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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감성 낚시꾼, 조규찬에게 낚인 어느 여름밤의 추억

『달에서 온 편지』 조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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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면 슬퍼질 수도 있습니다. 음악이 좋으시다면 그냥 좋아하기만 하세요. 어떤 면에서는 그게 더 행복한 것일 수 있습니다.”

8월의 비 오는 여름날, 조규찬이다. 음악이겠거니 짐작한다면 틀렸다. 책이다. 첫 번째 책. 그의 신간 소식이 반갑다는 블로거 ‘Happy_Prinr’ 님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규찬 씨를 실력 있는 뮤지션이라 생각한다. 가창력이 뛰어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마치 음유시인처럼 느껴진다.”(//blog.naver.com/happy_print/110065075635) 그렇다. 어쩌면 음유시인으로부터 우리에게 늦게 찾아온 책이다. 그것도 달에서 보낸. 제목 하여 『달에서 온 편지』(글?그림 조규찬/이른아침 펴냄).



 

 

 지난 11일, ‘예스24와 함께하는 『달에서 온 편지』 출간 기념 독자이벤트’가 홍대 부근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조규찬의 등장을 앞두고 이날 사회를 맡은 편집자는 이런 소개말로 우리들의 긴장을 푼다. “원고가 무척 깨끗했다. 그 말은 출판사에서 거의 만지지 않은 원고라는 뜻이다. 편집자로서 행복했다. 조규찬 씨는 강남 삘이 있는데, 원고를 보면서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웃음)” ‘우유 빛깔’ 조규찬의 귀티 나는 이미지에 깜빡 속았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니 아니란 말이렷다.

곧 ‘박수에 민감한 사람’ 조규찬이 등장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 “‘독자’를 만나는 자리는 오늘이 처음이다. 책을 처음 냈으니까. 음악을 들려드리는 자리에서 만나는 것보다 격의가 느껴지고 어려운 자리다. 문장이 조리가 있지 않으면 대필 의구심이 들 만한 자리인지라 긴장하고 있다. (웃음)”

그의 음성을, 노래를 처음 접한 건 「무지개」였다. 1989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통해 그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여름 날 소나기를 흠뻑 맞은 아이들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띠워 보내고~♩/ 뒷산 위에 무지개가 가득히 떠오를 때면/ 가도 가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따라 갔었죠~♪” 맑았다. 청아했다.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 눈앞에 펼쳐진 무지개에 성큼 올라선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이후 「소중한 너」로 1990년대의 감수성에 불을 붙인 그는 「따뜻했던 커피조차도」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 「충고 한마디 할까?」 「믿어지지 않는 얘기」 등으로 우리의 감성을 다독였다. 그는 스타가 아닌 명징하게 뮤지션이었다. 자신의 솔로 앨범은 물론, 조트리오로 밴드 활동을 했고, 해이, 이소라, 토이, 김현철, 박학기, 장윤주 등 숱한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 작업과 OST 음반에 이름을 올렸다.

섬세함과 따뜻함, 때론 건조함이 묻어났던 그의 음악적 감성. 그렇게 늘 우리 곁에 있던 그 감성. 뮤지션이 아닌 책의 저자로서 처음 만나는 자리에선 어떤 감성이 묻어날까. 어느 별도 아닌 달에서 온 그이기에, 아마도 그는 달에서 절구를 찧기보다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을 테다. 그는 음악과 낚시 얘기를 할 때, 살짝 들뜨고 눈이 더 빛났다. 아마도 그는 ‘음악 하는 사람’이고 ‘낚시하는 사람’이려니. 몇 가지 정체성을 지닌 조규찬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인터넷을 통한 질문과 현장 질문을 섞어 각 정체성별로 묶었다).


뮤지션 조규찬에게


가사를 어떻게 쓰나요?

