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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 보고 감동 받았다는 건 거짓말!” - 『익숙한 화가의 낯선 그림 읽기』 전준엽

미술을 대할 때, 올바른 감식안을 가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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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창조하는 것은 화가이고, 그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관객이다. 화가가 자신의 시선과 삶을 담아 동시대를 관통하거나 시대에 저항하는 미학과 가치를 담아냈다면, 관객들 또한 자신의 시대와 정서에 맞춰 그림을 감상한다.


그림을 창조하는 것은 화가이고, 그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관객이다. 화가가 자신의 시선과 삶을 담아 동시대를 관통하거나 시대에 저항하는 미학과 가치를 담아냈다면, 관객들 또한 자신의 시대와 정서에 맞춰 그림을 감상한다. 그렇다면, 그림을 둘러싼 당사자는 이 둘만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다. 또 하나의 존재감이라면, 평론가 혹은 비평가가 있다. (물론 다른 주체들도 있다.)


평론가는 둘 사이를 잇거나 화가의 그림에 어떤 해석을 가한다. 그림을, 미술을 이해하고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 그래서 어떤 작품이 유명해지는 계기는 비평이다. 20세기 들어와서 더욱 그렇다. 전설에 의하면, 미술가는 직업이 아니라 소명이라고 하는데, 어쩌다보니 소명만으로 미술가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20세기 이후, 어떤 작품은 평론가 등에 의해 예술이라는 합의가 이뤄지고 나서야 예술작품으로 기지개를 켠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평론가들의 해석은 작가를 규정하는 틀을 제시하는 한편, 관객들의 감상을 돕는다. 화가와 작품은 그렇게 익숙한 틀에 가둬져 규정되는 존재가 됐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예술가든 작품이든, 하나의 틀로서만 규정될 수는 없는 법. 『익숙한 화가의 낯선 그림 읽기』의 전준엽 저자는 익숙한 화가의 낯선 그림을 찾는 모험적인 감상 방식을 권한다. 특히 이런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생각의 방식과 범위를 넓히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예스24와 예술의 전당이 함께 마련한 ‘작가와의 만남’. 『익숙한 화가의 낯선 그림 읽기』의 전준엽 작가가 초대돼 독자들과 만났다. 이날, 사물을 바라보는 화가들의 시선과 현대미술의 경향 등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


자, 사과가 있다고 치자. 사과라는 객관적인 사물을 놓고, 화가들은 어떻게 이를 읽고 표현했을까.

인상주의 화가는 사과를 그렸다. 표현주의나 야수파는 달랐다. 그들은 사과를 그리기 위해 그리지 않았다. 주목적은 빨간색, 그것을 쓰기 위해 원을 그리고 사과를 그렸다. 즉,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추상은 여기서 시작한다. ‘사’자를 나누면 어떻게 되겠나. ‘ㅅ’과 ‘ㅏ’가 되고, 더 나눌 수도 있다. 추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건 거짓말이다. (웃음) 추상화는 내용이 없어서 뜻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뭐를 봐야 하나. ‘ㅅ’을 쓰는데, 쓰는 방식이 여러 개 있다. 무슨 방법으로 했느냐. 어떤 재료와 방법으로 작품을 했느냐. 방법론의 미학이 나오면서 20세기 미술이 복잡해졌다. 그전까지 르네상스 200년, 낭만주의 100년, 사실주의 100년과 같이 한 흐름이 쭉 갔는데, 20세기 초에 와서는 개념들이 짧고 다양하게 일어난다.”

20세기 미술은 종전과 다른 양상이었다. 몇 사람이 모여서 개념을 잡아서 방법론을 만들면 미술의 한 사조가 됐다. 다다이즘, 팝아트 등도 그중 하나다. 그것은 미술평론가의 영향력이 커진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또한 20세기 들어 미술은 감상을 넘어섰다. 아이디어에 관심을 두고 말을 만든 것이 평론이었으며, 평론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도 20세기였다.

