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집 앨범 『Love Child of the Century』를 낸 클래지콰이(Clazziquai)를 만났다. 약속 시간은 밤 9시. 새 앨범 홍보 활동으로 바쁜 그들이 겨우 내준 시간이었다. 12시에 또 인터뷰가 잡혀 있다고. 강행군 탓에 다들 지쳐보였다.
여전히 고민하면서 만든 세 번째 앨범 『Love Child of the Century』
첫 번째 앨범 『Instant Pig』, 두 번째 앨범 『Color Your Soul』에 이어 발매된 세 번째 앨범 『Love Child of the Century』는 한국과 일본에서 함께 발매되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덕분에 세 사람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클래지콰이의 리더 클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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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이제 세 번째 앨범인데 어떠세요? 보통 첫 번째는 정신없고, 두 번째는 잘했든 못했든 첫 번째 앨범과 비교당해서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잖아요. 세 번째 앨범에서 자기 페이스를 찾았다는 뮤지션이 많던데요.
클래지: 글쎄요. 아직 페이스를 찾았는지, 내 색깔을 냈는지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뭔가 정리되었기 때문에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음악을 만드는 것도 확실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이걸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항상 시작되니까요.
무엇이 달라졌느냐, 얼마나 새로워졌느냐는 질문에 클래지콰이는 확실한 대답을 피했다. 그저 다양한 색깔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고 대답했다. 앨범에 실린 노래 중에는 전쟁과 환경오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고민의 목소리를 담기도 했지만 현실 고발이나 현실 참여가 그들의 목표가 아니다. 그저 음악 하는 사람이기에 음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나갈 뿐이라고.
클래지: 이번 앨범 작업 하면서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불면증에 시달리니까 몸도 아프고 우울하더라고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세상을 좀 시니컬하게 바라보게 되잖아요. 그런 느낌이 앨범에 반영된 것 같아요. 우리가 전쟁 반대나 환경 보호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할 생각도 없어요. 사람 사는 사회라면 있는 부조리, 그런 것을 민감하게 느꼈고,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 음악을 듣고 이것을 느껴라, 혹은 당신의 현실을 변화시켜라,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아요. 듣는 사람의 마음이나 처한 위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어: 여전히 클래지콰이 앨범에는 영어 가사가 많던데요. 거기에 대해 팬들에게 불평을 많이 듣진 않나요?
클래지: 굳이 영어를 쓰는 건 아니에요. 한국어로는 그 느낌이 잘 표현이 안 돼서 영어로 쓰는 거거든요.
호란: 영어는 일상 대화가 그냥 가사가 돼요. 그런데 한글은 일상어와 시어가 따로 존재하잖아요? 일상어를 그대로 가사를 쓰면 이상해요. 그런 점도 있고 노래를 부르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똑같은 내용인데 한글로 부를 때와 영어로 부를 때 그루브나 느낌이 무척 다를 때가 많아요. 언어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죠. 느낌을 표현하는 데 영어 쪽이 더 맞아서 영어를 쓸 뿐이에요.
클래지: 한국어로 그만큼 표현할 수 있다면 굳이 영어 가사를 쓸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문제예요. 저나 알렉스 씨는 청소년기를 캐나다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해요. 의사소통에는 불편이 없지만 가사는 그 이상을 담아내는 거잖아요. 거기까진 제 한국어 실력이 닿지 못했어요. 사실 이번 앨범은 제일 영어를 덜 쓴 앨범이기도 한데 기자 분들에게 유난히 영어에 대해 지적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인터뷰어: 아마 이번 앨범은 듣고 인터뷰를 하셨나 보죠. 클래지?이가 유명해졌으니까.(웃음)
| 보컬 호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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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는 가장 냉정한 비평가
인터뷰어: 멤버 간의 호흡은 어떤가요? 워낙 서로 잘 알고 있어서 편한 관계일 듯한데요.
클래지: 편하지만 무섭지요. 표정만 봐도 아니까요. 곡을 만들어서 이 친구들에게 들려줄 때가 제일 무섭고 긴장이 돼요. 제일 정확하니까요. 가장 친한 사이지만 가장 냉정한 크리틱이 존재해요. 곡을 보여줄 때 안 좋으면 바로 표정이 바뀌어요. 또 도움을 받기도 하고 자극이 되기도 하고 그래요. “이런 느낌의 곡 어때?” 하고 앨범이나 노래를 추천해 주기도 하고요.
인터뷰어: 그럼 클래지 씨도 알렉스 씨와 호란 씨가 노래를 부를 때 냉정하게 평가를 내리나요?
클래지: 그렇죠. 가차없이 솔직하게 평을 말하는 편이에요.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아닌 건 아니다, 별로인 것은 별로다.
인터뷰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비판받으면 기분이 상할 때가 있지 않나요?
알렉스: 전혀 아니에요. 이건 사적인 것이 아니라 음악적인 거니까. 상처받고 그런 일은 없어요.
호란: 아니, 난 가끔 가슴에 푹 받히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웃음)
인터뷰어: 가수 활동을 그래도 꽤 오래 하신 셈인데. 가수가 노래만 불러서는 앨범을 팔 수 없는 현실이잖아요. 세 분은 활동하면서 어떤 것이 제일 싫으세요?
