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 책을 썼다
2007년 10월 29일, 사제단은 이날 오전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내가 고백한 내용을 세상에 알렸다. 이날, 내 명의로 개설된 비자금 계좌가 공개됐다. 삼성은 임원 계좌를 임의로 차용해서 비자금을 보관하거나 자금 세탁을 해왔다. (…) 내 계좌에는 내가 모르는 현금이 50억 원 이상 보관돼 있었다. (…) 삼성에서 퇴직한 지 3년이 지난 내 계좌가 이 정도라면, 현직 임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추정한 삼성의 국내 비자금 규모는 10조 원이 넘었다. 해외 비자금은 추정조차 불가능했다. 이런 내용이 처음 알려진 것이다.(p.37)
지난 3월 25일. 강남 코엑스에서 『삼성을 생각한다』의 저자 김용철 변호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이걸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조금 난처하다. 강연장에 오갔던 허심탄회한 말들, 간간히 터졌던 독자들의 한숨 소리. 따옴표 안에 그대로 옮겨 적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 여느 독자 만남처럼 풀어낼 수가 없다. 분명 보통의 만남과는 다른 시간이었다. 위험한 만남(?)이라고까지 과장할 것은 없지만, 정녕 떨리는 시간이었다. 재미있게 읽은 책의 저자를 만나서 황홀한 마음의 두근거림이 아니라, 저자의 이야기가 놀라워서, 얘기를 털어놓는 저자의 모습에 놀라서 떨렸던 시간. 아, 또 하나 더. 결코 삼성 제품을 사랑하지도 추구하지도 않지만, 어쩌다 내 손에 쥐어진 삼성 노트북. 그 위에 보란 듯이 찍혀 있는 ‘SAMSUNG’ 마크(!)를 슬쩍 손으로, 가방으로 가린 채, 취재했다. 이제 와 궁상맞은 행동인 걸 알면서도 누가 볼까, 솔직히 좀 떨렸다.
김용철 변호사가 나타났다. 큰 덩치. 걸쭉한 목소리. 하지만 패잔병 같은 모습이었다. 다리가 불편하다고 했고, 당뇨로 고생하고 있다고도 했다. 몸도 마음도 성치 않아 보였다. 패잔병이라는 말에 오해는 마시라. 그렇다고 해서 우리 변호사님, 결코 쪼그라들어 있지는 않았다. 부리부리한 눈빛에서 시퍼런 불꽃을 내뿜고 있었고, 벼락같은 말투도 변함이 없었다. 거침없는 외침에 주저주저 질문하는 독자들을 잡아먹을 태세였다!…… 아, 정말 그랬다니까! “변호사님”이라는 호칭에도, 대뜸
“거 참, 변호사란 호칭도 부담스럽네. 나 이제 변호사 아니요. 운전면허 있으니까, 기사님 해 주면 안 돼요?” 되물으셨다니까.
이날, 문제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두고,
“내가 강연을 할 것도 아니요, 다 못 쓴 뒷얘기를 할 것도 아니요. 뭘 할 수 있겠어요?” 말 그대로 독자들과 만나서 질의응답을 나눴는데, 그게 또 옮겨 적기에 만만치 않은 얘기들이란 거다.
“재미있다고들 하는데, 재미있으라고 쓴 건 아니고 의미를 갖고 쓴 겁니다. 우리 몸에 대장균이 얼마나 많아요. 우리 피부도 일정한 균 층이 없으면 병균이 침투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알리고 말하는 거였고, 이걸로 내 역할은 끝났어요.” 그렇다면 이제 내 역할, 나 역시 재미보다는 의미 있는 말을 골라서 전해야겠다. 저자의 기막힌 말들 때문에 여러 번 강연장에 웃음이 터졌지만, 그건 정말 기막혀서 터뜨린 웃음이었다. 웃고 나면 씁쓸해지는, 이를테면 이런 농담.
