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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계에 스타가 나오지 않는 까닭 -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 김동일

예술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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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예술의 명제는 이러했다. 예술이란, 어떤 ‘예술적인 것’이 있다는 뜻이다. 예술이란 이 본질적인 어떤 것(essence)이 있다는 가제는, 예술가란 그것을 발견해낸 자로 정의하게 만든다. 진리를 발견해낸 자가 예술가고, 그렇지 않으면 예술가가 아니다.

네가 ‘예술’을 몰라서 그래

Art is essence 전통적인 예술의 명제는 이러했다. 예술이란, 어떤 ‘예술적인 것’이 있다는 뜻이다. 예술이란 이 본질적인 어떤 것(essence)이 있다는 가제는, 예술가란 그것을 발견해낸 자로 정의하게 만든다. 진리를 발견해낸 자가 예술가고, 그렇지 않으면 예술가가 아니다.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피카소, 고흐, 모네, 다빈치 이런 분들이 바로 예술가다. 그런데 예술은 과연 ‘그들만의’ 것인가?

아니다. 예술은 실천이다. Art is practice.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의 저자 김동일은 예술은 ‘실천’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실천’은 ‘본질’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예술이라는 것은 본질이라고 말함으로써 예술을 독점하려는 주류 예술인들이 있다” 그는 지금 현재 예술이라고 범위가 상당히 폭력적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생소하다고면 이렇게 접근해보자. ‘이것은 예술이고,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 기준이 되는 건 무엇일까? 무엇이 대상을 예술적으로 만들고, 예술이 아닌 것으로 전락하게 만드는가?

사회학자인 김동일 저자가 예술에 목소리를 높이게 된 데에는 계기가 있다. 화가인 저자의 아내. 결혼 전 그는 지금의 아내인 그녀의 관심을 받아보고자 미술관에 열심히 따라다닌다. 좀더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자, 공모전에 평론까지 응모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덜컥 당선이 된 것.

“그래서 나도 이제 예술을 하면 되겠구나. 목소리를 내면 되겠구나. 순진한 생각을 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잘 몰랐던 거다. 내가 ‘예술은 이런 거야. 저런 거야’라고 하는 말은 철저하게 무시되는 세계였다. 소수 몇몇의 예술적인 개념만 예술로 인정되고 나머지는 이렇게 묵살된다. ‘너는 예술을 잘 모르잖아.’” 아니, 선생님들. 대체 예술이 뭡니까? 그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또 그는 이런 상황들이 고민된다.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누굽니까?”라고 물었을 때, 사람들은 으레 고흐, 피카소의 이름을 댄다. 김동일 왈, “글쎄요. 전 단 한번도 피카소에게 감동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그럴 때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예술을 몰라서 그래” 본질이 어떤 것이라고 가정된 세계 속에서는, 본질이 아닌 나머지는 비(非)본질이 되는 법이다. 그래서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가 생겨난다.

김동일 저자는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을 통해 현재까지 지속되는 이런 예술에 대한 생각들이 작위적이라고 말한다. “시간과 공간, 예술적 실천 역시 무한히 가변적이고 다양하게 이뤄지는 거다. 그건 본질로서 규정될 수 없다.”

이완 작가의 ‘개미 마트’


이 작가의 작품을 한번 생각해 보자. 부산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한 이완 작가다. 저자가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반 지하에 살림집을 꾸려놓았다. 작업실로 가자고 하더니 집 뒤에 장독대가 놓인 곳을 데려간다. 그가 우유팩 앞 뒤를 잘라 장독 앞에다 놓았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개미가 냄새를 맡고 어디선가 한 줄로 모여든다. 우유 맛을 보고 또 다시 졸졸 빠져나간다. 이완 작가의 말.

“<개미 마트>입니다.”

“Essence로서의 예술을 정의하자면,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작품이야 말로 진짜 예술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 관점에서 이완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예술이 되겠나? 장난이지. 한마디로 듣보잡!” 그런데 이것은 정말 예술이 아닐까? “젊은 실천자들은 이미 기존의 예술 관념에서 벗어나 있다. 예술의 가변적인 속성을 충분히 보여주기 위한 실천을 하고 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관습적인 예술/사회 이분법에서 사회란, 예술적 천재들이 창조해 낸 아름다움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환경이나 역사적 맥락일 뿐이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식의 전통적 이분법이 동시대 예술적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예술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속에 침투하고, 예술과 하나가 된다. 예술이란 단어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회일 뿐 아니라, 동시대의 ‘사회화된 예술’은 당대 사회의 모순과 쟁점들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p.7)


“하하.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전 그림 볼 줄 몰라요.”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예술에 본질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게 예술의 기준이 된다. 그러면 그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예술이 아니게 되는 거다. 본질을 공유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만 예술 한다고 얘기하고, 나머지는 예술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술은 이해를 하려고 해야지, 판단하려고 하지 말자”는 것. “내가 이해를 하는 것이므로, 내 이해와 해석도 남의 해석과 등가가 되어야 한다. 이해방식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이런 예술적 등가성을 충분히 보호하고 있나? 아니다. 굉장히 폭력적이고, 권력적이다. 수많은 예술적 실천과 이해들이 예술이라고 정해진 기준으로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학생들과 미술관을 한 바퀴 돌아본다. “오늘 어땠어?” 많은 학생들이 쭈뼛쭈뼛 이런 대답을 내놓는다. “하하.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전 그림 볼 줄 몰라요.” 이런 반응 역시 소수의 주류들이 투쟁을 통해서 한 장르를 에센스로 가정하고 나머지를 부정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 이런 면에서 우리 나라의 문화는 열악하고 암울하다고 그는 평한다.