“가사를 경험으로만 썼다고 말한다면 나쁜 사람이 되는 상황도 벌어질 거예요. 가사는 제 얘기일 수도, 간접 경험에 의해 화자의 프리즘을 통과해 나타난 결과를 담은 것이에요.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가 내 얘긴 줄 알고 ‘넌 인간도 아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웃음) 모든 게 극명하게 드러나고, ‘결론은 이것.’이라고 규정되는 것보다는 ‘저건 뭐지?’라고 의문을 가지는 것이 좋아요. 낚시를 할 때도 물고기가 잘 잡히는 물은 탁도가 있는 곳이에요. 서로가 잘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죠.”

슬럼프는 어떻게 벗어나나요, 멘토가 있다면?

“슬럼프라는 말이 성립되려면 전성기가 있어야 하는데, 시쳇말로 뜬 적이 없는 가수잖아요. (아니요~) 슬럼프로부터는 치외법권이었어요. 괴로워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일상이나 작품 활동 등을 통해 템포가 일정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채찍질 같은 것을 해요. 이미 제가 형성해 놓은 것으로만 앞으로 남은 삶을 사는 것이 위험하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슬럼프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마다 아이 얼굴을 바라봤고, 아내하고도 일상적인 것이 아닌 주제로 얘기를 많이 하고. 음악이나 글에도 ‘대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재 공간이나 대기, 바람, 빛의 흐름을 즐겨요. 글을 위해 가장 좋은 환경은 마천루보다 정제되지 않은 곡선이 있는 저수지나 바닷가가 좋고요. 특히, 날씨가 글루미할 때, 엔니오 모리코네의 앨범 <Once upon a time in america>를 읊조리면서 밖으로 나서죠.

멘토라……. 좌우명이나 멘토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좀 곤란해요. 그러려면 서태지여야 하잖아요, 음악에선. 제겐 그런 존재가 없어요. 만약 영향을 받은 것으로 얘기하면 ‘마돈나의 「Crazy For You」가 7.5퍼센트, ……’와 같이 해야 하는데, 모두 얘기하는 것이 어려워서 멘토 부분은 생략할게요.”


창작자로서 가지는 이런 애로. “생활인으로 살다 보면 가끔 바닥이 드러나 갈라진 감성의 욕조를 발견한다. 매일 퍼내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딱히 누구의 잘못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창작인’의 입장에서 보면 저항할 수 없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p.66)

한 잡지 인터뷰에서 “음악 때문에 잃어버린 게 많다.”고 했는데, 어떤 뜻이고, 음악은 조규찬에게 어떤 의미죠?

“음악 때문에 잃어버린 건 음악이에요. 음악 때문에 행복했고, 음악을 삶의 목적으로 즐겨 했는데, 프로페셔널이 되면서 그 즐거움을 상당 부분 상실했어요. 생산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쪽 갯바위에서 저쪽 갯바위로 건넌 거죠. 이쪽에서 보기엔 아름다워 보였는데, 막상 저쪽으로 가보니까 척박하기 그지없는. 다시 돌아와서, 만드는 이 입장에서 배려하고 책임져야할 것이 너무 많아졌어요. 내 감성의 욕조에서 물을 퍼내는 것이냐, 이성에 입각해 조합을 통해 드리는 것이냐로 갈등하고 스스로 질문해요. 고통스러워요. 가감이 전혀 없는 원초적인 저의 소리를 낸다면 영미 팝의 배음이나 기타 주법 등 보편적 음악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독특한 시도를 했을 거예요.

그래도 여전히 조규찬에게 음악은 그래요. 뱃머리에서 이번 항해에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할 거라고 소리치는 선원 같은. 그런 선원의 마음으로 창작을 하고자 해요.”


