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선, 이 말부터. 유명 예능프로그램, K본부의 <1박 2일>이 최근 특집으로 마련한 ‘외국인 근로자와 함께’. 내용 등은 차치하고, 아주 사소하게(아마도 혼자!) 버럭한 부분이 있었으니. 누가 ‘그분을 위한 방송(사)’ 아니랄까봐, K본부는 ‘근로자’라고 붙여주신다. 물론 ‘법’ 따르느라 그리 하셨겠지. 헌법이나 노동법 모두 노동자라고 일컫지 않는다. 근로자다. 그러면서 범죄자 수배전단에는 ‘노동자풍’이라는 단어도 썼다. 경찰의 얘기다. 민주노총의 항의를 받고 이젠 안 쓰기로 했단다.
원래는 노동자였다. 박정희씨가 대통령을 할 때,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꿨다. 조국근대화를 위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뺑이 칠 수 있는 ‘근로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나 보다. ‘노동’에 대한 몰이해이자 정치적인 술수였다. ‘노동’은, 빨갱이들이나 쓰는 좌경용공단어였었다. 노조에 대해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S그룹도, 비슷한 맥락일까. 노동자가 노동자를 위한 단체를 만들지 못하다니, 요즘 웃을 일 없는 소가 웃을 일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근로자 앞에 들어간 ‘외국인’도 걸린다. 물론 시청자들의 보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다. 허나, ‘이주’라는 말이 더 적합하겠다. ‘외국인노동자’는 “한국 사람이 아닌 외국에서 온 노동자”를 의미한다. 즉, 국적의 차별성을 품고 있다.
반면 이주를 붙이면 달라진다. 이주노동자는 “노동하기 위해 생활 터전을 옮긴 노동자”를 뜻한다. 노동자라는 동질성에 주목한다.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을 옮겨가며 노동한다는 이주의 당위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러니까, 한국 국적을 지니고 있지만, 나도 이주노동자다. 생활 터전을 타국으로 옮기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노동의 터전을 옮겨가며 노동했고, 노동하고 있다. 어디에서 왔건, 국적이 어떻건, 우리는 ‘노동자’라는 테두리에서 동질성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1박 2일>이 ‘이주노동자’라고 썼다면 나는 버럭하지 않았을 게다. 허허, 물론 ‘그분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되는 방송사’이니, 이해는 한다. 쪼인트 까일 수도 있고, 사람이 충성 맹세를 거슬러서도 안 된다. 그분에게 ‘청정 방송사’의 지위를 잃었다간 큰 일 나니까. 혼자만의 사소한 불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K본부 방송을 안 보는 것도 아니니까.
#2. 지난해 10월29일이었다. ‘G20’을 앞두고 떠들썩했던 그때,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의류제조업체에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베트남 출신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꾸안은 이를 피해 2층에서 뛰어내리다 머리를 크게 다쳤다. 그는 끝내, 11월4일 숨을 거뒀다. 세계를 고민하는, 물론 이권다툼이 실제 내용이지만, 큰 행사를 개최했다고 떠벌린 한국이라는 국가는 한 세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파렴치를 저질렀다. 꾸안의 아내는 넉 달 된 아이와 남편의 유골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꾸안은 한국에 무슨 해꼬지를 했기에, 주검으로 고향에 돌아가야 했을까. 그는 G20을 위협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일까. 그 이후는 잘 모르지만 아마, 누구도 그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을 것이다. 꾸안의 아내와 아이에게, 한국은 ‘생사람 잡는 나라’로 각인될 것이다. 그저 살아보겠다고, 돈 좀 벌어보겠다고 온 것뿐인데. 하긴, 돈 없고 못 사는 국민에게도 가혹한 것이 한국인데, 이주민들에겐 오죽하겠나.
가해자는 아니지만, 가해국의 국적을 지닌 사람으로서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꾸안 뿐 아니라, 형식상 자살이지만 사회적인 타살이나 다름없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가만 보면, 한국은 살처분에 대해 너무 관대한(?) 혹은 무심한 나라다.
