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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상반기 출판계 결산]아직도, 더 많이 삼성을 생각(해야) 한다 - 『삼성을 생각한다』 김태균 편집자

‘이기는 게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이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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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는 각 출판사의 편집자를 상대로 ‘2010년 상반기 출판결산, 출판인에게 묻습니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상반기 최고의 책을 묻는 첫 번째 문항에서 열 세 곳의 출판사가 이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꼽았다.

편집인들이 주목한 책 『삼성을 생각한다』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삼성을 생각한다』, p.448)

2010년 2월, 삼성 불법 비자금을 폭로하며 양심선언을 한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출간되었다.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이라는 키워드만으로도 폭탄을 머금은 책이었으나 반응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어느 신문사에서도 이 책의 광고를 실어주지 않았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보도도 거의 없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렇게 묻힐 위기에 처했다.

책 출간 이후 밤을 꼬박 새워가면서 만든 광고시안이 무용지물이 될 참이었다. 애타게 광고 지면을 찾던 김태균 편집자는 ‘사회평론 트위터(@ebricks)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일인지 감이 잘 안 왔어요. 나중에 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었죠. 깜짝 놀랐어요.” 『삼성을 생각한다』의 광고 게재가 거부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트위터와 블로그로 자발적인 광고 릴레이를 이어나가기 시작한 것. 파급력은 엄청났다. 온라인 서점 및 오프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언론은 침묵했지만 독자들은 삼성을 말하고, 삼성을 생각했다.

채널예스는 각 출판사의 편집자를 상대로 ‘2010년 상반기 출판결산, 출판인에게 묻습니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상반기 최고의 책을 묻는 첫 번째 문항에서 열 세 곳의 출판사가 이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꼽았다. 『삼성을 생각한다』가 이룬 쾌거는 독자들에게만 화제가 된 것이 아니었다. 많은 편집자 역시 주목하고 있었다. 언론도 다루지 않는다는 삼성에 대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데에서 책의 의미를, 매체 광고도 없이 책이 독자를 만나는 방식에서 새로운 출판마케팅의 사례를 주목했다.

지난 6월, 설문조사가 진행될 당시, 직접 설문지를 받았던 김태균 편집자는 “이 설문이 우리 출판사와는 관계가 없는 설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책이 1위로 꼽히다니, 얼떨떨합니다. 이 책을 둘러싼 일을 처리하느라 상반기가 다 날아가 버렸어요. 다른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볼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편집자들에게서 이 책이 최고의 책으로 꼽혔다니, 영광이고 기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최근 사회평론 편집부에서는 『삼성을 생각한다』 책이 나오기까지 과정과 출간 이후의 풍경을 엮은 두 번째 이야기 『삼성을 생각한다 2』를 발간했다.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낼 만큼, 미처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말이다. 이 문제적 원고가 한 권의 책이 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책을 직접 만든 김태균 편집자에게 그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시 많은 원고, 책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상상 못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담당한 사회평론의 김태균 편집자

『삼성을 생각한다』는 현재까지 총 몇 부가 팔렸나요?

“대략 15만 부 정도 팔렸어요. 6월 초쯤 14만5천 부를 넘겼어요. 그때부터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새로운 이슈가 많이 생겨서, 벌써 관심에서 잊혀버린 것 같아요. 『삼성을 생각한다 2』를 내면서 관심을 상기시켜보고자 합니다.”

원고가 바로 출판되지 못하고 떠돌았다고 들었어요. 다른 출판사에서는 어떤 점을 망설이고 원고를 넘겼을까요?

“처음 원고를 읽었을 때, 이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을 못했어요.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고, 실명 언급이 많아 많은 부분을 덜어내야 했고요. 가시가 많은 꽃 같았다고나 할까요? 건드리기가 두렵고, 골치가 아플 것 같은 책이었어요. 게다가 만약 이 책을 낸다고 하더라도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볼까 고민을 했죠.

