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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과 함께한 60년을 회고하다 - 국악인 황병기

그의 음악은 신에게 사랑받는, 선택받은 극소수의 인간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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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생애, 그가 삶에서 이룩한 성취를 언어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할 때가 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 중에 그런 이가 있다. ‘하이파이 리뷰’에서 ‘그의 음악은 하이 스피드 시대의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해독제와 같다.’는 평을 받은 황병기의 음악과 그의 삶이 그러하다.

어떤 이의 생애, 그가 삶에서 이룩한 성취를 언어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할 때가 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 중에 그런 이가 있다. ‘하이파이 리뷰’에서 ‘그의 음악은 하이 스피드 시대의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해독제와 같다.’는 평을 받은 황병기의 음악과 그의 삶이 그러하다. 그의 음악들은 ‘뛰어나다’ 혹은 ‘아름답다’라는 말로 묘사될 수 없다. 그의 음악은 신에게 사랑받는, 선택받은 극소수의 인간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 경지다. 그의 음악은 70년대에도 충분히ㅡ오히려 과할 정도로ㅡ새로웠고 지금도 여전히 새로우면서 어떤 의미론 고전적이다.

북아현동 언덕에 있는 하얀 3층 집이 황병기가 사는 곳이다. 문 앞에서 그를 만났다.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첫인상은 예인(藝人)이라기보다는 은퇴한 노교수 같은 풍모였다. 생각해보면 거의 반생을 교단에 선 그이니, 그에게서 교수의 풍모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안내를 받아 2층 거실로 향했다. 넓은 유리창을 통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스카이라운지 부럽지 않은 전망이라고 말을 걸었더니, ‘이곳의 매력은 침묵이다. 특히, 밤이면 절간보다 더 고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연세대에선 어떤 강의를 하고 계신지요.

‘국악의 이해’라고 학부생들을 위한 교양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강의 반응은 어떤가요?

요즘은 강의 평가라는 게 있어서요. 학기가 끝나면 학생들의 평가를 받습니다.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교수들 중에서 중간 이상을 못하면 강의를 그만둘 생각입니다. 학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강의를 할 이유가 없지요.

저는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해요.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는 것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요. 제 인생을 돌이켜봐도 인생의 절정기가 대학생이었어요. 대학 시절은 준비기간이 아니라 인생의 클라이맥스요, 제일 행복한 순간이지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즐거운 것처럼 강의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학생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다들 너무 채우려고만 노력하고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제대로 살지 않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는 과거와 미래에서 옵니다. 사람들은 현재를 걱정하지 않지요. 그런데 사람은 현재를 산단 말이에요.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가버린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허깨비’에 불과해요. 현재에는 과거와 미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삶을 괴롭게 하는 건 욕심입니다. 너무 치열하고 악착같은 사람이 근심 걱정이 많지요. 제가 대학생 때 우연히 서점에서 『채근담』을 읽었습니다. 아직도 그 구절을 외고 있어요.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오매 바람이 지나고 나면 대는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매 기러기가 가고 나면 연못은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따라서 군자는 일이 생겨야 비로소 마음에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느니라.

저는 기질적으로도 그렇고, 받아온 교육도 그렇고 뭐든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승부를 보고, 뭔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지독하게 몰두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이 구절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지요. 비우고, 버리고, 잊고,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이 글귀는 제 인생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제가 참 아끼는 책이 『논어』인데, 『논어』의 첫 구절에 인생에 대해 너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어요. 배우고,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 제 칠십 평생 이것처럼 명쾌하게 행복한 인생을 논한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또, 배우고 때때로 익히라고 하잖아요. 열심히 하라는 게 아니라 쉬엄쉬엄, 때때로. 얼마나 좋습니까.(웃음)

『논어』는 ‘위대한 것은 평범하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맹자』만 해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어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하는 어조지요. 그에 비해 『논어』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첫 구절만 봐도 ‘아니한가’ 하면서 상대방에게 의견을 구하는 겁니다. 굉장히 민주적이죠.