낡한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가 자살하는 걸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p.78)
#3. 영화
<반두비>(감독 신동일/ 주연 마붑 알엄, 백진희)는 ‘못된 영화’다. 많은 한국인의 뿌리 깊은 편견을 건드리고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종, 성, 노동, 관계 등을 버무린 이 영화는 어떤 울림을 준다. 이방인에 대해 상반된(주로 돈이나 경제력 등과 연계돼서) 태도를 보이는 우리네를 ?사하기 때문이다.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도 고작, 영어를 잘 하거나,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에 깃발 꼽는 것 외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들이다. 그것에 일침을 가한다. 그러니까, ‘좋은 영화’다. 좀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니까.
지난해 12월18일, 유엔 세계이주민의 날. 서울 명동의 청어람 아카데미에서
<반두비>가 상영됐다. 2009년 개봉했던 영화가 왜 다시? 물론 이유가 있었다. 이 영화의 주연배우였던 마붑 알엄이
『나는 지구인이다』(마붑 알엄 지음|텍스트 펴냄)를 펴냈다. 그래서 영화도 상영하고, 배우 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우리 모두가 지구인이다 : 다문화 세상을 꿈꾸며’가 마련됐다.
“나는 어찌어찌하다보니까 한국 사회가 듣기 싫은 얘기를 하는 사람이 됐다.”(p.171)는 마붑 알엄 외에도 용산 인권운동사랑방의 박래군 활동가가 초청됐다. 대담도 하고, 독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눴다. 세계화는, 영어 교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이주노동자와 진짜 관계를 맺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마붑 알엄-박래군, 우리를 말하다
주연배우로서 영화를 다시 본 소감은 어떤가.
(마붑 알엄, 이하 알엄)
“영화를 무척 많이 봤는데, 보고 또 봐도 쑥스럽다. 공동체 상영 등을 통해 많은 분들이 봐줬으면 좋겠다.”
(박래군, 이하 군)
“다루기 힘든 소재인데, 할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 다큐만 나오다가 장편 극영화가 나오고 있는 거고. <반두비>는 그 중에서도 잘 된 작품으로 보인다. 우리를, 우리 안의 폭력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사례들은 수위가 낮은 것들을 다뤘다고 할까. 같은 땅에 사는 사람인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주노동자에게 나쁜 짓을 많이 한다. 영화 속에선 외려 약하다. 실제론 한 동네에 출입국관리소사무소 단속반이 계엄 사태가 난 것처럼 깔려서 검거한다. 인간사냥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선 격한 장면들은 빠졌고, 순한 장면만 나온 셈이다.
예전, 1993~1994년 무렵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때보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나아졌지만, 그땐 감금상태에 여권도 다 빼앗고 그랬다. 허나 여전히 불법 사각지대에 이주노동자 처지를 악용해서 등쳐먹고 못된 짓을 한다. 또 그런 것이 용인되고 있는 상황이고. 한편에선 정책적으로 다문화를 이야기하고, 허위가 드러나는 이주노동자 정책인 것 같다.”
점점 이주민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다. 이걸 막을 방법도 없다.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막을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과연 얼마만큼 준비를 하고 있을까. 이주민인 내 눈에는 그 준비 상황들이 보이지 않는다. ‘다문화 사회’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말만 있지 준비는 없다. (p.188)
영화도 그렇고, 이주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 같다. 마붑 알엄 선생님은 그런 사례를 경험한 경우가 있다면.
(알엄)
“<반두비> 촬영할 때부터 황당한 상황이 있었다. 영화 봐서 알겠지만, ‘반두비’는 친구라는 뜻이고, 일부 이주민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단체들이 온라인에서 항의를 많이 했다. 그전에 미디어 활동을 할 때도, (이주노동자?) 싫어하는 분들도 많이 겪었다. 제일 황당한 건, 살해 협박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아마 <반두비> 영화에 남녀 주인공 역할이 반대였다면, 그런 소리가 없었을 거다. 여자 주인공이 한국인이니, 내 딸, 우리 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거지. 남자는 국제결혼을 해도 되고, 여자는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들도 접했다. 그런 것들이 불편했고, 협박 전화를 받은 한때는 힘들었다. 한국인은 이미 120만명의 이주민이 살고 있고, 법적 미등록 이주민이 25~30만명이 있는데, G20 때는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단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 사진을 가지고 좋지 않은 패러디를 만들고, 협박 전화도 해왔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시작할 때부터 극장에 개봉을 할 때까지 계속 협박을 받았다. “너의 하나로 돌아가”, “조용히 살아”라는 경고부터 “죽여 버리겠다”는 살해 협박까지 다양했다.… 하나의 작품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고 소수자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존중 받아야만 한다. (p.135)
(군)
“G20때 경찰의 테러분자 색출 방침을 보면, 이런 게 있었다. ‘노동자 복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 테러분자일 수 있으니, 이주노동자 쪽은 동남아국가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들. 국가가 이런 인종차별적인 것을 조장했다.