더 나아가, 오브제 개념도 20세기에 나왔다. 오브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술가는 마르셀 뒤샹이다. 화장실의 변기를 전시장에 떡하니 갖다 놨다. 화가나 미술가가 미술재료로 만든 것만 미술이라고 믿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20세기 서양문화가 가치 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별것 아니다. 오브제는 객관적인 물체다. 변기가 공장에서 생산돼 창고에 쌓여 있다고 보자. 누구나 변기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창고에 쌓인 변기에 소변을 보는 사람은 없다. 결국 장소성이다. 창고에 쌓인 변기를 화장실에 설치했을 때 기능을 갖게 된다.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갖다 놓았을 때, 역시 소변을 보는 사람도 없다. 뒤샹에 의하면, 오브제는 기능을 갖기 전 상태의 물체다.”

저자는 아기라는 ‘오브제’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갓 태어난 상태, 이름이 없는 3.0kg의 남자, 일반적인 개념으로 규정을 하면, 아기 역시 오브제이며, 물체라는 것. 그 상태를 작품화하려고 한 것이 마르셀 뒤샹의 개념이었다.


현대미술의 복잡한 경향


현대미술이 복잡해지는 경향은 이런 것과도 연관을 맺는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혔고, 다양한 사조를 탄생시켰다.

저자는 현대미술에서 독일이 갖는 위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독일은 음악과 철학이 발달한 반면 미술에선 상대적으로 이탈리아, 스페인에 비해 후진국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알브레이트 듀러가 한 획을 그었으나, 듀러도 이탈리아를 동경했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덕분에 미술 붐이 일어났고, 인상주의는 프랑스 기질에 맞는 학파였다. 인상주의 이후로 서양미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독일은 20세기에 들어서 빛을 발했다. 저자에 의하면, 현대미술을 주도한 것이 독일이다. 독일미술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백남준 선생이 독일에 가지 않았나. 요셉 보이스, 존 케이지와 플럭서스 운동을 하면서 히트를 쳤는데, 미술에서 첫 번째 단추를 연 것이 독일의 표현주의다. 표현주의에서 나온 것이 추상 회화인데, 이의 창시자인 러시아 출신의 바실리 칸딘스키가 독일 슈바빙에서 예술가로 성장한다. 칸딘스키가 슈바빙에서 청기사파를 만들었다. 그는 표현주의는 추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세간의 오해가 있는데, 피카소는 추상화와 상관이 없다. 표현주의도 마찬가지다. 뭐든 가능한 최소한의 개념으로 시작한 게 표현주의다.”

점, 선, 면, 색채로 화면을 구상한 것이 추상이다. 미술사에선 이걸 ‘이성적 추상’이라고 한다. 피트 몬드리안이 창시했고, 현대 디자인 개념까지 이어진다. 작가의 창작의지와 관련 없이 갈 수 있는 것이 또한 이성적 추상이다. 서울 광화문의 흥국생명 빌딩 앞에 있는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헤머링맨)’은 작가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다. 작가는 디자인만 했고, 공장에 제작을 맡겼다.

< 작가의 다른 작품들 >


이성적 초상의 반대편에 ‘뜨거운 추상’이 있다. 저자는 칸딘스키의 「푸가」라는 작품을 든다.

“음악은 추상이다. 칸딘스키는 음악이야말로 완벽한 추상화고, 음악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어서 「푸가」와 같은 식으로 표현했다. 20세기 들어 이 두 개의 초상이 함께 발달했다. 차가운(이성적) 초상은 미니멀리즘(최소한의 예술)이 되고, 뜨거운 추상은 절대주의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다.”

추상이 만든 방법론에 표현적인 요소를 집어넣은 추상 표현주의도 있다. 잭슨 폴록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넘버1. 1950:레벤더 안개」을 보여준다. 이 그림엔, 전후좌우가 없다. 이런 것을 전면 회화라고 지칭한단다.