“저 때문에 이건희 회장 오래 사실 거예요. 살짝 신경 쓰이는 사람 있으면, 어디가 늘 걸리면, 그게 건강에 도움이 되거든요. 아들이 물려받을 날이 요원해요. 말레이시아에 7개 주가 있는데 왕을 7년씩 돌아가면서 해요. 몇 년 전에 말레이시아 가서 봤더니, 지금 왕이 2번째 왕을 하고 있어요. 한 텀 돌아가고 두 번째 하고 있어요. 그 아들은 끝났죠. 다시 돌아오려면 49년인데. 아버지가 오래 살면 아들이 참 담담해요.”
양심선언, 그것이 배신인가?
2010년의 문제작,
『삼성을 생각한다』. 주요 일간지에서도 광고를 받아 주지 않았고, 도리어 이 사실로 입 소문이 나서 인터넷에, 트위터에 퍼져 나갔다. 이 책과 관련된 칼럼도 거부당했다.(글쎄, 경향신문에서 말이다!) 그래도 인터넷 서점들마다 1위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다. 이렇게 많이들 읽고 있는데 왜 아무 소리도 안 날까? 조금 의아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김용철 변호사, 이 자리에 나섰다.
양심선언 이후, 한동안 빵집에서 일한다는 근황을 들은 바 있었는데, 책을 발간하면서 그것도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거 배포되면 바로 쇠고랑 찰 줄 알았다”는 저자.
“이게 문학도 철학도 지식도 아니고, 이미 다 끝난 얘기를 거꾸로 풀고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어요. 그만큼 비정상적인 사회라는 거죠. 저보고 그래요. 다음 계획이 뭐냐. 제가 뭐가 있겠어요? 제 팔자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요?”
2007년, 한 변호사의 충격적인 양심 고백. 우리에게는 쏟아져 나오는 뉴스 중 하나였고, 그마저도 잠깐 주목을 받았다가 다른 뉴스에 묻혀 지나갔더랬다. 그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폭로한 삼성의 비리가 이렇게 묻혀 갈 줄은,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나 질기고 매서운 질타를 받을 줄은.
“여름에 난방, 겨울엔 냉방 잘 되는 곳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고민했어요. 기왕이면 일을 저지른 김에 뭔가 말이 되는 짓을 하자, 이렇게 시작한 거예요. 있을 때 말 않고 있다가 다 먹고 나서 그런다고. 그런 얘기 좀 그만하자, 진짜. 거기 있을 땐 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했어요. 내가 혁명가도 위인도 아니고, 다만 성질이 못됐지. 명색이 기업인데, 그러면 되겠나. 처음에는 그런 마음에서 시작한 거예요.”
“여전히 나는 곳곳에서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을 당한다.”(p.21) 변호사 협회에서 변호사 윤리를 위반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정말 그가 배신자인가? 진정 윤리의 위반인가? 사람들은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오물을 보지 않고, 손가락이 못생겼다는 탓을 했다. 한번 생각해 보자.
“변호사는 물론 의뢰인을 돕는 게 역할이자 의무다. 그러나 그것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범죄 행각, 범법 행위를 저지르도록 돕는 것은 오히려 변호사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 공공질서와 사회 정의를 근본적으로 해치는 범죄 행위라면,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에 공개하는 게 옳다.”(p.49)
저자는 자신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간곡히 말했다.
“저에게 지지니 동조니 존경이니 이런 거 필요 없어요. 그래도 저 너무 욕하지 마세요. 저보다 나쁜 놈 많아요. 저한테 많은 기대 하지 마세요. 절 아바타로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라는 거예요? 죽으라는 거예요? 이 정도 피곤하게 살면 됐지. 형제들이 다 불편하대요. 회사 임원도 있고 한데, 형 이미지 때문에 의심할까 봐 그렇답니다.”
