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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 안에 도깨비가 있다? - 『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 김열규

도깨비와 한국인은 쌍둥이, 우리 안에 도깨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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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할아버지께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귀를 쫑긋 세운 아이들. 아, 저기에 저도 있네요. 어제의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맞아요. 역시나 도깨비입니다. 초라니 방정 떠는 한 여름밤의 무더위를 몰아내기엔 도깨비가 제격이지요.

한 여름밤. 밤이라지만 후텁지근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맞아요. 평상에는 먹음직스러운 수박이 놓여 있네요. 군침 돌고요, 타다 남은 모깃불도 피어납니다. 매미도 노랠 불러대고, 밤하늘 별이 보조를 맞춰 반짝반짝. 아, 마침 할아버지가 오셨어요. 이정도면 조합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죠?

역시 할아버지께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귀를 쫑긋 세운 아이들. 아, 저기에 저도 있네요. 어제의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맞아요. 역시나 도깨비입니다. 초라니 방정 떠는 한 여름밤의 무더위를 몰아내기엔 도깨비가 제격이지요. 이런 얘기도 있잖아요.“도깨비 이야기로 아이들의 여름밤은 까만 흑진주 알처럼 영글어갔다.” 괴물이지만, 피 철철 흘리는 무서움보다 친근함이 앞서는 대한민국 대표 괴물, 도깨비.

물론 지금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죠. 도깨비를 대신할 것들이 너무 많아진 탓이지요. 도시는 꺼지지 않는 불야성이고, 할아버지와 손자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도깨비는 감투도 방망이도 잃었는지,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 어릴 때만 해도 신문수 아저씨의 『도깨비 감투』와 같은 만화는 필독서였는데 말이죠. 도깨비 방망이 타령도 일상적이었죠. 로또? 그게 다 뭡니까. 도깨비 방망이 하나만 있으면 됐어요.

하지만, 도깨비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네요. “우리 안에 도깨비 있다.” 무슨 말이냐고요? 지난달 3일 대한출판문화협회 4층 대강당에서 열린 『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김열규 지음|사계절 펴냄) 출간 기념 저자 강연회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자, 한여름 밤,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듯한 도깨비 이야기. 우리 안에 어떻게 도깨비가 둥지를 틀고 있는지 들어봅시다. 이날의 주제는 그러니까, ‘도깨비, 한국인의 아바타를 만나다!’

한국인의 아바타, 도깨비

도깨비는 자유다. 제약도 규제도 죄다 벗어던지고 때로는 양심도 훨훨 팽개치고 나면, 드디어 제멋대로다. 그게 도깨비다. 한데 그건 우리들 한국인의 속내였다.(p.69)

최근 우리는 그런 도깨비를 만났습니다. 2010 남아공월드컵 덕분이었죠. 한국축구팀의 경기에 맞춰 밤이면 기어 나와 축제의 한 판을 펼치던 한국인. 밤 깊은 줄 모르고, 술 마시고 춤추면서 흥을 돋우던 한국인. 밤이 되면 도깨비 무리들과 밤새 놀았다는 저 신라 시대의 ‘비형(鼻荊)’에게서 그 원형을 찾습니다.


비형이 누구냐고요? 그는 한국 도깨비의 원조로 여겨집니다. 1500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가보죠. 신라 진지왕(사륜왕)이 생전에 탐을 내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있어 어찌하지 못하다가, 왕이 죽게 됐고, 여인의 남편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라? 진지왕이 죽어서 여인의 방에 나타나 한 방에 머물다 갔고, 달이 차서 낳은 아이가 비형입니다. 그러니까, 죽은 귀신과 산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반귀반인이 비형이죠.