한 사회가 가장 약한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이주노동자를 그 희생양으로 삼고 공격한다는 것. 참 위험한 경향이다. 우리 사회도 안보문제와 결합해, 위험해질 수 있다. 이주노동자를 타깃으로. 우리 스스로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잘못된 생각인데 이미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계속해서 이주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는 사회 경제적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예 고민하려고 들지를 않는다.… 사회적인 배경에 대해서, 시스템에 대해서, 구조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p.170)
우리 내부에서 무엇을 살펴야 하나.
(군)
“한국인들도 살인도 하고 흉측한 범죄를 저지르는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만을 반영한다. 선정적인 보도도 조심해야 하고. 또 말씀드리고 싶은 건, 국가에서 형벌을 점점 더 강화한다. 이것이 우리를 얼마나 억압할 것이지 고민해봐야 한다.
아동성폭력 등에 대해 중형에 처하는 법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법질서를 어기면 엄벌에 처한다는 공포를 심어서 사람을 위축시킨다. 그런 효과가 있다. 이런 것이 도입된다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책에 대해선 투자나 정책을 세우지 않고,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만…”
이주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면서, 되레 우리의 일자리 뺏는다는 이중성이 있다. 우리안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알엄)
“한국엔 120만명의 이주민이 있다. 한국인도 해외에 700만명 정도가 있고 있다고 하더라. 이주는 그만큼 자연스러운 거고, 우리는 누구나 이주하잖나.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다 그러진 않지 않나. 서울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주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아닌가 싶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 단순하다. 이건 자유스러운 거다. 국제결혼을 통해 많은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들어오는데, 한국에 결혼할 여성이 없어서 그런 거잖나. 한국여성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농촌에 사는 남자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이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주노동자도 돈 벌러 한국에 오는 거잖나. 보통 3D직종에서 일한다. 그 사람들도 자신의 나라에선 뭔가 다른 직종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선 3D직종에서 일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한국경제를 돕는 구조이기도 하잖나. 그런 사람들을 인정해야 한다.”
고용허가제 법안이 6년 전 바뀌었는데, 어떻게 느끼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엄)
“고용허가제. 고용주에게 허가를 주는 건데, 6년 전 발생한 문제가, 노동자들이 다른 회사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그러니 강제노동이 벌어지는, 그런 문제가 많았다. 최근 와서는 그런 문제는 나아졌는데, 5년 동안 있을 수 있으면 4번 정도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인권단체 등에선, 노동허가제, 즉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허가를 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강제단속이 진행 중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었다. 여수보호소 화재 사건 등이 있었는데, 고용허가제의 제한적인 범위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하고 있으나, 국제결혼에만 관심을 갖는다. 미등록 처리자들은 많아지고 강제단속만 벌어지고. 인권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여전히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
(군)
“이주민 120만명 중 70만명이 노동자이고, 27~30만명이 이른바 불법체류 노동자다. 이 중에서 단속 당하는 사람이 3만명 가량 된다. 정부가 몇 명을 강제 단속했다고 안 밝힌다. 강제추방 인원은 밝히면서도.
우리나라 이주노동정책이 예전에는 산업연수원정책이었는데, 제도가 잘못 돼있다. 일부 소수가 독점적으로 이익을 챙길 수 있게 전권을 줬다. 그게 중소기업청이었는데, 동남아 등지에서 브로커와 연결이 됐다. 엄청난 돈을 주고서야 입국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마붑 선생님도 사기 당하셨죠? (웃음) 그게 이주노동자 정책이 잘못돼서 그런 거고, 비리와 부정부패가 있는 거지.
