은 군자의 최고 이상을 가졌기에, 욕을 할 수 없는 분이다. 재미를 위해 그리 했겠지만. 특히 족보나 성별을 바꾸면, 대중적으로 회복되기가 어렵다. 책이나 역사서를 통해 독자들이 역사를 정확히 알고자 했으면 좋겠다.”

그녀는 역사소설을 쓸 때도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지 않는 게 목표다. 그래서 더 재밌게 구성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채홍』에서도 기록을 지키려다 보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내시나 궁녀였고, 여자를 사랑한 여자, 소쌍이 나왔다. 그녀는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계속 쓸 계획이다. 이어 독자들과 별아 작가의 이야기가 본격 펼쳐졌다.

봉빈,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왜 죽였나?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는 부정확하다. 아버지에게 죽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실록을 보면, 아버지는 한 해 전 죽었다. 봉빈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족보를 구하고자 애를 썼다. 내가 아는 봉 씨는 봉준호 밖에 없는데, (웃음) 족보를 못 구했다. 족보사이트를 뒤지니 세자빈으로 간택된 것만 나와 있더라. 더 뒤지니 큰 오빠, 작은 오빠가 있더라. 그런데 큰 오빠의 자손 기록은 있으나, 작은 오빠는 없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기록에 대해 상상력을 불어넣는 거였다. 실제로도 봉빈이 친정에 돌아와선 방법이 없었을 거다. 대부분, 죽이지 않으면 죽기를 강요했겠지. 기록이 없어서 족보에 자손이 없는 두 번째 오빠와 함께 죽는 걸로 설정했다. 봉빈은 폐빈 될 때 이미 끝난 셈이다. 미안하다. 비극을 만들어서. (웃음)

소설을 보면, 생소하고 낯선 단어들이 종종 보이더라. 어떻게 알고 쓰나?

우리말을 많이 쓰려고 노력한다. 이유 중 하나가, 독자들과 함께 500년, 1500년 전으로 잠시라도 가보고 싶어서다. 옛일이 아닌 현재로 체험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감각으로 느끼는 거지. 감각을 좀 더 예민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말을 쓰고자 한다. 비법은 없다. 사전을 띄우고 계속 단어를 넣고 찾는다. 문법, 철자 이런 걸 다 찾아본다. 안 틀리려고. 20년차 작가가 돼도 그런다.

모국어면 처음 보는 단어라도 굳이 사전을 안 찾아도 된다. 소설에 이 단어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게 쓰진 않는다. 이런 느낌일 거라고 넘어가도, 단어가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내 것이 되는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인이 가진 단어가 5000개 정도라더라. 고등교육을 받으면 9000개, 작가들은 1만8000개라던데, 계속 작가도 공부를 하는 거지. 책을 읽는 건, 자기 단어를 늘리는 거다. 언어를 많이 가진다는 건 풍부한 세계를 가지고 풍부한 상상력을 한다는 것이고. 새로운 단어를 접하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모른다고 열등감 가질 필요 없다. 단어를 몰라도 느낌만 갖고 읽으면 된다.



역사소설을 쓸 때 인물에 꽂히는 건가, 시대에 꽂히는 건가?

두 경우 모두다. 분리하긴 어렵다. 미실과 봉빈은 비슷한 점이 있다. 욕망에 정직하고 활발하고, 당돌하고. 나는 기본적으로 나쁜 년을 좋아한다. 시대에 반하는.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는 말 잘 안 듣는 애들이다. (웃음) 더 커다란 테마는 사랑과 죽음이다. 남녀간, 동성 간 연애감정이라기보다, 가령, 『논개』는 애국심이라는 사랑에 대해 고민하다가 썼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니체의 ‘아모르 파티’다. 운명에 대한 이야기. 자기 운명을 껴안고 끝까지 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왜 현대를 안 쓰냐는 질문, 많이 받는다. 현대를 잘 쓰는 분도 많고, 사랑과 죽음을 구현하기엔 현대, 현대를 사는 우리가 비겁하지 않나? 목숨 바쳐 사랑하지 않잖나. 말만 그러고선 재고. 다 던지고 투신하는 시대도 아니고, 점점 더 못하고. 현대에 옮기면 신파일 수밖에 없고.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이야길 찾다보니 과거로 가는 것 같다.


드라마 의뢰가 온다면 흔쾌히 허락하는 편인가?