“핏줄이 그래선지, 밤이 되면 도깨비 무리들과 밤새 놀았어. 밤새 논다는 건 도깨비의 근성이자 특징이야. 그래서 지금도 도깨비의 현장을 볼 수 있는 거지. 외국의 대도시에 가면, 난 미국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에 갔는데, 밤 9시만 되면 번화가는 깜깜해져. 일부 지역 말고는 다 그래. 그런데 봐봐. 서울은 밤이 돼도 타오르잖아. 도깨비가 놀기 때문이야. 도깨비가 밤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그렇듯, 도깨비는 『삼국유사』에도 실릴 만큼 조상들의 총애(?)를 받았나 봐요. 그렇게 전해 내려오다가 조선 때 가장 흥성하고 일제 강점기까지 우리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다 뜸해졌는데요, 다시 붉은 악마를 통해 도깨비가 휘황찬란하게 등장했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세요. 아, 그러고 보니, 붉은 악마를 형상화한 문양도 도깨비 모양이네요. 거참, 희한해요~ 물론, 도깨비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렇게 된 걸 보면 도깨비, 우리 안에 있나 봐요. 그죠?

그런데도 우리는 도깨비를 잘 모르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꼴이다. 들어서는 알지만 생각하고 캐지를 않아서 아는 게 별로 없다. 귀에는 익었지만, 마음으로는 설고도 또 설다. 재미로서는 귀며 입에 오르내리지만, 인식하기에는 멀고 또 먼 존재다.(p.115)

도깨비, 그 이야기(장르)의 특색

도깨비 이야기의 시작은 늘 그래요. 실제는 없는데 있는 것처럼 말하죠. 그러니까, 도깨비 이야기를 풀어놓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려보세요. “내가 실제로 겪은 건데……” 혹은 “이건 실제로 겪은 누구에게서 들은 얘기인데……”꼭 경험담 같아요. 내 안에 있는 도깨비가 언제 그렇게 밖으로 나갔다 싶게. 사실을 전제로 늘 시작이 되죠. “이게 묘한 모순인 거야. 객체는 환시의 대상인데, 실제로 겪었다고 하니까. 이게 뭘 의미하느냐. 우리들 인생의 근본적인 속성에 대해 말하는 거지.”

또 하나 속성이 있대요. 그건 도깨비 이야기가 희비극 사이를 오간다는 거죠. 웃게도 만들다가 슬프게도 만드는. 그야말로, 웃음과 눈물을 빼는 요지경.

“도깨비 이야기는 의식이 명료할 때가 아닌 흐릿할 때 등장해. 먼 길을 가다 지쳤다든지, 술에 취했다든지, 그러면 도깨비를 보는 거야. 불이 켜져 있어서 가까이 가고, 여인숙이나 주막인가보다 하고 가잖아. 가면 웬걸, 예쁜 여자가 앉아있고, 함께 밤새 즐겼지. 아침이 돼서 집에선 와야 할 사람이 안 와서, 가족이 동네 어귀로 가보니 사람이 쓰러져 있고, 온몸이 가시덩굴에 휘감겨 피투성이고. 암도깨비가 그렇게 피투성이로 만든 거지. 가장 넓은 의미의 비극인데, 비극은 오이디푸스가 그랬듯, 인간이 만든 얘기 가운데 가장 진지한 거야.”

우스운 이야기가 많은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하긴 우습고 신나는 도깨비 이야기가 널리 퍼졌을 뿐, 도깨비계(界)라고 왜 비극이 없겠어요. 사는 곳곳이 다 ‘비극 지뢰밭’이다보니, 굳이 비극을 흩뿌릴 이유는 없죠. 고로, 김열규 할아버지가 주례 부탁이 들어와도 좀처럼 주례를 하지 않으시는 이유.

“왜 안하냐면 내가 고통을 겪었으면 그만이지, 남들에게 같은 고통을 겪으라고 한 술 더 떠 축하한다는 소릴 죽어도 못하겠어.(웃음) 나도 다른 주례처럼 축하한다고 하고 싶지만, 내 자신을 돌이켜 보면 사기 치는 것 같아서 못하겠어. 그래서 혹시라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면, 두 사람이 엄청 큰 짐을 보이지 않게 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 혼인 서약이 끝난 뒤 가볍게 내려가지 말고 지게꾼처럼 내려가라고.”

