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도 떠올리고 당신도 떠올린 그것. 프라다를 걸치고 마놀로블로닉을 신고 거리를 활보하며 금요일 밤마다 가장 핫한 클럽을 찾아내 코스모폴리탄을 홀짝이는 쿨한 그녀들이 있는 화려한 도시. 세계의 수도.
“<섹스 앤 더 시티>의 라이프스타일은 극히 일부의 문화예요.”
“부유층 문화라는 의미인가요?”
“아니요. 부유층도 아니에요.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소수가 그렇게 사는 것뿐이에요. 뉴요커의 대다수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어요. 뉴욕은 거지도 당당할 정도로, 모두가 자신의 개성대로 사는 자유로운 곳이라고 하고 싶어요.”(『뉴욕에서』 p130-131)
우리가 알고 있는 뉴욕은 극히 일부분의 모습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감춰진 개성 있는 뉴욕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질풍노도 시기의 심리상태만큼 불안정한 대기로 인해 비가 오다 해가 나기를 반복하던 찌는듯한 여름 한복판의 어느 날. 이상은의 쇼케이스가 열리고 있는 웰콤시어터로 향했다. 작은 소극장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데뷔 20년차 뮤지션답게 연령대는 대체로 30대 팬들이 주를 이루었다. 5시가 조금 넘어 이상은씨가 박수와 함께 등장.
『삶은 여행』이라는 베를린 여행기에 이어 2년만에
『뉴욕에서』라는 신간을 들고 우리 앞에 선 그녀.
인생에서 혼돈의 시간이 왔을 때, 뉴욕에 가야 했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오는 시기. 젊은이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미숙함으로 끊임없이 비틀거리며 절망한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 그 옛날 괴테가 살던 수 백년 전 젊은이들도 그러했고 21세기를 사는 젊은이들 역시 그 두려움을 반복한다. 그 중 한 젊은이가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그리고, 30대를 거쳐 40대로 넘어가는 또 하나의 변곡점에서. 20대때 찾았던 그곳을 다시 찾았다. 뉴욕. (책 서두에서도 밝혔듯)흔하디 흔한 그 곳을.
뉴욕은 서울이라는 이름처럼 흔하다. 지구의 수도. 그래서 뉴욕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오해를 부르거나 사회과부도 속의 도시 밑에 다시 한번 밑줄을 긋는 것과 비슷하다. 뉴욕에 대한 정보는 이미 포화 상태니까. 그래서 내가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혼돈의 시간을 뉴욕에서 보내고 싶다고 느꼈을 때 가장 놀란 것은 나 자신이었다. (…) 인생을 좀 살아가다 보니 선택의 문제가 닥쳤을 때 가장 좋은 것은 ‘직감’을 따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직감을 발동시키려고 방에 홀로 앉아 기도하면서 몇 날 며칠을 있어 보았지만 결론은 뉴욕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p22)
뉴욕의 인디문화 소개에 주안점
간단히 인사말과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소회를 밝힌 후 곧바로 질의 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뉴욕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다양한 공연과 클러빙. 뉴욕은 다채로운 문화의 향연이 벌어지는 곳으로 복합예술공연이 인상적이었다. 공식적으로는 뮤지엄(웃음).”
이상은은 뉴욕에서 머무는 동안 요 라 텡고의 리더 제임스 맥뉴를 만나기도 했고 엑스엑스 등 뉴욕 유명 인디밴드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시중의 여행서들과 다른 『뉴욕에서』의 차별화된 점은?
“시중의 도서들은 섹스 앤 더 시티류의 화려한 뉴욕이나 메인스트림 문화를 많이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번 『뉴욕에서』는 이제까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디 문화나 얼터너티브한 면을 많이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뉴욕의 지역 중 가장 살아보고 싶은 곳은?
“브루클린. 우리가 알고 있는 뉴욕의 화려한 면모에서 조금 비켜나있는 허름한 곳이지만, 주류에서 벗어난 그곳이 마음에 든다.”