돈 주면 당연하지. (웃음) 다만, 오보가 나곤 하는데, <선덕여왕>은 『미실』이 원작이 아니다. 『채홍』은 영화사에서 제의는 왔다. 내 소설은 19금 소지가 있어서 드라마는 좀 어려운 것 같고. 『논개』는 드라마판권이 팔렸는데, 소식이 없네. (웃음) 영상은 소설과 다른 장르라, 팔리고 나면 관여하기가 어렵다. 걱정되는 부분은 있다. 아는 소설가가 판권을 팔고, 드라마가 나왔는데, 원작과 말도 못하게 달라서 당황스러웠다더라. 한 번은 처음부터 같이 가자며 만난 적이 있는데 영상화를 위해서라며 역사적으로 터무니없는 말을 하더라. 왕비와 왕의 호위무사가 따로 있고, 싸움을 하는. 못하겠더라. 역사를 제대로 아는 건, 현재와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 재미로만 소비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동기가 있나?

좀 이야기가 긴데, 문학을 하면서 살겠다고 생각한 건 17살 때였다. 문학이 내겐 구원이었다. 문학을 알면서 세상을 알았다. 대학에 가선 공부는 않고 학생운동을 했다. 국문학과였는데, 문학과 운동 사이에서 고민했다. 4학년 때, 4월 어느 날, 학교 병원에 시신이 들어가니 받으라는 전화가 왔다. 강경대였다. 강경대 열사의 죽음 이후 모든 시민단체와 총학이 몰려들었다. 한두 달 집에 못가고 철야와 허드렛일을 했다. 어느 날 자다가 나왔는데, 강경대 누나가, 동생 부검 사진을 유인물로 뿌렸는데, 막 밟히고 이런 걸 쓰레기통에서 줍고 있더라.

그때 생각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도 언젠가는 다 일상으로 갈 것 아닌가. 남는 게 뭔가. 슬픔 와중에 재밌는 일도 있지만, 모든 감정은 다 터지겠구나. 역사를 쓰는 손은 두 개가 있다고 봤다. 역사가의 손과 문학가의 손. 사람을 쓸 수 있는 건 문학이란 생각이 들어서, 문학으로 돌아왔다.

나는 모두가 가는 길을 못 간다. 말을 안 듣는다. (웃음) 하지 말라면 기어코 하는 성격이라, 문단에서 주류가 될 수 없는 성격이다. 한 10년 정도, 『미실』까지 무명작가로 살았다. 청탁도 못 받은 10년, 제일 공부를 많이 했고, 고민도 많았고, 그때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됐다. 작가는 경험을 많이 해야 돼, 하면서 고등학교 졸업 후 버스안내양도 하고, 공장도 다니고 했는데, 중간에 혁명적인 계기가 생겼다. 아이를 낳았다.

세상이 바뀌더라. 이기적, 폐쇄적인 인간이었는데, 이놈이 나오니 24시간을 저당 잡혔다. 진짜 ‘헉’ 했다. 인생을 다시 배웠다. 경험을 할 수가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공부였다. 인류문명사를 공부하면서 『축구 전쟁』을 썼다. 1960년 멕시코월드컵 중남미 예선을 하다가 전쟁이 난 얘긴데, 아무리 잘 써봐야 남의 나라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역사를 쓰자고 했고,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현대를 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겠다 싶었다.



필요 없는 공부는 없다. 길이 안 보이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는 거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중요하다. 이후는 시간과 운, 노력이 따라야 하고. 나는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했다. 지금 큰 재산이다. 나보다 글 잘 쓰고 재능 있는 친구들도 다 떨어져 나갔다. 나는 배수진을 쳤다. 10년 동안 하나만 하면 나중에 할 것이 없다. 모든 수족을 다 끊고, 문학밖에 안 남더라. 지금 생활이 무척 단순하다. 약간 바보 같다. (웃음)

그렇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대부분 작가는 그러지 못한다. 나는 운이 좋지만. 글만 써서 살 수 있는 작가는 몇 명 안 된다. 현실과 하고 싶은 일의 괴리를 많이 얘기하는데, 중학생도 그걸 얘기한다. 요즘 중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이,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다. IMF이후 먹고사니즘이 지배한 이후로 그렇다. 초등학교 졸업한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공무원이다. 너무 재미없지 않나? 좌우명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초딩이? (웃음)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나이 아닌가? 하기 싫으면 도망가야 하는 나이인데, 아이들이 너무 조로한다.

냉정하게 자기를 보라고 말한다. 어느 분야든 그걸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1%다. 나머지는 못 먹고 산다. 자기 재능을 보라는 건, 열정과 끈기를 보라는 거다. 상황이 그렇더라. 정말 하고 싶으냐? 그러면 해야지. 나는 이거 아니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10년 동안 1년에 200~300만원 벌 때, 욕망을 줄였다. 욕망의 다이어트.

