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죽음으로 산울림을 졸업한 김창완이 밴드를 결성해 앨범을 냈다. 김창완 밴드의 첫 EP 앨범 <The Happiest>의 재킷에는 다섯 남자가 오도카니 의자에 앉아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펜을 들고 눈, 코, 입을 그리고 색연필로 검은 테두리 안을 색칠하고 싶어진다. 이 재킷은 김창완이 직접 그렸다고 했다.
수록곡은 여섯 곡. 1997년 발매된 산울림 13집 이후 11년 만에 발매되는 앨범이다. 김창완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선물 같은 음반이 아닐 수 없다. 기타의 하세가와 요헤이, 키보드 이상훈, 드럼 이민우, 베이스 최원식. 김창완과는 스무 살 이상 차이 나는 삼십 대 초반의 젊은 연주자들과 그가 빚어내는 음악은 익숙하면서도 신선하다.
인디 쪽에서는 널리 알려진 하세가와 요헤이는 13년 전에 산울림 음악에 끌려 서울에 와서 홍대에서 꾸준히 인디밴드들과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보다 한국이 더 익숙하고, 한국말도 유창하다. 이상훈은 세션으로 10년 이상 활동했고, 최원식은 이태원 클럽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해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음악(레슨)으로 밥을 먹고 산다고. 밴드에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이민우는 강한 록 음악을 해 왔다.
녹음된 음악을 집중해서 들어보면 희미한 잡음-웃음소리와 숨소리-을 들을 수 있다. 잡음, 이라고 썼지만 듣는 순간 샴페인 거품이 톡톡 터지는 소리처럼 즐겁다. 이들은 음악을 하면서 정말 행복해하는 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홍대 근처의 카페에서 김창완 밴드를 만났다. 테이블 끝에 김창완이 무너지듯 테이블에 엎드렸고, 나머지 멤버들이 자리에 앉았다. 같이 밴드 활동을 하는 게 어땠냐고 묻자 다들 한 목소리로 너무 재미있고 신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선배님이 술은 넘치도록 사주시고요.(웃음)”
어제, 방송 첫 무대였는데요. 어떠셨나요?
긴장했어요. 방송 무대는 보통 무대하고 다른 느낌이었어요.
관중들이 많아서 그랬나요?
관중들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오히려 클럽이나 소극장에서 공연할 때, 적은 관중 앞에서 공연할 때 더 책임감이랄까, 의무감이랄까 하는 걸 느껴요. 작은 공연장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보면서 공연을 하게 되는데, 아, 저 분들이 돌아가실 때 작은 즐거움이라도 꼭 가져가시도록 해야 하는데, 하는 의무감을 느끼죠.
의무감이라…… 음악 하는 사람으로 어떤 의무감을 느끼시는지 궁금한데요.
어제보다 좋은 연주를 하고 싶다, 어제보다 나은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에게 ‘아, 사람이 이렇게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구나, 이렇게 멋지게 연주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최원식)
음, 어려운 질문인데…… 저에겐 음악을 하면서 어떤 의무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즐거우니까 음악을 하는 거죠. 저한테 음악을 뺀다면 뭐가 남을지 모르겠어요. 취미라고 해야 음악 듣는 것이랑 레코드 사는 것, 그리고 가끔 맛있는 것 먹는 거, 기차 타고 멀리 가 보는 게 전부예요. 사람들을 만나도 음악 이야기만 해요. 그 앨범 좋더라. 이거 들어 봤니……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내가 굉장히 재미없는 사람 같네요.(웃음) 저에겐 음악 말고는 별로 재미있는 게 없어요. 음악이 좋아서 한국에 와서 13년째 살고 있어요. 의무라고 굳이 한다면 내가 재미있게 하는 것? 그게 자신에 대한 의무 같습니다.(하세가와 요헤이)
저는 음악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그것이 지금껏 내가 음악을 하고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음악은 항상 친구 같았어요. 그 때는 몰랐는데 음악이 제게 늘 힘이 되어 주었어요. 음악을 시작하면서 꿈이 하나 생겼지요. 지구에 있는 누군가가 내 음악을 듣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서 주체를 못할 것 같아요.( 김상훈)
의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요. 저는 음악에 대해 허무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특히 공연을 마치고 나서 텅 빈 객석을 보면 힘이 쭉 빠져요. 사람이 두 명이 있든 천 명이 있는 무대가 끝나고 느끼는 허무감은 똑 같은 것 같아요. 잘 잊혀지지가 않죠. 그 느낌을 잊으려고 술을 마실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무대가 좋아요. 견딜 수 없이.(이민우)
음악을 하면 행복하고 행복해서 음악을 해요. 음악을 들으면 행복해지고…… 꽃 키우는 사람, 배 짓는 사람하고, 음악 하는 사람은 다른 행복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어요. 행복은 쫓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의 근원이 행복이었다는 걸 잊어 먹고 살아요. 우리는 연주하는 게 정말 즐거워서 연주해요. 그 즐거움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었으면 해요. 저는 사람들이 행복한 노래를 부르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저는 그 행복한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고 싶고요.(김창완)
꽤 오랫동안 음악 활동을 하셨는데 여전히 무대에서 긴장이 되나요?
바바라 스트라이젠드도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고 하잖아요. 무대에서 뮤지션이 긴장을 안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공연은 매번 달라요. 긴장이 되는 공연이 있고, 부담이 되는 공연이 있고요. 황홀해서 정신줄 놓고 연주할 때도 있고.(웃음) 뮤지션은 무대에서 항상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해요. 그러긴 위해선 긴장이 필요하지요. 무대에서 긴장을 하는 건 프로의 자존심이라고 할까, 뭐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창완 선생님은 지금 <그들이 사는 세상>에 촬영 중이신데요. 역시 악역보다 지금 맡고 계신 역이 더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다음 주면 촬영이 끝나요. 원래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거라 딱히 연기한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데…… 다만, 직장인들을 너무 희화한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해요.
