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하면 제주가 대명사가 되다시피 하지만, 길은 제주에만 있는 게 아니다. 동네 어귀, 발 딛는 곳곳에 길이 있다. 도시의 어딘가 에도 올레길이 있다. 회색빛 콘크리트 너머 산을 넘고 물을 지나 숲길이 펼쳐진 올레길이 있다. 사실 제주 올레길, 좋고 아름답지만, 제주에 살지 않는 이상, 특별한 시간과 준비를 들여야 한다. 그러니, 눈을 조금만 돌려보자. 편한 옷과 신발, 반나절 정도의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좋고 가까운 길.
『우리 동네에도 올레길이 있다』(손성일 외 지음|올 펴냄)은 그렇게 도심 속 걷기여행을 할 수 있는 올레길 52선을 알려준다. 그리고선 부추긴다. “지금 떠나면 된다!”. 자, 그리하여, 타박, 타박 나섰다. 지난 11월28일 일요일,
『우리 동네에도 올레길이 있다』의 공저자이자 로드플래너 강세훈?박종삼 씨와 함께 한, 북한산 둘레길 걷기여행.
주위를 잘 살펴보면 싱그러운 바람과 청명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멋진 길이 곳곳에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우리 동네의 숨겨진 올레길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p.5)
가을과 겨울이 겹쳐진 애매한 계절, 북한산 둘레길 걷기여행에 초대된 독자들이 함께 모여 발을 디뎠다. 참고로, 북한산 둘레길은 기존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 산책로다. ‘역사, 문화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살아 숨 쉬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길’을 목표로 조성, 지난 9월30일 정식 개통했다. 총 길이는 전체 63.2km이며, 현재 개통된 길은 44km다. 둘레길 구간은 현재 13개이며, 2011년 이후 도봉산 둘레길이 연결될 전망이다. 이날, 소나무숲길-순례길-흰구름길의 여정이며, 소나무숲길부터 북한산 둘레길 걷기는 시작된다.
이날 함께 길을 걷기로 했던 손성일 로드플래너는 삼남길 프로젝트 때문에 갑작스레 불참하고, 강세훈 로드플래너가 걷기여행을 이끌었다.
“현재 전국적으로 길을 만드는 곳이 150여군데 가량 된다. 북한산 둘레길은 표지판이 잘 돼 있고, 지금 우리가 가는 소나무숲길은 2.9km다.”
소나무는 계절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거나 사랑받는 나무, 소나무 숲. 솔 향이 온몸을 감싸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스트레스 해소 등의 산림욕 효과를 보게 한다지. 대체로 길은 넓고 완만하다. 또 북한산 둘레길 중 유일하게 청정 우이계곡을 따라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곳이란다.
강세훈 로드플래너가 소나무에 손을 살며시 댄다. 사람과 나무는 그렇게 오래전부터 교감을 해왔을 터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소나무다. 적송, 혹은 금강송이라고 부른다. 남대문 복원용 나무로 쓰인다. 봉화군 솔숲에 가면 100~200년 된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소나무가 한민족의 정서와 통한다고 하더니, 남대문은 소나무로 다시 태어난다.
옹달샘이다. 어린 시절, 궁금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와서 먹는다는데, 본 적이 없다. 물을 마시며, 한숨 돌리는 사람들. 담소를 나누면서 웃음나무도 세운다. 강세훈 로드플래너와 출판사 관계자는, 책 출간기념으로 2차로 눈 쌓인 올레길을 거니는 걷기여행과 봉화숲길 걷기여행도 계획하고 있단다. 겨울 눈길과 오래된 소나무들이 정경을 이룬 길에 발 디디고 싶은 사람들은 주목!
다시 걷는다. 솔밭공원을 향한 길. 생각 버리기 연습. 그저 길이 있기에 발을 디딜 뿐. 이곳은 도시의 내부지만, 도시의 번잡함이 없다. 뚜벅뚜벅, 타박타박.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생각한다, 는 빠진 시간.
사유지란다. 토지 소유주가 있는 게 이상할 건 없지만, 묘한 충돌이다. 함께 걷는 공공의 길 위에 놓인, ‘출입을 금지함’. 사유지를 갖고 있던 어떤 기업은 둘레길로 흔쾌히 내놨다고도 하던데, 그렇지 않은 사유지도 있기 마련인데, 출입을 금지한다는 딱딱한 푯말은 왠지 발 디디면 범죄자 취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물론, 자신의 쓰레기를 되가져가고, 마을주민의 주거생활 보호를 위해 조용히 둘레길을 거니는 건, 소양이자 예의다. 둘레길은 우리 모두의 것이자,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아, 단풍이다. 빛 바란 단풍이 아직 남아 있다. 그래, 11월. 인디언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했다. 단풍을 보면 잠깐 생각했다. 그래,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구나. 솔밭공원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다.
“솔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시간이 12시에서 2시 사이다. 햇볕이 가장 강한 시간이지. 꼭 소나무가 아니더라도, 나무의 향이 가장 잘 난다. 나중에 숲길을 거닐거나 삼림욕을 할때 참고로 하면 좋겠다.” 식사시간이 됐다. 맛있는 점심식사. 숲의 정기를 받았지만, 배는 고프기 마련. 둘레길이 준 선물. 맛있는 식사 후, 숨을 들이킨다. 상쾌하다. 개운하다. 몸이 깨어나는 느낌.
강세훈 로드플래너가 지금 이 땅에 만들어지고 있는 길을 얘기한다.
