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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8년 만에 첫 단편집 『그 여자의 침대』를 낸 소설가 박현욱

대표성을 가진 작품 하나를 남기는 게 작가로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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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현욱이 등단 8년 만에 첫 단편집을 냈다. 2002년부터 2008년 봄까지 발표한 작품 여덟 편이 『그 여자의 침대』에 수록되어 있다. 장편보다는 단편에 치중하는 한국 문단에서 그의 행보는 독특해 보인다.

소설가 박현욱이 등단 8년 만에 첫 단편집을 냈다. 2002년부터 2008년 봄까지 발표한 작품 여덟 편이 『그 여자의 침대』에 수록되어 있다. 장편보다는 단편에 치중하는 한국 문단에서 그의 행보는 독특해 보인다. 데뷔를 장편(『동정 없는 세상』)으로 했고, 그 이후 두 편의 장편을 더 썼다.

등단 8년 만에 단행본이 네 권. 단순히 계산하면 2년에 한 권인 셈이다. 그는 『그 여자의 침대』의 작가의 말에서 ‘열심히 하지 않은 덕분에 여덟 해가 되도록 소설을 쓰고 있고, 띄엄띄엄 써온 단편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열정의 부재가 준 선물’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책 권수를 다른 문인들과 비교해 보면 그 말은 겸손으로 느껴진다. 열정과 끈기 없이 소설은, 장편 소설은 쓸 수 없다. 그 역시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소설은 천재도 힘이 드는 장르다. 기본적으로 소설 쓰기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힘들고 지루한 과정이다.”라고.

장편이 섬세하게 계산된 코스 요리라면 단편은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알라카르트(a la carte)에 비유할 수 있다. 일반 독자들 중에서는 박현욱의 단편을 처음 접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 여자의 침대』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들은 소설가 박현욱의 데뷔 후 8년을 한번에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장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간결한 이야기 특유의 여운 역시 느낄 수 있다. 장편이 작가의 역량을 보여준다면 단편은 작가의 개성과 재치를 보여주기에 적절하다. 여덟 가지의 독특한 향신료를 맛보는 듯한 이야기들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로 인터뷰한 지 2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마침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가 개봉되고 나서이기도 했다. 먼저 영화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어떻게 봤나?

본의 아니게 두 번을 봤다. 시사회 때, 관객과의 대화 때. 결과적으로 두 번 보기를 잘했다. 처음 볼 때는 마음이 불편했는데, 두 번째 볼 때는 거리 두기가 가능해서인지,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매력적인 장면도 몇 개 발견했고. 사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내 책과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가 책에 쓴 대화가 몇몇 장면에서 나오는 걸 보면 어색하고 불편했다. 처음에는.

나는 내 작품도 책으로 펴내면 다시 들추어 보지 않는다. 이번에 단편집을 낼 때도 원고를 수정하고, 교정한 후에는 다시 들추어보지 않았다. 물론 교정까지는 굉장히 열심히 본다.


영화 흥행이 생각보다 저조했다고 하던데.

영화가 잘됐다고 감독과 함께 인터뷰한 지 며칠 만에 「<아내가 결혼했다> 실패 원인 다섯 가지」라는 기사가 뜨더라.(웃음) 소설과 영화는 숫자감각이 다른 것 같다.

150만 정도 들었다는데. 책이 그 정도 팔리면 초 베스트셀러가 아닌가.

그렇다. 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니까. 보통 몇백억 단위지 않나.

『아내가 결혼했다』가 주는 부담감은 없나?

톡 까놓고 이야기해서 『아내가 결혼했다』가 내 다른 작품과 다른 점은 많이 팔렸고, 그래서 세간의 화제가 된 것 말고는 없다. 많이 팔리는 건 작가가 원해서 되는 게 아니다. 유명세나 세간의 화제도 역시 마찬가지. 잘 쓴 글이 많이 팔리는 게 아니고, 그 반대도 역시 아니다. 그래서 『아내? 결혼했다』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다. 다만, 작가라는 부담감은 있다. 그것은 아주 무겁게 느낀다.

등단 8년 만에 첫 단편집이 나왔다.

띄엄띄엄 쓴 것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나의 네 번째 단행본인데, 장편을 낼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른 것 같다. 지금까지 썼던 것들을 한번에 다 털어내서 홀가분하다. 글 잔고가 제로다.

『그 여자의 침대』에 실린 작품은 6년의 세월에 걸쳐 발표된 것들인데, 작품들 사이에 어떤 일관성을 찾긴 힘든 것 같다.

아무래도 단편집은 작품이 임의로 묶인 거니까 장편과 한 권을 꿰뚫는 주제의식 같은 건 찾기 힘들지 않을까? 작품 사이에 특별히 연관이 있는 거도 아니고. 6년 동안의 작가로서의 어떤 변화를 감지하기도 힘든 것 같고…… 각각 다 다른 이야기들이다. 특별히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러진 않는 것 같다. 그냥 가장 끌리는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소설을 쓰면서 특별히 앞에 발표했던 소설을 염두에 두거나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것치고는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작품이 많다.