클래지: 말씀하신 것처럼 가수가 노래만 부를 수 없잖아요. 취미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음반 홍보를 하기 위해 나간 프로그램에서 음악인의 자존심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나 거기서 부대끼는 동료들을 볼 때 가장 힘들죠. 음악인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호란: 나는 점점 나를 가짜로 포장하는 것, 그런 것이 힘들어요. 좀 더 솔직하게 보이고 싶은데 연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왜 라디오 방송 같은 데 나가서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재밌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괜히 오버하고… 그럴 때 되게 바보 같죠. 사진 찍으려고 포즈 취하는 것도 어떨 때는 싫어요. 내가 아닌 것 같아서.
알렉스: 나는 그냥 지친 것 같아요.
클래지: 이 친구들이 저보다 스케줄이 훨씬 많거든요. 지금 많이 지쳤을 거예요. 그래서 다소 대답이 비관적인데요.(웃음) 저는 앞의 두 앨범 때는 홍보 활동할 때 같이 다니지 않았는데, 이번엔 같이 다닐 일이 많았는데 정말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직접 겪어보니까 이 두 사람이 안쓰러웠어요. 그렇지만 그런 홍보 활동이 다 싫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 활동을 통해 음악을 알릴 수 있고, 모르는 사람들이 저희 음악을 접할 수 있으니까요. 앨범 뒤에는 회사가 있고, 분명히 그걸로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런 점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요.
알렉스: 사실 클래지콰이가 꽤 유명해지긴 했지만 사람들은 클래지 형을 잘 몰라요. 밖에 나가도 아무도 못 알아볼 정도거든요. 클래지 형 사인은 굉장히 귀한 아이템이에요. 워낙 홍보 활동에 잘 참여 안 하니까요.(웃음)
| 보컬 알렉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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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삼색(三人三色) - 클래지, 알렉스, 호란
리더 클래지, 보컬 알렉스와 호란. 세 사람 모두 자기 색깔이 강하지만 셋이 어우러져 있으면 어딘지 비슷한, 같은 음식을 먹고 자란 형제 같은 느낌이 든다. 클래지가 철이 일찍 든 맏형이라면 호란은 자기주장이 확실한 둘째, 알렉스는 막둥이 동생 같은 느낌.
클래지콰이 세 사람에게 다른 멤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먼저 클래지.
클래지: 두 사람을 바라보면 참 잘 컸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믿음직스럽죠. 호란 씨는 뭘 해도 걱정 안 돼요. 똑똑해서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떠넘길 수도 있고요.(웃음) 얼마 전에 호란 씨가 개인 공연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객석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참 흐뭇하더라고요.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성숙한 사람이에요.
역시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쑥스러운 듯했다.
클래지: 이런 말 하면 자화자찬처럼 들리겠지만 알렉스는 한국에서 제일 좋은 목소리를 가진 보컬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의 엠플로(m-flo)가 알렉스의 목소리를 듣고 저에게 그랬어요. “저런 보컬과 같이 작업할 수 있으니 당신은 정말 행복하겠다.” 좀 더 연습하면 훨씬 더 좋은 뮤지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적으로는 걱정되는 동생이에요. 알렉스는 제가 한국에 오자고 해서 같이 온 친구라 책임감을 느껴요. 저는 이 친구가 기를 못 펴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아프고 뭘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호란은 두 남자를 이렇게 평했다.
호란: 클래지 오빠는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은 사람이라는 걸 요즘 와서 깨닫게 되었어요.(웃음) 음악적으로도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고요.
클래지: 요즘 와서, 라니… 예전에도 그랬어.
호란: 오빠는 뭔가 꾸미는 걸 싫어해요. 굉장히 담백한 사람. 이것은 이거고 저것은 저거. 예를 들어(탁자에 놓인 사탕을 가리키며) 사탕은 그냥 사탕이에요. 거기에 비해 나는 이 사탕에 장식을 갖다 붙이고 포장을 더해서 케이크로 보이게 하는 타입이랄까. 그런데 오빠랑 지내다 보니까 나도 오빠를 닮아가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더라고요. 음악적으로는 더없이 존경해요. 일렉트로니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빠 덕에 많이 듣게 되었어요. 같이 지낼수록 오빠는 내가 갖지 못한 여러 가지 센스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돼요. 오빠는 저보고 믿음직스럽다고 하지만 저야말로 오빠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호란: 알렉스는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부러운 사람이에요. 저는 첫 만남에서 편견을 가지면 끝까지 그 사람을 그렇게 보는 편이에요. 낯선 사람하고 쉽게 친해지지 못해서 늘 친한 사람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는데 알렉스는 누구하고나 쉽게 친해지고 마음을 터놓아요. 알렉스가 사물을, 사람을 늘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참 놀라워요. 저는 어떤 사람의 단점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데 알렉스는 장점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거든요.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그 타고난 목소리 톤이 무척 부럽고 그래서 부담스럽죠. 내 목소리는 너무 평범해요. 클래지 오빠한테 알렉스 같은 목소리를 타고나지 못한 나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느냐고 심각하게 물어봤던 적이 있었어요.
알렉스: 나는 호란이 더 대단하던데?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어? 예전에 호란 씨가 개인콘서트를 한 적이 있었어요. 솔직히 질투가 날 만큼 부러웠어요. 그때 그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조금만 쉬는 짬이 나면 기타 연습을 하는 걸 보고 존경스러웠죠. 호란 씨는 음악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정말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너무 칭찬했나?(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색깔을 가진 사람이죠. 클래지 형은 음악적으로는 더 말이 필요 없어요. 인간적으로도 친형 같은 사람이에요.
삼인삼색(三人三色). 저마다 뚜렷한 색깔을 지닌 이 세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내는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각자에게 가장 냉정한 비평가면서 서로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재주 많은 세 사람이 만들어 낼 다음 앨범이 벌써 궁금하다.