이주노동자 단속에 항의하는 사람들 중에 공장주도 많다. 왜냐면, 숙련기술자가 됐는데, 기한이 다 차면 불법이 되는 거잖나. 불법이라고 잡아가면 일할 사람이 없는 거지. 안산, 마석 등에는 지역주민들도 이주노동자 덕분에 먹고 사는데, 막 잡아가면 어떻게 먹고 사냐고 항의한다. 그러니 종합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강제단속 위주의 정책은 문제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대안은 다 나왔는데, 도입하지 않고 잘못된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거다.”
이주노동자들도 느낄 텐데, 정권에 따라 느낌이 어떻게 다르나.
(알엄)
“일단, (지금 정권에선) 지원이 다 끊겼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소속된 이주노동자 방송도 RTV였는데, 거의 문 닫게 생겼다. 퍼블릭 액세스도 그렇고. <반두비>는 정권이 바뀌기 전에 지원을 받았다. 지금 정권에선 도저히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영화지. (웃음) 독립영화는 다양한 작품이 많은데, 영화?영상은 정권이 바뀌고 타격이 크다. 단속 등에서도 예전보다 더 많이 안 좋아졌다.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그러니까, 문화예술 활동도 위축되고.”
세계화로 인해 좀 더 다져야 할 인권운동의 흐름이나 변화가 있나?
(군)
“세계화로 인권문제는 더 열악해졌다. UN에서는 인권관련 선언이나 조약을 만드는데, 유엔은 외교무대임에도, 실제론 (회원국들이) 실천하진 않는다. 가령, 이주노동자 권리에 대한 조약에 우리나라도 가입하면, 약하더라도 감시를 받고 보고서를 내고, 약속한 것을 이행해야 하는데, 정부는 이런 국제조약에 가입 않는다.
부가 한쪽으로 편중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게 신자유주의다. 비용을 줄이려고,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노동을 서열화하면서 최대한 악랄하게 노동을 착취한다. 그런 이익을 소수에게 집중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면 그 말단에 이주노동자가 있다.”
마붑 알엄 선생님은 한국에서 결혼도 했다. 한국은 어떤 의미인가.
(알엄)
“한국에 온지 11년 정도 됐다. 처음엔 3년 정도를 생각했다. 이후 방글라데시에 가서 결혼도 하고, 어느 정도 잘 살아서 가는 꿈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들이 그다지 좋질 않았고, 돈도 많이 못 벌었다. (웃음) 한국어를 못했는데, 영어로 소통하기가 힘든 나라가 또 한국이었다. 영어로 대화하면 사장이 화를 내고. 여러 이유로 3년 만에 방글라데시로 못 갔는데, 그동안 안 좋아했던 김치도 좋아하게 됐고,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다.
또 공동체, 미디어 활동 등을 하면서 많이 배우고 많은 친구를 만났다. 한국은 내게 어떤 나라인지 고민도 많이 한다. 살다보니 결혼도 하고. 한쪽에는 좋은 점도 있고, 한쪽에는 불편한 점도 있다. 이주민에겐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면도 있을 수밖에 없고. 나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어로 얘기하고, 생각하고, 꿈도 한국어로 꾸고, 한국인 맞지?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지만, 방글라데시에 가서 물이 안 맞고 그러면, ‘아 나는 방글라데시인도 아니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지구인’이라고 말하고 훀다. (웃음)”
사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아주 많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노력하고 애쓰는 이유는 내가 이곳에서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인들보다 피부색이 더 검지만, 한국말의 억양도 다르지만, 똑같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당신은 나랑 똑같군요.” 물론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다. (p.184)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가기 위한 정책을 제안한다면.
(군)
“이명박 정부에서는 뻔한 거짓말을 잘 한다. 다문화 사회를 만들려는 의지도 없고, 정책도 없고, 예산 배정도 안 하고. 다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다문화센터나 창구 등을 만들고, 교육도 하고 그런다. 이런 곳에서도 주의할 게, (이주민들을) 한국문화에 동화시키려고 하는 게 많다.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있는데, 왜 인정하지 못할까. 참 획일화된 사람들이다. 우리 스스로가 다문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인 것도 같다. 그 이유로 반공주의 교육, 문화 등을 드는데, 분단사회가 가진 그런 것들이 원인 중의 하나인 것도 같다.
