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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를 즐기게 해주면 유혈 사태는 없을 것”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이크종

“순순히 우리에게 수다를 즐기게 해주면,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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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하고도 이천십년 시월 십사일은 매우 특별한 날이다. 신촌 지하철 역에서 예수 재림을 기원하는 할아버님의 소망이 이뤄진 날은, 물론 아니다.

1부 - 수다편

서기 하고도 이천십년 시월 십사일은 매우 특별한 날이다. 신촌 지하철 역에서 예수 재림을 기원하는 할아버님의 소망이 이뤄진 날은, 물론 아니다. 오늘을 위해 필자는 방바닥을 걸레로 닦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쾌변도 누고, 사우나도 다녀왔다. 경건한 마음을 지닌 체 홍대로 갔다. 크종님이 이 땅의 중생과 수다를 떠시기 위해 타박타박, 혹은 느릿느릿 걸어 오셨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기품 있는 와인으로 독자와의 진정성을 이루며 향후 비전과 전망 등을 심도 있게 토론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크종의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처럼 이 날의 분위기를 즐기기로 했다.

“사장님 여기 맥주도 한 병 갖다 주세요!”

작가 이크종, 가끔 임익종이라고 불리는 이 사내는 일천구백팔십년 유월 생으로,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건설 회사에 몸담았다. 그리고 백일쯤 다니던 회사를 과감 없이, 미련 없이(?) 때려치운 후 천천히 사는 ‘백수지향 인생’을 원하며 프리랜서의 길로 접어 들었다.

수다에 진정성이 있다고 믿는 이 남자. 그래 오늘 한번 혀가 닳아지도록 입천장을 들락날락 해보자. 그러나 이 남자, 여성 독자가 많이 모인 오늘의 자리에서 참 수줍어하더라.

독자 & 작가 토크


글씨를 참 조그맣게 쓰셨더라구요. 나이 드신 분은 못 알아보신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앞으로 책과 돋보기를 함께 준비하겠습니다.”

남자 분이 나타나면 더 어려워 하실 것 같아요

“네 적대감이 생길 것 같아요”

눈가에 주름이 있으신 줄 알았는데 없으시네요. 그림처럼 팬티만 입고 나올 것 같아 걱정 했었어요.

“뭐 다들 원하신다면.(웃음)”

전공과는 다른 일을 하시는데, 지금은 행복하신가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전공에 흥미를 잃었어요. 학교를 그만 다닐까를 생각했어요. 그때 고등학교 친구들이 저를 붙잡아줬어요. 졸업을 하고, 제가 어떤 일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학교라는 게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그런 것은 있어요.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 중에 간혹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하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꼭 그런 사람들이 물어봐요. 대학교 어디 나왔냐고. 그러면 연대 건축학과 나왔다고 말해요. 사실 대학교 무슨 과를 가야 할지 정하지 못했어요. 고3 때 친구들이 건축과를 지원했고, 저도 지원하게 됐죠. 건축과라 생각했는데, 학부였고. 나중에 건축과 전공을 했으나 그것은 제가 생각한게 아니었어요.”

그림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 40원씩 걷어서, 친구들 포섭은 잘했어요. 그래서 동네 만화방에서 그런식으로 시리즈물 한 질을 보기도 했어요.”

부모님 반대는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미대 간다고 했을 때 집안에서 반대가 조금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길을 돌아서 온 것 같아요.”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대학을 지원해야 하는데

“그래도 대학교에서 할 것은 다 해봤어요. 캠퍼스 커플도 해보고, 학고도 맞아보고.”

만화 보다가 실제 작가님을 만나니까 연예인을 본 것 같았어요. 모던한 모습이 있는 줄 알았다. 목소리도 저음에 소탈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점수는요?”

…… 내가 꺾을 수 없는 절벽의 꽃이었는데, 현실은 옆집 오빠 같아요. (웃음) 알아보시는 분이 많으세요?

“아니요. 전혀 없어요. 저를 보고 알아 보는게 아니고,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아시더라구요. 그냥 그리고 쓱 지나간 다음에 방명록에 오늘 어디서 봤어요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었어요.”

제목은 어떻게 지으신 건가요?

“편집장님 권한이었습니다. 추석 때 사촌 동생이 결혼 한다고 했어요. 제 작은 아버지가 피로연 하는데에서 술 한잔 하시고는 이크종~ 하고 부르시는 거에요. 조금 놀랐어요. ”

2부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 편.


