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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선 비밀경찰 단속에 걸리면 끔찍한 벌 받아 -『여자 특파원 국경을 넘다』이정옥

가슴 따뜻한 여성 특파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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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에는 여성의 머리카락은 반짝이며 남성을 유혹하기 때문에 여성은 몸매와 머리카락을 절대로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회교국 가운데 외국인에게도 이 율법을 강제로 준수하게 하는 나라가 바로 이란”

매년 가을, 홍대 거리는 책으로 가득 찬다. 바로 홍대거리 도처에서 진행되는 와우북페스티벌 때문이다. 와우북페스티벌이 한창이던 주말 밤 씨어터제로에서 『여자 특파원 국경을 넘다』의 저자 이정옥 기자의 강연이 진행됐다.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첫 강연”이라는 저자는 이곳까지 어떻게 찾아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며 찾아온 이들에게 먼저 물었다. 한 여대생은 “학보사에서 기자직을 맡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특파원을 꿈꾸지만 이런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찾아왔다”고 답했다. 반면 저자는 대학에서 잠깐 아나운서를 한 적은 있지만 학보사와는 인연이 없었다고 말한다. 기자로 입사해 해외취재를 맡고 후에는 특파원의 역할을 걷게 된 것이라고 했다.

책의 표지는 1993년 이란에서 찍은 것이라고 한다. “1993년 8월, 지구상 가장 강경한 회교 원리주의 국가 이란에 들어가 방송기자 사상 최초로 차도르를 입고 취재를 간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취재한 내용이 KBS TV다큐멘터리 <차도르에 부는 개방바람>이란 제목으로 방송이 됐어요.” 단상 옆에 스크린에 그 당시 방송된 영상이 흘렀다. 저자의 해설을 덧붙이며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란에 불던 바람


“코란에는 여성의 머리카락은 반짝이며 남성을 유혹하기 때문에 여성은 몸매와 머리카락을 절대로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회교국 가운데 외국인에게도 이 율법을 강제로 준수하게 하는 나라가 바로 이란”이라고 ‘차도르’를 쓰게 된 경위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란의 여성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8세 이후부터 머리카락과 귀를 가리는 스카프를 착용해야 합니다. 여성들은 가족 이외의 외간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얼굴 이외의 살갗을 노출시키는 것을 금기시하고 얼굴과 몸을 많이 덮을수록 신앙심이 깊은 여성으로 여겨지는 거죠.”

저자는 이란에서의 취재 중 몇 번 단속 경찰과 맞닥뜨려 십년감수한 일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자동차를 타고 동네의 한적한 뒷골목을 지날 때였어요. 히잡을 쓴 제 머리카락이 밖으로 조금 삐져 나온 것을 골목에 서 있던 경찰이 보고 호루라기를 불어 차를 세운 적이 있어요. 마침 앞에 인도하던 외교관이 내려서 외국 사람임을 설명하고, 한참 사정한 뒤에야 겨우 통과시켜줬죠.”

당시 저자와 동석했던 카메라 기자는 “이럴 때 경찰에 끌려가 감옥에 가서 곤장을 한 번 맞아야 취재가 된다”며 얄밉게 놀려댄 기억이 있다고 한다.

“이란 사람들은 이란 사회에 대한 질문만 던지면 끊임없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어요.” 저자는 당시 이란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를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했고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혁명 이후 이란은 젊은이들에게 지옥이라며 하소연했고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이란의 문제를 털어놓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거나 얼굴 노출을 거부했기 때문에 인터뷰에 제약이 많았다고 한다.

“회교 정부의 정보망이 철저하고, 비밀경찰의 단속에 걸릴 경우 끔찍한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란에서는 늘 코미테가 감시하고 있는지 주위를 살펴야 했어요. 이란 주민들은 취재팀에게 언제 어디서든지 사복 차림의 비밀경찰이 도처에 깔려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귀띔해 주기도”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란의 정보 기능은 발달된 탓에 비밀경찰이 어떻게 해서라도 인터뷰한 당사자의 신변을 찾아낸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굵직한 사회 문제를 주로 담아냈지만, 이란 사회에 흥미로운 생활상도 보여줬다. 차도르에도 유행이 있으며, 차도르만 파는 상점이 있다는 것, 화장이 금지되었지만 이란 여성들은 립스틱과 매니큐어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다는 점, 절대적으로 여성만 출입 가능한 미장원이 성행한다는 것도 독자의 시선을 잡았다.