원고를 처음 받았을 때, 저도 별로 읽고 싶지 않았거든요. 김용철 변호사가 썼으니 대충 어떤 이야기인지 뻔하고, 좋지 않은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출판이 결정되고 차근차근 원고를 읽으면서, 모두가 굉장히 놀랐어요. 뻔한 얘기들 속에서도 내가 얼마나 세상에 대해 모르고 있었나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 많았거든요. 그때부터 작업이 탄력적으로 진행됐어요.”


삼성을 다루는 책이라는 부담감은 없었습니까?

“대기업과 출판사가 어떤 긴밀한 관계는 아니잖아요. 불이익에 대한 걱정이 많지는 않았어요. 다만, 저자인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게 염려스러웠죠. 주인을 문 개라고 하고,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있었잖아요. 사실 저도 자세히 알기 전에는 조금 문제가 있는 사람이거니 생각을 했고, 이런 사람의 책을 출판하는 것이 우리에게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어요. 또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법적인 대응을 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 문제가 일일이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많았던 원고라 곤란했죠.”

실제로 그런 클레임이 들어오기도 했나요?

“몇몇 사람들이 책에 나온 특정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연락해오셨어요. 책이 많이 팔릴수록, 토씨 하나에도 민감한 반응이 오더라고요. 지금 한 10쇄, 11쇄 정도 나왔는데, 쇄마다 계속 수정을 했어요. 덜어낸 부분도 있고, 다시 쓴 부분도 있습니다.”

1쇄와 10쇄를 비교해보면 좀 다르겠네요.

“네, 1쇄와 2쇄를 비교해봐도 달라요.(웃음)”

편집작업을 하면서, 원고를 어떤 책으로 만들고 싶었나요?

“처음 원고의 제목은 ‘삼성은 무죄다’예요. 고발서 같은 강력한 제목에, 피가 뚝뚝 흐를 것 같은 이미지였죠. 편집 작업을 하면서 방향을 잡아갔어요. 우리가 원하는 구체적인 상은 없었지만, ‘이렇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방향이 있었어요. 좀 더 밝은 책.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인식을 재고할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제목도 좀 모호하긴 하지만 『삼성을 생각한다』로 바꿨습니다. 단순히 고발서로 읽히기보다는 정말 생각할 거리를 주고 싶었어요.”

책 가격이 2만2천 원입니다. 다른 인문서적에 비해 비싼 편인데요. 왜 이렇게 비싸게 책정되었나요?

“그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 책이 고급스럽고 귀한 책이 되려면 그만한 가치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또 이 책은 볼 사람들만 사볼,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만이 사볼 책이기 때문에, 가격을 높이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아무 생각 없이 사보는 그런 책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책값을 높이게 됐습니다.”


별종, 김용철 변호사

두 번의 독자 만남(☞ 보러 가기)을 통해서, 김용철 변호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특유의 거침없고 솔직한 입담을 듣고 있자면, 간지러운 속내가 시원히 긁히는 것 같다. 그는 그저 상식적인 의문을 던지고,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을 꼬집을 뿐인데 독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한바탕 웃음 뒤에 허한 침묵. 그만큼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사회의 풍경이 그의 이야기를 통해 발가벗겨졌다.

아무것도 연연해 하지 않는 김용철 변호사는 그 내부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바깥으로 발산되는 사람이다. ‘버럭 용철’이라는 별명대로 옳은 말을 듣고 있을 때도, 그 단호한 외침에 가끔 떨릴 때가 있다. 다루기 힘든 사람이라는 말이 예사가 아니었다. 천생 검사다. 이런 분을 검사로 만났다면 참 무시무시했겠다 싶다. 담당 편집자에게 저자 김용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책을 통해 ‘김용철 변호사의 인식을 재고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그 점은 책에 어떻게 반영이 되었나요?