분명히 오늘 오후에 미팅을 하자고 이야기를 한 게 하나 있었는데 - 기억이 날 듯도 하지만 애써 기억해내지 않으려는 중-없던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참으로 간절하다. 그것보다는 택배들이나 얼른 왔으면 - 두근 두근 두근 두근 - 하는 바람을 갖고 잠시 낮잠이나 자야겠다. 프리랜서 인생, 백수지향 -‘지양’이 아니라 ‘지향’이다. 그리고 ‘백수’가 아니라 ‘백수지향’이다. 미묘하지 않은 분명한 차이, 백수로서, 한량으로서 니나노 하며 인생을 하루에 한 스푼씩 강물에 흘려보내고 싶기도 하지만, 최소한 내 앞가림은 내가 한다는 모토 아래 열심히 살고 있는 ‘백수지향人’인 거다. 응, 포인트는 그거야. 불광천에 떠 있는 오리처럼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 인생만세. (p.83)

응, 그래. 포인트는 그거야. 우리는 언제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딛고 있는지도 몰라. 언제나 ‘바람’과 ‘바램’이 헷갈리면서 말이야. ‘바람’처럼 살아야 할 것들을 두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들에 둘러쌓여 살아가고 있는지도 몰라. 이제는 닳고 헤진 ‘바램’처럼 그 좁은 세계에서 유난히 부대끼며 살았나 보다.

어릴 적 미술 시간이 생각난다. 잘 빚어 놓은 찰흙으로 코끼리며, 물고기를 만들었다. 응달이라는 단어를 배웠고 양달이라는 단어도 아마 이때쯤 배웠지 않나 싶다. 찰흙은 응달에 말려야 해! 교과서에는 그렇게 써 있었다. 그러나 직사광선 잘 쪼이는 교실 한 구석에 우리의 작품은 선생님의 주도하에 방치되었다. 우리도 덩달아 신경 쓰지 않았다. 한 삼사주가 흘렀을까. 장학사가 온다는 소식에 방치된 작품은 곧장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이크종의 세계를 들어다 보는데, 왜 자꾸 어린 날 미술 시간이 떠오르는 걸까? 그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교실 담벼락에 피어 있는 민들레 같다. 자유롭게 바람의 향기를 맡으며 이리저리 홑씨를 날리는 삶 말이다. 너희 지금 답답하지 않아? 창문을 조금 열어봐! 그의 방황과 그의 가치관이, 우리 모두의 인생에 주어지는 질량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 지는 이유는 뭘까?

책의 뒷부분에 소설가 김영하의 추천 평이 남 달리 와 닿는다. “그의 유머는 자조적이며 그림 역시 소박하지만 기획만은 남몰래 대담하다. 그는 이 시대의 하멜이다.” 모두가 경쟁의 시대를 강요하는 이 때에, 또는 88만원 세대라고 묶어놓은 80년 이후 출생한, 이 땅의 청년들에게 그는 하멜과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 보다는 솔직히 정해진 룰 안에서만 사고하려고 했다. 그 안에서 승리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바로 기회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무엇이라고 애써 믿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니나노 하면서 인생을 하루에 한 스푼씩 강물에 흘러 보낸들, 그것이 무책임한 짓일까? 적어도 강물에 흘러 보내는 인생의 질감 만큼, 우리의 작품은 응달에 말리면서 오랫동안 감상하게 해주세요 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뒤 늦게 바램이 바람이 되는 현실을 보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대학도 졸업하고, 전전긍긍하고 위태롭고 잔고는 제로지만(그래 실은 백수지만) 내가 내 입에 풀칠은 하고 살고 있는 지금도, 심정적으로는 부모님에게서 전혀 독립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많은 부분은 두 분께 기대고 있고 빚지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어쩔 수 없이 맞이할 두 분에게서의 독립이 두렵다. 오질 않길 바란다. 언제든 도망갈 구멍 하나로 언제나 남아 있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p.211)

“나라는 인간이 쓸 만하다거나, 쓸 만하지 않다거나 하는 것처럼, 이 소설도 역시 좋거나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작품이 나라는 인간의 됨됨이를 넘어서 존속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소설은 이미 죽음으로 이별한 나의 친구들과, 살아 있지만 떨어져 있는 나의 몇몇 친구들에게 바친다.” -무라카미 하루키,「외부와 단절한 채 오직 글쓰기에만 매달려 완성한 나의 자전적 소설」, 『상실의 시대』, (문학과사상사), (p.443~444)