『오동 천년, 탄금 60년』에 실린 선생님 사진을 보면 젊었을 때는 예인(藝人) 느낌이 물씬 나는데, 나이가 드실수록 학자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떤 기자가 백남준 씨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를 물었을 때 ‘나는 학자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백남준 씨가 ‘선비’라는 말을 ‘학자’로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먹을수록 저도 선비를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어렸을 때 제 별명이 ‘영감’이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사람들이 ‘점점 아이 같아진다.’고 말해요.(웃음) 돌이켜보면, 저는 아웃사이더였던 것 같아요. 작곡하는 사람, 음악 하는 사람이 어떠하다고 하는 틀에 갇히지 않았으니까요. 일반적인 상식의 틀에 절대 들어가지 않아요.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늘 그렇게 됩니다.

가야금과의 만남을 ‘숙명’이라 표현하셨는데요.

운명이 아니라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좋아서 했어요. 그것으로 유명해질 생각도 없었고, 밥벌이를 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 정말 가야금이 좋았어요. 왜 하필 가야금이었을까, 그건 알 수 없지요. 내가 가야금을 선택한 게 아니라 가야금이 나를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법학 공부를 했으니 법률 계통의 일을 할 수도 있었겠고, 사업에 흥미가 있었으니 사업을 할 수도 있었어요. 영화나 출판계에서도 일했지만 서른여덟에 이대 교수직을 제의받고 결국 가야금에 전념하겠다고 마음을 굳혔어요.

어찌 보면 평생 좋아하는 가야금만 하셨으니 무척 즐거우셨을 것 같습니다만.

이게 참 이상해요. 사람들은 나를 보고 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라 그러거든. 근데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나는 재미있는 게 싫어요. 재미없는 게 좋아요. 나는 일체 잡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락거리도 없어요. 운동도 하지 않고, 소설도ㅡ특히 재미있다고 소문난 작품은ㅡ거의 읽지 않습니다. 내 인생에 ‘재미’나 ‘오락’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야금을 켜고 곡을 만들 때 느끼는 감정은 ‘즐겁다’라고 표현하긴 적절치 않은 듯하고……. 『채근담』의 구절처럼 감정을 내 안에 담아 두진 않습니다. 그저 빈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지요.

1974년, 이대 교수직을 수락하신 그해가 가야금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해인 듯한데요.

그해, 가야금은 제 전부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해예요. 1974년은. 프로가 되어 가야금으로 먹고살겠다고 결심했으니까요. 서른일곱까지는 이것이 좋아서 음악을 했지만, 서른여덟부터는 음악을 밥벌이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그것이 밥벌이냐 아니냐 입니다. 예를 들어, 추사 김정희의 그림이 아무리 멋지더라도 그건 아마추어의 그림입니다. 그에 비해 김홍도의 그림은 프로의 그림이죠. 그것이 그의 직업이었으니까요. 즐거워서 하는 것과 직업으로 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프로로서 살겠다는 생각이 음악에도 반영되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변했지만 음악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침향무>에서 <달하 노피곰>까지 다섯 장의 앨범이 있는데, <침향무>는 1974년도 앨범이고, <달하 노피곰>은 1997년에 발매된 앨범입니다. 그런데 그 앨범들 사이에서 어떠한 변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내 음악은 어떤 의미에서 70년대에 이미 완성된 상태였을지도 모릅니다. ‘성장’이라는 게 내 음악엔 없었던 듯하네요. <침향무>? 올해로 나온 지 31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국악 앨범에서도 그렇고 전체 앨범 중에서 이 정도로 장수한 앨범은 아마 찾기 힘든 겁니다. 저는 절대 베스트셀러 음반이나 히트송은 못 만듭니다. 그러나, 제 음악은 항상 팬이 있어요. 그 수가 소수지만 꾸준히 제 음악을 찾아 듣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제 음악을 듣는 사람 중에서 클래식 음악 팬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국악 팬들은 제 음악을 잘 안 들어요. 서양 음악을 많이 듣는 분들이 ‘클래식 듣다가 선생님 음악을 들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습니다.’라고 해요. 옛날에는 음악 감상실이라고 있었는데, 여기선 거의 서양 음악만 틀어요. 그런 데서 제 음반을 틀곤 했답니다.

왜 사람들이 선생님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나는 청자(聽者)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공연을 하러 가거나 강연을 하러 가도 청중이 몇 명이 있든, 아니 한 명이 없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람이 있으면 공연을 하면 되고, 없으면 집으로 돌아오면 되니까. 솔직히 공개 연주는 별로 안 하고 싶어요. 내 방에서 문 닫고 연주해도 되는데 왜 밖에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연주를 하나, 하는 마음이 든 적도 있어요.