인생은 그래서 절묘하지요. 그럼에도 불구, 모든 주례는 축하한다고 말을 합니다. 결혼이 끝이 아닌 시작, 즉 고생을 훤하게 겪을 것이 보임에도 말하니까요. 그것참, 아이러니.

아, 당연히 희극의 이야기도 많습니다. 숫도깨비과 과부와 사랑하다가 버림받은(?) 이야기도 그래요. 여자라면 사족 못 쓰는 도깨비를 보고선, 한국 남자들 안에 도깨비가 있음을 금방 눈치도 챌 수 있죠?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그나마 젊든 늙든 간에 이 땅의 사내들과 도깨비는 닮은꼴이다. 색골에 ‘돈골’을 겸하기로는, 아니 돈골 앞세운 색골이기로는 도깨비나 한국의 웬만한 사내들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 대도시 밤의 환락가가 색골과 돈골들의 아우성으로 번쩍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색이 돈을 부르고 돈이 색을 부추기면서 그 둘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깨비 그 녀석은 색골에 돈골로도 모자라서 ‘권력골’까지 겸하고 있다. 감투를 쓰고 나부대며 뻐기고 하는 꼴은 그가 권력골이란 것을 웅변해주고 있다.(p.258)

한국인의 좋은 점, 나쁜 점을 두루 갖춘 도깨비 이야기의 특색 중 하나는 코미디입니다. 웃기는 괴물의 매력이라고 할까요. 짓궂은 장난을 즐기지만, 잔인하지는 않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농지거리를 부릴 뿐이죠.

도깨비는 장난과 유희, 오락에서는 단연 천하제일이다. 놀라운 쾌락주의자들이다. 그들의 퍼포먼스는 인간의 그 하찮은 상상쯤 우습게 여긴다. 한순간에 기상천외의 광경을 펼쳐 보이는 그것들의 변화무쌍은 사람의 말로는 감히 옮겨놓을 수도 없다. 위대하고도 장관인 판타지 이벤트다.(p.49)


도깨비의 상징물이 뜻하는 것

‘도깨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뭔가요? 맞아요. 도깨비 방망이. 옛이야기 속에 우리네 선조들은 자신의 꿈을 도깨비 방망이에 많이 기댔죠. 도깨비 방망이 한 번 뚝딱 두드리면, 원하는 모든 것이 나왔으니까요.

다른 것도 있죠. 할아버지 말씀을 듣자니, 절굿공이, 부지깽이, 빗자루, 불(길)…… 불(길)을 빼곤 모두가 남성 상징이래요. 사람을 만나면 씨름부터 하자고 덤벼드는 도깨비가 졌을 때, 변하는 건 빗자루나 부지깽이, 절굿공이죠. 이게 또 의미가 있대요.

“한국 남자가 여자와 어떤 관계인지를 말해주는 거지. 세 가지 물건 모두 다 여자 손에 닳아빠지거나 오래 가지고 있던 물건이야. 한국 남자가 다 이 꼴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지. ‘네까짓 것들이 아무리 날뛰어봐야, 결국에는 우리가 못 써서 버리는 것에 불과해.’ 한국에도 엄청난 페미니즘이 있었던 거야. 맞잖아. 나이 들수록 남자는 여자에게 한 끼라도 얻어먹기 위해 쩔쩔매야 해. 나이가 들수록 여자는 기가 세지고, 남자는 빗자루, 부지깽이 꼴이 된다고. 그러니까, 젊어서부터 명심해.”