이번 앨범은 원 테이크로 녹음하셨다고 하는데요.
세 번 정도 녹음을 했는데 첫 번째로 녹음한 게 다 좋았어요. 10월 29일부터 30일. 이틀 사이에 전곡을 다 녹음했어요. 워낙 그 전에 연습을 많이 하기도 했고, 우리 멤버들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밴드 활동을 해서 좋다고 느낄 때는 언젠가요?
시너지가 있어요. 컨디션이 별로 안 좋을 때, ‘어, 오늘은 왠지 잘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느낌이 드는 날이 있는데 같이 연주하다 보면 힘이 나요. 그리고 소속감이 있어서 좋아요. 조직 생활하는 사람들이 부러운 게 딱 하나 있는데, 소속감이에요. 매일 출근하면 동료들이 있고, 보호해 줄 조직이 있다는 거……. 같이 하는 동료가 있고 밴드라는 울타리가 생기잖아요. 굉장히 의지가 되죠. 음악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솔로로 음악활동 하는 거 참 외롭거든요. 이렇게 모이니까 이젠 나인 투 파이브 직장인들도 안 부럽죠. 원하면 우린 24시간 붙어있을 수 있으니까요.
멤버들의 나이가 다들 삼십 대 초반이신가요?
네, 저희들은 삼십 대고요. 선생님이 평균연령을 확 높이셨죠.(웃음)
앨범에 있는 곡 중에 어떤 곡을 연주할 때 가장 신나셨어요?
다 좋은데…… 하나를 꼽으라면 「우두두다다」요.
「모자와 스파게티」는 가사가 재미있어요. 팬들 중에서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가 좋다고 하시는 분이 많고요. 그런데 정말 저희 노래 다 좋아요.(웃음) 김창완 선생님 가사를 보면 신기할 때가 있어요. 굉장히 직설적이고, 저런 걸 노랫말로 쓸 수 있을까 싶은데, 막상 노래를 불러보면 너무 좋아요. 그게 김창완 선생님 가사의 매력인 것 같아요.
이번 앨범에서 팬들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곡은 아무래도 죽은 동생에 대한 추모곡인 「forklift(지게차)」가 아닐까 하는데요.
동생이 죽고 나서 6개월 동안 아무 것도 못했어요. 잠도 잘 못 자고, 그저, 멍하니…… 그러다 갑자기 한밤중에 일어나서 「forklift」 가사를 썼어요. 정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펑펑 울었어요. 노래가 완성된 후에야 불현듯 깨달았죠. 동생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고, 우리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고, 나는 여기서 내 삶을 완결 지어야 한다는 것을, 매 순간을 온 힘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걸. 역설적으로 동생의 죽음이 내게 삶을 일깨웠어요.
김창완 선생님과 함께 음악 하시면서 어떤 걸 많이 느끼셨어요?
역시 프로라는 것. 확실하게 표현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다 프로라고 생각해요. 그것으로 돈을 벌든 못 벌든 상관없이. 저희 넷은 김창완 선생님의 팬이고, 선생님 음악을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만나 뵙는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같이 음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김창완 선생님 앨범 중에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한데요.
김창완 선생님 팬들에게는 그렇게 질문해서는 안되고요.(웃음) “요즘 몇 집 들으세요?” “요즘 같은 계절에는 유독 뭐가 듣고 싶어요?” 이렇게 이야기하죠. 저(최원식)는 어젯밤에 8집을 듣고 있었어요. 한동안 안 들었던 음반인데 박스 세트가 나오면서 듣고 싶어져서요.
하세가와 씨는 한국말을 굉장히 잘 하시는데요. 한국말은 어떻게 배우셨어요?
한국에 음악이 좋아서 무작정 왔어요. 전 단순하거든요. 일본에서 산울림이나 옛날 한국 음악을 듣고 좋아서 다른 앨범도 구해 듣고 싶었어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들을 길이 없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오게 됐어요. 오긴 왔는데 말이 안 통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매운 걸 하나도 못 먹었어요. 저는 곰탕이나 설렁탕을 먹고 싶은데 글자도 모르고 말도 모르니까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데, 만날 육개장, 이런 것만 나오고…… 여기서 살려면 한국말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혼자서 공부했어요. 결과적으로 음악이 한국어를 배우게 한 원동력이지요. 저뿐만 아니라 김창완 선생님을 비롯한 멤버들의 원동력이 다 음악이 아닐까 해요. 음악이 우리들을 이곳으로 이끌었고 함께 하게 하는 거죠.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공연 많이 와주세요. 앨범이 많이 팔리는 것도 좋지만 공연이 많이 와주시는 게 더 좋아요. 공연장에서 코앞에서 우리 노래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들 굉장히 즐겁게 연주하거든요. 그 즐거움을 팬들 분이 가져가셨으면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12월 27일부터 3일간 공연이 있어요. 앨범하고 처음 하는 공연인데요, 그 때 많은 분들과 만났으면 좋겠어요.
산울림의 김창완을 더 이상 못 보는 건 아쉽지만 김창완의 음악은 그가 살아있는 한 계속될 것이라는 데 위안을 삼아 본다. 그리고 그가 재능과 열정이 있는 젊은 뮤지션들과 만들어가는 무대가 있어서 세상이 아주 조금은 더 행복해졌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