책에서도 그는 ‘직업적으로’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한 애환을 거듭 곱씹었다. 좋아서 했고 ‘즐김’ 그 자체로 존재했던 음악이 직업이 되면서 맞닥뜨린 아이러니. “음악을 통해 받은 혜택만큼 음악 자체의 행복은 세상에 반납해 왔는지도 모르겠다.”(p.70)는 그의 고백. “이렇게 ‘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한다는 건,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자기 예술에 관한 고집이 세고 음악적 색깔이 강한 사람일수록, 언젠가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얻게 되면 안팎으로 ‘상업주의와의 결탁’이라는 유혹과 피해 의식에 시달리게 된다.”(p.68)

스스로 행했던 이 답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면 슬퍼질 수도 있습니다. 음악이 좋으시다면 그냥 좋아하기만 하세요. 어떤 면에서는 그게 더 행복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음악에 있어서 제 스스로를 선택된 사람쯤으로 여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당신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pp.69~70)

공연을 할 때마다 주제를 만들고 선곡을 하는데, 특별히 고려하는 점이 있나요?

“(공연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형성될 분위기는 관객과의 소통이죠. 그 분위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제 공연은 제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이 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비록 전성기는 없었지만, (웃음) 음악을 장치로 그 분위기를 꾸미는 거죠.”


이적 씨는 ‘프란츠 카프카’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던데, 음악을 만들 때 어떤 작가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나요?

“이적 씨처럼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까 음악에 대한 얘기처럼 누구누구가 7.5퍼센트, 8.9퍼센트 이렇게 나올 수는 없고요, 굳이 말하자면, 마르셀 에메(『착한 고양이 알퐁소』), 파트리크 쥐스킨트(『향수』), 이외수 님, 김영훈 실장님(『달에서 온 편지』 편집자)도 좋아하고……. (웃음)”

정규 9집 앨범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책을 내서 놀랐어요. 어떤 계기로 썼나요? 평소 모아 놓은 글인가요? 9집은 언제쯤?

“내년 1월쯤 9집을 내게 될 것 같아요. 지난 3년간 작업실에서 썩어 문드러진 시간을 보냈어요. (웃음) 건강한 썩어 문드러짐이죠. 창작자들은 그렇게 틀어박혀서 작업해야 하고, 발표되지 못한 곡도 있어요.

책 냈다는 것을 보면서 가수가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이번 글은 CBS 라디오의 <꿈과 음악 사이에>를 진행하면서 동명의 일요일 코너에서 낭독한 거예요. 2년 가까이 진행하면서 글이 쌓였고, 지난 2월 공연에서 짧은 글을 써서 곡 중간에 낭독했는데, 마침 출판계에 계신 분이 공연을 보고 글 써 놓은 것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것이 인연이 돼서 출판 관련된 분을 만났고, 삽화를 그려서 CD 내레이션 등을 해서 엮었어요.”


노래나 글이 꾹꾹 의미를 눌러 담은 것 같아요. 요즘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뭔가요?

“제가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스스스스 하는 나뭇잎 소리예요. 가장 행복할 때는 산책할 때예요. 그것도 사람이 별로 없는. 집 앞에 나가 천천히 거닐다 보면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스스스스 소리가 나는데,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없어요. 이런 소리가 글 쓰거나 기타 칠 때 영감을 줘요. 똑같은 소리 같지만 시시각각 다르기도 하고요.”

결혼 전후로 음악을 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처럼 결혼이 창작자에게 다른 굴레를 씌워주는 나라가 없는 것 같아요. 아니, 창작자보다는 연예인. 결혼할 때 기획사에서 계약을 파기했어요. 전 담담하게 받아들였어요. 일단 결혼하고 나중에 (앨범을) 내야지, 했어요. 창작자들은 늘 ‘왜 창작해야 하느냐?’의 질문을 해야 해요. 상업성을 배제한다는 건 위선이고, ‘음반을 많이 팔아서 떵떵거리며 살아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될 것 같아요.”

결혼 전후, 여성, 특히 미모의 여성을 볼 때 느낌이 어때요?

“결혼 전이나 후나 예쁜 팬을 보면 ‘정말 예쁘다.’라고 생각해요. 결혼하고 나서 ‘아유, 못났어.’라고 하진 않잖아요. (웃음)”


낚시꾼 조규찬에게

최고의 낚시터는 어디였고, 잡은 물고기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몇 센티미터였어요?