근대 민족국가에서는 단일민족 등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원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조작을 했다. 역사적?과학적으로 입증도 안 되고. 지금 현실 그대로를 보고 세계가 교류하면서 서로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현 정부에선 이주민, 다문화 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잘 숨어있어야 할 것 같다. 안 잡히도록,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단체들과 연계가 잘 돼야 할 것 같고. 시민들이나 시민단체의 응원, 후원도 필요하다. 우리 안에 있는 차이를 드러내서 이것이 차별로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있다면 그걸 인정하는 게 먼저다. 그러면 그걸 없애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단일민족이나 민족국가를 고집할 수는 없다.… 못사는 나라와 잘사는 나라를 나누지 않고, 잘 나가는 백인종과 가난한 유색인종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한국 사람들의 지금 과제다. (p.171)
(알엄)
“어제 다문화지원센터에 행사가 있었는데, 이주 여성들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센터 자랑만 주로 하더라. 마이크 잡고 얘기하는 투가 센터장을 목사로 바꾸고, 센터를 교회로 바꾸면 고해성사하는 그대로더라. 이주민으로서 기분 나쁜 게 센터도 전국에 200개가 넘는 것으로 아는데, 모든 센터의 커리큘럼이 거의 비슷하다. 다양성을 인정 못 받는 아쉬움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이주민을 도움의 대상, 봉사의 대상이 아닌 나와 똑같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인정해야 한다. 피부색이 검으면 공장노동자로만 생각한다. 나는 영화 일을 하고, 영화배우인데. 그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백인이나 잘 사는 나라만 좋아하는데, 알고 인정을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까.
여러분도 이주민들을 많이 만날 텐데, 부러 잘 해줄 필요는 없다. 다른 문화와 다른 생각, 종교겠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될 것 같다. 영화를 보면 손으로 밥을 먹는데, 손으로 먹으면 되게 맛있다. 여러분도 오늘부터 손으로 드시라는 말은 아니다. (웃음) 왜 손으로 먹을까 고민하면 알 수 있다. 젓가락이나 숟가락 더럽긴 매한가지다. 다양함을 인정하면 된다.”
이건 국가의 입장에서 생각할 게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주한 결과로 만들어진 게 국가니까요. 국가라면 어떤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가의 주인이 사람이지, 사람의 주인이 국가는 아니잖아요. 저는 사람의 눈으로 시스템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차별하니까 한국에서도 차별할 수밖에 없다는 건 구차한 핑계죠. 적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별이 존재하지 않도록, 차별의 벽을 좀 더 낮출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의 제대로 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p.202)
(군)
“우리 사회의 기독교를 보면, 기독교만 최고라고 한다. 이런 것이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가령, 마붑 알엄 선생님은 이슬람교인데, 기독교인들은 교회식 예배를 강요한다. 마치 이것이 천국 가는 열쇠를 받는 것처럼 다른 종교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거지.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만이 유일하다, 최고다, 라는 걸 강조한다. 동남아에서 온 분들은 이슬람교인데, 우리는 왜 종교전쟁을 벌이고 있는지 답답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군)
“영화 주연배우와 대?을 하게 돼 영광이고, 처음인데, 사인도 받았다. (웃음) 책을 보고 왔는데, 대단한 분이다. 우리 때도 똑똑한 사람이 바깥(외국)에 나갔는데, 이주노동자들도 그런 것 같다. 이분들은 나쁜 상황에서도 낙천적으로 자기 일을 만들어가고 다양한 활동을 만들고 있다.
마붑 알엄 선생님이 훌륭한 아내를 맞았는데, 다른 대목보다 아내와 문화적 차이로 싸우는 걸 좀 더 자세히 얘길 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내가 가부장적인 걸 지적하고 돼지고기 등에 얽힌 문화적 차이나 갈등이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갈 수 있느냐, 없느냐 등을 집약해 보여주는 것 같다. 생생한 사례를 전해주시면 고맙겠단 생각이 들고, 이주노동자 운동은 우리 사회의 인권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고, 그런 사람들끼리 연대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한다. 왜 도와줘야 하느냐고.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진정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소수자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사람이 대우받고 행복하게 살면, 그 이상에 있는 사람들은 훨씬 더 잘 살 수 있다. 인권이 무시당하고 침해당하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한테까지 영향이 올 거다. 그러니 소수자 인권에 대해 연대하는 일이 필요하다.”