“책을 고급스럽게 만들자고 했어요. 저자는 그 책을 통해서 비춰지니까요. 자료집이나 설명서처럼 보여지지 않게, 고급스러운 종이와 이미지를 통해서 귀한 책처럼 보이게끔 했어요. 실제로 귀한 책이 되는 것은 출간 이후에 일이니까, 일단은 귀한 책처럼 보여야 되는 거죠. ‘이 사람이 이렇게 멀쩡한 책을 썼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요. 원고 작업을 하면서 김용철 변호사가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죠.”

‘괜찮은 사람이구나’ 알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글이라는 게 거짓으로 쓸 수도 있지만, 그 많은 얘기를 다 꾸며낼 순 없는 거잖아요. 일단 이 내용이 저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구나 싶었던 게, 저자를 도와준 여러 기자들이 있고, 그 뒤에는 사제단도 있었으니까요. 이 사람의 이야기가 진실된 부분이 있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가까이서 본 김용철 변호사는 어떤 분이신가요?

“음…… 제 스타일은 아니더라고요.”

음…… 상상해봐도 두 분이 잘 안 어울리네요.(웃음) 편집자님은 굉장히 차분하신데, 변호사님은 우락부락하시잖아요.

“그렇게 보이지만, 변호사님 취미가 고상하세요. 집에 가면 거실에는 턴테이블과 오디오 장비가 있고, 부엌에는 밥솥도 없이 커피 내리는 기계만 있어요…… 마당에 개를 키우시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시는데, 또 그걸 피곤해하시는 것 같고요.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나 행동하는 패턴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 느낌? 불안 불안한.(웃음)”

의외의 면을 발견한 적은 없나요?

『삼성을 생각한다』책을 보면 뒤에 아이들 얘기가 나오잖아요. 명색이 검사 아빠면서 애들이 운동화를 사달라고 하면, 운동화에 페인트를 칠해서 주고, 애들이 머리 깎는다고 하면 바리깡으로 직접 밀어주고……. 굉장히 사고하는 게 별종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굉장히 신기한 사람이다.(웃음)”

독자들의 만남을 몇 번 진행했잖아요. 그런 자리에 나오기 불편해하시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설득하셨나요?(웃음)

“강연 요청은 많이 있었는데, 각 서점마다 딱 한 번씩 행사를 했어요. 한 번 이상은 못하겠더라고요.(웃음) 저희는 서점 핑계를 댔죠. ‘서점에서 하자고 한다. 하셔야 한다……. 이 서점을 했으니, 저 서점도 해야 한다.’ 그렇게 했죠. 그 외의 지방 강연은 독자들이 요청을 해서, 거절을 못하고 가신 거죠. ‘강연을 해달라, 법률 자문을 해달라’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왔어요. 굉장히 피곤하셨을 거예요.

그래도 그 와중에 일부 강의를 다니시는 걸 보면, 이런 일을 굉장히 귀찮아하긴 하지만, 할 일은 하시는구나, 싶었어요. 그 밖에도 알려지지 않은 강연들, 출판사에서도 모르는 강연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개인 활동에 대해서는 출판사와 의논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나중에 인터넷 보고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삼성을 생각한다 2』, 이전에 없었던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 독자는 이 책이 묻히지 않아야 한다며, 책을 몇 권씩 사서 이웃에게 돌렸다고 했다. 책을 사서 인증샷을 올리는 독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린 독자들도 나타났다. 주재환 화백은 “책을 광고하고 싶은데 아무도 하지 않으니 내가 할 수 밖에 없었다”며 「책 광고」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리뷰도 특별했다. 독자들은 책의 내용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 이야기를 써내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편집자에게는 감격스럽게 다가왔다. “인쇄소에서 나올 때까지 이 책은 사회평론이 만들었죠. 그런데 책이 나온 순간 우리 손을 확 떠나버렸어요. 책이 혼자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사건을 만들며 제 존재를 증명하더라고요.”