“두 번 굉장히 큰 물고기를 잡았어요. 하나는 잉어로 67센티미터였는데, 가슴 높이까지 물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싸웠어요. 물론 길어야 3~4분인데, 한창 씨름하는데, 주변의 어르신들이 뜰채를 갖고 오셔서 건졌어요. (웃음) 다른 하나는 신갈 저수지에서 베스 낚시 대회가 있었는데, 아는 분을 따라갔다가 낚시를 했어요. 베스가 물렸는데 <죠스>라는 영화에서 상어가 배를 끌고 가듯 저를 막 끌고 들어가는 거예요. 결국 잡았죠. 체중이 1.3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베스였어요. 물고기가 1.3킬로그램이면 엄청난 거예요. 땅바닥에서 무릎까지. 사진이 있는데, 그 표정의 득의양양함이란. (웃음)

제일 좋아하는 낚시터는 전북의 고마제라는 저수지예요. 그곳에 가면 낮은 산이 있고, 한국화에 나오는 아담하고 수려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멋진 풍광을 가진 곳인데, 사람 손을 타지 않아서 물도 유리 같고, 베스들에게 저의 낚시채비를 어필하기 좋아요. 지금까지 두 번을 갔어요. 처음에는 우연히 갔고, 두 번째는 그때 기억을 못 잊어서 다시 찾은 거죠.”



작가 조규찬에게


책에 나온 화자 이름이 독특했어요. 작명 노하우가 있나요?

“약간 장난기가 발휘된 이름이 있어요. 스토크 페러노이 교수는 ‘스토킹’과 ‘패러노이드’에서 따온 거죠. 그런 힌트들이 있는 이름이에요. 이름에서부터 캐릭터를 얘기하는 거죠. 그런 재미를 느끼면서 장난기를 발휘한 거예요.”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나 챕터가 있다면? 이 문장은 내가 썼지만 정말 잘 썼다고 생각하는 것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 있다면요?

“책 내용과 결부된 음악은, 기타 하나로 할 수 있는 음악은 없어요. 마음에 든 문장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원구」 중에서)이에요. 그 문장에 가장 애착이 가요. 오랫동안 가슴속 켜켜이 쌓아온 말을 꺼내 놓은 거예요. 20년 음악 생활 동안. 가장 사랑하는 글은 「노을」이에요. 아버지를 사랑해서. 그 글을 통해 아버지를 만나게 되니까. 그 골목, 겨울 냄새도 느껴지니까.”

작가가 된 기분은 어때요?

“조규찬을 좀더 친절히 보여주는 청사진 같아요. 조규찬이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을 펼쳐 보여주는, 홀로 고립된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충분하진 않지만 거기에 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작가가 됐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아요. 단지 꾸며서 멋있으려고 쓴 글은 아니라는 거예요. 책을 내겠다는 생각 이전에 얘기하듯이 한 땀 한 땀 써 내려간 글이고, 앞으로도 책을 엮어낼지는 장담을 못하겠어요. 어디까지나 전 음악 하는 사람이고, 낚시꾼이니까. (웃음)”


인간 조규찬에게


조규찬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으며, 추억이란 어떤 의미?

“‘아버지는 아버지였다.’는 것으로 충분해요. 나는 그분의 아들이고, 그분은 나의 아버지였다는 것.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편인데, 그로 인해 결코 지울 수 없는 경험도 많았어요. 사춘기를 관통하고 20대 초반까지 세상에 대한 신뢰도 안 가졌고, 시니컬했어요. 그렇다고 그런 시기들이 그 하나로만 얘기되는 단순한 문제는 아니고요. 그때 제 가슴속에 간직한 아름다움도 있는 거죠.

책을 보면 앞부분에는 제 얘기고, 뒷부분은 픽션이잖아요. 앞부분을 보면 ‘어려운 때가 있었구나.’ 싶겠지만,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미묘한 행복감이 있어요. 잊고 싶지 않은 슬픔 같은 것도 있고요.