예쁜 색시라고 안은 게 나중에는 빗자루로 둔갑하고 말았다. 그것은 돈과 권력과 색에 취한 자들의 말로를 웅변하고 있다.(p.109)

빗자루, 그건 여인네의 손에서, 아낙네의 손에서 오래오래 머물렀던 물건인지라 여자들의 속내며 신세를 상당한 정도 닮아 있을 것이다. 여성의 마음이며 신세, 팔자 등이 거기 진하게 묻어 있을 것이다.(p.109)

나머지 불(길). 불은 상징물 가운데서도 가장 까다로운 편인데, 크게 말하면 불은 건설이고 창조를 상징한대요. 하지만, 한쪽에서는 파괴랍니다. 따라서 도깨비의 불길은 한국 남자의 열정이면서도, 때로는 열정이 파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 그 양쪽을 다 상징한다고 하네요.

장난꾸러기 도깨비

도깨비의 성격을 보면, 또 한국인이 보인답니다. 노는 데는 도깨비를 당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진 뜻밖의 성격은 바보천치. 따라서 밑도 끝도 없는 ‘착한 둥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김열규 할아버지의 이야기에요. 맞잖아요. 가난한 사람을 그냥 보고 못 가면서도, 또 반대편에선 날치기를 일삼고. “장난꾸러기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건데, 도깨비는 바보천치라는 얘기도 듣잖아. 이것만 봐도 도깨비가 얼마나 모순적인 것인지 알겠지? 이게 또 한국인이라는 거야.”

그는 쾌락주의자이고 향락지상주의자다. 에피큐리언이다. ‘돈 판’이고 ‘돈 조반니’다. 도깨비에게는 산다는 것과 놀아나는 것이 같다. 살자니 놀아먹어야 하고 놀자니 살아야 한다! 그건 도깨비의 인생철학, 아니 도깨비 철학 제1조다. 그러니까 ‘재미, 신명, 흥!’ 이 셋은 도깨비의 로고요 슬로건이다.(p.85)

도깨비의 갓, 정신적인 가면

도깨비의 갓, 즉 감투. 은신, 몸을 숨기는 구실을 하는 아주 중요한 도깨비의 소지품이죠. 이걸로 갖은 못된 짓을 하고 다니기도 하죠. 물론 잔인하지는 않은. 그렇다면 이 갓은 무엇을 상징했을까요. 갓은 얼마나 자신을 숨기고, 가리고 사느냐를 보여준 것이었대요.

“한국 정치가들은 더 많이 자신의 본성을 가리고 살고 있을 거야. 인간은 누구나 정신적인 가면을 쓰고 살잖아. 여러분도 실제로 이 사람 저 사람 만날 때 표정이 달라지고 무수한 가면을 갖고 있어. 언젠가는 누구에겐가 들통 나서 그런 놈이구나, 그런 놈이 아니었구나, 하는 얘기도 듣겠지만.”

도깨비는 그렇듯 별의별 성징을, 백태백색처럼 갖고 있어서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골고루 한국인들이라는 얘기죠. 한국인은 도깨비고, 도깨비는 한국인. 그래서 도깨비가 자꾸 모습을 바꾸는지도. 물론, 도깨비의 본색을 본 사람은 없지요.

억눌린 욕망이 폭발하면, 우리는 도깨비가 된다. 가려진 무의식이 터져 오르면, 한국인은 누구든 도깨비가 된다.(p.7)

광기를 띤 집단 열정을 주의하라!

인간의 억눌린 욕망이 터져 오르듯, 사람들의 막힌 욕구가 폭발하듯 도깨비들은 한밤중에 들에 나가 놀이판을 벌이고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장난판이며 난장판을 펼치는 것이다. 한밤 도깨비들의 놀이판은 우리들 인간의 꿈의 터전이나 매한가지다. 인간이 못다 한 소망을, 사람이 하고 싶어도 참고 누를 수밖에 없었던 욕망을 도깨비가 대신 채워주고 풀어주는 것이다. 도깨비는 이래서 한국인의 대리인이 되고 변호사가 된다.(p.46)

도깨비가 이렇듯 한국인인데, 김열규 할아버지가 다소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월드컵을 보는 한국인과도 결부된 문제라지요. ‘fanaticism’ 혹은 ‘fanatic’. 광기를 띤 집단적인 열정입니다. 광신주의. “정열에 들떠 있을 때 좋게만 바라볼 수 있지. 애국심, 일치단결, 조국을 향한 열정. 그러나 엄밀히 따져봐. 그 광장에선 축구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 순전히 자기도취야. 일종의 자기 위안, 자위행위에 불과한 거지.”