주재환 화백의 「책 광고」, 160x130cm, 캔버스 뒤에 아크릴

평소 삼성을 배척하지도 않고, 김용철 저자에게 특별히 호의가 있는 것도 아닌 사람들까지 적극적으로 광고를 하고, 책을 샀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삼성을 생각한다』를 통해서 독자들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을 구매하는 행위로 삼성이 제멋대로 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시작이 그런 이유였고, 이어진 언론 문제가 독자들을 더욱 추동한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 회의할 때마다 하는 말이 ‘이 책은 꼭 100만 부를 팔겠다’고…….(웃음) 15만 부가 이 책의 한계는 아닐 것 같아요. 앞으로 얼마나 팔지는 모르겠지만, 100만 부 꼭 팔아야 한다는 심정인 거죠.”

이후에 삼성이 ‘사실과 다른 내용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냈어요. 그때 염려되진 않았나요?

“삼성이 이제까지 대응을 잘해왔다고 생각해요. 무반응이 최선이었죠. 그때 그런 대응을 했던 것을 삼성 내부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저희 입장에서는 대응을 좀더 해줬으면 하고……. 그 보도자료를 낸 담당자가 누굴지,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삼성의 입장 표명 덕분에 책이 기사화되어 감격스러웠다는 글을 봤는데…… 안타깝더라고요.(웃음)

“그게, 굉장히 기뻤거든요.(웃음) 전혀 신문사에서 반응이 없다가, 삼성이 보도자료를 내자 다 실어줬어요. 조중동까지 안 나온 데가 없어요. 저희 광고를 받아주지 않은 곳에서도 저희 책 이름을 다 써주고.(웃음) 그런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셈이니까 좋았죠. 기사 내용이 거의 비슷한 게, 아마 삼성에서 낸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쓴 것 같더라고요.”

이달에 편집부에서 『삼성을 생각한다 2』를 냈습니다. 어떤 계기로 두 번째 책을 만드셨나요?

『삼성을 생각한다』가 의미 있어진 까닭은 사회의 반응, 독자들의 반응 덕분이잖아요.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게 다 거짓일 수도 있고, 허튼소리일 수도 있는데, 삼성이나 언론이 반응하는 걸 보니까 독자들은 오히려 ‘이게 만약 허튼소리라면, 저런 식으로 반응하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한 거죠.

이 책의 존재가 증명한 것들이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담겨 있지 않으니까요. 이후의 이야기를 정리해야 비로소 이 책이 마무리된다고 생각했어요. 자료를 모아보니 양이 상당히 많고, 단순히 자료집 정도로 만들기는 아까웠어요. 그래서 제목도 『삼성을 생각한다 2』가 되었어요.”


단순히 자료집이 아닌 이 책도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인데요. 『삼성을 생각한다 2』를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나요?

“읽은 독자들이 ‘과연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겠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삼성을 생각한다』는 굉장히 절망적인 이야기였잖아요. 언론이 이 책의 광고를 거부했을 때 독자들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렇게 반응했다면, 이 책이 아무 의미가 없었겠죠. 알려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게 책의 운명이니까요.

그런데 독자들이 나서서 판매독려를 하고 팔아준 셈이잖아요. 독자들이 움직이면서 많은 일이 생긴 것 같아요. 이것이 우리 사회의 희망의 한 모습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삼성을 생각한다』에 절망이 있었다면, 그것을 덮을 수 있는 사람들의 힘을 두 번째 책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정치권력보다 더 치명적인 자본권력의 위험성을 드러내며 우리 사회의 새로운 아킬레스건을 알게 했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우리를 그 어느 때보다 아프게 하고 있는데 그것이 역설적으로 이 책의 존재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약점을 알게 해준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삼성을 생각한다 2』, p.8)


편집자의 의미 느끼고 나니, 일할 맛 나더라

한 권의 책을 내보내는 편집자로서, 가장 아쉬운 순간은 언제일까? 좋은 책이 조용히 묻혀버릴 때일까? “좋은 책은 그대로 좋은 책이잖아요. 안 팔려도 좋은 책인 거죠. 다만 좋은 책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원고를 시간 부족이나 능력 부족으로 허름하게 만들어졌을 때, 가슴이 아프죠.” 편집자의 책임을 강조한 말이다.