조금 의아하다. 부정부패가 있으면 고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명색이 검사 하던 사람이, 남들이 다 어려워하는 삼성의 비리에 대해 폭로했다. 그러면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법조계, 정치계는 그를 매도하고 그의 이야기를 묵살시켜 버렸다. 언론은 가족들과 관련한 악성 루머를 흘리며 인신공격했고, 인터넷에서는 “전라도 출신이라 배신을 잘한다”는 황당한 논란도 벌어졌다. 문제는 자꾸 핵심을 비켜나서 다뤄졌다. 삼성이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것보다 이러한 사회의 대응이 더 충격적이다. 이것이야말로 삼성이라는 기업이 현재 대한민국에 기형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모습이 아닌가.
삼성과 특검이 법원으로부터 얻은 것은 단순한 면죄부가 아니었다. 그동안 차명으로 숨겨뒀던 수조 원대 자금을 공식적인 재산으로 인정받게 됐다. 또 불법으로 얼룩진 경영권 승계 문제도 깨끗해졌다. 나와 사제단이 양심고백을 준비할 당시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p.96)
그는 결코 예측하지 못했다. 특수부 검사 경력으로, 그 감각으로 볼 때, ‘조’ 단위의 검은돈이 나왔으면 분명 구속감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 탈세가 나왔는데 구속이 안 된다면 앞으로 누굴 구속한단 말입니까? 구속 제도가 없어져야지. 수조 원 단위 탈세가 구속이 되지 않는데, 교도소 7만 명은 누가 앉아 있는 거예요? 내 머리로는 예측 못했어요. 제가 구속을 원한 건 아니지만, 조금만 드러나도 구속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잘 말했잖아요. 큰 비리, 큰 부정인 거. 여실히 드러났잖아요. 단군 이래 최대 범죄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국무회의, 어전회의에서도 단독 특사를 하십디다. 잘하셨어요. 그래야 저게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를 보여 주는 거죠. 이게 여러분들이 살아갈 세상, 후손이 살아갈 세상이에요.”
부패한 재벌 총수들에게 관대한 법은 대체로 서민에게는 가혹한 법이다. 단 한 명도 구속되지 않았던 삼성 비리 사건과 당사자 전원이 구속됐던 용산 참사 사건을 비교해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p.393)
범죄자 돕는 것, 공범 아닌가
지난 3월 24일, 이건희는 회장직으로 복귀했다.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삼성 사태로 회장직에서 물러난 지 23개월 만이다. 쇄신 약속은 역시 깨졌고, 황제 경영이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는 ‘어째서 다시냐’고 되묻는다.
“전화를 받았어요. 회장님이 돌아가셨다고. 이 양반이 돌아가실 분이 아닌데. 그런데 회장 직으로 돌아가셨대요.(좌중 웃음) 등기 이사가 아니라고 하는데 등기 이사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이사회에 단 한번도 참여한 적도 없고, 유사 이래 결재권을 행사한 적이 없어요. 절대로 책임 질 일을 하지 않는 전통이죠. 복귀하나 안 하나 똑같고, 명함을 찍든 안 찍든 상관없죠. 최근 몇 년간 인사 안 했나요? 사장단 인사 누가 했나요? 달라진 것 아무것도 없어요. 다만 이번에 다시 돌아가신 게, 자신감의 표현인지. 본인은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진짜 삼성의 위기 같아요. 삼성 그룹 회사의 위기가 아니라 이 씨 일가의 위기. 쟤는 나처럼 못 이겨 내겠다 싶으니까, 본인이 확실히 섭외하고, 지분을 다져 놔야겠다. 이런 거 아니겠어요? 사장단이고 비자금 관리하던 사람들을 모두 요직에 박아 놨으니까.”
“사실 걱정이에요. 통제 기관이 없잖아요. 언론은 알아서 기고 있고, 국가기관도 다 그렇잖아요.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대한민국에는 진짜로 소비자밖에 없어요.” 국가도 언론도 못 하는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과연 뭘까.