한국인이면 한국인 전체에 공통된 무의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해서 전해지고 또 간직된 무의식이다. 거기서 한국인은 너나없이 하나가 된다. 그리고 도깨비에게는 한국인이 그런 집단무의식이 뭉쳐 있다.(p.120)

일종의 ‘일링크스’와 같은 상태. 프랑스의 인문학자 로제 카유아가 놀이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눴지요. 여기엔 권투처럼 승부를 겨루는 ‘아곤’이 있고, 소꿉장난처럼 흉내 내면서 즐거움을 누리는 ‘미미크리’가 있으며, 주사위놀음처럼 확률과 행운을 기대하는 ‘알레가’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링크스. 뭔가에 빠져들어 춤과 노래, 알코올 등으로 황홀한 기분을 즐기는 것이죠.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 경상도에선 바보를 ‘축구’라고 불러. 축구가 우리나라에서 퍼내티시즘을 야기하는 계기야. 지식인들은 퍼내티시즘에 잘 빠져들지 않아. 남들 다 좋아하는 건 안 하려고 하지. 한쪽에서 보면 애국심이고 열정의 도가니인데, 왜 한국은 그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유난히 심했을까. 일본도 그 지경은 아니었거든.”

김열규 할아버지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이웃이 없다’는 것이었대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무서운 고립을 당하고 있었던 거죠. 그것을 달팽이에 비유했습니다. 스페인의 한 철학자가 말했다죠. “현대인은 달팽이다.” 아무리 몸을 가까이 하려해도 껍데기 때문에 안 되는 존재. “고립이 무섭고 외로워서 한자리에 모여서 한 덩어리가 될 필요가 있었던 거지.” 자발적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됨’이라 여겨졌던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병리현상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 한때 인류를 피비린내로 진동시킨 것은, 퍼내티시즘이 극단화한 전체주의였지요.

김열규 할아버지는 그 퍼내티시즘의 현장을 보면서 ‘통일’을 생각했답니다. “평양 시민들이 환호하고 날뛰는 순간은 김정일이 나타나는 순간이야. 그 두 퍼내티시즘은 다르지 않아. 다른 민족보다 퍼내티시즘의 성향이 강해. 물론 이것은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히 있지. 그래서 나는 통일을 시켜야한다고 봐. 인민과 붉은 악마는 통하는 것이 있거든.”

퍼내티시즘을 가장 진하게 갖고 있는 것이 도깨비입니다. 모였다 하면 춤추고 노래하고, 불길을 치솟는 것 보세요. 대표적인 퍼내티시즘의 상징이죠. “술자리가 한국만큼 요란한 나라는 없어. 한국의 술자리도 일종의 퍼내티시즘이야. 바라건대, 좋게 끝났으면 하지. 퍼내티시즘으로 끝나지 않으면 곤란해지거든. 퍼내티시즘이 우리들에게 건설적이 되기를 여러분과 함께 빌어.”

그래서 우리는 도깨비와 도깨비 이야기가 우리 한국인의 현실 생활의 일부라는 것을 다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기에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신을 알고 있듯 도깨비를 알고 있어야 한다. 모르고 있다면 알아야 한다.(p.135)

이만하면 알겠죠? 웃기는 괴물, 도깨비가 왜 우리 안에 있는지. 그 도깨비 잘 다독여서 도깨비만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건 각자의 몫이에요. 여름밤, 도깨비 책을 읽으며 희비극을 오가면서 더위와 맞서는 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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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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