어쨌거나 나란 인간은 십대 후반부터 이 십대 중반까지 하루키의 문명권에 있었다. 그것을 영향권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문명권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영향이라는 말은 ‘한 가지 사물로 인해 다른 사물에 미치는 결과’를 말한다. 반면에 文明은 ‘사람의 지혜가 깨서 자연을 정복하여 사회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진보된 상태’를 뜻한다. 하루키가 말하는 ‘상실’ 이라는 키워드가 내 정신에 허무감만을 준 것이라면 영향권에 있었다고 말 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 상실을 만들어내는 근원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살얼음판을 걷듯 세상을 조금씩 디뎌 보고자 했다. 그것이 어쩌면 ‘소통’ 이라는 말로 함축할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죽음으로 이별한 나의 친구들과, 죽음으로 이별할 나의 부모님. 과거와 미래의 미묘한 줄 다리기를 하는 시간에 동시대의 이크종과 함께 필자는 서 있다. 조부모의 죽음 이후, 내 생각 보다 일찍 올지도 모른다는 부모의 죽음은, 사실 두렵다. 남겨진다는 상실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삶의 아수라장에서 한 번도 장칼을 휘둘러 본 적 없는 우리였다. 백병전을 치러야 하는 이 삶에, 슬그머니 뒤꽁무니 빼고 비빌 언덕 하나쯤은 그대로 있어주길 바람이야 누구들 다르겠는가.

가볍고 소소한 재미인들 누군들 찾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소소한 재미가 무조건 가볍다면 우리에게 진정성이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크종의 첫 작품집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는 그래요, 슬프지만 통증을 잊고 즐기자는 뜻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입술 꾹 다물고 참지만 말고, ‘우리 아파요. 그렇지만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살거에요.’ 라고 말 하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이것이 이크종의 화법일지도 모른다. 친구들에게 사십 원 씩 걷어 동네 만화방에서 꿈을 꾸었던 그 때처럼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이다.

3부 대단원 편.


이크종의 책을 보고 있으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가 높은 시드마이어의 <문명5>가 생각난다. 강한 중독성으로 한번 빠지면 거의 모든 인간 관계와 사회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그 정도로 몰입 정도가 심해 유저들 사이에서 “▶◀문명하셨습니다”는 유행어까지 만들어질 정도이다. <문명5>의 다른 유행어로는 “순순히 ~ 하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가 있다.

<문명 5>의 이야기 구조는 유저가 세계 각국의 지도자를 선택해 자신만의 문명을 개척한다는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게 중, 인도의 지도자이자 비폭력 평화주의자의 상징인 마하트마 간디는 현실의 역사적 맥락과는 반하는 악질 깡패로 종종 언급이 된다. 최근 도마 위에 오르는 대사가 있다. “순순히 옥수수를 금으로 교환해주면,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게임을 접하는 유저들은 그간 간디의 이미지가 비 폭력으로 굳어진 탓에, 쉽게 이 요구를 간과한다. 그러나 그 대가는 겪어보면 눈물이 날 정도이다. 핵폭탄으로 상대 진영의 텃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우스운 말로 “순순히 옥수수를 금으로 교환해 주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는 말이 “금을 내 놓지 않으면 당신 입안의 옥수수를 털어버리겠다.”는 말로 해석 가능하다는 것이다.

편집인과 저자의 4년간의 기획 과정을 거친 예담 출판사의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는 독자로 하여금 숨 돌릴 틈을 줄 것이다. 당장이라도 지겹고 구차한 직업의 세계에서, 잠시나마 들숨, 날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는 휴양림이 백번 부럽지 않을 것이다. 이 날의 성대한 만찬도 이와 같았다.

삼십대 노총각과 그를 사랑하는 마니아 팬들 사이?서 필자는 줄 곧 “내가 여기 왜 와 있지?”를 물어보지 않으면, 본분을 망각할 뻔했다. 먹는 가운데 “하루에 똥을 그렇게 자주 누세요?” 라는 질문이 서슴없이 오고 갔다. 또한 작가가 화장실 가는 사이, 우리는 크종의 중요한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그의 귀를 가렵게 했다.

우리의 요새는 난공불락이었다. 소소한 일상을 떠먹는 기쁨을 누리며, 아쉬운 작별을 이야기 할 때,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소소한 수다가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 그래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순순히 우리에게 수다를 즐기게 해주면,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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