파리에서의 첫 해


내게 파리는 ‘세계로 향한 첫 창’이었다. 한국에서 자라 학교를 다니고 기자 생활을 한 지 7년 만에 떠난 파리 기자학교 연수 1년. 불어권 기자들과 함께한 연수는 지구 저편의 다른 인종들과 동료가 되어 미지의 세계에서 적응하기 위한 나와의 투쟁이었고 모국어가 아닌 불어와의 전쟁이었다. 나는 인종 전시장과도 같은 파리를 통해 처음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p.32)

“저는 평소에 기사를 쓰면서 뉴스 리포트의 한계에 늘 회의적이었어요. 기사를 쓸 때 글을 짧게 줄이는 작업이 제게는 가장 어려웠던 거죠. 그리고 1분여 길이의 짧은 방송 리포트 내용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파리에서 기자수업을 받으면서 깨달은 것이 뉴스 리포트의 힘이었어요. 방송기자의 뉴스 리포트가 갖는 ‘함축성’과 ‘직접성’에 대한 애정이었죠.”

저자는 이때의 수업으로 다큐멘터리가 ‘산문’이라면 1분여 동안의 현장 뉴스 리포트는 한 편의 ‘시’처럼 함축적인 진실을 담는 작업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했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사실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예닐곱 문장 정도로 이루어진 뉴스 리포트 안에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주는 의미와 파장은 크다는 것이다. 때문에 뉴스 리포트의 한 마디, 한 문장은 긴 산문의 한 문장과 비교할 수 없는 시어처럼 응축된 언어의 산물이며, “방송기자는 이를 생산해 내는 언어의 마술사”가 되어야 한다.

갑작스런 취재 명령과 긴박한 사건, 시한 내에 끝내야 하는 긴급한 리포트들. 방송기자 생활 동안 나는 개인적인 메모를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늘 취재와 리포트를 우선으로 하는 생활이었다. 좀처럼 가기 힘든 지구 반대편의 오지나 전쟁, 사건을 취재했을 때도 개인적인 기록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늘 ‘지금 이 순간’만 집중해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p.253~254)

이날, 독자들은 저자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고, 저자는 독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빠르게 질의 응답시간이 이어졌다.


처음으로 해외에서 체류하던 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외국, 파리에 간 것이 86년이었습니다. 기자연수로 갔었죠. 20대 후반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흔하지 않은 해외 여행이었습니다. 시야가 넓어지고 행동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여기자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방송국 안에서도 불편함이 존재했었으니까요. 콩코드 광장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 여대생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을 정도였었죠(웃음).”

국외에서 체류하신 시간이 길기 때문에 국내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

“요즘은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제가 9.11이었죠. 프랑스와 한국의 보도 태도에 대해서 체험한 바가 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사고 현장이 나오고 부시가 연설하는 장면 등이 연달아 나왔죠. 프랑스 TV는 달랐습니다. 메인뉴스에 사고 장면이 나온 것이 아니라 좌담회가 열렸습니다. 이 사건이 프랑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에 대해 다룬 것이죠. 한국의 뉴스는 국적 없는 뉴스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건물과 충돌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태도. 이 사건을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치유할 것인가, 에 대한 토론의 유무 차이였죠. 한국의 보도는 국민들을 급하게 모는 경향이 있습니다. 숨이 찰 정도로 말이죠.”

어떤 계기에서 기자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요.

“미디어 시대를 넘어서, 뉴미디어 시대가 왔지만 방송에 관심들이 많습니다. 저는 말하자면, 흑백시대였습니다. 다른 것보다 글쓰기가 좋았기 때문에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독립도 중요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에 취업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대기업조차 여성을 차별하던 시기였는데, 언론계 또는 교사만이 여성의 진입장벽이 덜했습니다(웃음).”

다시 가거나, 취재하고 싶은 나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란을 21일 취재하면서 너무 고생을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니 다시 가보고 싶어지더군요. 군대 이야기가 그렇지 않나 싶어요(웃음). 또 한 곳은 예멘이에요. 파리특파원 3년은 프랑스나 유럽뿐 아닌 중동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 전쟁과 지진 같은 뉴스가 터지면 어느 때든 출동하는 비상대기조와 같은 근무였어요. 1998년에 파리에서 예멘의 인질 납치 소식을 접하고 아라비아 최남단의 예멘을 기습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납치 기간 동안,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인질 가족들과 혼신의 노력으로 그들을 구하고자 애쓰던 한국 교민들이 기억에 남아요. 예멘 비자 인터뷰는 이슬람 국가답게 까다로웠어요. 우여곡절 끝에 비자를 발급받아 취재를 한 곳이라 더 기억에 남습니다.”

예정된 강연 시간이 넘도록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저자는 모든 질문에 빠짐없이 답변한 뒤에도 직접 가지고 온 파일이 있다며 마지막 인사를 이 파일로 갈음하겠다고 말했다. 몇 해 전 저자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였다.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이야기의 첫 문장이 소개되었다. “목표를 가진 사람이 부자다”

지난해 12월부터 방송협회 사무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저자는 임기 후에는 다시 국제부 기자로 활동할 것이라고 한다. 다시 한 번 ‘차도르’를 쓰고, 혹은 그보다 더 어려운 여건을 둘러메고 뉴스가 있는 현장으로 달려갈, 그녀는 가슴 따뜻한 여성 특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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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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