“삼성 냉장고, TV 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TV, 냉장고는 깡통 두들겨 만드는 거라 부가가치가 없고, 중국에 밀리게 되어 있어서 수원 가전에서 광주로 내려 버렸다가 그것도 포기하잖아요. 동남아 해외 생산 기지를 만들어서 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수익성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왜 계속 하고 있느냐. 소비자 적정 품목이라는 게 있어요. ‘쌈숭’ 하고 써 있는 것들. 반도체를 아무리 만들어 봤자 속에 들어 있어서 안 보이잖아요. 이미지 때문에, ‘쌈쑹’을 알리기 위해 만드는 것들이 있어요. (동남아에서는 ‘쌈쑹’이라고 발음한단다.)
삼성의 진짜 핵심은 금융이에요. 생명, 화재, 카드, 증권 등등. 100% 내수고 전부 조 단위 흑자를 내요. 그래서 삼성은 절대로 밖으로 못 옮겨요. 혹시 자영업자 있으면 카드 가맹점 철회하세요.” 저자는 이제껏 이렇게 직접적인 말을 꺼내지 않았단다. 직접 말하긴 난감한 상황. 이해도 된다. 자신이 나서면 ‘보복적’이라는 말이 따라붙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단도직입적으로 되물었다. 범죄자를 도와주는 것도 일부 공범 아니냐고.
“만약 삼성 카드가 조 단위 흑자를 내는데, 전부 카드를 안 써버린다, 가맹점 계약 철회한다, 바로 효과 오죠. 삼성화재 자동차 마켓 쉐어가 50% 이상의 마켓 쉐어죠. 조금 서비스가 불편하더라도 현대나 메리츠로 가면 효과가 오죠. 그 방법 빼놓고는 방법이 없어요. 손을 들게 하는 것 말고는.”
솔직히 말해서 삼성 물건을 안 쓰고 살 수 있느냐고.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느냐는, 한 독자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저자의 벼락같은 불호령이 떨어진다.
“현실 얘기 하지 맙시다. 현실 벌써 끝났어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크다면, 현실을 이상에 맞추도록 노력해야 할 거 아녜요. 아니면 이상을 없애 버려야죠. 저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 현실 운운해요. ‘이 한목숨 바쳐서~’ 이렇게 해보면 안 돼요?” 순간, 강연장, 조용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어떻게 안 될까?
김용철의 증언, 공정한 재판에 지장 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김용철 변호사가 비난하고 있는 것은 삼성 전체가 아니라는 거다. 검찰, 법관이 모두 부정하다고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
온 세상 썩었다? 검찰 다 썩었다? 그런 거 아녜요. 많은 사람들은 자기 직분을 잘 수행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엔 수뇌부의 5퍼센트가 문제죠. 그런데 그 5퍼센트가 실권을 다 갖고 있죠. 잘하려는 사람들은 그렇게 떠나가죠. 기자도 정의롭고 괜찮은 사람 많잖아요. 조중동 기자들은 전부 다 악마인가요? 악마적 존재는 신학적 표현이에요. 함세용 신부가 그렇게 표현하길래 왜 그럴까 싶었는데, 겪어보니까 진짜로 악마입디다.”
양심선언이 있고 나서, 그는 언론의 대응에 여러 번 경악했다. 증거도, 증인도 있는 특종임에도 불구, 삼성의 문제는 누구도 나서서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비난했다. 사회를 위협하는 ‘한국판 탈레반’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저는 사돈을 맺은 집안까지 조중동을 근처에 두고 있다면 상대도 안 해요. 아는 척도 안 해요. 조중동을 보지 않는 것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 기본적인 성향이죠. 좀 심한가요? 왜 웃어요? 웃을 정도로 질리죠? 너무나 바른 소리는 우스운 거예요. 그게 진리죠. 그렇다고 왈 진보적인 언론이라고 바른가? 그것도 아녜요. 왈 진보니 정의를 말하려면 정의는 목숨까지도 걸어야 돼요. 신문사가 파산을 하고, 기자가 구속이 되고 그런 상황까지 가야 진보를 세웁니다. 세상의 진보 언론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우리나라 진보 신당이니 진보 강령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건 유럽의 보수 꼴통보다도 못해요.”