“어떤 한국 작가를 좋아하세요? 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나열하기 일쑤다. 김홍도, 신윤복, 박수근, 이중섭……. 그 다음부터는 꼽기 힘들다. 누가 있을까? 조영남이 나온다. 낸시랭, 유희열이 나오기도 한다.” 왜 그럴까? 우리 나라에 예술 하는 사람은 다 어디로 갔나? 당신은 이 밖에 어떤 아티스트를 아는가? 그들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부분의 전시관에서는 이들의 이름을 볼 수 없다. 그곳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고, 예술가라고 공부한 사람들의 작품들만 걸려있다.

“본질에 속하는 예술가들은 미술계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경제적, 문화적, 상징적 이익을 독점한다. 이런 식으로 제도는 좀더 좁아지고, 관객들도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의 폭도 좁아진다. 예술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주류의 예술가들은 배분구조를 더 좁게 만들고, 많은 작가가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예술이 본질적인 게 아니라 실천적이라는 주장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내가 지지하는 작품을 직접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천적 예술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참여가 방법이 될 수 있다. 각자 예술적 실천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이름이 최소한 다섯 명은 나와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에 걸리는 작가가 무조건 좋은 작가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내가 직접 돌아다니고 작품을 보면서 좋은 작가를 발견해내야 한다.”

“대안공간, 화랑들이 많다. 가봐야 한다. 투쟁은 그래서 불편한 거다. 사람들이 본질이라고 획일적으로 말하는 걸 받아들이고, ‘넌 모르지? 그럼 바보야.’ 하는 식으로 사고할 게 아니라 좀 더 많은 시간과 공간을 투자해서 내 작가를 만들고, 내가 지지하는 작품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공유해야 한다.”

작가들의 실천적 예술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남의 집 지하실에 작품을 숨겨두고, ‘내 작품을 보고 싶으면 거기로 와서 보라’는 작가도 있다. “차별적이고 독립적인 이런 실천을 하는 작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 하나의 주류에 기대지 않고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론 그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런 작품들과 실천에 대해 글을 써야 한다.

미술 잡지만 봐도 온통 ‘뉴욕판’이다. “뉴욕 전시는 특집까지 하면서 기고해도, 한국 미술 정보는 전시후기, 프리뷰, 리뷰로 한꺼번에 몰아넣는다. 우리가 뉴욕의 한국 소식지를 만드는 게 아니잖나. 뉴욕에서 활동하는 어떤 한국작가가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소식만 전한다. 한국 미술계에서 논쟁이 되는 것, 중심이 되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적으로 보면 뉴욕의 식민지인 셈이다.”

공정한 대립, 경쟁 속에서 진짜 스타가 나온다


만약 데미안 허스트가 우리나라에서 성장했다면, 지금처럼 유명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을까? 뉴욕에서 호평 받고 있는 양혜규 작가가 있다. 저자는 “그는 뉴욕리그가 키운 작가지, 한국 미술 장에서는 그런 작가를 만들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우리 문화의 장에서 그런 인물을 만들어내려면 참여자가 많아야 하고 투쟁이 많아져야 한다. 반대 의견을 가진 자를 묵살시키려는 투쟁이 아니라 서로 인정할 건 인정하는 투쟁. 공정한 인정투쟁이 필요하다.” 그럴 때, 예술가들에게 평론가들에게 ‘개인 자질 이상의 작품, 글’이 나오게 된다. 치열하지만 공정한 대립과 경쟁 속에서 더 좋은 것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 속에서 스타가 나온다.

좋은 리그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 좋은 선수가 나오는 법. 한국 미술 현장에 좋은 리그가 형성되지 않은 데에는 관객인 우리가 공모한 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돌아다녀보면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작가들이 있는데 한국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비평가들도 이들에게 글을 써주지 않는다. 주류에게는 가도, 좋은 작가에게 글이 가지 않는다. 현재 예술적 실천에 공정한 룰이 없다. 인정, 인맥이라는 룰은 공정하다고 하기 어렵지 않은가.” 고로, 여러분. 좋은 작가를 발견하고, 글을 쓰자. 널리 널리 알리자.

“저항한다는 건 그저, 여러분이 정말 좋아하는 작가를 갖는 일이다. 그들의 작품 한 두 점은 소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는 거다. 실천은 시작됐다. 미술적 실천은 확산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향후 5년 내에 미술계에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굉장히 다양한 작가들이 더욱 많이 등장할 거고, 조만간 이들 작품을 이해하고 포섭하는 저널도 생길 거다. 인터넷 매체나 다양한 매체를 통한 작업도 많아 질 거다. 대학원 석사전 같은 데 꼭 가보길 바란다. 졸업을 위해 일년 정도 시간을 들여 작품을 준비하는데, 어디 좋은 미술관에 전시되는 복제품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 많다.” 실천은 확산되고 있다. 당신도 참여하라. 더 좋은 작가를 알게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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