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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독자에게] 일과 일상, 사람에 대하여 - 지현님께 드리는 답장

일과 일상, 사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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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님을 생각할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제가 첫 책을 내게 되었을 때 독자와의 만남이라 하여 홀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낯설때, 곁에 있어준 분 들 중 한분이셔서 그런 가 봅니다.

김수영 기자가 김중혁 작가에게
김중혁 작가가 김수영 기자에게
이지현 편집자가 이석원 작가에게
이석원 작가가 이지현 편집자에게
설해목 블로거가 김남희 작가에게
김남희 작가가 설해목 블로거에게


매년 연말에 진행되는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책’이 지난 2010년 12월, 여덟 번째 행사가 치러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YES24는 '한겨레21'과 함께 올 한해 출판계를 정리하는 자료집 『책과 함께 우리는 행복한 겁니다!』를 만들어 YES24 회원과 <한겨레 21> 독자에게 배포했습니다.

이 자료집 안에는 독자와 작가가 주고받은 편지를 실은 특집 페이지가 실려 있습니다.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편지를 띄우고, 그 편지를 읽은 작가가 독자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김중혁, 이석원, 김남희 작가님과 나눈 특별한 편지를 ‘채널 소식’에 차례로 게재합니다.

일과 일상, 사람에 대하여 - 지현님께 드리는 답장

이종격투기 선수가 사각의 링에 오르기 위해 경기장 안으로 입장 할 때, 뒤에는 많은 스텝들이 따르게 됩니다. 훈련을 시키는 트레이너도 있을 것이고, 이 것 저 것 잔심부름을 해주는 사람, 다치면 치료해 주는 사람, 일정을 짜주는 사람, 파이트 머니를 놓고 주최 측과 협상을 벌이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선수는 오직 싸움만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지현님을 생각할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제가 첫 책을 내게 되었을 때 독자와의 만남이라 하여 홀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낯설고, 서점 서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이 사람들에게 잘 전달 될 수 있을까 조바심 칠때, 곁에 있어준 분 들 중 한분이셔서 그런 가 봅니다.

올해 4월이던가, 어느 서점에서 사인회를 할 때 멀찍이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모습을 보던 순간이 눈에 선합니다. 그럴때면 저의 기분도 덩달아 환해지고 마음 든든해지곤 했거든요. 그렇게 저의 글을 편집해 주고, 표지를 디자인 하고, 선전을 하고, 제 책을 팔아 주시는 여러 분들이 계셨지요. 저는 홀로 링 위에 있었지만 그분들 덕에 크게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오직 글뢸 쓰면 되었습니다.

일과 일상의 균형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안 그래도 요즘 그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두 번째 책을 쓰고 있는 요즘 저의 하루를 보면 그저 작업뿐, 일상 이라는 게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게 이런 일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순간 순간 공허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운동선수는 여럿이서 함께 훈련을 할 수 있지만 글이라는 작업은 오직 혼자서만 해야 하는 일이죠. 누구에게 표 나게 배울 수도 없고, 쓰는 즉시 반응을 확인할 수도 없으며, 글을 가지고 누군가와 회의를 할 수도 없고, 여럿이서 공동 작업을 할 수도 없죠. 그저 자기 자신 뿐. 그래서 고독감은 작업의 에너지이자 동시에 장애로서 작용하게 됩니다.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하루를 배분하여 몇 시간은 글을 쓰고 몇 시간은 휴식을 취하면서 친구를 만날 계획을 세워 보기도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작업을 위해 다잡아 놓았던 리듬과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고, 마음이 풀어질 때도 많으니까, 결국 며칠 그러다가 다시 집에서 종일 글쓰기에 골몰하는 쪽을 택하게 되곤 합니다.

글이 늘상 써지는 것이 아니어도 매일같이 붙들고 있어야 하는 법이라 그게 몇개월 혹은 몇년으로 길어지면 마치 긴 낚시를 하는 기분도 듭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침내 ‘때’가 찾아 왔을 때는 가진 모든 시간과 신경을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되죠. 고기떼가 순식간에 지나가듯 이 혜택받은 순간이 언제 사라져 버릴지 모르니까요.

신경은 곤두서고, 마음은 긴장으로 타 들어가고, 링에서 싸움을 하는 선수처럼 온 정신을 다해 이 일을 해내야 한다는 열망과 투지에 사로잡혀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 나갑니다. 밥을 먹고 나서도, 잠을 자고 나서도 그 흐름은 이어져야 하고, 그것을 위해 리듬이라는 게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 리듬 안에 일상과 사람 같은 것들은 존재하기 힘듭니다. 방해요소가 되니까. 때문에 작업을 하는 동안 고립감은 필연적입니다.

지금까지의 저는, 열심히 작업 하면 그것이 나의 일상에까지 보상을 해주리라 믿으며 일 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에와서 느끼는 것은 일은 일일 뿐이고, 일상을 일상답게 누리기 위해서는 그 자체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005년도에 ‘책읽기 와 여행’을 꼭 해보고 싶은 목표로 삼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책은 읽을 수 있게 되었으나 여행은 여전히 잘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늘 올해는, 이번 달에는 하면서 세월만 흘러갔지요.

올해에도 어김없이 많은 곳을 가보리라 계획을 세워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내년을 가늠해 봅니다. 1월‥ 안되고‥ 2월‥ 안되고‥ 아마 그 모든 상황을 제쳐두고 ‘무조건’ 떠나지 않으면 저는 영영 떠나지 못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이란 일을 위해 희생되는 존재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누려야 할 대상이거늘. 아마 지현님도 이런 일과 일상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으니 제게 물으신 거겠지요.

마지막으로, 올해의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에 대하여.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저의 영감의 원천은 오로지 사람이고,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창작자로서 저를 이루는 모든 것입니다. 때문에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물으신다면 역시 제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스쳐지나갔던 많은 크고 작은 인연들이 제게 던져준 모든 것들을 꼽겠습니다. 그것들은 제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그러한 기억과 느낌은 제 작품에 어떤 식으로든 녹아 들어 가겠지요.

이제 2011년이면 저는 마흔 한 살이 되는데 날이 갈수록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만 가니 저는 이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모쪼록 지현님께서도 지현님의 인생을 수놓을 인연들이 깨알처럼 다가오기를, 그래서 그들과 부딪히고 껴안으며 치열하게 이 사람세상을 만끽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즐거운 성탄,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0년 12월 18일.
‘보통의 존재’ 이석원 올림.

☞이지현 편집자가 이석원 작가에게 쓴 편지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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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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