(알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영화를 하기 위해 온 건 아니었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게 많이 생겼다 .노동자 인정을 받지 못하니, 노동운동까지 하게 됐고.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니, 좋은 것도 많지만, 딱딱하고 재미없게 느끼기도 했다. 내가 이주노동자니 좀 더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주류 미디어에 나온 이주민 모습은 불쌍하거나 웃기거나, 두 가지인데, 이주민으로선 불편했다. 그래서 미디어활동, 다큐활동도 하게 됐다.
이 책은, 내가 한국말을 잘 쓰는 게 아니라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해서 이렇게 나왔다. 영화배우에 저자라고 붙이니, 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고민도 하게 되는데, 내 상황에선 정해서 갈 순 없을 것 같다. 많은 이주민과 함께 다양한 작업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독자들과 나눈 Q&A
지금 술 마시나. 영화 속 키스신을 할 때, 아내의 반대는 없었는지.
(알엄)
“방글라데시엔 술이 금지돼 있지만, 아예 안 마시진 않았다. 친구들끼리 밤늦게 술 마시기도 하고. (웃음) 한국은 술값과 물 값이 크게 차이가 안 나서 좋았다. 방글라데시에선 술값이 무척 비싸다. 방글라데시엔 술이 금지돼 있지만, 대부분 회식자리나 친구들 만나면 술이 빠질 순 없지. 너무 술을 좋아하게 돼서 문제긴 한데, 많이 자제하고 있다. (웃음)
키스신, 힘들게 생각했다. 여자 배우는 나보다 더 힘들었을 테고. 아내에게도 물어봤다. 영화 연기자로서는 영화 속 카림이 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다른 일 않고 영화에만 집중하고. 사실 아내는 더 쉽게 말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건데, 뭐. 그래서 힘이 됐다. 문제는 영화촬영이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힘들더라. 한동안 카림이라고 착각하다보니, 다시 돌아오려니 힘든 점도 있었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글로벌 기업이 가난한 나라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대해선. 이주노동자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군)
“아디다스 등은 국제사회에서 오래 논의가 돼 왔고, UN에서도 ‘글로벌 콤팩트’가 있다. 인권기준을 적용해서 기업들이 글로벌 콤팩트를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기업이 가입하면 보고서를 내게 돼 있고, 우리나라도 50여개 기업이 가입돼 있다. 삼성은 안 돼 있고. 요즘 사회적 책임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폀(CSR) 등과 연계된 부분이다. 아시아, 아프리카의 저임금 노동은 빈곤의 구조이자, 식민지 유산이다. 부를 착취해서 서구는 잘 살고 있는 거고.
이주노동 대안은 고용허가제에서 노동허가제로 일단 바뀌어야 한다. 고용허가제는 기업 중심의 사고다. 노동허가제로 바꿔서 임금 조건이 안 맞으면 옮길 수도 있어야 시장의 원칙에도 맞고.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도 인정해야 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단속 추방만 하려니 문제다. 보다 근본적으론 ‘동일노동 동일임금?쳀 원칙으로 적용되면,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무한경쟁사회에서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두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라 세상을 바꾸는 게 이상적이고 남의 일인 것 같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어디까지 신뢰하고, 그 실현을 위해 각자가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이 있다면.
(알엄)
“개인적으로 나부터 변화하려고 더 많이 노력하고 있다. 여기 와서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선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보니 그리 됐다. 어떤 사람은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고 그것이 건강한 것인지 생각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바뀌지 않을까.”
(군)
“인권운동을 23년하고 있다. 뭔가 바꾼 것 같은데, 다시 돌아가고 그런다. (웃음) 낙담이 될 때도 있다. 작년에 용산 때문에 수배됐다 구속되고 그랬었는데, 용산을 생각하면 화병이 날 정도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법원은, 경찰이 아무리 잘못해도 그에 도전하면 처벌해야 한다는 판례를 만들었다.
자책감도 갖고 있지만, 역사가 발전한다는 신념을 갖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 각자는 그렇게 나가는 힘, 공감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프고 착한 사람에게, 공감가는 대로 가다보면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다. 적극적으로 집회에 나갈 수도 있고, 댓글 하나 달수도 있고, 현금 후원을 할 수 있다. 그러다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어 가지 않을까.”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가난해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굶는 것을 못 봅니다. 주변 사람들이 굶으며 자기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들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힘을 믿는 편입니다. (p.198~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