사회평론의 모토는 ‘베스트셀러를 내지 말자’란다. 한순간 반짝하는 베스트셀러는 자칫 출판사의 장기적인 계획을 흔들어놓을 수 있단다. 반짝하는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꾸준히 좋은 책을 만들자는 뜻일 테다. 약간은 파격적인 그 모토가 어떤 의미인지 그의 모습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를 낸 담당 편집자로서 나름의 자부심과 상기된 의욕을 비치지 않을까 싶었지만, 김태균 편집자는 시종 담담했다. 오히려 편집자의 역할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곱씹는다. 그러니까 15만 부에 만족하지 않고, 100만 부쯤 내보낼 각오가 있다면, 이제 시작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아직도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의 존재를 몰라요. 가끔 결혼식 같은 데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모르더라고요. 이번에 『삼성을 생각한다 2』도 냈으니, 계속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일을 찾아야죠.”

이번 작업이 편집자 개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원고를 편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다른 어떤 작업보다도 보람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원고와는 또 다른 책의 가치를 새삼 깨달았어요. 대개 책이라는 게 원고에 달려 있다는 말을 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고와 책은 다르고, 그 원고를 어떤 책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천차만별인 것 같아요. 이런 의미를 느끼고 나니, 일할 맛이 나더라고요.”

이 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요?

“자세에 관한 거죠. 원고를 봤을 때 언뜻 상상이 되는 책을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건 안이한 생각일 수 있다는 거죠. 자기가 만들고 싶은 책, 읽고 싶은 책으로 근접하게 만드는 게 편집자의 역할이고, 편집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일에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배웠죠.”

이제까지 작업 중 가장 희열과 환희를 준 원고를 꼽자면, 역시 『삼성을 생각한다』인가요?

“네, 『삼성을 생각한다』가 좋았고요. 2006년에 한학수 PD의 책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도 그랬어요. 책이 예쁘게 나오진 않았지만, 내용이 워낙 좋아서, 기대가 많았거든요. 읽어본 사람들은 굉장히 재미있다고 하는데, 잘 안 팔렸어요. 처음에 1쇄를 찍고, 광고를 했더니, 주문이 밀려들었어요. 반응이 좋아서 2쇄, 3쇄를 같이해서 몇 천 부를 더 찍었죠. 한 달쯤 있으니까 반품의 쓰나미가……. 가슴이 아파요.(웃음)”

좋은 글을 찾아보시는 편집자로서,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요?

“좋은 책은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는다고 해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생각할 때 좋은 책이어야죠. 사람들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책이 내용이 어떤지, 무엇보다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확실히 알면 좋은 책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가 나에게만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웃음) 정말 아까운 책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 책을 계속 만드실 텐데요. 꼭 만들어보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일까요?

“제가 공대를 나왔어요. 이제까지는 전공과 무관한 책을 주로 만들었는데, 내공이 쌓이면 과학 교양서를 만들고 싶어요. 그쪽이 굉장히 마이너하다고 들었어요. 책을 내는 출판사들은 많은데, 책을 읽는 독자들이 거의 없다고요. 독자들의 층을 넓히면서, 어필할 수 있는 그런 과학 서적. 막연하지만 그런 생각이 있어요.”

관심이 없는 분야의 책을 편집할 때, 혹시 지루하지는 않나요?(웃음)

“편집을 하게 되면, 원고를 자세히 볼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보면 뭐든 재미있어요. 굉장히 신기해요. 어려운 원고도 많지만, 정독을 하면서 교정을 보고 나면, 굉장히 재미있게 다가오고, 이 책이 대박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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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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