어릴 때 추억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쓰고 싶은데, 큰형과 우박이 쏟아지던 구의동에서의 추억이 잊히지 않아요. 다섯 살 때 형을 따라 만화 가게를 갔는데, 글을 읽지 못할 때니까 형이 만화를 읽어주면 놓치지 않으려던 기억이나, 해가 뉘엿뉘엿 지고 우박이 쏟아지는데, 형의 등에 업혀 형의 숨소리와 형의 등에서 나는 열기와 수증기가 아직도 기억나요.”


결혼 후에도 음악적 예리함이 사라지지 않아서 좋았어요. 조규찬이 생각하는 인생의 월척은 어떤 건가요?

“잉어와 베스가 있었지만, 아내와 아들이 제 인생의 두 월척이에요. 팬의 경우에는, 저는 팬들을, 그들도 저를 소유할 수 없으니까 월척이라고 할 수 없죠. (웃음)”

음악이 아니라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거나(주. 그는 미술을 전공했다) 양어장 주인? 프로 낚시꾼? 그런데 낚시를 하건 양어장의 고기를 키우건 그림을 그리건 그게 ‘일’이 됐을 때는 다를 바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서서 하고 있는 일, 벌어먹고 사는 수?이 되는 순간, 나의 유희로부터 멀어지는 거죠. 그건 어쩔 수 없는, 짊어지고 가야할 애환 같은 거예요.”

마칠 무렵, 조규찬이 넌지시 끝인사를 건넸다. “오늘 이 자리는, 다섯 살 시절을 추억하듯 사소한 모든 것들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어요. 또 가수로서 팬을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여러분을 같이 나이테를 늘려가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고요. 공연을 하면서 마이클 잭슨 얘길 하거든요. 지금의 추모와 사랑이 살아 있을 때 그랬으면 죽을 때 덜 외롭지 않았을까, 하고요. 저에게도 그래 주시고요, 저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이날 조규찬은 두 곡의 노래를 선사했다. 비틀즈의 「Yesterday」와 Carole King의 「You've got a friend」(주. 이곡은 조규찬이 베스트 앨범 <# Best 무지개>에서 리메이크한 바 있다.) 눈을 감고 듣자니, 낚시터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내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고, 왠지 이 세상에서 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규찬은 어쩌면 자신의 감성을 낚시에 끼워 세상이라는 저수지를 유영하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준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 우리는 낚인 거다. 조규찬이라는 미끼에. 그런데 낚였다고 마냥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도, 그것이 조규찬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의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다. 그는 포도당이 담긴 링거다. 음악이 그랬고, 이젠 책으로 우리를 채워준다. “갈증은 마음에도 찾아온다. 사람의 내면에는 감성의 욕조가 놓여져 있다. 그것은 링거에 의해 환자의 몸에 공급되는 포도당처럼, 아주 천천히 한 방울씩 떨어지는 사색에 의해 채워진다.”(p.64)

“별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던 나이”, 아홉 살을 훌쩍 지난 지금의 나이. 어쩌면 밤하늘을 봐도, 이젠 별을 찾지 않을 나이. 어쩌다 간혹 ‘별은 내 가슴에’라고 우겨보지만, 나는 이미 감성노화가 시작된 꼰대가 되고 있다. 그러니까,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다짐하는 세상의 딸들은 결국 어느 순간 어머니를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p.60) 말인즉슨, ‘꼰대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다짐했건만, 나는 꼰대가 돼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조규찬으로부터 날아온 ‘달에서 온 편지’를 넘기며 나도 추억을 떠올렸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간극을 다시 생각했다. 항상 시간보다 느린 사람의 운명. 그리고 이 말을 되씹었다. “제이미를 보며, 나도 그처럼 ‘행복한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가.”(p.87)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사랑하게 되면 단순해진다. 보고 싶어서 보고, 보지 못해서 보고 싶고, 보면 안 된다고 하면 더욱 보고 싶다.”(p.188) 이 모든 게 다 조규찬 때문이다. 낚인 거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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