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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행서 아닌, 여행, 그 자체다 - 『티베트 방랑』

이 책은 여행서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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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장마철 어느 날, 떠나고 싶지만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은 흐린 날에, 하루 종일 이 책을 뒤적거리며, 티베트 풍경에 잠기는 것, 기꺼이 하루의 휴가를 선사해도 좋을 법한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20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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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방랑
후지와라 신야 글,사진/이윤정 역 | 작가정신

1972년 출간된 『인도방랑』을 읽은 지인이 2009년 개정판이 나왔을 때 그 책을 내게 소개해주었다. 소개라기보다는 들려주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일부분이었는데 당장 읽고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와 닿았다. 막상 책을 읽어 내려갔을 때는, 그때의 강렬함보다 거대한 막막함이 덮쳐왔다. 여행자의 막막함, 헤매는 자의 막막함……. 여느 여행기처럼 훌쩍 넘겨버리지 못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인도를 걷는 속도 그대로 한 장 한 장 넘겨야만 했다. 후지와라 신야의 문장은 그랬다. 그리고 8년의 인도 방랑 이후 이어진 『티베트 방랑』, 이번에도 나는 그렇게 책장 사이를 걷고 있었다.

지인은 우스갯소리로, “여행서라지만, 이 책을 읽어봐야 결코 인도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지역 정보일랑 없다”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다. 티베트에 실제로 떠날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티베트로 떠나고 싶은 당신에게는 도움이 될 테다. 티베트의 황량한 땅의 빛깔이 눈에 선하고, 맨발바닥 아래로 거친 입자의 모래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하다. 그의 문장은 그렇게 여행을 겪어낸다.

아아……. 그런가, 이것이 티베트인가, 여러 해 동안 꿈결처럼 환영으로 보아 온 그 땅에 이르러, 차창 너머로 비스듬히 바라보는 무인의 풍경은 허허로웠다. 사람의 마음에 부응하는 얼마간의 습기도 음영도 없고, 눈부시게 환한 그 단일한 색과 모양에 그저 눈만 가늘게 뜰 뿐.
땅…… 그것을 무슨 색이라 부르면 좋을까.
노란색이라고 부르면 너무 부드럽다.
황금색이라고 부르면 너무 요염하다.
썩은 낙엽색이라고 부르면 너무 정감 있다.(…)
이 노란색 고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가로누워 있다. 바람 한 점 일지 않는다……. 침묵한 땅이 고지의 굴절 없는 햇빛에 직사되며 찬연히 말라붙어 있다. 생물은커녕 그곳에는 피도 눈물도 역사의 습기도 없고, 모든 것이 말라붙어 그저 찬연히 빛나며 자신은 땅 자체이고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p.81)


후지와라 신야는 시간과 공간을 겪어내는 감각이 누구보다 치열한 여행자다. 티베트, 라는 공간이 담고 있는 많은 이미지와 인상들을 구체적으로 겪어낸다. 그는 분명 그곳에서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 같은 곳을 보며 걸었을 테다. 라마교의 삼라만상이, 티베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이, 그들이 삶에서 마주치는 지옥과 극락이 담담하게 실려 있다.

달리는 차 위에서 찍은 듯 흔들리는 길, 구불구불 끝없는 길…… 험하게 내지른 절벽…… 양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티베트의 사진은 그곳의 숨결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다. 금방이라도 흙먼지가 눈앞을 뿌옇게 흐릴 것 같이, 낯선 짐승이라도 눈앞을 스쳐 지나갈 것만 같이. 증명사진처럼 실려 있는 108명의 티베트인들의 얼굴도 눈을 쉬이 떼지 못하게 한다. 108번뇌를 겪어내는 저마다의 낯빛. 철학자 같은 얼굴을 한 잡동사니 수집가에 사이비 약사, 행운, 부자, 금, 은, 보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좋은 이름을 전혀 보답받지 못하는 가난뱅이들, 나신의 부처상 앞에서 요염한 자태로 기도를 드리는 여자……. 가만히,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얼굴들. 그 속의 어떤 눈빛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의 것과 닮았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다. 후지와라 신야의 (아마도) 낮은 목소리가 사진 위에 포개져 은은히 들려오는 듯하다. 이 책은 여행서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다. 아마도 장마철 어느 날, 떠나고 싶지만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은 흐린 날에, 하루 종일 이 책을 뒤적거리며, 티베트 풍경에 잠기는 것, 기꺼이 하루의 휴가를 선사해도 좋을 법한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후지와라 신야

1944년 일본 후쿠오카 현 모지 시(현재 기타큐슈 시 모지 구)의 여관을 운영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여관이 파산하자 고교 졸업 후 상경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명문인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회화과에 입학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예술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중퇴, 1969년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인도로 떠난다. 이후 서른아홉 살 때까지 인도, 티베트, 중근동, 유럽과 미국 등을 방랑한다.

1972년에 펴낸 처녀작 『인도방랑』은 당시 청년층에게 커다란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8년의 인도방랑 후 떠난 티베트에서의 여정을 기록한 『티베트방랑』은 라마교 사회의 삼라만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독자를 투명한 감상공간으로 이끌어주었으며『인도방랑』과 더불어 저자의 원점이 되는 대표작으로 사랑받고 있다.

1977년 『소요유기』로 제3회 기무라 이헤에 사진상, 1982년 『동양기행』으로 제23회 마이니치예술상을 받는다. 그 밖의 주요 저서로 『아메리카 기행』『도쿄 표류』 『메멘토 모리』 『침사방황』 『시부야』 『바람의 플루트』 『황천의 개』, 소설 『딩글의 후미』, 자전소설 『기차바퀴』 등이 있다.


인도방랑
동양기행 1
황천의 개
아메리카 기행

  그가 보고 또 본 것은? - 후지와라 신야의 여행기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은 여행기의 백미이자 진면목이다. 또 인도 여행기의 지존이면서 결정판이다. 그런데 후지와라 신야는 20대 중반 3년에 걸친 인도 여행을 바탕으로 20대 후반에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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