이런 말하니 가슴이 아픈데,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는 아픈 것도 이유가 있었는데, 어쨌든 좀 적게 먹고, 일을 할 수 있으면 굶어죽지 않는다. 상대적 박탈감, 빈곤감이 큰 거지. 남들이 가진 것을 포기하고, 거기에 맞게 삶을 재편하는 거지. 그러면서 나는 견딜 수 있었다. 여성잡지 프리랜서로 일하고 어린이 책도 쓰고, 고스트라이터도 했다. 비참해하지 않고, 즐겁게 일했다. 이런 계기 아니면 이런 사람들 어떻게 만나나, 하면서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의 욕망을 봤다. 뻔하고 천한 자기 과시가 보일 때도 있고, 그 사람들의 결핍과 관심병, 낮은 자존감도 보고. 세상과 사람을 배웠다. 그게 지금도 글 쓰는 자산이다.

나는 청탁이 오면 다 쓴다. 조정래 선생님은 쓰기 싫을 때, 책상 앞에 앉아서 될 때까지 앉아 있는다고 하시더라. 나는 무조건 10매를 쓴다. 다음날 지워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정해놓고, 일을 한다. 자신한테 가혹한 일이다. 빈혈을 앓고 있는데, 피를 말린다. 그래도 좋고, 행복하니까.



열일곱 살에 문학을 하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있나?

초3때 이야기에 매혹됐었다.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금성출판사 소년소녀 명작전집 30권짜리를 주셨다. 뻥을 좀 보태 2박3일만에 다 읽었다. 청소년기엔 이중생활을 했다. 학교에선 범생이었고, 공부도 잘 했다. 반면 집에선 엄마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은 폭군이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모든 짓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거의 미쳤었다. (웃음)

그러다 고2때 터졌다. 학교에 새로 부임한 선생님이 시인이었는데, 내가 교지에 쓴 걸 보곤 작가들에 대한 것은 물론 한국문학을 소개해주셨다. 그 이전에 분열됐던 삶이 문학으로 합쳐졌다. 스스로에 대해 깨닫고 세상을 깨달으면서 편해졌다. 내겐 문학이 밥벌이 수단만은 아니었다. 지금 많이 좋아졌다. 예전보다 유명해져서가 아니고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었거든. 아들에게도 그런다. 행복의 하나의 기준은, 7살에 행복한 아이가 27, 37에도 행복할 수 있다고. 행복한 마음, 그게 다인 것 같다. 남들에게 행복해보였을 때 안 행복할 수 있고, 흠이 생기고 드문드문 결점도 생겼을 때 더 행복할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에 이어진 백두대간 종주 책은 언제 나오나?

작년 10월, 백두대간 종주를 했다. 그것도 내 삶의 분절점이다. 마흔을 넘으면서 새롭게 살고 싶었다. 피하고 꺼렸던 일 해보자. 그러지 않으면 이전 방식대로만 살겠다 싶더라. 익숙한 것을 가져가면 편하게 갈 것 같은데, 삶을 뒤집어보자고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산을 오르는 거였는데, 한 달에 두 번씩 탔다. 평균 10시간 정도 산행 아닌 고행 비슷한 것을 했다. 16회 차까지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했다. (웃음) 얼마나 스스롤 원망했는지 모른다. 두 번째 산행기가 봄에 나오는데, 그때부터 길이 보였다.

나는 마음보다 몸을 믿는다. 우울하면 무조건 걷는다. 햇볕을 쬔다. 기운이 없으면 탄수화물을 먹는다. 그래야 몸이 마음을 움직여준다. 이달 말부터 모 스포츠신문에 연재할 계획인데, 올해 런던올림픽이 있고, 종목별 국가대표를 만나 글을 쓴다. 운동선수들, 존경한다. 극단에 간 사람들, 강자라고 생각한다. 요가를 12년 이상 했고, 요새 선생님이 파워요가를 가르치는데, 복근운동을 200개씩 시킨다. 지난번 180번 하고, 이번에 181개를 할 때 죽을 것 같더라. 그 한계가 힘이고 체력이다. 정신력은 근육에서 나온다는 말을 한다. 앉아 있을 수 있는, 살아가는 힘은 몸에서 나온다고 본다.

내가 편안해진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나를 인정한 것이다. 우울해지려는 순간, 나를 움직인다. 햇볕을 쬐거나 밖에 나간다. 잘 먹고 푹 자고. 나를 잘 아는 게 중요하다. 난 원래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 살아보니 인간은 잘 안 변한다. 좋아졌다지만 내 속엔 여전히 있고, 조심하는 거지. 나를 구원한 세 가지는, 문학, 아들,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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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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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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