내가 국악인이니까, 사람들이 ‘요즘 국악이 홀대받는 현실이 서운하지 않느냐’고 많이 묻는데 저는 솔직히 하나도 안 서운합니다. 나는 내 음악을 보배롭게 생각합니다. 그 보배를 굳이 여러 사람들이 가질 필요는 없는 거죠. 듣고 느낀다면 그걸로 족하고, 듣지 않는다면 그만입니다. 나는 이제까지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들어달라’고 부탁 내지 구걸한 적이 없습니다. 연주하는 데 청중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내가 사람들을 찾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를 찾더군요.

음악을 연주하면서 좀 색다르게 감동했던 적은 있어요. 제가 북한 방문 민간인 1호예요. 1990년에 평양에서 연주를 했는데, 아, 내 가야금 소리가 이 높고 높은 분단의 장벽을 뚫어주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음악 하는 사람으로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내 음악에는 여백이 많아요. 그리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건 침묵이지요. 이 두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 음악에 끌리는 건 아닐까요. 음악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침묵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잘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제 음악에 대한 평가는 ‘하이파이 리뷰’의 ‘하이스피드 시대의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해독제와 같다.’입니다. 그리고 ‘신비로운 동양의 수채화’라고 평한 뉴욕타임스의 글도 생각이 나네요.

저는 제 음악을 오락이나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음악을 만들 때나 들을 때나 언제나 진지하게 집중해서 음악 자체에만 몰두하지요. 나에겐 배경음악이란 없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뭘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해요. 굉장히 공을 들여서 음악을 감상합니다. MP3와 인터넷을 통해 음악을 소비하는 요즘 세대와는 상당히 다르지요.


지금 세대는 황병기라고 하면 「미궁」을 떠올리는데요. 선생님께는 어떤 의미가 있는 곡인지 궁금합니다.

음. 특별히 의미를 찾는다면 내가 만든 음악 중에 제일 유명한데 제일 안 팔렸다는 것?(웃음) 「미궁」은 젊은 사람들이 특히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 들어본 사람들은 다들 굉장히 소름 끼치고 두렵다고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저는 「미궁」을 듣고, 죽음에의 공포를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요. 군대에 갔더니 한밤중에 담력 훈련을 시킨다고 「미궁」을 틀어줬다고 하더군요. 직접 경험한 사람에게 들은 말이에요. 인터넷을 통해 이상한 소문도 많이 돌았지요. 「미궁」을 듣고 죽은 사람이 있다더라, 300명이 죽었더라, 뭐 이런 소문. 그래서 제 홈페쳀지에 아예 ‘미궁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라는 글을 따로 올렸습니다.

「미궁」은 굉장히 이질적인 소리들로 문명 이전의 인간의 소리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미궁」은 1975년에 창작했는데, 지금 들어도 낯설고 전위적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 이 「미궁」에서 뭔가를 찾아내는 것 같아요. 이 음악은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에 삽입되었고, 지금 모바일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제의도 들어왔어요. 황병기 하면 다들 「미궁」을 떠올리는데 사실 제 음악 중에 제일 많이 팔리고, 사랑받은 음악은 「침향무」입니다. 그다음이 <달하 노피곰>에 수록된 곡들이지요.


일흔이 넘으셨는데 꾸준히 연주회를 여신다고 들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으신가요.

서양 예술과 달리 동양 예술은 표현하는 데 있어 육체적인 부분이 적은 편입니다. 서양 음악은 테크닉을 표현하기 위해 힘이 필요하지요. 육체적인 음악입니다. 그에 비해 동양 음악은 테크닉보다는 정신적인 이해가 더 필요한 편이지요. 아무래도 동양적인 것은 정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춤을 봐도, 서양의 발레 무용수는 일찍 은퇴하지만, 우리의 전통춤인 승무는 환갑이 넘어도 출 수 있지요.

아직 순발력이 괜찮은 편이라 연주하는 데 힘들진 않습니다. 외국 연주 여행도 다니고, 국내 공연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대전 카이스트에 내려가 연주회를 할 예정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연주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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