언론뿐 아니라 법조계에 대한 실망, 아니, 충격도 적지 않았을 터. 그는 법조인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울분을 감추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법학자가 있어요? 있었다면 저런 엉터리 판결에 3천 명 법학 박사가 아무 소리도 안 했겠어요? 1만 명 법조인이 논평도 않았겠어요?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을 세금 16억 원에 끝내 버렸어요. 삼성이 재산을 늘린 것, 그룹 내의 비상장사의 상장 차익입니다. 그 자체로 배임이죠. 어떻게 상장될 줄 알고 미리 사고 몇십 배로 튀겼을까요? 그건 조사할 필요 없잖아요. 내부 기밀을 이용한 것밖에 안 되잖아요. 이사회도 없었고 다 엉터리라고 하는데도 법정은 저를 한 번도 안 불렀어요. 제가 법정에서 증언하면, 공정한 재판에 지장이 있대요. 피고인들이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주눅 들까 봐 1심부터 안 불렀어요. 특검이고, 수사 기관이고 저를 안 불렀는데, 제가 억지로 간 거예요. 저한테 좌지우지되기 싫다는 거예요. 불편하다 이거죠.”
특검은 비자금에 대해 아무런 수사도 하지 않고, 피의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다. “이건희 측이 상속 재산이라고 주장하므로, 비자금이 아니라 상속 재산이 맞다.”라는 식이다. 심지어 삼성화재 등 계열사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을 확인했으면서도, 비자금은 없다고 허위 발표했다. 정?관?법조계에 대한 불법 로비 역시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특검은 내가 삼성 돈을 받았다고 지목한 이들을 단 한 명도 조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특검은 내 인격을 비방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아무런 근거 없이 로비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p.74)
‘삼성이 성장해야 한국 경제가 성장한다’는 환상과 오해
대기업의 성장이 과연 우리나라의 성장인가? 해외에서 선전하는 삼성의 로고를 보고 자못 마음이 뜨거웠던 적 있었나. 예전엔 그랬다. 몰랐을 땐 그랬다. 김용철 변호사 역시 안에 있을 땐 그랬단다.
“역대 정부의 직간접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삼성 등 재벌은 지금과 같은 위상을 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정부의 도움은 결국 국민 세금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들 재벌이 국민에게 빚을 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삼성 등 재벌은 국민에게 진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세금 납부라는 기본적인 의무마저 피하려 든다.”(p.436)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란다.
“서울 시청에서 남대문까지 걸어가는 동안 삼성생명 땅을 밟지 않고는 지나갈 수가 없어요. 대한민국 주요 도시의 사거리가 전부 삼성생명 소유의 땅과 건물입니다. 대한민국 심산유곡에 삼성생명 땅 많아요. 향후 지하수가 자원이 될 때를 대비해 사 뒀어요. 다 우리들이 키워준 거 아녜요. 한국 사람들의 애국심에 힘입어 돈을 많이 벌고 있죠. 지금 외국인 지분이 50퍼센트 이상입니다. 생산 기지가 한국에 있지도 않고, 한국인을 고용하지도 않아요. 우리나라에 있다고 우리 기업이라는 환상을 깨야 돼요.”
김용철, 학교 다닐 때도 늘 반장, 회장, 아니면 1등이었단다. 특검이었고, 재벌과 대통령까지 수사했던 사람이다. 소위 잘 먹고 잘살았던 사람이고, 잘살 수도 있던 사람이었다.