“현대 회화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됐다. 마음에 있는 어떤 생각을 걸러서 표현하기보다 즉흥적으로 표현했다. 미국에 오면 ‘액션 페인팅’이고, 유럽에서는 ‘앵포르멜’이다. 장 포트리에가 대표적인데, 「인질」이라는 작품이 있다.”

「인질」은 희생자들의 끔찍한 모습을 통해 전쟁의 공포를 표현한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시대상을 담아낸 작품이다.

“우리가 소고기를 먹잖나. 그건 물질로 보기 때문이다. 옆에서 소고기가 눈을 끔뻑이고 있으면,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겠나.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나치는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다. 화장하려고 시체를 쌓아놓고 프레스기로 기름을 짰다. 과연 인간이 뭐냐. 그걸 보고 충격 받은 예술가들이 많았다. 그건 인간을 물질로 봤기 때문에 가능했다. 장 포트리에도 그런 모습에 충격을 받아 추상적인 표현에 강한 메시지를 담아 「인질」을 창작했다.”

1950~1960년대에는 개념미술이 나왔다. 머리에 있는 생각 자체가 예술이라는 콘셉트였다. 가령, 플럭서스의 멤버였던 요셉 보이스는 한 점의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그냥 물건을 갖다 놓고, 이름을 붙였다. 아이디어가 곧 예술이었다. 그러다, 아이디어로 예술 하는 시대에 반발해서 나온 것이 팝아트였다. 개념과 아이디어에서 벗어나 감성의 미술로 돌아오자는 취지로, 20세기 후반에 나왔다.

“현대미술이라고 겁낼 필요 없다. 그런 미술은 그들만의 리그 같은 거다. 그림을 볼 때, 정보를 갖고 출발하지만 감정대로 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추상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 없다. 자기 감성에 와 닿지 않아도, 느낌이 없어도, 떳떳하게 의견을 가질 때 미술에 대한 올바른 감식안이 생길 거다. 내가 글을 쓰는 건, 독자적으로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이 좋은 예술이고, 예술가의 의무다. 내가 책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다.”


Q & A


백남준 선생의 비디오아트가 현대 미술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으로 보면 되나?
백남준 선생은 붓과 물감을 비디오라는 캔버스에 담은 셈이다. 비디오 모니터가 캔버스가 되고, 다른 전자장치가 붓과 물감인 거다. 백남준 선생은 다양한 현대 추상 개념 중의 하나를 만든 거다. 그래서 대단한 거다. 현대미술사에서 분명히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이건 감상의 미술은 아니다. 집안에 놓고 볼 것은 아니다. 감상의 미술이 아닌 미술사에서 한 이즘을 만들어놓았고, 20세기 다양한 미술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

오브제가 개념이 없는 형태라고 했는데, 최근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이것이 미국미술이다>전은 오브제 개념이 확대된 건가?
오브제다. 기능이 없잖나. 설치미술도 오브제에서 확대된 것이다. 대지미술이라고 있다. 지구를 캔버스로 생각하는 장르다. 아이디어가 중요하게 인식된 것이 20세기다. 다만 회화로 봤을 때는 지금 본령으로 다시 가는 추세다.

평론가들은 현대미술에서 어늶 부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나?
방법론,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여긴다. 즉, 감상의 미술이 아니다. 백남준 선생의 작품을 집에 놓고 감상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는데, 충격적인 메시지나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것에 평론가들은 비중을 두고 이론적으로 정립을 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도가니>라는 영화는, 휴머니즘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것을 이야기하잖나. 현대미술에서도 끔찍한 것이 많다. 평론가들도 그런 측면을 보고 말하기도 한다. 현대미술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전에는 감상이 있었다면, 지금은 다르다.

가령,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보고 일반인들은 놀랄 여지가 큰데, 현대미술은 그것에 접근하는 매뉴얼이 있고, 그것이 평론이다. 대중들이 평론을 보고 이해를 하는 거지. 20세기 들어 평론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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