“올레길은 제주 방언이고 둘레길도 많이 쓰는 명칭이다. 둘레길은 지리산에서 먼저 썼다. 그밖에도 변산 마실길, 양평 볼랫길, 강화 나들길, 남해 바래길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로드 플래너는 간단하게 말해서, 그런 길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길을 플래닝하는 사람들인데, 손성일 씨와 오늘 여기 온 나를 포함한 2명, 그렇게 우리나라엔 현재 세 명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례길 구간. 2.3km의 거리다. 독립유공자들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란다. 국립 4.19 민주묘지를 비롯해, 독립유공자 묘소, 광복군 합동묘소까지 16기의 묘역이 있는 길.
다만, 눈에 걸리는 것 하나.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이 땅엔, 희한하게도 공공장소에서도 이런 비문을 버젓이 쓴다. 하루가 되라니. 어떤 뜻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나, 뜻이 통한다고 공공장소에서 이런 비문을 쓰는 건, 생각이 없다는 건가.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가 맞다.
국립4.19민주묘지가 한눈에 보인다. 순례길이라고 붙여진 이유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사람들은 또한 거닌다. 묘역도 눈에 띤다.
섶다리다. 반갑다. 아마도, 지금의 아이들에겐 생소하겠지만, 과거 20세기 중후반을 관통한 이들에겐 추억과 향수의 매개다. 도시락 까먹기 딱 좋은 장소란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그렇다. 다음에 오면 섶다리 부근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한 바탕 웃음과 추억을 그려보리라.
아, 이곳에 이시영 선생의 묘도 있었구나. 아나키스트 이회영 선생의 동생으로, 대한민국 초대부통령에 당선됐던 분이다. 물론 미국의 주구, 이승만과 죽이 맞을 리가 없었?. 그는 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참고로, 이회영, 이시영 등 6형제는 이른바 ‘거부 집안의 자손’들이었는데,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하고 독립투쟁에 나섰다. 그들에겐 세습 따윈 없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표상이었다고나 할까. 진짜 귀족은 이런 기품을 갖고 있건만, 지금의 상장사 보유주식 지분가치가 9조원을 넘는다는 어느 회장(의 집안)을 비롯한 거부들에게선 그런 향기가 없다. 어떻게든 핏줄에게 불법 혹은 탈법을 통해 상속과 세습을 일삼으려는 싸구려들이다
이날의 마지막 구간이다. 흰구름길 구간. 역시나 잘못된 비문이 반기는 4.1km의 길이다. 북한산둘레길 중 유일하게 12m 높이의 구름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단다. 정상에 올라가지 않아도 북한산(을 비롯한 도봉산)의 경관과 서울도심, 멀리 수락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흰구름길. 이름부터 낭만적이다.
“오르막이 좀 있고, 숲도 있는데, 경치가 좋고 대체로 평이한 둘레길이다. 밤나무가 많은 숲길도 있는데, 가을에 오면 중력 때문에 떨어진 밤을 지천에서 볼 수 있다.” 아하, 이 말은 밤이 먹고 싶으면 가을에 흰구름길을 거닐어 보라는 말이렷다. 가을은 흰구름길의 밤이 익어가는 계절이도다.
북한산 둘레길 탐방안내센터가 있는 길도 흰구름길이다. 길 가는 나그네들이 잠깐 쉬어가도 좋은 이곳에서 북한산 둘레길과 관련한 정보를 속속 수집하고, 안내 책을 사도 좋다. 이날 우리가 거닐었던 길도 한 번 살펴보고, 단체사진도 한 컷. 추억은 이렇게도 쌓인다.
오르고 내린다. 숲길엔 그런 오르내림이 있다. 인생과 그래서 닮았다. 누구나 내리막만 치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티고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까치는 이날 어떤 소식을 전하고자 날아왔을까. 까치에게 바랐다. 당신(의 글)에게 좋은 소식이 날아들길. 당신의 글에 늘 탄복하는 내가, 까치에게 그런 마음을 전했다. 좋은 소식, 알려다오.
북한산을 바라본다. 정상에 올라가지 않아도 조망할 수 있다더니, 과연. 흰구름길은 그래서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전망이 좋고, 적당한 경사도를 갖추고 있어 ?방객에게 많이 추천하는 길이란다. ‘가노라, 삼각산아.’ 오랜만에 접한다. 참고로, 삼각산은 북한산의 옛 이름으로, 백운봉, 인수봉, 만경봉의 세 봉우리가 있어서 그런 이름이 주어졌다. 북한산은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아쉽게도 전망대는 공사 중. 원형계단을 이용해 다른 전망대와의 차별화를 둔 구름전망대. 올라가서 보면, 그 경치가 일반적인 전망데크와 또 다른 멋이 있다는데, 아쉽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 셈. 아쉬우나마, 틈새로 서울을 바라본다.
구름전망대를 피크로 아래로 내려왔다. 5시간 안팎의 북한산 둘레길 걷기. 지칠 법도 하건만, 웃음 숲이 만들어진다. 숲길을 따라 걸었더니 웃음 숲이 만들어지다니. 겨울에 가까운 계절이라 약간 아쉬웠다는 말이 있긴 했지만, 그러면 어떠랴.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에게서 “무척 좋았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언젠가, 함께 걸었던 사람이건, 이 글을 보는 사람이건, 길 위에서 만나게 되리라. 길을 걷는다면 말이다. 그땐 가벼운 눈인사라도 나누자. 길은 곧 우리를 연결시킬 테니.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다시 만나기 마련입니다. 환한 미소로 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 가벼운 눈인사라도 나눈다면 걸음이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