“제가 못됐다고요. 원래 그랬대요. 어렸을 때도 어른들이 틀린 말 하고 그러면 지적을 잘했답니다. 한 세상 잘났다고 돈 쓰고 폼 내고 그랬는데, 이제 와서 동정 받으려면 위선이지. 불쌍모드로 가야 하는데 너무 건방진가요? 왜 이렇게 냉소적이냐고요? 불편하시다면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우호적일 수 있겠습니까?” 그의 거침없는 말들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웃음이 흩어지고 난 뒤의 공허감을 서로 감추기 어려웠다.
이 책을 내고 나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얻은 것도 있다. 가족과 진짜 친구다.
“철없는 애들이라, 내가 폼 나는 일을 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인간은 단독자죠. 혼자 살다 혼자 가잖아요”라고 말은 했지만, 내심 아내와 아들 이야기를 할 때, (듣고 있는 내가 참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는 든든해 보였다. 큰 위로를 받고 있는 듯했다.
“이처럼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가끔 행복할 때가 있었다. 두 아들이 내 선택을 지지하고, 자랑스러워할 때였다. 이렇게 얻은 힘으로 나는 힘든 시기를 견뎌냈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순간도 있었다. 나 때문에 가족들이 상처받을 때가 그랬다.”(p.50)
다시, 삼성을 생각하자
책 발간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금방 고개를 내젓는다.
“인생이 바둑, 장기랑 달라서 무를 수가 없어요. 인생이 흘러가 버리는데,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가정이라는 게 불가능해요. 신부님들 표현으로는 섭리고, 하나님 뜻일 테고, 저야 뭐 속인이니까 ‘에라, 될 대로 되라. 죽는 것밖에 더 하겠느냐’ 이런 거죠. 용기라면 용기고 못됐다면 못된 거죠.”
그런데 책 내고 부쩍, 다른 기업인들, 고민이 있다는 분들이 찾아온단다.
“왜 저에게 걱정을 들고 오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충고하면 안 되죠. 내가 누구 인생을 책임지려고. ‘당신이 나에게 고민을 말하는 것은, 이걸 저질렀을 때 일을 감당할 수 없어서 고민스러운 거 아니냐? 왜 나한테 그 짐을 주느냐’.” 이어서 외친다.
“고민 독점의 원칙이에요. 고민을 왜 남한테 넘겨. 책임은 전가할 수 있지만, 고민은 스스로 해야 돼요. 남한테 넘기지 마세요. ‘한 세상 잘 살았다’ 그게 맛있는 거 먹어야 잘 사는 것인지, 떳떳하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세요. ‘나니까 이 정도 하지, 남들이었으면 더 해 먹었을 거야’ 하면 또 어쩔 수 없잖습니까.”
저자의 말마따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고민도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함께 생각했으면 좋겠다. 삼성에 대해서, 김용철 변호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어떤 소설보다 소설 같고, 어떤 농담보다 농담 같은 일들이 삼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와중에 벌어졌다. 한두 사람이 대통령을 뽑을 수 없고, 정의를 세울 수도 없다. 에이, 정의, 그런 거창한 말도 관두자. 정의 운운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상하고, 믿을 수 없이 나쁜 상태는 고쳐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바빠도 내 일인데, 우리 일인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소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데 ‘쌈쑹’ 살 때 딱 한번만 고려해 보면 안 될까? 어렵다고 ‘쯧쯧, 역시 안 돼’ 하고 혀만 차고 있기엔 좀 억울한 생각이 든다. 가진 사람은 앞으로도 웃는 일이 많을 테고, 못 가진 사람은 억울할 일이 계속 될 테다. 확실한 것은, 내가 결코 가진 사람의 입장은 아닐 것이라는 점, 그리고 우리 대다수는 억울한 일을 볼 수 있는 쪽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재벌의 비리를 공개해 봤자 소용없다고 이야기했다. 삼성 비리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오자, 이런 목소리에 “역시나” 하고 힘이 실렸다. 이들은 말한다.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고,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내 생각은 다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p. 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