인간을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나는 소설에서 관계를 통해 인간을 돌아본다. 결과적인 이야기지만 연애와 결혼이라는 가장 극적인 관계를 통해 인간을 봤다.

소설 주인공들이 이혼을 많이 하는데…… 「그 여자의 침대」도 그렇고, 「연체」나 「그 사이」「생명의 전화」의 주인공들은 이혼을 했거나, 이혼 과정에 있다.

특별히 이혼 자체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인간은 개별적이고 고독한 존재다. 그런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장치로 썼다.

소설의 화자와 작가가 비슷한 나이여서 그런지, 작가의 실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소설은 소설이다. 나는 밝고 쾌활하고 건전한 사람이다.(웃음) 그렇다고 해서 내 소설 속 인물이 불건전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쓴 사람의 경험이 전적으로 배제되진 않겠지만 현실의 이야기를 그대로 쓴 것은 여간해선 소설이 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소설적 변용과 이런저런 것들이 가해져야 했다. 현실이나 작가의 경험은 소설의 모티브 정도밖에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리얼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현실은 비현실적이다. 당장 신문 사회면을 펼쳐봐라. 상상할 수 없는, 말도 안 되고 납득도 안 되는 일들이 마구 일어나지 않나? 현실이 소설보다 더 터무니없다. 소설은 개연성이 있어야 하고, 적당한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이야기에는 적당한 맥락과 질서가 필요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이런 질문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인터뷰 때마다 묻는다. 특히, 『아내가 결혼했다』 때 많이 물었던 것 같다.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에서 분명 내 경험도 있다. 예를 들어, 「벽」에 나오는 형 때문에 피아노 바이엘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주인공의 이야기는 내 경험이지만, 그 경험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사용한 소재에 불과하다. 특별히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해서 쓰진 않는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그렇다. 독자들은 작가의 개인사적인 것이 소설에 등장하면 그 소설 전체가 작가의 실제 이야기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책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건 바둑을 소재로 한 「이무기」였다.

대학 때부터 바둑에 관심이 많아서 언젠가 꼭 소설로 쓰려고 마음먹었던 소재였다. 바둑은 정말 신비하고 매력적이다. 바둑을 보면 고대 중국인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들로 느껴진다. 가로 사십이 센티미터, 세로 사십오 센티미터인 바둑판에 무한이 펼쳐진다.

단편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삶의 한 단면을 통해 드러내는 깊이라고 생각한다.

단편 쓸 때와 장편 쓸 때 차이가 있나? 대부분 작가들은 단편은 단거리에, 장편은 마라톤에 비교?던데.

나는 장편이나 단편이나 똑같이 힘들다. 글 쓰는 건 너무 괴롭다. 괴로움을 즐겁게 느끼려고 노력할 뿐이다. 선배 작가가 글쓰기의 98%는 괴로움이고 2%만 즐거움인데, 그 2%가 지독하게 매력적이고 중독적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동감한다.

그러면 이왕 고생할 거 장편으로 쓸 생각은 하지 않나?

그러게. 어차피 고생하는 건 똑같은데.(웃음) 그런데 장편은 청탁 오는 경우가 드물다. 요즘에는 문예지에서 장편 연재를 하긴 하지만.

글은 규칙적으로 쓰는 편인가?

작업을 마치고 나면 항상 내일도 이렇게 써야겠다고 마음먹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쓸 게 없는데 어떻게 하나. 그럴 때는 보통 사람이 여가를 보내는 것과 비슷하게 시간을 보낸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사람들 만나서 술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안 써져도 써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헤밍웨이가 그랬다고 한다. 쓸 게 없으면 쓸 게 없다는 걸 가지고 글을 쓰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나는 쓸 게 없으면 정말 한 글자도 안 써진다.


장편 계획은 없나?

장편은 구상 중이다. 이건 작가들이 글 안 쓸 때 주로 하는 변명이다.(웃음) 결정된 것은 없다. 지금 쓰는 것도 없고, 써둔 것도 없다. 앞으로 2~3년 안에 장편 하나를 내면 되지 않을까,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작가로서 바람이 있다면?

‘살먼 루시디’ 하면 『악마의 시』, ‘플로베르’ 하면 『보바리 부인』, ‘나보코프’ 하면 『롤리타』가, ‘커트 보네거트’ 하면 『제5 도살장』이 그 작가를 대표한다. 그렇게 대표성을 가진 작품 하나를 남기는 게 작가로서의 내 꿈이다. 앞으로 그 작품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계속 작품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쓴 작품 중에는 없나?

아직 없다. 작가는 항상 다음 작품을 더 잘 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존재다.(웃음)

만약, ‘박현욱’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이 작가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은 작품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평가는 독자의 몫이니까. 플로베르도 그랬다. 『보바리 부인』은 전형적인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쓰면서도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괴로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하지만 그의 수많은 작품을 제치고 『보바리 부인』이 플로베르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지 않았나. 이효석도 그렇다. 그의 대표작은 영원히 「메밀꽃 필 무렵」이다. 작가는 그저 쓸 수밖에 없다. 자신이 꿈꾸는 걸작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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