‘작은 맨해튼’으로 불리는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는 매우 정겨운 동네다. 보헤미안의 쓸쓸한 냄새가 풍기는 이곳에 가면 피카소가 그린 ‘늙은 기타리스트’가 떠오른다. 돈 냄새가 미끈미끈 나는 맨해튼의 소호나 브로드웨이와 다른 분위기, 런던 혹은 베를린의 어딘가가 떠오른다. (…)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홈 타운이랄까. (p69)
여행자와 생활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굳이 차이점을 들자면 생활자의 경우 일상과 일상을 벗어남을 반복하지만 여행자의 경우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좀더 많기 때문에 쉽게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정도. 그러나 여행이 길어져 일상이 되면 이러한 새로움도 곧 사라진다. 여행자든, 일상적인 삶을 사는 생활자를 나눌 것 없이 일상을 벗어난 상태가 되어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
여행자에게 모든 일상은 낯설어진다. 전혀 새롭지 않은 일상이 새롭게 보이는 낯설음. 영감의 또 다른 이름 혹은 원천이 아닐까. 뉴욕은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이러한 영감을 무한대로 제공한다.
영감으로 말하자면 뉴욕은 거리 구석구석, 잡지나 신문이나 하다못해 길바닥에 그려진 그라피티, 한도 끝도 없는 전 세계의 명품 숍, TV, 라디오, 지하철의 풍경과 광고 포스터, 사람이 입은 옷에 이르기까지 영감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뮤지엄과 갤러리, 패션쇼, 다양한 국적과 인종까지 합세하면 뉴요커가 받는 자극과 영감은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극한의 수준까지 게이지가 올라갈 것이다. 그런 영감과 자극과 손을 뻗기만 하면 널려 있는 수준 높은 책과 자유로운 기운까지, 어느 것 하나 세계를 이끌어가기에 부족함이 업다. 영감과 창의력이란 각기 다른 개성과 마찰하면서 생긴 정전기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몰개성적인 문화를 따르고 개개인의 색깔을 억압하는 문화 속에서는 꽃피기 어려운 것이 바로 창의성, 교육이 모든 사람을 비슷하고 밋밋하게 만들어버리는 현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p258)
이상은씨는 20대에 여행을 했고 40대가 되어 뉴욕을 다시 여행했는데.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20대에 뉴욕에서 유학을 했었다. 그때에는 뉴욕이 아날로그적 또는 어쿠스틱하게 느껴졌다. 40대가 되어 다시 뉴욕을 찾으니 디지털적이라고 해야 하나? 건물들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도착한 듯한 모습을 하고 있고.”
(여행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나?
“부딪혀본다. 그리고 그냥 살아본다. 그곳에서 나의 발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찾는 기회로 여긴다.”
질의 응답이 끝나고 사인회가 이어졌다. 사인회는 질서정연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뉴욕 문화 360도 즐기기
여행을 가장 밀도 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관광명소에서 벗어나 현지인들만이 아는, 진짜 명소를 즐기고 싶다면 아마도 현지인을 친구로 사귀는 경우일 것이다. 뉴욕 생활 15년차 영화감독이 추천하는 예술 영화 극장, 현지 독서가가 추천하는 서점, 뉴요커 패션 디자이너가 추천하는 패션숍 등 기존 가이드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보들로 빼곡하다. 게다가 이 책의 표현을 빌자면 요즘 가장 ‘힙’한 나이트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클럽, 최신 트렌드를 알 수 있는 패션숍과 더불어 빈티지샵, 세계 각국의 레스토랑, 쇼핑 스팟, 대형 체인 서점과 헌책방, 개성이 넘치는 박물관, 갤러리 등 인디족 뿐 아니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명소들을 지역별로 묶어 정리해 놓아 최근 뉴욕의 가장 핫한 장소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전방위 뉴욕 문화 가이드북.
특히 이런 사람에게 추천한다!
주4일 이상을 홍대앞 클럽을 전전하는 열혈 클러버. 새 책의 빳빳함 뿐 아니라 손때 묻은 책장, 그윽한 책의 향기를 사랑하는 독서가. 세계의 모든 음식을 맛보고 싶어하는 미식가, 창작의 고통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예술가, 트렌드와 상관없는 개성파 패션피플. 그리고 한번쯤은 뉴욕에 가길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